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95화 (94/189)

95화. 오그르트와의 전쟁 (1)

크라스의 공략법은 간단하다.

마력을 제외하고 순수한 육탄전으로만 갈 수 있으면 이길 자신이 있다.

문제는 어떻게 놈의 마력을 소진시키느냐인데…….

놈과 근접전에 접어들면 썰리기 시작한 내 마력이 먼저 방전되니까.

요는 썰리는 상황을 피하거나, 급속 재생으로 버텨내면 된다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썰리지 않고, 놈의 마력을 없애야 해.’

크라스와의 전투는 거리를 벌리며 마력 탄환을 쏘는 것으로 시작했다.

놈이 거리를 좁히기 위해 마강기를 꺼내 들었고, 나는 지난번 싸움을 떠올리며 놈의 마력량을 계산했다.

추측컨대, 거리가 완전히 좁혀지기까지 절반의 마력을 증발시켰다.

전과 같이 회피하며 마력을 흩뿌려 마력 고갈을 노렸으나, 놈 또한 학습력이 없는 게 아니었다.

내가 베기 공격을 급속 재생으로 버티니, 놈은 급속 재생으로 재생할 수 없는 마석을 공략했다.

푹.

마석에 쌍칼이 박혔다.

일반적인 몬스터였다면 마석이 깨지는 순간 마력에 대한 제어력을 잃고 쇼크사했겠지만…….

나는 마석에만 마력을 담아 쓰는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었다.

‘걸렸다!’

전신 세포에 마력을 쌓아 두고 사용하는 내게 마석이란 중앙 창고에 불과할 뿐.

깨지면, 흩어진 마력을 모아 복구하면 그만이다.

마석 복원에는 방대한 마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1분간 수천에 이르는 3차 진화종에게서 마력을 빌려 올 수 있는 내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멀쩡한 거지?”

크라스의 의문에 미소를 지어 준 나는 그의 양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힘은 내가 더 센 것 같은데…….”

힘으로 놈의 공격 수단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이걸로 넌 칼을 휘두르지 못해.”

심장을 내주고 팔을 묶는다.

어떻게 봐도 실패한 딜교 같지만, 지금의 내 전력으론 이 정도 손해는 감내해야 놈의 팔을 묶을 수 있었다.

“어리석군.”

놈이 사마귀 앞발을 움직여 내 등을 꿰뚫었다.

나는 입으로 피를 토하며 짙은 미소로 화답해줬다.

“너… 사마귀 팔에는 마강기를 못 두르던데…….”

크라스는 그게 어쨌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놈이 뭘 노리는지 모르겠지만, 마강기에 노출된 몸이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놈의 말대로 마석을 관통한 마강기로 인해 가슴 쪽 세포가 빠르게 괴사했고, 내 마력이 급속 재생에 쓰이며 순식간에 증발되고 있었다.

“버티는 건 내가 아니야, 너지!”

[군체 연결 : 마력 공유]

각성 능력을 활성화한 나는 무한 마력 상태에서 놈의 마강기에 내 마력을 밀어 넣었다.

“어리석구나!”

놈은 소모되는 것 이상의 마력을 주입하여 날 박살 내려 했으나, 무한 마력 상태의 나는 쉽사리 죽지 않았다.

“심장을 줬으니, 마력 정도는 포기하시지!”

여력을 남길 상황이 못 됐다.

나는 1분간 최대 출력으로 마력을 방출하여 놈의 마력을 증발시켰다.

‘한 줌도 남겨선 안 돼!’

1분이 지나며 무한 마력 상태가 해제됐다.

“네놈의 목적은 내 마력이었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놈이 황당해하며 말했다.

“내 마력을 날리기 위해 모든 마력을 썼군.”

“여력을 남기긴 힘들어서 말이야.”

크라스가 미간을 좁혔다.

“개미 따위가 육탄전이라면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화난 그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오만하구나!”

나 또한 놈에 맞춰 개미의 힘과 전투 페로몬을 발동하여 극한의 힘을 짜내며 반문했다.

“개미 따위?”

사마귀의 사냥 방식이 쾌속한 기습이라면…….

개미는 힘과 집단력.

거기다 개미족의 장로는 군체 규모에 따른 능력치 버프까지 빵빵히 받는다.

지금 내 몸은 일반적인 3차 진화종의 몸과 궤를 달리했는데…….

그러니까 종족 값으로 사마귀에게 힘으로 밀릴 이유가 하등 없었다.

“해보자고! 개미와 사마귀 어느 쪽 힘이 더 강한지 말이야!”

나는 녀석의 팔과 함께 몸을 껴안았고, 놈은 풀려나기 위해 팔근육을 부풀렸다.

