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VS 미노타우로스 (2)
“이런 미친!”
“피해!”
“이 녀석, 보통 인간이 아니야!”
적아를 가리지 않는 강기 포격이 시작되자 일대의 지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가까이 있던 일곱 마리 중 세 마리는 강기 포격에 휩쓸려 사망했고, 남은 네 마리는 만신창이가 되어 도주하기 급급했다.
갑각왕과 겨루던 미노타우로스도 강기 포격에 휘말렸다.
“큭!”
“뭐냐, 이건!”
오그르트처럼 어느 정도 버티던 그들이었지만, 폭주한 디아가 그들을 향해 들이치자 경악한 둘은 디아를 서로 떠넘기며 대피했다.
궁기병들이 폭주한 디아를 미노타우로스 쪽으로 유도했고, 덕분에 갑각왕도 무사히 물러날 수 있었다.
갑각왕을 마지막으로 왕급과 준왕급 전력 모두가 후방에 모였다.
“미안… 발이 미끄러졌어.”
등에 난 거미 다리 절반이 부러진 나르본느가 침울해하며 사과했고, 크라스와 네론은 탈진 상태여서 말할 기운도 없어 보였다.
“내가 둘 정도는 제거해 줬어야 했는데…….”
“거미족에게 미노타우로스는 상성이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너한테 기대한 적 없으니 사과할 필요 없다.”
갑각왕이 나르본느의 기를 죽이며 내게 물었다.
“어떤가? 전황은?”
“나쁘진 않아요.”
크라스가 한 마리를 무력화했고, 폭주 전의 디아가 한 마리를 격퇴.
내가 한 마리의 정강이를 부러뜨렸으니, 세 마리가 전장을 이탈한 셈.
폭주에 휘말려 사망한 세 마리를 합해 여섯 마리가 줄어 남은 적은 왕급 한 마리와 준왕급 다섯 마리.
그들이 멀찍이서 디아의 폭주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궁기병도 피해가 커서 뒤로 물린 상황이었고, 네론, 크라스, 나르본느, 디아를 우리 쪽 전력에서 빼면 남은 건 나와 갑각왕 뿐.
오그르트였다면 모를까, 왕급을 포함한 준왕급 여섯 마리를 상대하기에는 우리 둘로는 역부족이었다.
“크락세스 부대, 돌격 준비 끝냈습니다!”
디아가 일대를 휩쓰는 동안 하드 워커 300마리와 자이언트 워커 700마리로 구성된 돌격 부대가 준비됐다.
궁기병과 왕급을 상대하느라 힘이 빠진 녀석들이다.
이대로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제거는 힘들어도 격퇴는 가능하다.
“시간은 충분히 벌었어요. 저희는 디아만 챙기고 나머지는 돌격 부대에게 맡기죠.”
“그러지.”
디아의 폭주가 끝나고, 나와 갑각왕이 돌격 부대의 선두로 미노타우로스들과 대치하게 됐다.
미노타우로스들은 오그르트 같은 무투파 바보가 아니었다.
냉철한 눈으로 돌격 부대를 훑어본 놈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도끼를 내렸다.
“수가 많군. 이 빚은 다음에 갚지.”
돌격 부대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노타우로스들이 물러갔다.
* * *
“이상하군. 몸에 개미가 붙었어.”
후퇴하던 미노타우로스들은 돌아가는 길에 자신들의 몸에 붙은 개미들을 서로 털어 줬으나, 모든 개미를 털어 내진 못했다.
* * *
여덟 개의 궁기병 부대 중 하나가 괴멸의 가까운 피해를 입으며 얻은 성과는 사살 세 마리.
이쪽은 그나마 잘 마무리된 편이고, 지원이 늦어 완전히 밀려 버린 전선도 많았다.
다른 전선에서도 물량으로 밀어붙여 어떻게든 격퇴했으나, 놈들이 체력을 회복해 다시금 침공해 올 것을 생각하면 골머리가 아팠다.
‘한 마리씩 제거하지 않으면, 피해가 누적될 거야.’
오그르트 이상으로 걸림돌이 될 놈들이다.
당장에 쳐들어가서 밀어버리곤 싶지만…….
이쪽은 미노타우로스만 경계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키클롭스 쪽도 대비해야 해.’
거기다 침략전으로 가면 지리적 이점을 포기해야 하고, 보급로가 길어지면 전선 확대로 인한 문제도 있으니 충분한 준비 없이 진행할 수 없었다.
‘겨울까지 버텨 보자!’
겨울이 오기 전, 미노타우로스들의 영역을 확인할 생각으로 정찰 개미들을 투입했고, 구체적인 전력 확인을 위해 나와 감각이 연결된 작은 개미들을 놈들의 몸에 붙여 뒀다.
‘녀석들과의 전투에서 안전한 후방에만 있긴 어려워.’
