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오그르트와의 전쟁 (3)
물리력이 약한 공허의 마력에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
하나는 흡수이고, 또 하나는 소멸(消滅)이다.
그리고… 최근 각성 능력을 얻으며 깨닫게 된 또 하나의 특성.
그건 바로 융합을 통한 마력의 증폭 및 강화.
그런데 포스의 마력은 흡수되지 않은 채, 증폭되어 공허의 마력에 새로운 속성을 더해 주고 있었다.
‘공허의 마력이 단단해지고 있어.’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했으나, 그것도 잠시.
냉철해진 나는 지금의 상황을 분석했다.
‘오그르트의 무력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나의 실수로 포스가 당했다.
잘못된 판단이 불러온 커다란 손실.
쓰러진 포스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군체의 미래라고?’
난 군체를 키워 온 장본인이며 개혁을 주도한 존재였다.
그리고 포스는 군체의 무력을 대표하는 최종병기라 할 수 있었다.
‘포스…….’
수렵에서 농경.
토기에서 철기.
문자의 보급과 교역의 시작.
문명이 발전하며 각 분야에서 나를 뛰어넘는 개미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젠 내가 없어도 자력으로 문명을 발전시킬 텐데.
‘무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포스를 잃으면 개미족의 확장세가 위축될 수밖에 없어.’
포스가 있었기에 내가 날뛸 수 있었던 건데…….
그렇다 해도 포스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나를 살리면 군체는 위축될지언정 망하진 않을 테니까.
‘그런데 말이야…….’
포스가 이러한 판단을 내린 건 내가 세운 전략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
그러니 이것은 나의 실책이고, 이대로 수습도 못 한 채 뒤로 빠지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
엘리트 사원으로 회사의 위기를 수습해 왔던 나다.
위기 속에서 아무런 대책도 내지 못한 채 탈주하는 건 장로인 내 역할이 아니었다.
‘이대로 내빼면 포스는 죽어!’
포스를 포기하기에는 손해가 크다.
‘어떻게든 살려야 해!’
포스를 살리려면 오그르트를 막아야 한다.
결심이 서자 내 의지에 반응하듯 신체가 빠르게 변해 갔다.
이는 포스가 쓰러지며 내게 넘긴 마력이 만들어낸 결실.
그가 넘긴 마력은 평범한 마력이 아니었다.
‘단단함의 극의가 담긴 마력이야.’
강렬한 의지가 실린 진화의 불씨.
물러서지 않겠다는 내 의지와 합쳐진 포스의 마력이 강렬하게 타오르며 나의 육신을 개조해 갔다.
‘내가 쏟은 물은… 내가 수습한다!’
모두 주워 담을 순 없더라도, 내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봤다.
나는 말벌창을 그러쥐며 공허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곤 제국 창법 칠식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 무엇도 아니며 무엇이든 될 수 있나니!’
임전 태세에 돌입하는 순간 염화를 사방에 뿌려 각 부대에 지시를 전했고, 전령을 보내 디아에게 작전을 알린 나는 마신어로 오그르트를 도발했다.
“오그르트, 네 상대는 나다!”
나의 외침에 오그르트는 분노하며 외쳤다.
“네놈이 날 상대하겠다고! 오만하구나, 개미!”
오그르트가 몽둥이를 내려쳤다.
나는 그에 맞서 제국 창법을 사용했고, 처음으로 검보라색 마강기를 선보였다.
쾅!
“큭.”
포스 덕에 단단함이란 특성이 추가된 마강기였지만, 오그르트의 일격을 온전히 받아 내기에는 역부족했는지, 양 무릎이 작살났다.
‘체급 차가 커서 창술이 무의미해졌어.’
무너진 무릎을 급속 재생으로 복구하며 거리를 벌렸다.
“호… 내 일격을 막아 내다니. 준왕급 수준인가?”
마강기를 선보인 내게 오그르트가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 해도 날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조금 전의 나였다면 역부족이었겠지.”
공허의 마력에 단단함이란 속성을 부여하는 능력을 얻고, 의지를 응축하여 발현하는 마강기를 깨우치며 내 몸은 또 한 번 급변했다.
“지금의 내가 방금 전과 똑같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제국 창법에 실어 펼쳤다.
‘공격이야 말로 최선의 방어!’
세 번 정도 오그르트를 향해 창을 내지르자 마력을 모두 소진했고, 신기급 몽둥이에 막힌 말벌창은 형편없이 부서졌다.
‘창이 마강기를 버티지 못해.’
그만큼 속성이 부여된 마강기의 유지는 대량의 마력이 필요했고, 단단한 무구가 필요한 것인데.
“끝이냐?”
“아니.”
난 포스의 진화를 지켜봤고, 그 당시 상황을 기억한다.
그도 지금의 나처럼 대기와 공명하며 그릇을 비웠다.
당시의 포스와 나의 차이점이라면 데카이저는 포스의 진화를 기다려 주지 않았지만, 오그르트는 나의 변화를 느끼곤 기다려 줬다.
“후회할 텐데?”
