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99화 (98/189)

99화. 오거 숲의 고블린 던전

데몬 워커의 능력인 개미 지배.

이는 일대의 개미를 느끼고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개미들이 있는 곳 주변을 관측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개미 지배가 닿는 범위는 한정적이라 오거 숲에서 벌어지는 일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마안이 있어 숲의 마력 파동을 감지할 수 있었고, 더듬이 감지력 또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리해져 전해져 오는 공기의 파동만으로도 서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이변을 캐치할 수 있었다.

‘어…….’

두 존재의 결투는 생각보다 오래갔고, 오그르트의 기운이 사라지며 끝이 났다.

그리고 얼마 후 네론이 도착했고, 며칠 전 내게 허리와 양팔이 꺾인 크라스도 나타났다.

거미줄로 부상 부위를 감고 있는 크라스.

뭔가 불편해 보였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한참이 지나서 나르본느가 도착했다.

그녀가 힘겹게 챙겨 온 오그르트의 시체를 공개하자 갑각왕이 이마를 짚으며 곤혹스러워했고, 네론과 크라스는 기뻐하는 눈치였다.

타이밍 맞게 일어난 디아는 살짝 놀란 기색이었다.

“하…….”

깊은 한숨을 뱉은 갑각왕 헤라클레스가 말했다.

“네놈이 언제가 사고 칠 거라곤 생각했었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나르본느의 말에 갑각왕이 주먹을 그러쥐었고, 탄식과 함께 본론을 꺼냈다.

“쏟아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개미왕의 부재가 아쉽지만, 그 대리인이 있으니, 본론으로 넘어가지.”

“그 전에… 개미왕의 대리인과 인간에게 자격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네우라 킹인 네론이 마력 특성상 본의 아니게 힘이 드러나지 않는 나와 방전 상태인 디아를 걸고넘어졌다.

자기 어필이 필요한가 싶어 마강기를 일으키려 했는데, 크라스가 나서 줬다.

“전부 지켜봤을 텐데? 보고도 모른다면 네놈의 자격이 의심되는군.”

네론과 크라스가 각을 세우자 나르본느가 갑각왕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들아, 지금 헤라클레스의 상태가 좀 이상한데?”

장내가 어수선해지니 헤라클레스의 전신을 덮고 있던 외골격에 실금이 발생했고, 네론과 크라스가 긴장하며 물러나자 그의 외골격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감정 상태에 따라 외골격에 변화가 일어나는 건가?’

조금 전 상황으로 보아 갑각왕이 분노할 때 외골격에 실금이 생긴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개미, 그리고 인간. 이름을 밝혀라.”

“난 다크, 이쪽은 디아에요.”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 생각이 없던 나는 왕급들에게는 최소한의 예우를 갖춰 말했다.

“다크, 신입인 널 포함해 저쪽 인간도 우리가 처한 상황을 모르는 듯하니 설명해 주겠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을 예감한 나르본느가 자리에 앉았다.

“20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오거, 미노타우로스, 키클롭스가 숲의 패권을 다투던 곳이었다.”

헤비급 몬스터들의 각축전을 벌이던 숲.

승자 없는 싸움이 계속되는 걸 보다 못한 각 집단의 수장이 하나의 맹약을 맺었다고 한다.

“영역의 수호자가 건재한 동안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했지.”

당시 맹약을 나눈 수장들은 모습을 감췄지만, 그들의 맹약은 영역 수호자에게 계승됐다.

“수호자인 오그르트가 나르본느의 손에 제거된 이상. 다음 수호자가 나올 때까지 그들과의 맹약은 없는 것과 같다.”

결론은 오그르트가 없으니 미노타우로스와 키클롭스가 침공해올 것이고, 과거와 같이 헤비급들의 각축전이 시작되기라도 하면 라이트급인 곤충형 몬스터에겐 재앙이 된다.

“누군가 오그르트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으면 숲의 균형은 산산조각 나고 말 거다.”

나르본느는 지켜야 할 게 있어 영역 밖에 오래도록 머물지 못하며, 준왕급인 네론과 크라스는 미덥지가 못했는지 갑각왕이 총대를 메기로 했다.

“그러니… 오그르트를 대신해 이곳 영역을 지킬 수 있는 존재는 나밖에 없겠지. 인간들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 정도야 개미족인 너희로도 충분할 거야.”

갑각왕이 오거 숲을 떠맡는 형식으로 흘러가자 나르본느가 끼어들었다.

“너밖에 없었던 거지, 지금은 아니지 않아?”

“아직 미숙한 개미족에게 맡기자는 거냐?”

“내가 오그르트를 처리한 건 맞지만, 그를 격퇴한 건 개미족이었어.”

갑각왕이 화들짝 놀라며 네론을 바라봤고, 네론이 고개를 끄덕여 줬다.

“개미왕과 다크가 오그르트와 합을 겨루었고, 저 인간은 오그르트를 압도했어요.”

“정말인가, 다크?”

