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개미교의 성장
그러고 보니…….
‘구체적으로 언제 내보내라는 말을 안 해 줬던 것 같은데.’
술집 종업원이던 프릴과 릴리는 내가 그들의 존재를 깜빡하는 바람에 둥지에서 심화 교육까지 마치게 되며 최하급 수녀가 돼 있었다.
글 선생으로 저택에 취업한 메르디아 폰 엠마.
“쟤는 어떻게 된 거야?”
세크리에게 상황을 알아 오게 했다.
메르디아는 우연한 계기로 개미 상단의 비밀을 알게 됐고, 그로 인해 지하에 감금되어 기초 교육을 받게 된 케이스였다.
‘이런 경우가 많나?’
그때 교육 개미들이 놓치고 있던 부분을 지적하면서 주목받게 된 그녀는 교과서 편찬에 일조하며 교육 개미들의 신임을 샀다.
“엘리트였잖아. 그런데 지금 왜 검을 휘두르고 있어?”
“교육 개미들이 이번 겨울 특훈에 넣어 줬나 봐요.”
겨울 특훈은 심화 교육을 거친 엘리트들에게 제공된 무력 중심의 교육이었다.
지능캐에게 굳이 무력이 필요한가 싶지만,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험한 세상이다.
지캐도 무력을 찍지 않으면 언제 객사할지 모르니, 몸을 지킬 수단은 있어야 했다.
“데이지, 저기 있는 수녀 중에 프릴과 릴리 좀 불러 줘.”
“네, 그럴게요.”
기초 교육만 수료한 문트리아와 달리 수녀까지 된 프릴과 릴리.
둘은 나의 정체를 알고 있을 테니 위장할 필요가 없었다.
“날 알아보겠어?”
진화로 모습이 바뀌어서인지 날 알아보지 못했다.
“이분은 위대한 일족의 아홉 번째 기둥이신 다크 님이시다. 모든 걸 꿰뚫어 보시니 묻는 말에 거짓이 섞이면 안 될 것이다.”
“드래곤도 아니고 말이야. 그냥 개미족의 장로 다크다.”
“다크 님이요? 혹시 개미 저택의 주인이신 다크 님과는…….”
“그건 인간으로 위장한 내가 맞아.”
릴리는 사제인 데이지의 눈치를 보며 눈알만 굴렸고, 프릴은 나와의 만남을 반겼다.
“위대한 일족의 아홉 번째 기둥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죽어 가던 절 살려 주신 은혜를 갚기 위해 개미교의 세례를 받게 됐습니다.”
믿음으로 가득한 프릴과 달리 릴리는 부족한 믿음이 드러날까 봐 불안해했다.
“이들과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사람들을 물려 줘.”
“네.”
데이지마저 물리고 한동안 프릴의 찬양을 들어 줬다.
‘어휘가 많이 늘었어.’
수녀 중에서도 찬양 레벨만큼은 탑 클래스인지 도저히 본론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나는 프릴의 말을 막곤 릴리에게 말했다.
“긴장하지 않아도 돼. 내 실수로 너희들이 여기에 머물게 된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눠 보려는 거니까.”
개미족의 비밀을 알았으니, 그냥 보내 줄 순 없다.
“위대하신…….”
“됐으니까 짧게.”
“다크 님 덕분에 이곳에서 많은 걸 배워 개미교의 수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저희 출신이 천했던 터라 신전에서의 생활은…….”
“답답하단 말이지?”
“그게 아니오라, 밖의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교리를 전파하고 싶어서…….”
빙빙 둘러말했지만, 돌아가고 싶단 이야기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 화법 좀 고치면 안 되겠냐?”
“개미교의 수녀로써…….”
“근데, 넌 믿음이 없잖아.”
질책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순간 릴리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고 목소리가 떨려왔다.
“아… 아닙니다. 저도 키틀레야 신을…….”
대상의 심리 상태에 따라 풍기는 마력이 다르다.
덕분에 나는 상대가 느낀 감정을 알아챌 수 있다.
릴리는 애써 숨기려 하지만, 몬스터인 나를 두려워했고, 프릴은 나에 대한 믿음이 깊어 일말의 불안조차 보이지 않았다.
“프릴, 너도 돌아가고 싶은 거야?”
“네, 돌아가서 동료들에게 개미교의 은혜를 나눠 주고 싶어요.”
프릴도 내심 신전 생활이 답답했던 것 같다.
충성심이 확인된 인간에겐 출입 허가가 주어지기도 하는데, 이 둘은 둥지에 들어온 경로가 특수하여 출입 허가를 받을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알겠어. 데이지에게 말해 둘 테니까. 때가 되면 바르퀴르 영지로 파견 보내 줄게. 그동안 잘 배우고 있어. 가능하면 사제가 되면 좋고.”
“감사합니다. 다크 님.”
“그리고, 릴리.”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에게 한 마디 해 줬다.
“믿음이 부족해도 불안해할 필요 없어. 나도 키틀레야를 믿는 건 아니거든.”