전장에 가득한 흑마력을 듬뿍 끌어들이던 나의 말에 오그르트가 기뻐하며 말했다.
“언제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놈들을 부수며 무수히 후회했지. 그러니 한 번 더 후회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놈은 확실히 강하지만, 나 또한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내 신체 능력은 3차 진화종을 넘어선 지 오래였어.’
마력의 특성상 물리력이 부족해 무쌍을 보이진 못했지만, 급속 재생과 마력수의 섭취로 만들어진 극강한 신체는 부족한 물리력을 메우고도 남았었다.
그런 내가 진화를 통해 더 강해질 수 있다면…….
‘포스를 넘어설 수 있다!’
일대의 흑마력을 충분히 흡수한 나의 피부가 회색으로 변하며 떨어져 나갔다.
탈피를 거쳐 변화한 나는 키가 살짝 커졌고, 외골격 비중이 늘며 보랏빛 문양이 새겨졌다.
가드 퀸인 포스 같은 기갑형은 아니었지만, 개미 엉덩이도 작아지고, 한층 더 성숙해진 몸을 가지게 됐다.
‘느껴져.’
4차 진화종이 되며 기감이 확장됐고, 새로운 감각에 눈을 떴다.
‘일대의 작은 생물들이 느껴지는군.’
[개미 지배]
일대의 곤충, 개미를 지배하는 능력.
4차 진화를 통해 얻은 능력이었으나, 정보 수집이나 교란에 쓰일 법한 능력이지 지금 같은 일기토 상황에선 무의미한 능력이었다.
‘싸울 수 있으려나?’
진화 직후, 마력은 한 줌 밖에 안 남는다.
이 상태로 오그르트와 붙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력을 제외한 부분이 리셋된 상태.
‘각성 능력도 사용할 수 있겠어.’
군체와의 연결이 짙어지며 각성 능력도 한층 더 강화된 게 느껴졌다.
[군체 연결 : 마력 공유]
예전보다 훨씬 정밀한 정보가 흘러들어왔고, 세밀한 컨트롤이 가능해졌다.
둥지에서 일하고 있는 3차 진화종 개미들에게서 마력을 끌어온 나는 예비로 준비한 말벌창을 꺼내 들었고, 발끝으로 몸을 튕겨 봤다.
‘가벼워.’
예전과 차원이 다른 무력.
‘지금의 내 힘이라면…….’
상대가 오거라도 무쌍할 수 있지 않을까?
쾅!
자신감으로 가득 찬 나는 땅을 박차 오그르트와의 거리를 좁혔고, 넘치는 힘을 창에 담아 휘둘렀다.
“워커맨의 진화형으로 보이는데? 꽤 강하구나!”
“난 워커맨이 아니라 데몬 앤트다!”
내 공격을 몽둥이로 받아 낸 오그르트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나는 두 합 만에 놈과의 격차를 느꼈다.
‘강하잖아!’
무한 마력 상태에서 잠깐이라도 압도하는 상상을 했는데…….
“데몬 앤트? 나르본느와 비슷한 계열의 몬스터인가?”
상상은 무참히 깨져 나갔고, 놈에게서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다.
‘이게… 오거라는 종족인가?’
둥지 최강의 포스를 넘어선 것 같은데, 오거에게 막히다니.
‘그래도 놈에게 닿는다!’
디아에게 배운 보법 덕에 놈의 틈을 파고들 수 있었다.
단단함이란 속성이 추가된 마강기는 충분한 물리력을 선사해 줬으나, 내겐 포스만큼 파괴적인 기술이 없었다.
‘놈의 가죽을 뚫고 근육을 관통할 힘이 부족해!’
그래도 개미의 힘이 더해진 신체 능력이라면 오그르트와 자웅을 겨룰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화한 나의 신장은 포스보다 작은 165 정도.
5미터 거구의 방어력을 너무 얕봤다.
‘상성도 최악이야!’
오거인 오그르트는 마력으로 신체 능력을 증폭시켜 싸우는 상위종 몬스터와 달리, 그냥 종족 자체의 육체적 능력이 우월했다.
즉, 공허의 마력으로 아무리 놈의 마력을 흡수하고 증발시켜도 그는 약화되지 않는다.
“데몬 앤트도 별것 없군.”
두 차례 더 격돌하자 말벌창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고, 예비 창이 몇 자루 더 있었지만, 마강기도 버티지 못하는 무기보단 주먹을 쓰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다.
쾅! 쾅!
10합.
각성 능력, 급속 재생, 개미의 힘, 전투 페로몬, 속성 부여, 보법, 마강기…….
어느 하나만 빠졌어도 황천길을 건넜을 테지만, 능력의 조합 덕분에 겨우 연명했고, 그런 나의 모습에 오그르트가 감탄성을 터뜨렸다.
“날 상대로 이만큼 버티다니! 생존력만큼은 대단하구나!”
놈의 공격이 점차 거세졌다.
‘힘으로는 도저히 안 돼.’
나는 거미왕에게 배운 기동 전술을 극한으로 발휘하여 회피와 기습에 전념했다.
‘서쪽으로 이동한다!’