갑각왕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저는 조금 전에 진화해서 적응조차 못 했어요. 만약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었다면 오그르트를 상대로 더 좋은 승부를 낼 수 있었겠죠.”

과장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갓 진화하여 성장기에 든 상황.

가진 잠재력을 조금만 더 끌어올리면 오그르트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왕급이 셋이나 되니, 너보다는 잘 막지 않을까?”

“확실히…….”

한참이나 혼자 생각에 잠긴 갑각왕.

그런 갑각왕을 보며 웃고 있는 나르본느.

갑각왕의 결정을 기다리는 네론과 크라스.

얼마 후, 갑각왕이 내게 물었다.

“다크, 네가 개미족을 대표할 수 있나?”

개미족 사이에서 의견이 갈릴 때 장로들이 다수결을 진행하나, 상위종의 의견은 그 무게가 달랐다.

조금 전 퇴각 명령을 내릴 때도 느꼈지만, 4차 진화종이 되면서 모두가 날 상급자로 대우했다.

그러니, 개미족 중에 나와 동등한 수준의 영향력을 지닌 자는 장로들의 수장인 일리아나와 무투파들의 지주 포스 정도.

두 개미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군체는 내 뜻대로 움직인다.

“지금부턴 구 장로의 신분으로 군체를 대표해 이야기를 듣죠.”

내가 자세를 고쳐 분위기를 잡자 갑각왕의 눈에 이체가 스쳤다.

“알겠다.”

갑각왕이 내게 고개 숙여 부탁했다.

“오거 숲을 개미족이 맡아 줬으면 한다!”

“나도 부탁할게. 빈말로 떠넘기긴 좀 그러니, 오그르트의 시체를 양도할게.”

나르본느가 끼어들어 대가까지 제공하자 갑각왕이 난처해했고, 그런 갑각왕을 나르본느가 자극했다.

“너, 설마 빈손으로 떠넘기려고 했던 거야? 완전 양아치잖아! 선대는 안 그랬는데…….”

갑각왕의 외골격에 실금이 가기 시작하자, 네론과 크라스가 뒷걸음쳤고, 나르본느도 입을 꾹 닫았다.

“나는… 선대 갑각왕의 심장을 내주지. 어떤가, 부탁을 들어주겠나?”

오거 숲이란 광대한 영역을 개미족의 영역으로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 감사한데, 오그르트의 사체와 선대 갑각왕의 마석까지 준다니.

‘천사인가?’

바로 승낙하고 싶었지만, 나르본느가 내게 윙크를 보내며 눈치를 줬다.

‘요구할 게 있으면 지금 하라는 건가?’

나는 갑각왕에게 말했다.

오거 숲을 개미족이 맡을 테니, 왕급 간의 불가침 조약을 맺지 않겠다고.

그러자 장내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고, 나르본느조차 당황한 눈치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서 하는 말인가?”

첫 요구를 크게 던지고 이견을 조율하면 진짜 요구가 손쉽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네. 서로 영역도 공유하고 간섭도 하면서 살자는 거죠.”

“죽고 싶은 것이냐!”

갑각왕이 갈색 외골격이 부서져 내리며 금빛 외골격이 드러났다.

‘감정이 고양되면 힘이 증폭되는 타입이군.’

갑각왕의 살기에 나르본느와 디아가 긴장했고, 네론과 크라스는 더욱 거리를 벌렸다.

더 자극했다간 유혈 사태가 벌어질 것 같아 진짜 요구를 들이밀었다.

“불가침 대신, 동맹을 원합니다.”

순간, 갑각왕이 벙찌며 금색 외골격이 갈색으로 돌아왔다.

“동맹?”

나는 부연 설명을 해 줬다.

“듣기로는 미노타우르스와 키클롭스는 오거와 달리 부족 단위로 뭉쳐 산다고 들었어요.”

이는 몬스터 도감에서 본 것이다.

“오거 급이 부족 단위로 움직인다면 개미족 역량으로 막아내긴 쉽지 않죠… 진정으로 그들의 침공을 막고 싶다면 힘을 합쳐야 해요.”

“…….”

“아니면… 개미족이 막는 동안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계획이라도 있으신가요?”

공동의 적을 이용해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동맹을 늘린다.

고대부터 오래도록 애용되던 정치 수단이었다.

“확실히… 개미족의 힘만으론 놈들을 막아 내긴 힘들겠지.”

갑각왕이 수긍하며 개미족을 적극 지원하기로 하자 나르본느가 엄지를 추켜세우며 동참 의사를 밝혔다.

“개미족이라 그런지 동료 늘리는 걸 좋아하네.”

“그저 이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했을 뿐이에요.”

네론은 마지못해 승낙했고, 크라스는 목숨의 빚을 갚겠다며 조력을 약속했다.

“그럼 이걸로 우리가 동맹이 됐음을 선언한다!”

갑각왕의 선언으로 왕급을 내 편으로 끌어들였다.

