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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98화 (97/189)

98화. 서쪽 너머의 존재

나의 권능은 마력 흡수에 특화돼 있고, 부차적으로 마력 소멸과 융합 증폭이 가능하다.

세 특성 모두 무형의 에너지에 작용하는 힘이다.

그에 반해 디아는 전투 상황에서 모든 충격을 흡수하여 강기의 증폭과 강화를 동시에 이루었다.

‘디아의 강기가 충격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었던 거야!’

모든 충격을 흡수한다는 건 어떠한 타격도 받지 않는 것이고, 그 충격으로 계속 강해지니…….

말 그대로 무적.

이를 간파하지 못한 오그르트.

“무적?! 푸하하하!”

폭소를 터트린 오그르트가 더욱 거세게 몰아쳤고, 그럴수록 디아는 강해지며 이성을 잃어 갔다.

‘멍청한 녀석!’

디아가 흡수한 데미지를 생각했을 때, 지금 보이는 힘이 전부가 아닐 것 같았다.

“페스트, 좀 더 물러나!”

“네!”

“더 물러나야 해!”

물러나는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어도 강기 폭격에 휩쓸릴 뻔했다.

이성을 완전히 잃은 디아가 일대에 강기 폭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펼쳐진 광역기에 숲과 함께 오그르트가 휩쓸렸다.

“강하구나!”

처음에는 기뻐하며 막아 내던 오그르트였지만, 나중에는 당황해하며 거리 벌리기에 급급했다.

“이런 무식한! 네놈의 마력이 무한은 아닐 터, 이 짓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보자!”

눈알이 뒤집힌 디아가 힘겹게 답했다.

“신이 내린 힘이다. 네놈은 그 끝을 볼 수 없다.”

디아가 지치길 기다리며 마강기에 실컷 두들겨 맞던 오그르트.

강해지는 그녀를 감당할 수 없어 승부를 포기했다.

“인간, 오늘은 네놈이 이겼다!”

그는 트롤과 오크를 희생양으로 던져 주며 전장을 이탈했다.

“다음에는 전력으로 상대해 주마!”

도주하면서도 뻔뻔한 오그르트.

“쫓을까요?”

페스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린 디아를 챙긴다.”

오그르트는 도망갔지만, 디아의 폭주는 멈출 줄 몰랐고, 그대로 적군을 휩쓸기 시작했다.

이만큼 강하면서도 디아는 오그르트와의 일전을 원치 않았다.

‘부작용 때문이겠지.’

그의 힘은 제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이 거센 듯했다.

대응해 오는 적이 줄어들수록 폭주하던 힘 또한 줄어 가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디아 님이 멈췄어요.”

한참이나 날뛰던 디아가 멈췄고,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그가 방전됐음을 느낀 나는 페스트와 함께 지상에 내려갔다.

“디아 님, 괜찮아요?”

“다크인가?”

탈진한 듯한 디아가 날 겨우 알아보곤 힘겹게 말했다.

“숲에 버려둔 내 갑옷 좀 회수해 줘.”

“네.”

지친 디아를 회수한 나는 페스트가 이끄는 정찰 개미들과 함께 전선에서 이탈했다.

나와 디아는 스카이 워커들의 도움으로 하늘을 날며 산맥을 내려다봤다.

포스, 오그르트, 디아, 그리고 나까지.

왕급이 격돌하며 고블린 산맥 서쪽 지형 일부가 크게 바뀌었다.

‘디아의 전력을 확인한 건 큰 수확이야.’

제일 큰 수확은 나의 진화였다.

‘포스가 회복되면…….’

개미족은 왕급을 둘이나 보유한 세력이 된다.

‘오그르트의 전력도 충분히 파악했어.’

그동안 정보와 전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된 공략법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다음은 없다. 오그르트!’

둥지 쪽으로 날아가니 그곳에선 갑각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의는 없는 것 같고. 불가침 조약 때문에 왔나?’

왕급이 충돌하면 숲의 지형이 바뀐다.

그러니 왕급끼리의 불가침 조약은 매우 중요했고, 새로운 왕급이 탄생하면 왕급 회의가 열린다.

만약, 말이 통하지 않는 왕급이 탄생하면 왕급 회의에서 바로 제거한다고 했는데.

“…그때 그 개미군.”

포스가 진화했을 때는 일대의 왕급과 준왕급이 모두 몰려왔으나, 내 진화에는 갑각왕 한 명뿐이었다.

‘나… 무시당한 건가?’

그들이 날 무시한 건 아니었다.

“나르본느와 네론은 오그르트 쪽으로 갔고, 크라스는 오는 중이다.”

“그렇군요.”

갑각왕이 땅에 철퍼덕 앉으며 나와 디아에게 말했다.