격전지를 서쪽으로 옮겨 가며 포스와 개미들이 퇴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줬다.
내가 서쪽으로 이동할수록 오크와 고블린 군대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휩쓸렸다.
이대로 오그르트를 끌고 다니며 놈의 군단을 박살 내 주고 싶었지만, 각성 능력이 소진되면 버틸 재간이 없다.
‘진화 후의 첫 상대가 이런 놈이라니.’
진화로 각성 능력의 유지 시간이 늘어나지 않았다면, 포스를 후방으로 물릴 만한 충분한 시간을 벌지 못할 뻔했다.
반대로 말하면 오그르트에게 밀리곤 있었지만,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휴.”
슬슬 한계에 부딪힌 나는 오그르트의 힘을 역이용하여 공중 높이 뛰어올랐고, 대기 중인 페스트에게 안겼다.
“뭐 하는 짓이지?”
내가 공중으로 몸을 피하자 오그르트가 화를 내며 점프 자세를 취했다.
“잠깐만!”
나는 그에게 선수 교체를 선언했다.
“오거, 저길 봐라!”
그곳에는 갑주를 벗은 디아가 거대한 대검을 끌며 다가오고 있었다.
예전 디아가 말해 준 적이 있다.
갑주를 벗으면 힘을 제어할 수 없다고…….
디아의 힘은 적아를 가리지 못하여 갑주라는 억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니 디아가 전력을 다하기 위해선 아군을 멀찍이 물려야 하는데, 포스가 쓰러진 순간 개미들에게 작전을 전하며 디아에게 모든 힘을 쏟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 직후, 디아는 갑주를 벗고서 오그르트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전장이 만들어지길 기다렸다.
그렇게 개미족이 충분히 물러났다고 판단한 내가 공중으로 대피하자 디아가 나선 것이다.
“이제 내 차례인가?”
검은 강기에 휩싸인 디아가 대검으로 오그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거, 전력으로 와라.”
인간의 언어였으나 그 뉘앙스만으로 오그르트는 알아들었다.
“같이 덤빌 것이지… 귀찮게 하는군.”
오그르트는 디아를 빨리 제거하고, 공중으로 피신한 날 떨굴 생각이었다.
쾅!
한 방에 튕겨 난 디아가 나무들을 부수며 멀찍이 날아갔다.
“인간 따위가.”
오그르트의 어그로가 다시금 날 향하려 할 때, 전보다 훨씬 강한 살기가 오그르트를 자극했다.
“오거, 네 상대는 나다.”
좀비처럼 몸을 일으킨 디아가 전신으로 검은 강기를 분출하며 오그르트를 향해 돌진했다.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인간!”
여러 차례 튕겨 나면서도 다시금 돌진을 반복하는 디아.
“끈질기군.”
그런 디아를 가볍게 쳐 내던 오그르트의 표정이 점차 굳어져 갔고, 이내 맹렬히 몰아쳐 디아부터 확실히 박살 내려 했다.
‘강기로 전신을 보호하고 있다지만, 버틸 수 있는 충격이 아닐 텐데?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승리는 장담하진 못해도 밀리진 않는다고 해서 믿고 맡겼는데.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니…….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실패한 건가.’
디아가 싸우는 동안 기의병의 거창 돌격을 준비했다.
가속된 거창 돌격이라면 충분한 충격이 될 것이고, 그 틈에 스카이 워커를 보내 디아를 공중으로 대피시킬 생각이었는데.
‘이건… 빼낼 틈도 없잖아!’
공중에서 디아를 어떻게 구출할지 고심하며 전장을 지켜봤다.
‘아직 울트라 부대와 소드 앤트 부대가 건재해. 포병대도 대기 시켰으니. 무한 폭격으로 시야 정도는 가릴 수 있을 거야.’
연막작전을 준비하며 언제든 디아를 도울 수 있도록 흑마력을 끌어모았다.
“다크, 개미들은 충분히 물렸나?”
디아는 일방적으로 처 맞으면서도 내게 도움을 청하긴 커녕, 나와 개미족에게 좀 더 멀리 떨어지라고 경고했다.
‘뭔가 큰 기술을 준비하는 건가?’
시간이 지날수록 오그르트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고, 일대의 지형이 파괴되어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디아가 오그르트의 공격을 막아 내는 횟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뭐지? 밀리고 있던 게 아니었나?’
전투 중 점차 강해지는 디아를 느낀 오그르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디아가 강해지고 있어!’
어느 순간부터 5미터 거구와 비등하게 맞서기 시작한 디아.
“어떻게 된 거지? 그동안 힘을 숨긴 거냐?”
디아는 오그르트가 아닌 내게 말했다.
“다크, 잘 봐 두어라. 암흑신전의 사도가 어떤 존재인지, 마신의 힘을 품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디아의 강기가 더욱 짙어졌고, 여유 가득하던 오그르트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나의 권능은 무적. 적이 강할수록 더욱 강해지며… 그 끝은 마신만이 알고 있다.”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디아가 가진 흑마력… 아니, 신마력의 특성을.
‘그래서 무적이라 했던 거야.’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