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가속되는 성장
던전 지하의 허상들만 처리하면 던전이 품고 있는 리스크가 사라진다.
그럼 마석 광산을 겸한 수련장으로 쓸 수 있을 듯한데…….
‘최하층의 허상이 얼마나 강한지가 문제네.’
오그르트는 몸집이 커서 던전에 들어올 수조차 없었을 테니, 하층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설명을 마친 네론이 나가자고 보챘다.
“우리가 머물수록 던전이 성장한다. 그러니 빨리 나가는 게 좋아.”
우린 지하 1층 고블린만 상대하다 마석을 챙겨 던전 밖으로 나왔다.
‘지금 신체에 적응이 끝나면 강력한 파티를 모아 와야겠어.’
던전 탐사는 추후 진행하기로 한 나는 오거 숲에서 고무나무와 같이 쓸 만한 식물을 둥지로 보냈고, 공사 개미들을 끌어와 지하 공간을 개척하게 했다.
“다크, 지하 몇 층까지 뚫으면 되지?”
언더리페와 나의 관계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대한 뚫을 수 있는 만큼 부탁해요.”
“본진 수준으로 공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어. 그래도 4차 진화종인 네가 원하는 거니 충분한 숫자의 개미를 투입할 수 있겠지.”
4차 진화종이 되어 좋은 점은 장로들을 포함한 군체의 지원을 손쉽게 끌어올 수 있다는 점이었고, 안 좋은 점은 개미들의 과도한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다크 님이다!”
“다크 님이야!”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개미족의 스타가 된 상황.
처음에야 즐길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곤해졌다.
“세크리, 3.5차 이하는 비서 개미들에게 인사하라고 해.”
“네, 그럼 비서 개미를 늘릴게요.”
나를 대신해 인사를 받아 줄 워커맨 보디가드를 대폭 늘렸다.
언더리페 산하의 페어리 워커들이 오거 숲 지하 설계도를 그려 왔다.
“나쁘지 않네. 바로 진행해 줘.”
오거 숲 지하 기지는 50개의 하위 군체와 연결되는 고속도로를 뚫을 예정이었고, 기지 내 자체적인 생산망을 구축해 일대의 개미족과 사냥 부대를 지원할 계획이었다.
“네가 말한 열매가 이건가?”
“엇, 그거야. 고마워.”
네론은 숲을 쏘다니며 내가 필요로 하는 씨앗들을 가져와 줬고, 덕분에 기름야자를 재배하게 됐다.
‘식물성 기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겠어. 그럼 비누도 만들 수 있겠는걸.’
전생에 다니던 회사가 확장을 거듭할 때, 위탁 생산으로 제조한 화장품을 유통하기도 해서 비누 제조 과정은 알고 있었다.
‘품질은 좋았었는데…….’
손해는 안 봤으나, 아쉽게도 큰 재미는 못 봐서 회사의 주력 사업은 되지 못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이곳 세계의 사람들도 비누 제조법을 알고 있다.
단지 물자가 부족한 탓에 비누를 만들어 쓰지 않았고, 비누화 공정의 부산물인 글리세린의 쓰임을 몰랐다.
보습 효과가 뛰어난 글리세린은 로션 제조에 쓸 수 있고, 니트로글리세린이란 폭약의 재료가 되기도 하는데.
‘흠…….’
니트로글리세린은 매우 불안정한 폭약.
규조토에 흡수시켜 안정성을 높인 게 다이너마이트이니 연구를 거듭하면 활용할 방법이 있겠지만, 만드는 과정이 매우 위험하다.
‘차라리 흑색 화약을 개량해 쓰는 편이 안전할지도.’
세레나 교에서 미용수를 판매하고 천연 화장품도 다수 있지만, 글리세린이 들어간 화장품은 없었다.
‘쓸 만한 로션이 없어 보였단 말이지.’
나는 비누와 글리세린의 제조법을 기록했다.
1. 기름 혹은 지방을 잿물에 넣고 끓인다.
2. 걸쭉해지면 소금을 넣고 식힌다.
두 과정을 거쳐 위로 형성된 고체가 비누이며 아래에 가라앉은 투명한 액체가 글리세린인 것이다.
메디와 엔지에게 제조법을 넘기며 부연 설명을 해 줬다.
“식용 기름이 충분히 생산되면 비누 개발 팀과 화장품 개발 팀을 만들어 줘.”
“비누와 화장품이요?”
엔지는 당장 공장을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했지만, 메디는 개미족에게 필요 없는 비누와 화장품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궁금해했다.
“비누로 인간들이 가진 불쾌한 냄새를 제거할 수 있어!”
