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83화 (82/189)

83화. 고아원 몰락

그녀는 개미들을 보곤 핼쑥한 표정을 지었지만, 개미들에게 익숙해진 아이들이 자초지종을 말해 주자 그녀 나름대로 상황을 해석했다.

“미천한 천민이 마법사님을 뵙습니다.”

문트리아는 인간으로 위장한 나를 마법사라 오해했고, 내가 개미족을 사역해 조종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충격을 크게 받은 그녀에게 2차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았던 나는 본 모습을 숨긴 채 그녀를 포섭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있어?”

“전… 이곳 교역상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요. 그리고 성내의 치안을 담당하고 계신 메르디크 준남작님과도 친분이 있고, 벨레작 백작령뿐 아니라 많은 영지를 가봤습니다.”

문트리아는 자신을 필사적으로 어필하며 말했다.

“거두어 주신다면 생명의 은혜는 꼭 보답하겠습니다.”

“그럼 몸부터 챙겨.”

나는 그녀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어 주곤, 한동안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문트리아가 개미족에게 익숙해질 무렵 내게 물었다.

“제가 무엇부터 하면 될까요?”

“일단 배워. 그리고 내게 충성하면 돼.”

“알겠습니다.”

문트리아는 한동안 허브 워커의 치료를 받으며 아이들처럼 교육 개미인 워커맨과 수녀들에게 많은 걸 배우게 됐다.

스펀지처럼 가르침을 빨아들이던 문트리아가 내게 말했다.

“슬럼가에 남겨진 아이들이 걱정이에요.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신다면 분명 마법사님께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위치를 알려 주면 데려올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난 마법사가 아니야.”

“너무 어려 보이셔서… 역시 마도사님이셨군요. 제가 실례했습니다.”

“…….”

오해를 바로잡으려 하니 더 큰 오해를 낳아 버렸다.

‘뭐, 상관없나?’

그래도 호칭은 정리해야 할 것 같아 그녀와 아이들에게 나를 다크 님이라 부르게 했다.

문트리아가 쓸 만한 인재로 거듭나는 동안, 나는 둥지에서 노예 출신의 사제 비앙카를 불렀다.

의료 개미들이 산성액과 치유액을 번갈아 가며 피부를 새것으로 갈아버린 덕에 노예 인장이 깔끔히 지워진 비앙카는 사제 중에서도 제일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가 돼 있었다.

그녀와 수녀들로 하여금 저택 인근에 고아원을 차리게 한 나는 슬럼가의 아이들을 데려왔다.

‘고아원을 너무 크게 지었어.’

고아원 규모에 비해 아이들이 너무 적은 듯하여, 자금을 풀어 성내의 아이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 * *

아이들을 헐값에 팔아 치운 고아원의 관계자들은 매우 기뻐했고, 원장은 고아원의 상품을 채우기 위해 비어베어의 거점을 찾았다.

“주인장, 슬럼의 쓰레기들 좀 구하고 싶은데. 10실버 줄 테니까 괜찮은 것들 좀 잡아 줘.”

그 말을 들은 주인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안하지만, 요즘 그런 의뢰는 안 받아.”

“아니 왜? 예전에는 잘만 받아 줬잖아.”

고아원 원장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돈을 더 꺼냈다.

“알겠어. 돈도 벌었겠다. 20실버 쳐줄게.”

주인장이 그래도 거절하자 원장이 화를 냈다.

“왜 안 한다는 거야?”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무슨 상황!”

주인장이 입을 꾹 다물며 돈주머니를 쳐다보자, 원장은 분한 표정으로 50쿠퍼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정보값!”

주인장이 살짝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 개미 저택의 다크 님이 갓난아이까지 사들이고 있어. 그러니 푼돈으로 거래할 이유가 없다는 거야.”

“아니, 조금 전에 나한테서도 사 갔는데, 더 필요하다는 거야? 그래서 얼마에 팔려는 거야?”

주인장이 손가락 하나를 세우며 말했다.