“개미 따위가!”

기술도, 기교도 필요 없는 순수한 힘의 대결.

결과는 놈의 팔을 부러뜨리고 허리를 접어 버린 나의 승리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약골이 말은 많아요.”

놈의 발악으로 사마귀 낫에 난도질당한 등이 쓰라렸지만, 이 정도는 치명상이 되진 않았다.

쓰러진 녀석을 보며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이 녀석을 죽이면 골치가 아프단 말이지.’

왕급과 준왕급은 인근 세력의 확장을 막아 주는 억제기와 같은 존재다.

서쪽의 오그르트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에서 놈까지 제거하면 영역 안정을 위한 인적 자원이 양쪽으로 분산될 우려가 있었다.

‘살려는 두자.’

나는 놈의 검을 빌려 땅을 팠다.

상처가 짙어 고통이 엄습해 왔지만, 어떻게든 버텨 냈다.

“뭐 하는 거지?”

이대로 두고 가면 잡몹에게 먹힐 테니, 잠깐 몸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중이었다.

‘뭐, 생각이 있는 몬스터라면 준왕급에게 덤비진 않겠지.’

그런 이유에서 생각 없는 몬스터를 대비한 것이다.

몸이 아프니 놈에게는 퉁명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네놈의 무덤을 만드는 중이다.”

“그냥 죽여라. 무덤 따윈 필요 없다.”

“앗, 그래.”

놈은 초탈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열쇠의 절반은 네우라 킹 네론이 가지고 있다.”

그거야 듣지 않아도 추측할 수 있었고, 관심도 없었다.

나는 적당한 공간을 파서 놈을 숨겨 줬다.

“너라면 그 정도 상처는 회복할 수 있겠지?”

“뭐 하는 수작이지?”

“처음부터 말하려 했는데, 난 그냥 둥지로 가는 중이었고, 네가 못 가게 막은 거야.”

“하지만, 네놈은 열쇠를…….”

“그리고 그 열쇠! 소중한 거면 숨겨 두던가 해. 내가 정말 그 열쇠를 노렸으면 무식하게 여기까지 찾아와서 너랑 싸웠겠어? 부하들 보내서 어떻게든 훔쳐 오게 하지.”

놈이 표정을 굳혔고, 나는 그를 두고 뒤돌아섰다.

“원망할 거면 거미왕을 원망하고… 다음에 볼 때는 좋은 관계로 만나자.”

“…….”

내게 있어 좋은 관계란…….

내가 사냥하고 놈이 사냥당하는 갑을 관계.

오그르트를 제거하고 서쪽 영역이 안정되면 군대를 끌고 와 작살내 줄 생각이었다.

‘부하를 자처해 준다면 받아줄 생각이지만….’

아직 내 힘이 왕급에 못 미치니, 준왕급들이 숙이고 들어오는 경우는 없을 듯했다.

마력은 고갈됐으나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받쳐 주니 둥지까지 문제없을 줄 알았다.

‘아…. 어지럽다.’

힘겹게 이동 중 마석이 박살난 상태에서 무리하게 힘을 써서인지, 얼마 가지 못해 한계가 찾아왔다.

‘일단 회복부터 해야…….’

숨을 곳을 찾던 중 평소라면 절대 당하지 않을 기습을 당했다.

자이언트 웹이란 거미 몬스터에게 보쌈을 당해 버린 상황.

이대론 잡몹의 먹이가 될 듯했으나, 놈도 내가 맹독임을 인지했는지 거미줄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퍽.

‘젠장.’

묶은 거미줄이라도 풀어 줄 것이지.

상처가 터지며 몸 상태가 악화됐다.

‘큭’

재생 속도를 넘어선 악화 속도.

이는 머지않은 죽음을 의미했다.

절망스럽거나 하진 않았다.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긋이 기다리니, 갑주로 무장한 디아가 다가왔다.

“죽었나?”

“살아있어요.”

“다행이군.”

“보고 있었죠?”

디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르본느가 안전장치를 충분히 해 뒀었다.”

“저는… 전혀 안전하지 못했는데요.”

“그만큼 나르본느의 능력이 은밀했다는 거지.”

“조금만 더 일찍 오지. 지금 제 상태가 심각한데.”

내 말에 디아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너라면 회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제가 무슨 불사신인 줄 아세요?”

“아니었나 보군.”

나는 디아에게 업혀 둥지로 돌아가게 됐고, 디아를 통해 나르본느가 남긴 말을 전해 들었다.

‘예상과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준왕급 크라스를 꺾은 걸 축하해. 크라스를 치료해 주고 갈 테니까, 조금 있다 봐! 혹시라도 오그르트와 붙게 되면 크라스처럼 쉽게 풀리지 않을 거니까 조심하고!’