공존하려면 서로에 대한 배려가 중요한 법.
민감한 개미족에게 있어 인간들의 위생 개선과 악취 제거는 필수 사항이라 할 수 있었다.
“인간의 수명을 늘리고 개체 수도 늘릴 수 있지.”
개미교의 인간이 늘면 그만큼 개미족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이다.
추후 의료 분야를 정복하면…….
‘거대한 인간 농장이 완성되는 거지.’
왕국의 농장화가 이루어지면 늘어나는 인구만큼 개미족의 전략적 자원이 늘어나는 것과 같으니까.
“그런 이유에서 비누는 꼭 필요해.”
이상적인 인간 농장 조성을 위해선 어쨌든 돈이 필요하다.
화장품은 그 돈을 벌어다 줄 하나의 사업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목적을 들은 메디는 인간들이 혹할 만한 상품을 개발해보겠다고 했다.
“천천히 해. 이제 겨우 기름야자를 심었을 뿐이야.”
야자가 자라고 기름 생산 설비가 갖춰져야 뭐든 시작될 수 있다.
“네!”
메디는 포스의 상태에 관한 걸 말해 줬고, 페스트의 정찰 부대가 숲의 상황을 수시로 보고했다.
“포스 님은 무사해요.”
포스는 오그르트와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가 깊었던지 회복실에서 안정을 취해야 했다.
“갑각왕은 서쪽 경계선 쪽에서 보초를 서고 있어요.”
오크나무 숲에서 할 일이 많지 않은 갑각왕은 미노타우로스와 키클롭스의 침공을 경계했다.
그에 비해 나르본느와 크라스는 여름에 영역을 비워 둘 수 없어 버드나무 숲을 지키러 갔다.
회복 중이던 포스는 나와 디아의 활약을 듣곤 전투광답게 우열을 가리고 싶어 했으나, 안정을 취해야 했던 그와 서쪽 괴수들의 침공을 대비하느라 바빴던 나는 가벼운 대련조차 진행할 수 없었다.
오거 숲이 개미족의 영역으로 다져지는 동안, 나는 지하에서 수련하며 개미족의 전력 강화에 힘썼다.
‘지금의 무기로는 오거급의 몬스터를 상대하긴 힘들어.’
화살촉의 형태를 개량하여 관통력을 높이고, 편전을 도입했다.
편전은 반쪽으로 쪼갠 대나무 통에 넣어 쏘는 짧은 화살로 애기살이라 불리기도 한다.
기존 화살보다 고속으로 쏘아지는 편전은 공기저항을 덜 받아 사거리가 길다.
다루기가 어렵고 명중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상위 몬스터의 반응 속도와 방어력을 생각했을 때 편전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관통력을 끌어올렸지만, 화살이 가벼워진 만큼 저지력을 주긴 힘들어졌어.’
그래도 상처를 낼 수 있다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라 봤고, 나는 그들을 제압할 독을 개발하고자 했다.
‘강한 몬스터일수록 높은 재생력과 독 내성을 갖췄단 말이지…….’
무력으론 3.5차 개미에 불과하지만, 웬만한 독은 재생력만으로도 극복해 버리는 트롤이 떠올랐다.
‘트롤에게 먹힐 정도의 독이라면 미노타우로스와 키클롭스에게도 통할 거야.’
메디를 중심으로 워커맨과 허브 워커를 투입하여 맹독 연구 팀을 편성했다.
맹독을 개발하는 과정에는 반항하던 트롤이 쓰였다.
트롤에게 독을 주입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독에 대한 내성을 갖추게 되는데, 내성을 갖춘 그들의 피로 해독제를 만들 수 있었다.
‘미쳤군.’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트롤의 신체 특성을 파악하게 됐고, 그들을 이용하면 웬만한 백신은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륙 의료계 장악이 생각보다 빨라지겠어.’
이러한 사기적인 생물을 곁에 두고 이곳 세계의 인간들은 무슨 뻘 짓을 해 왔는지 질병에 대한 이해도가 몹시 떨어졌다.
다양한 해독제가 만들어지는 만큼, 개미족이 다룰 수 있는 독의 개수가 늘어 갔다.
맹독 연구가 진행되는 사이, 메탈 워커의 수가 늘어나며 금속 무기의 발전이 있었다.
바로 인간들이 마철이라고 부르는 합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철은 마력 전도율이 좋아 마력을 주입했을 때 강도와 절살력을 높일 수 있다.
‘나쁘지 않네.’
3차 진화종부터 마력 주입이 가능하니, 그들에게 마철 무기를 만들어 보급했다.