“큰 거로 하나.”

“1골드? 그게 돼?”

“상태가 좋으면 1골드도 받을 수 있어, 상태가 안 좋아도 돈을 주니… 노예 상인들이 외지에 나가 아이들을 구해 오는 중이지.”

“하… 도대체 왜… 그런 식충이들을 모아서 뭘 하려는 거야?”

주인장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그야, 모르지. 저택의 안주인이 아이들의 피로 목욕을 즐긴다는 소문도 돌고,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도 있고, 아이들의 비명을 자장가로 여긴다는 소문도 있고… 우리가 알 바는 아니라서 말이야.”

“그래서? 진짜야?”

“50쿠퍼로 말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더 듣고 싶으면…….”

주인장이 돈주머니를 가리키자, 원장은 화를 내며 식당을 나왔다.

“미쳤군. 그 돈이면 수도에서 호화롭게 살 수 있을 텐데. 밥이나 축내는 쓰레기들이나 수집하고 있다니… 역시 있는 놈들은 이해할 수가 없어.”

고아원에서 착취할 상품인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원장은 노예 상인을 찾았고, 그곳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고아원 운영은 힘들겠어.”

고아원의 원장들은 다크가 조만간 아이들을 내다 버릴 것으로 생각했고, 그때를 노려 값이 폭락한 아이들을 구매할 꿍꿍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자리를 잃은 고아원의 관계자들은 다른 일을 찾아보다 도박에 빠지거나 용병이 되어 활동하게 됐다.

그나마 목돈을 지닌 원장들은 다른 영지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다.

준비를 마친 원장 일가가 가족을 데리고 이동하던 중 도적의 습격을 받게 됐다.

“가진 건 다 줄 테니 목숨만 살려 줘!”

“이걸 어쩌나…. 네 일가의 몸뚱이를 가져가면 돈을 준다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뭐? 그게 대체 누구야?”

“잘 생각해 봐. 분명 징조가 있었을 거 아니야?”

“제르바 님이지! 그렇지? 이번 사례금이 부족했던 거야. 그런 거지?”

“정말 모르는 거야?”

“몰라, 정말 모른다고! 말해 주면 내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제발 살려 줘…….”

“너, 다크 님에게 실례한 건 없어?”

“다크? 두 번밖에 본 적이 없는 여자라고!”

“사실 나도 이유를 몰라. 그래서 물어본 거였어.”

도적들은 고개를 저으며 원장 일가를 기절시켰고, 그들을 자루에 넣어 둘러업었다.

“얘들아, 흔적 지워라.”

도적들은 비어베어 소속의 조직원들이었고, 원장의 몸뚱이를 개미 저택에 넘겼다.

다른 조직원들도 고아원 관계자들을 하나둘 잡아 와 개미 저택에 넘겼는데…….

성내에서 고아원의 흔적이 지워졌을 때쯤, 한 조직원이 조장급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원한을 샀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위에 놈들이 말해 준 거긴 한데…….”

조장이 말을 해 줄지 말지 고민하자, 조원들이 싹싹하게 부추겼다.

“…기분이 나빴다네.”

“네?”

“그러니까, 여기 저택의 안주인께서 기분이 나빠서 거액을 쏟아 가며 저놈들을 괴롭히고 싶었다는 거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럼 아이들을 사들이는 것도…….”

“길거리에 지저분한 애들이 다니는 게 싫었나 보지. 봐 봐, 거지 같은 아이들이 사라지니 거리가 쾌적해졌잖아.”

“…….”

조장의 말을 들은 비어베어의 조직원들은 생각했다.

‘미친년이다! 분명 미친년이야!’

돈 많은 미친년의 무서움을 깨달은 그들은 몸을 떨며 절대 다크에겐 밉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 * *

나는 대량의 자금을 풀어 병든 노예와 아이들을 왕창 사들였다.

상태가 안 좋은 노예와 아이들은 지하로 보냈고, 나머지는 비앙카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맡겼다.