오그르트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기에 미노타우로스와의 결전은 신중히 접근했다.
이번 겨울.
개미족의 전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오크를 써먹을 수 있게 훈련시킬 작정이었다.
버티기에 들어간 개미족은 강하다.
궁기병과 돌격 부대의 조합.
그리고 왕급과 준왕급의 적절한 지원.
침공해 온 미노타우로스를 십여 차례 격퇴하며 겨울을 무사히 맞이했다.
그동안 경계하던 키클롭스의 침공은 없었고, 미노타우로스와의 대규모 전면전도 없었다.
다만 미노타우로스와의 꾸준한 국지전으로 정예 병력의 피해가 누적됐다.
정예병의 피해 정도야 지금의 개미족 규모면 금세 복구가 가능했으나, 문제는 놈들의 영역이 너무 넓다는 것에 있었다.
‘끝이 없다.’
오거 숲도 상당히 넓었는데.
놈들의 활동 영역이 생각 이상으로 넓어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확인이 어려웠다.
‘수도 너무 많단 말이지.’
붙여 둔 개미로 감지한 놈들의 개체 수는 최소 500이 넘고, 그중 왕급만 열두 마리가 넘어갔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재앙이라 할 수 있는 준왕급 몬스터 500마리가 뭉쳐 다니면…….
그건 이미 재앙 수준을 뛰어넘었다.
‘서쪽에 배치한 궁기병 2,400기와 돌격 부대 4천 마리론 감당할 순 없어.’
뭉치면 답이 없으니, 각개격파를 노리는 게 정석이지만…….
말벌족과 달리 부상당한 동료에게 지극정성인 점을 보아 각개격파도 쉽지 않아 보였다.
공략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지만, 공허의 마력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해야 할 일부터 처리했다.
전력 강화를 위해 왕급과 준왕급 존재들에게 겨울을 피할 수 있는 지하 훈련장을 선물했고, 그 대가로 개미들의 훈련을 부탁했다.
“가디언들이라면 나와 전투 방식이 비슷할 테니 봐줄 순 있다.”
갑각왕에겐 싹수가 보이는 3.5차 가디언들을 보냈다.
거기에는 피어레스, 제르피아, 헤르피아, 게아, 네아, 데아, 메르, 베르가 포함돼 있었다.
“난 누굴 가르치진 못해.”
네론은 츤데레인지, 말을 곱게 하는 경우가 없다.
페스트를 비롯한 정찰 부대를 보냈더니 날아다니기 좋게 만들어진 훈련장에서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블러리란 녀석과 나우피어… 둘 정도는 가르칠 수 있겠군.”
크라스는 두 개미를 지목해 직접 가르쳐 보겠다고 했다.
블러리는 크라스에게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거절했고, 나우피어는 시답잖은 이유로 거절했다.
나우피어야 강제로 보내면 되지만, 장로인 블러리를 억지로 보낼 순 없다.
1분 1초가 아까웠던 나는 설득 대신 일리아나를 통해 장로 회의를 열었다.
“그럼 블러리와 나우피어가 크라스의 수련을 받는 것에 찬성하는 개미는 더듬이를 위로 올려!”
“뭐, 겨울에 소드 앤트가 둥지에 남아서 할 일도 없을 거고…….”
“이번 기회에 성질머리 좀 고치면 좋겠군.”
3장로 언더리페와 5장로 포메온이 한 마디씩 하고, 나머지 장로들도 각자의 의견을 말했다.
4장로 네트리는 블러리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랐고, 6장로 캐리와 7장로 트라이는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크라스에게 배우는 게 옳다고 봤다.
결과적으로 찬성 여덟 표로 블러리와 나우피어가 크라스에게 보내졌다.
“너희들, 두고 봐라!”
“다크 님… 살아서 돌아올게요.”
나우피어는 장로도 아니면서 전투력이 블러리에 버금가는 미스터리한 녀석이다.
일반 개미 중에선 메가피르, 게르피아와 동급으로 여겨지며 잠재력만큼은 장로들보다 높을 수 있어 성장이 기대됐다.
포스는 메가피르, 게르피아, 카이제르, 네아피코, 페르디코, 크락세스를 포함한 3.5차 울트라들을 모아 수련을 봐줬다.
디아와 나는 자이언트 워커에 버금가는 오크 전사들을 끌어모아 개미 부대에 필적한 정예병 육성에 나섰다.
‘오크군이 편성되면 괜찮은 전력이 될 거야.’
오크들은 힘이 강하지만 지구력이 약했고, 동물과의 친화력이 좋지 못하여 말이나 늑대를 탈 수 없었다.
개미들도 오크를 태우는 걸 거부했기에 기병으로 활용할 수 없었다.
기동력이 안 되니 미노타우로스를 상대론 고기 방패의 역할밖에 못 하는데.