만나서 한 마디 해 주고 싶었는데, 나중에 찾아온다니.

‘차라리 안 보이는 게 나아.’

치료실로 실려 간 나는 메디의 도움을 받아 죽음의 고비를 겨우 넘겼다.

‘휴.’

만 하루가 지났으니 각성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고, 군체원의 마력을 빌려와 마석을 복원하고 손상 부위를 회복시켰다.

마석 복원에 사흘이 걸렸고, 손상 부위의 회복은 하루가 걸렸다.

삼일 정도 깊은 숙면을 통해 컨디션을 회복했고, 예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자신을 느끼게 됐다.

‘마력의 수용 한계치도 늘었어. 몸이 부서지고 회복될 때마다 강해지는 건가?’

마치 드래곤볼의 사이어인.

‘난 언제 초사이어인이 되는 거지?’

준왕급을 꺾을 정도로 강해졌는데, 4차 진화는커녕 마강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다크 님, 가져오시라는 서쪽 전황에 관한 보고서에요.”

세크리가 현황 보고서를 작성해 왔다.

“거기 두고 가.”

현재 총지휘관은 칠 장로 트라이가 맡고 있다.

‘울트라들이 용케 허락했네?’

트라이라면 정말 괜찮은 인선이다.

그는 오그르트와의 충돌을 최대한 피했고, 조금씩 물러나며 최소한의 손실로 최대치의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러한 전략을 이해하는 건 머리가 돌아가는 간부급 개미들뿐.

부대 지휘 경험이 없는 무투파 개미들은 현 상황에 불만을 품기도 했다.

‘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좋아졌어.’

간부급 개미들이 트라이의 전략을 이해한다는 게 어딘가?

라떼는 간부급 개미들도 병신들이라 참 힘들었다.

투입된 병력을 살펴보니…….

주력 부대는 300인대 규모의 궁기병 부대 여덟 개와 300인대 규모의 하드 부대 네 개였다.

메가피르와 게르피아의 울트라 부대와 포룸의 포병대는 별동대로서 활약하고 있고, 블러리의 소드 앤트 부대도 투입됐다.

보급 상황도 양호했고, 트롤도 충분히 견제할 수 있었으나 오그르트는 막을 수가 없었다.

‘이 녀석, 영역이 목적은 아닌 것 같은데…….’

놈은 전장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었다.

‘괴롭히는 게 목적인 것 같아.’

개미족을 괴롭혀서 놈이 얻고자 하는 것.

그건, 너무도 명확했다.

‘이 녀석, 작정하고 포스를 불러내려는 거야.’

포스는 전방에서 날뛰는 오그르트를 지켜보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이야. 포스가 무모함을 용기라고 착각하는 바보가 아니라서.’

전선으로 향할 준비물을 챙겼다.

말벌창을 여러 자루 챙기고, 도끼 검인 코피스와 단궁도 챙겼다.

사교위에 도핑용 약물도 듬뿍 담았고, 보험으로 디아와 나우피어를 호위로 삼았다.

“다크 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야 베슬리.”

오랜만에 하드 워커인 베슬리의 등에 탑승했다.

디아와 나우피어도 하드 워커에 각각 탑승하여 이동했다.

오그르트는 고블린까지 동원하고 있어 수천의 군세를 이루고 있었고, 고블린 산맥 일대가 전장이 됐다.

이쪽 지휘부는 후방에 있지만, 놈들은 딱히 지휘부랄 게 없어 최전방의 오그르트만 잡아내면 끝나는 게임.

반대로 말해 오그르트를 잡아내지 못하면 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오그르트는 일반적인 공격이 전혀 안 먹히고, 불과 독도 그에게는 타격을 줄 수 없다.

거기다 빠른 이동속도 때문에 놈이 물러나면 쫓기도 힘들다.

재빠른 녀석이라 공성 병기를 들이밀어도 소용없고, 그런 녀석을 상대할 방법이 있을까 싶었지만, 제거는 몰라도 격퇴 정도는…….

“왔군.”

포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됐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포스가 몸을 일으켰다.

울트라 부대가 포스를 호위하여 전장 깊숙이 안내했다.

전장에 들어선 포스는 트롤 부대와 함께 있는 오그르트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디아와 나우피어를 데리고 적당한 언덕에 자리를 잡고서 언제든 지원할 수 있도록 준비에 들어갔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포스가 울트라 부대를 물리며 일기토를 신청하자, 오그르트가 환히 웃으며 트롤들을 물렸다.

“그래, 왕급과의 대결… 얼마만의 자극인지!”

흥분한 오그르트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포스를 향해 돌진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