비앙카도 고아원 운영이 처음이라 커리큘럼은 내가 짜기로 했다.

‘이곳 실정에 맞게 짜야 할 텐데.’

커리큘럼을 짜는 동안 일단 인간들을 대거 고용해 아이들을 맡겨 봤다.

인건비가 워낙에 싸서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었고, 그들의 관리는 비앙카와 수녀들에게 일임했다.

‘식비가 나가긴 하지만, 그거야 둥지에서 보급받으면 되니…….’

한동안 비앙카를 비롯한 이곳 여인들의 교육 방식을 지켜봤다.

잘못한 아이들은 처벌방에 데려가 사랑의 회초리로 교육한 후 독방에 가둬서 며칠을 굶겼고, 버려야 할 식자재를 싼 값에 들여와 아이들의 식탁에 올렸다.

‘흠… 이상하네, 잘못 봤나?’

남자아이들에겐 조금의 고기가 들어간 반면, 여자아이에겐 고기가 주어지지 않았고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음식 양 또한 차이가 컸다.

‘먹는 거로 차별은 좀 심한데.’

남녀에게 주어진 일과에도 차이가 있었다.

남자아이에겐 두 시간 정도 목검을 휘두르게 한 후 힘쓰는 일들을 시켰고, 여자아이에겐 고리타분한 교육과 집안일, 가내 수공업을 시켰다.

‘미치겠군. 보면 볼수록 답이 안 나와.’

비앙카를 불러 아이들을 좀 더 소중히 대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두 배로 엄격해진 그녀가 보모들을 진두지휘하여 사랑의 매를 강화했다.

식자재 또한 썩기 직전의 육류를 듬뿍 구매하여 남자아이들에게 잔뜩 먹였다.

그리고 원래 빈약한 여자아이들의 식탁은 더욱 빈약해지더니 고작 삶은 채소 몇 장과 콩 몇 알이 올라올 뿐이었다.

‘이건 뭐…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았을 테니…….’

“다크 님,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을 고용하고 싶어요.”

이대로 가면 비앙카와 같은 문외한들이 아이들을 망칠 게 분명하니, 나 또한 프로의 손길을 빌리고 싶었다.

“잘 생각했어. 돈은 충분히 줄 테니까 제대로 된 선생을 고용해 봐.”

“네!”

검술 선생과 예절 선생이 초빙됐다.

둘 다 귀족 혈통으로 명망 있는 사람들이었고, 성내에서도 평판이 좋았다.

그래서 믿고 맡겨 봤는데, 검술 선생은 훈련을 빙자한 아동 학대를 일삼는 놈이었고, 예절 선생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기다 작위가 있는 귀족도 아닌 주제에 혈통을 내세워 가며 아이들의 자존감을 얼마가 짓밟던지.

‘뭐 하는 놈들이지? 아니, 진짜 선생은 맞아?’

훗날 날 위해 일해 줘야 할 아이들이 하루하루 망가지는 듯한 모습을 보니, 내 지우개를 빌려간 뒤 아끼던 모서리를 뭉툭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부러뜨려서 돌려 준 친구가 떠올랐다.

나는 아이들을 하나씩 불러와 물어봤다.

“괜찮니?”

힘들다는 말을 듣기 위해 물어본 거였는데, 아이들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지붕도 있고, 벽도 있어요.”

“침대도 있고 푹신해요.”

“잘못하지 않으면 때리지도 않고 가두지도 않아요.”

“매일 두 번이나 밥을 먹을 수 있어요!”

이곳 아이들이 생각하는 착한 어른의 기준은 매우 낮았다.

‘심각하군.’

매일 때리지 않고 가끔 때리면 착한 어른.

썩은 음식이라도 던져 주면 착한 어른.

가끔 쉬게 해 주면 착한 어른.

즉, 이들이 볼 때 지금 이곳에 있는 어른들은 모두 좋은 어른이었으니…….

‘교육 개미들만 많았어도 지하에 보내면 되는데.’