인간, 홉 고블린, 오크.
세 종족의 대장장이를 비롯한 생산직들이 늘며 일거리가 필요해졌고, 고기 방패를 강화하기 위한 갑옷 생산에 돌입했다.
남아도는 물자와 인력으로 전신 갑주와 강철 할버드를 생산하여 오크 부대를 무장시켰다.
상대가 인간이었다면 충분히 압도할 무장이다.
다만, 상대가 미노타우로스다보니 고깃덩어리에서 단단한 고깃덩어리가 된 것에 불과했다.
단단한 걸 씹다 보면 이가 나가는 법.
아무리 미노타우로스라도 중장보병을 상대로 도끼를 휘두르다 보면 체력적 소모가 클 터.
궁기병의 기동력, 중장 보병의 단단함.
기동력과 단단함을 모두 갖춘 돌격 부대.
세 부대가 충분히 갖춰지면 미노타우로스와의 일전도 가능할 법했다.
‘결국, 물량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건가?’
물량만이 답은 아니다.
무기를 개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한데…….
작년 여름, 루리아가 벨레삭 백작령에서 황과 석영을 보내왔고, 고무와 유리의 연구 개발이 시작됐다.
고무와 유리.
패킹용 고무가 개발되며 쓸 만한 증기관을 만들 수 있게 됐고, 엔진과 연료의 연구 개발을 거듭하면 내연 기관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다크 님이 말씀하신 증기 기관을 개발했어요. 그런데… 이걸 쓰게 되면 일감이…….”
“나도 알아. 엔지.”
과학과 경제가 발전하면 생산업의 필요 인력이 감소하고 서비스 시장이 커진다.
지금처럼 인력이 충분할 때는 일개미들의 반발에 부딪힐 거라 시기상조라 할 수 있었다.
“도입을 미룰 거니까, 엔진과 연료의 연구는 계속해 줘.”
“네!”
나의 결정에 엔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걱정해야 할 건 일감 부족이 아니야.’
내가 있으니 일감이야 무한정 만들어 줄 수 있다.
거기다 세력전에서 밀리게 되면 병력을 충원해야 하고, 그럼 인력 부족 현상을 겪게 될 터였다.
‘상황을 보자.’
엔진과 연료 연구 개발에 자원을 충분히 투입하며 내년의 전황에 따라 도입 시기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겨울 동안 사제와 성전사급 멤버들이 둥지로 돌아와 수련의 시간을 보냈고, 문트리아가 보고를 위해 둥지에 들리게 됐다.
최측근 중에 문트리아만이 내가 개미족인 줄 모르고 있다.
들켜도 상관은 없을 듯하나, 설명하기 귀찮은 관계로 하이 페어리들을 대동해 만났다.
“다크 님의… 언니신가요?”
진화로 외모가 성숙해진 터라 문트리아는 날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동안의 모습도, 지금의 내 모습도 진짜가 아니야.”
“역시, 마법으로 젊음을 유지 중인…….”
문트리아는 날 노파로 생각하는 듯한데.
“노파 아니고, 보고부터 부탁해.”
“네! 이건 현금 흐름을 기록한 거고, 손익을 계산한 보고서는 이쪽이에요. 재산 목록은 말씀하신 방법대로 기록해서 여기에 정리했습니다.”
내가 정한 기준대로 잘 정리된 현금 흐름표, 손익계산서, 재무제표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잡화점, 여관, 약국.
대장간과 가죽 공방.
잡화점과 여관업은 큰 이익을 거두고 있었고, 약국 또한 점차 활성화되는 중이다.
얼마를 벌었는지도 중요하지만, 내 목적은 돈으로 영향력을 사는 것이기에 얼마나 많은 인간을 포섭했는지가 중요했다.
베르딘이 비어베어를 언제든 장악할 수 있게 준비를 마쳤고, 메틴은 용병단을 창설하여 길드 내에서의 영향력을 키웠다.
부유층과 고위층의 수족들이 하나둘 교체되어 날 따르는 자들로 채워졌다.
그렇게 바르퀴르 자작령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내 손에 떨어져 갔고, 문트리아는 돈으로 인간을 장악하는 나의 방식에 감명 받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바르퀴르 자작령에선 저희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교도들 간의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개미 상단을 견제하려던 저항 세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속된 불행으로 망해 갔고, 상단과 협력한 자들은 이상할 정도로 일이 술술 풀려 부유해졌다고 한다.
“잘하고 있네.”
상단 총괄을 맡은 문트리아는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어 수련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그녀가 떠나고 며칠 후, 개미교 신전에서 프릴과 릴리를 발견했고, 개미족의 교육관들과 어울리고 있는 메르디아 폰 엠마를 만나게 됐다.
‘쟤들이 왜 여기에 있지?’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