“본론은 나르본느가 오면 말할 테니,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지.”

팔짱을 낀 갑각왕이 입을 닫았고, 디아는 개미들이 회수해 온 갑주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나는 잠시 쉬고 있을 테니, 이야기가 끝나면 불러라.”

누구도 입을 열지 않으니 장내는 침묵이 감돌았지만, 서쪽 숲의 마력은 여전히 들끓고 있었다.

‘이건…….’

개미족이 퇴각했음에도 왕급 간의 전투가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설마?’

전해져 오는 마력의 파동을 보아 거미왕과 오그르트가 붙은 것 같았다.

‘뭐 하려는 거지? 설마 막타를?’

나르본느는 확실히 강했지만, 오그르트와 싸워 보니 느낀 게 있었다.

‘놈의 근육을 뚫고서 치명상을 가할 힘이 나르본느에겐 없어.’

나와 마찬가지로 나르본느에겐 강력한 한 방이 부족했다.

* * *

포스에 이은 다크와의 격돌로 체력을 상당히 소진한 상태에서 디아와 격돌한 오그르트.

‘아니, 인간이 어떻게… 안 되겠다. 더 버티다간 내가 당하겠어.’

오그르트는 별것 아닌 줄 알았던 인간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선 퇴각을 결정했다.

“인간, 오늘은 네놈이 이겼다! 다음에는 전력으로 상대해 주마!”

그가 거리를 벌리고 기회를 엿봤다면 디아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겠지만, 오그르트에겐 디아를 꼭 제거해야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없었다.

“휴, 삭신이 쑤시는군.‘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오그르트가 찰과상과 타박상으로 욱신거리는 상황에서 묵은 변비를 쏟아 낸 듯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간만에, 몸 좀 풀었어.”

오그르트가 히죽이며 걸어가던 중, 네우라 킹인 네론이 따라붙었음을 인지했다.

“평소에는 근처에도 못 오는 녀석이.”

평소 같았으면 당장 쫓아냈을 테지만, 지금의 오그르트는 매우 지쳐 있었다.

‘귀찮으니 그냥 두자.’

네론에 대한 건 무시해도 상관없었지만…….

거미왕 나르본느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많이 지쳐 보이네… 그리고 약해졌어.”

그냥 맨손으로 왔다면 모를까,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두 자루의 검을 챙겨 든 나르본느.

살기를 띠며 길을 막아서자 오그르트의 인상이 굳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보면 몰라?”

상처 입은 호랑이는 하이에나에게 노려지기 마련.

“하이에나 짓을 하겠다? 어이가 없군.”

“하이에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똥이 무서워서 피했겠냐?”

“똥?”

“아직 모르겠어? 네놈은 사자가 아니라. 그냥 똥이라고.”

오그르트에게 있어 나르본느는 조금 민첩할 뿐인 약자였고, 헤라클레스보다 약하여 경계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이는 데몬 튤라의 물리 방어력과 맷집이 형편없었기 때문인데.

“숨겨둔 힘이라도 있었나?”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아. 확실히 네놈의 공격을 받아 내기에는 내가 좀 허약하긴 하지.”

“알면서도 살기를 드러낸 건… 죽여 달라는 건가?”

여유 가득한 오그르트의 모습에 나르본느가 폭소를 터트렸고, 손가락으로 오그르트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뭐? 네가 날?”

이해되지 않는 나르본느의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한 오그르트는 생각을 전환했다.

“차라리 잘 됐어. 후식이 아쉬웠는데, 네놈으로 입가심하면 딱 맞겠군.”

오그르트가 전투 자세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숨겨 둔 힘이 있다면 다 꺼내라. 죽어서 후회하지 말고.”

나르본느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숨겨 둔 힘이라…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나르본느는 사방에 펼쳐진 거미줄을 이용한 입체 기동을 펼쳤다.

“내 힘은 오거인 너처럼 정직한 힘이 아니라서 말이지!”

“거미족의 비겁함이야 모두가 다 알지.”

“그거 종족 비하야!”

가속된 나르본느가 오그르트의 사각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쉽사리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을 오그르트였지만, 왕급을 셋이나 상대하며 누적된 대미지로 인해 신체 능력이 저하된 상태라 모든 공격을 막아 낼 순 없었다.

“너, 생각보다 많이 지쳤구나? 움직임이 굼떠!”

“네놈이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오그르트는 견딜만한 공격은 몸으로 받아 내며 기회를 노렸다.

촤악! 촤악!

나르본느가 지닌 무기는 마강기 없이도 오거 가죽에 혈선을 남길 정도의 절삭력을 지녔고, 마강기가 더해지면 위력을 더커졌으나, 다크와 마찬가지로 오거의 두꺼운 근육을 관통할만한 일격이 없었다.