커리큘럼은 대충 짜기로 한 나는 일단 명망 높은 프로 선생들을 쫓아냈다.

그들은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듯하여 한 마디 해줬다.

“너! 그리고 너! 귀족도 아니면서 고깝게 설치는 게 기분 나빠. 다음에 눈에 띄면 내 전 재산을 너희 모가지에 걸 테니까 그렇게 알고 얌전히 지내는 게 좋을 거야.”

나에 대한 악평이 퍼지겠지만, 이미 미친년으로 소문이 나 있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집사, 비앙카 좀 불러와.”

“네.”

나는 비앙카에게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정확히 말했다.

“지금부터 회초리는 모두 버려.”

“…….”

“아이들에게 행사하는 폭력은 금지야.”

“그렇지만… 따끔하게 혼내지 않으면 아이들이 밖에서 실수할지도 몰라요.”

험한 세상.

실수 한 번에 아이들의 목숨이 오가니,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는 비앙카.

“비앙카, 내게 필요한 건 날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이야. 노예가 필요한 거라면 너희를 보모로 둘 필요가 없어. 개미족에게도 조련 노하우는 충분하니까.”

내 말에 수긍하면서도 걱정하는 그녀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수단이 달라졌을 뿐이지 잘못에 대한 책임은 충분히 지게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폭력을 금지한 나는 식단에 대한 것도 말했다.

“식단은 내가 직접! 관리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바쁘신 다크 님이 직접요?”

“넌 한동안 내 옆에서 배워.”

나는 남녀 식단을 통합했고, 매끼 식단에 채소, 고기, 호밀빵을 먹을 수 있도록 하며 중간에 간식 타임도 만들어 아이들의 에너지를 수시로 보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아이들의 만족도는 최상으로 치솟았고, 비앙카와 수녀들의 근심도 함께 커졌다.

일단 식비로 나가는 비용이 이곳 인간의 상식선을 벗어나 있었고, 여자가 많이 먹으면 안 팔린다며 걱정도 했다.

“안 팔아. 평생 독신으로 살라고 할 거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지만… 여자 혼자선…….”

“개미교가 있는데 왜 혼자야?”

순간, 비앙카와 수녀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렇군요. 저희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그날을 기점으로 비앙카와 수녀들은 더는 예전 같은 교육을 하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도 않았다.

“앞으로 매일 아침에는 체력과 유연성을 키울 거야. 질문 있어?”

남자들은 유연성이 왜 필요한지 궁금해 했다.

“너희들이 강해지려면 유연성이 필요해서 그래.”

지옥 같은 체력 훈련을 통해 아이들의 무력 등급을 나눴고, 등급에 따라 적용되는 훈련을 달리했다.

학식이 부족하면 써먹을 수 없으니 수녀들에게 한글, 수학, 복식부기를 가르치게 했고, 간혹 있는 특출난 아이에겐 무기술의 기초도 알려 줬다.

학습 능력에 따라서 아이들의 등급을 세분하여 수업 진도를 달리했다.

“이곳의 문자도 가르쳐.”

“문자를요? 돈이 많이 들 텐데 괜찮을까요?”

“얼마가 들더라도 상관없어. 우리도 배워야 하니까. 그리고 문자 선생한테 말해. 내 아이들을 상대로 회초리를 들 땐 창 맞을 각오는 하라고… 앗, 그리고 난 후환을 남기는 걸 좀 싫어해서 사돈의 팔촌까지 신경 쓰게 된다는 것도 전해 줘.”

내가 미친년이란 소문이 퍼진 터라 글자 선생은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안 구해지네. 임금이 너무 적나?’

아무도 오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라도 한참 공부 중인 문트리아에게서 배우면 된다는 마음가짐이었는데, 돈이 급한 간절한 인간은 어디에나 있다.

각오를 다지고 저택 문을 두드린 글자 선생.

하지만 그녀가 기대한 미친년은 어디에도 없었고, 저택에는 매우 정중한 우등생만 가득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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