이로 인해 가디언과 워커맨의 공격력이 크게 상승했으나, 마력을 소모하며 싸워야 했기에 전투 지속력은 감소할 터.
3.5차 개미에 버금가는 강적을 상대할 때라면 몰라도 주 사냥감이 고블린, 늑대, 뿔 토끼, 자이언트 레서, 사슴, 멧돼지 같은 약한 상대들이라 마철 무구를 쓰는 건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행위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양학용 강철 무기를 보급하여 마철 무기는 예비용으로 쓰게 했다.
‘전도율이 좋으니 마강기에도 잘 버티네.’
마철 무기는 마력 전도율이 높은 만큼, 마강기에 잘 견디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내구력 자체는 형편없어 왕급 간의 격돌에선 얼마 버티지 못했다.
그러던 중 메탈 워커들이 지하에 널린 흔한 광물에서 알루미늄 같은 금속을 분리해 냈다.
‘이거 알루미늄인가?’
새롭게 발견된 금속은 무게가 가볍고 마력 전도율이 마철 이상으로 좋았는데, 내가 알던 알루미늄과 달리 일반적인 금속이라 여겨지지 않는 절대적인 내구성을 보였다.
‘이렇게 가벼운데… 부러지질 않아!’
새로운 금속으로 꿈에 그리던 부러지지 않는 창을 만들어 애병으로 삼았는데, 인간 대장장이를 통해 이것이 미스릴이라고 불리는 초고가의 금속임을 알게 됐다.
‘흠…….’
지하로 갈수록 흔하게 나오는 광물에서 추출한 거라, 분리 기술만 갖추면 대량 생산도 가능해 보였다.
‘나중에는 철보다 이게 더 흔해질 것 같은데 말이지.’
메탈 워커 덕에 미스릴 무구를 갖출 수 있게 됐으나 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았고, 애초에 마력을 수준급으로 다루지 못하는 개미가 쓰면 강철보다 못한 위력을 보였기에 최상위권 개미들에게만 마철 무구 대신 미스릴 무구를 지급했다.
무장만 강화하고 있진 않았다.
디아가 가디언과 워커맨들의 무기술을 봐줬고, 메가피르와 게르피아가 울트라들을 단련시켜 3.5차 개미를 늘려 갔다.
나는 지휘관급 개미들과 함께 오거급 강적을 견제하기 위한 전법을 연구했다.
“오그르트와 붙어 보면서 알았어.”
놈은 확실히 괴물이지만, 무적은 아니다.
“대처하기에 따라서 최소한의 피해로 격퇴할 수 있을 거야!”
오거급 몬스터의 침공을 대비해 발전을 거듭하며 디아의 도움을 받아 진화한 신체에 적응을 마쳤다.
‘갑주를 착용한 디아에게도 밀리지 않게 됐어.’
포스 또한 이번 전투로 상당한 진전을 얻었으나, 나와는 성장 속도에서 차이가 컸다.
‘흑마력 자체는 초기 단계에서 축적이 느리지만, 성장할수록 흡수량의 증가 폭이 일반 마력보다 높지.’
경지에 오를수록 축적 속도가 가속되는 흑마력.
거기다 대기만성인 공허의 마력이 경지에 접어들며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부족했던 물리력을 속성 부여로 커버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수확이야.’
다른 개미들이 성장 한계에 부딪혀 정체기에 들 때, 데몬 앤트인 나는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선 상황.
‘운이 좋았어.’
아니, 공허의 마력을 선택한 나의 판단이 옳았다.
이번 전투를 통해 획득한 오거의 심장과 전대 갑각왕의 심장.
특급 마석인 두 심장을 흡수하기 전, 오그르트와의 전투에서 깨달은 능력들을 살펴봤다.
[속성 부여], [개미 지배]
공허의 마력에 단단함이란 속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됐으니 다른 개미들의 속성을 부여해 보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안 되네.’
안 되는 건 건너뛰고 다음 능력을 점검했다.
개미 지배는 개미족이 아니라 진짜 개미를 조종하는 능력인데, 단순히 조종만 가능한 능력이 아니었다.
나는 일대의 개미들과 감각을 공유하여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고, 마력을 공유해 줄 수도 있었다.
‘이거… 굉장하네.’
지배의 힘이 닿은 개미들에게 공허의 마력을 공유하면 마력을 포식할 수 있게 되고, 단단함이 부여된 마력을 공유하면 극강의 개미 군단이 됐다.
‘활용하기에 따라선 엄청나겠어.’
서쪽 숲에 대한 경계 체제를 충분히 갖췄을 무렵.
갑각왕이 우려하던 미노타우로스들의 침공이 시작됐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