“간지럽군!”

그에 비해 오그르트에겐 한 방에 나르본느를 박살 낼 일격이 장전돼 있었는데.

나르본느의 짤짤이를 버티며 기회를 노리던 오그르트는 점차 당황하기 시작했다.

‘가속되고 있다!’

예상 이상으로 빠른 움직임에 당황한 오그르트.

그는 몽둥이를 휘둘러 일대의 거미줄을 걷어 냈고, 나무들을 넘어뜨려 나르본느의 발판을 없앴다.

“이젠 더는 가속할 수 없겠지!”

입체 기동이 막혔으니 나르본느가 물러갈 거라 여긴 오그르트.

그러나 나르본느는 지상에서도 재빠른 움직임으로 오그르트를 농락하며 가죽에 상처를 남겼다.

“미안하지만, 오늘 널 제거하기로 했어.”

“큭!”

오그르트는 강적과의 전투를 즐기는 존재였으나, 나르본느와의 전투만큼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약했던가?’

몸이 제대로 따라 주지 않아 계속된 실수로 손해를 보는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럴 수는 없어… 이건 내가 아니야!’

점점 무거워지는 몸과 극심한 피로를 느낀 오그르트.

‘…내가 늙은 건가?’

제 실력을 끌어내지 못한 오그르트에 비해 나르본느는 평소 이상의 쾌속함을 보이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흘러 일대에 녹색 피를 잔뜩 뿌린 오그르트가 과다 출혈로 비틀거렸다.

“너,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거야?”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는 오그르트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나르본느를 바라봤다.

“무슨 말이지?”

“정말 눈치 못 챈 것 같네…….”

나르본느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 마력은 안식의 권능을 품고 있지.”

“그게 뭐냐?”

“간단히 말해서 내게 상처를 입으면 서서히 약해진다는 거야.”

“독인가?”

“비슷해.”

공격을 허용한 순간, 오그르트의 패배가 결정된 것.

“그래서였군. 몸이 계속 무거워진 게…….”

“뭐, 이게 발현되려면 시간이 걸려서 이 능력만으로 널 이기진 못해.”

“또 뭐가 있는 건가?”

“거미족의 특성.”

거미족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에겐 약해지는 반면, 약한 상대에게선 강한 힘을 발휘한다.

강약약강.

“나도 비겁한 특성이란 생각은 하는데… 어쩌겠어. 이게 거미족인 걸…….”

상처투성이의 지친 오거는 나르본느에게 약자로 포착됐고, 이로 인해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그렇다 해도 오거의 가죽을 뚫고 마력을 밀어 넣는 건 쉽지 않아. 이게 없었다면 오히려 내가 위험해졌을 거야.”

나르본느는 부족한 공격력을 메워 주는 쌍검이 있었고, 이는 50년 전 암흑신전의 동료들이 구해 준 것이었다.

“그렇군.”

“그리고, 안식의 권능은 목숨을 앗아 가는 맹독이기도 해.”

나르본느의 설명이 끝났을 때쯤 오그르트는 선 채로 숨을 거뒀고, 공중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네론이 급히 떠났다.

“저 녀석, 바로 가 버렸네.”

나르본느는 오그르트의 시체를 거미줄로 포장하여 등에 짊어졌다.

“무거워.”

그녀는 시체를 질질 끌며 왕급들이 모인 곳으로 이동했다.

* * *

다크를 비롯한 왕급 존재들은 오그르트의 죽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이를 느낀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오거 산맥 서쪽 경계 너머의 존재들.

거대한 황소 인간 미노타우로스.

눈이 하나뿐인 근육 거인 키클롭스.

두 종족 모두 5미터에 육박하는 신장을 가졌고, 오거와 비견되는 종족이었다.

남서쪽 일대를 지배하는 미노타우로스들의 왕과 북서쪽을 지배하는 키클롭스들의 왕이 오그르트의 죽음을 느끼곤 종족 회의를 열었다.

“우릴 속박하던 브록 님의 약속이 깨졌다! 위대한 우마(牛魔)의 자손들이여, 제약이 깨졌으니 원하는 곳으로 가도 좋다!”

수백 년 동안 비좁은 영역에서 천적도 없이 살아가던 미노타우로스들이 오거 숲을 바라보며 군침을 삼켰다.

그에 반해 키클롭스들은 오그르트란 방파제가 사라진 것을 염려했다.

“서쪽의 인간들도 신경 쓰이는데… 동쪽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제가 알아볼까요?”

“아니야. 잘못 들쑤셨다간 귀찮아질 거야.”

두 종족이 오그르트의 죽음에 반응할 때, 개미족 영역에선 오그르트의 시체를 두고서 왕급들의 회의가 열렸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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