이로써 개미족의 확장을 방해할 자가 사라진 것인데.

‘버드나무 숲도 내 손에 들어온 것과 같아.’

왕급 회의에서 챙길 만큼 챙긴 나는 정비를 마친 개미군을 출격시켜 오거 숲 일대를 장악하게 했다.

“루팅 시간이다!”

트롤의 피는 포션을 비롯한 다양한 약품 제조에 쓰이는 특급 재료다.

나는 트라이에게 군의 총지휘를 맡긴 후 피어레스, 제르피아, 헤르피아가 이끄는 궁기병 900기만을 이끌고 트롤 생포에 나섰다.

“거창!”

궁기병에게 장창을 들게 하여 트롤을 견제하게 했다.

기병들이 견제하는 동안 내가 나서서 한 마리씩 힘으로 찍어 눌렀다.

쾅!

나에게 제압된 트롤은 밧줄과 접착액으로 꽁꽁 묶여 둥지로 보내졌다.

“저쪽에 트롤 무리가 있다!”

네론은 퉁명스러운 태도와 달리 협조성이 좋았고, 고속으로 날아다니며 내게 트롤의 소재지를 파악해 줬다.

부족 단위로 살아가는 오크들은 블러리의 소드 앤트 부대와 크라스가 맡아 줬다.

오크들의 부족장은 부족에서 최강자가 맡는다.

그들은 일기토를 통해 패배한 대상에게 충성하는 습성이 있었다.

블러리가 나서서 오크들의 부족장을 격파하며 다녔고, 미노타우로스와 키클롭스와의 전쟁을 대비해 그들을 개미족 산하로 받아들였다.

이때, 크라스는 자신과 닮은 전투 방식을 구사하는 블러리를 눈여겨봤다.

트라이가 이끌게 된 궁기병 1500기.

이들은 오거 숲의 고블린 개체 수를 줄이며 말벌족을 소탕했고, 일대의 개미족을 하위 군체로 삼았다.

그렇게 오거 숲에 흩어져 살던 개미족 군체 50곳을 흡수하자 개미들의 힘이 한 층 더 강해졌음을 느꼈다.

둥지로 보내진 트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개미족에게 굴종한 트롤과 반항하는 트롤.

반항하는 트롤은 메디의 실험대에 오르게 됐고, 강제로 피가 뽑히는 시설에 보내진 반면, 굴종한 트롤에겐 번식에 용이한 환경이 제공됐고, 피의 품질에 따라 식량을 비롯한 물자로 교환해 주기로 하여 그들과의 공존 체계를 다듬었다.

어느 정도 오거 숲을 장악했다고 생각됐을 때, 네론이 내게 말했다.

“저쪽에 고블린 던전이 있다.”

“고블린 던전?”

“가 보면 안다.”

오그르트가 지키고 있었다는 던전.

입구가 좁아 나우피어만 데려가기로 했다.

네론의 안내를 받아 계단으로 내려가니, 알아볼 수 없는 문자가 새겨진 문이 나왔다.

“고대의 마법사들이 만든 감옥. 우린 그것을 던전이라 부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잘 관리된 통로가 나왔다.

미로와 같은 통로였지만, 더듬이 감각으로 지형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앞장서라, 개미.”

날아다닐 공간이 부족하니 네론이 불쾌해하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앞장서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향해 이동했다.

얼마 가지 않아 통로를 막아선 고블린들과 조우했다.

‘무장은 석기 수준이네.’

나우피어를 보내 썰어 버리고 이동을 재개하려 하니, 네론이 나를 붙잡았다.

“잠깐 기다려라. 보여줄 게 있다.”

네론의 말에 따라 2분쯤 기다리자 고블린 사체가 마력으로 분해되어 사라졌고, 그곳에는 최하급 마석만이 덩그러니 남게 됐다.

“너도 느꼈겠지만, 이곳의 몬스터는 던전에서 만들어 낸 허상에 지나지 않아.”

그들을 직접 상대한 나우피어도 말했다.

“확실히 놈들의 움직임이 이상했어요.”

그러고 보니 초점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고블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더 강한 허상이 있지.”

네론이 말하길 던전은 마석을 미끼로 침입자를 끌어들이고, 그들을 통해 마력을 생성하여 몬스터를 창조해 낸다고 했다.

“그러니, 이곳에 아무도 들이지 못하게 막아야 해.”

던전의 출입을 막는 일.

‘마석 광산으로도 쓸 수 있겠는데 꼭 막아야 하나?’

나는 개미족을 상주시켜 마석을 쓸어 담으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다.

“던전이 성장하여 몬스터가 점점 많아질 거다. 그리고 지하의 강대한 허상들이 지상에 나타나며 실체를 얻게 되지.”

네론은 던전에 출입자가 많아지면 고블린 웨이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러니… 절대 이곳의 출입을 허용해선 안 돼!”

네론은 그렇게 말했지만…….

던전 내부는 마력도 풍족해서 수련장으로 쓰기에 딱 좋았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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