“네?”
“실제로 본 적도 없고 말이야. 그래도 개미교에 입문했으니, 날 한 번 믿어 봐.”
“다크 님을요?”
“너희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날 따르면 돈만큼은 확실히 만지게 해 줄게.”
“성직자인 제가 어찌…….”
“너. 돈 좋아했지 않아?”
“그렇긴 한데, 수녀로서…….”
마력을 보아 릴리는 여전히 돈을 좋아했다.
“두둑하게 챙겨 줄 테니까 나갈 준비나 해 둬.”
릴리도 날 두려워하긴 해도 배신할 것 같진 않으니, 믿음은 차차 쌓아 가면 될 듯했다.
‘아무래도 밤의 세계에 익숙한 인간이 필요했는데, 잘 됐어.’
둘을 이용해 클라우드 왕국의 술집을 장악할 생각이었다.
‘그럼 노예 수급도 편해지고, 암흑가의 흡수도 쉬워지겠지.’
프릴과 릴리를 데이지에게 돌려주며 둘의 쓰임을 말해 뒀다.
“알겠습니다. 그럼 둘도 겨울 특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게요.”
“그렇게 해. 그리고 수녀 등급도 좀 올려 주고, 잘 챙겨 줘.”
“알겠습니다. 수습 사제로 조정하고, 대우에 신경 쓰겠습니다.”
수녀 최상위 등급인 수습 사제.
노동에서 해방된 그녀들에겐 강도 높은 교육과정이 준비돼 있었다.
프릴과 릴리의 상황을 확인했으니 메르디아와 독대를 해 봤다.
“다크 님인가요?”
“바로 알아보네.”
“다크 님도 개미족 분이셨군요.”
나를 본 그녀는 밖에 가족이 있다며 둥지에서 내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나가고자 하는 이유를 자세히 들어 보니, 가문을 말아먹은 무능한 부모를 대신해 돈을 벌어야만 동생들에게 제대로 된 의식주가 제공된다고 했다.
“제가 돈을 보내지 않으면 동생들이 노예로 팔릴지도 몰라요.”
메르디아도 프릴과 릴리와 마찬가지다.
비밀을 안 이상 그냥 보내 줄 순 없다.
거기다 메르디아는 교육 개미들에게 도움을 줄 정도로 뛰어난 인재이며 신학, 역사, 정치와 같이 귀족들이 익히는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클라우드 왕국의 예법을 익힌 만큼 귀족 같은 면도 있어, 여러모로 그녀는 희소 인력이었다.
‘귀족들과의 소통 창구로 쓰기 좋아 보인단 말이지.’
메르디아는 10대 후반의 합리적인 아이라 포섭이 힘들 것 같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런데 돈을 보내 주는 것보다 그냥 동생들을 데려와서 함께 사는 건 어때?”
“하지만…….”
그녀는 릴리와 마찬가지로 개미족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저택의 교육 수준을 생각해 봐.”
두려움은 그리 크지 않았는지 미끼를 던지자 금세 흔들렸다.
“봉급과 복지도 업계 최상이고,”
마력을 보아 이미 반쯤 넘어왔다.
마지막 카드로 거절할 수 없는 연봉을 제시했다.
릴리도 그렇지만, 인간의 탐욕은 공포마저 먹어 치웠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크 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호칭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동생은 부하들에게 챙기게 할 테니, 넌 걱정하지 말고 나갈 준비나 해.”
“나갈 준비요?”
“최소한의 무력을 갖춰야 안심하고 써먹지. 그러니 겨울 특훈이나 열심히 받아 둬.”
“…….”
무력이 왜 필요한지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나의 최측근으로 활동하려면 기본적으로 골드급 수준의 무력은 갖춰야 했다.
그래야 쓸데없는 호위도 줄일 수 있고,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으니까.
‘유사시에 공작원으로 써먹을 수도 있고 말이야.’
교육 개미들을 통해 그녀가 갖춘 지식을 뽑아 낸 후의 용도도 정해 뒀다.
‘나와 유리가 밀어주면 귀족 영애로도 둔갑시킬 수 있겠지.’
나는 그녀를 수도로 보내 기반을 다지게 할 생각이었다.
‘수도 거점은 그녀에게 맡기고, 인간 선별부터 끝내야겠어.’
나는 주기적으로 인간 영역에 방문하여 배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자들을 선별했다.
“저 녀석이랑, 저 녀석은 페르에게 보내고, 쟤는 좀 더 가르쳐. 그리고 저놈은 기분 나쁠 정도로 맑은 녀석이니 제대로 지원해 주고.”
거르고 걸러 절대 배신하지 않을 인간들만이 남게 되었고, 그들은 어엿한 개미교 신도가 되어 외부로 오갈 수 있는 출입증을 발급받았다.
출입증은 개미족의 우호 페로몬이 잔뜩 묻은 향주머니였다.
인간 쪽 일을 마친 나는 개인 수련과 오크들의 훈련에 전념했다.
가끔 키카와 데카이저를 만나 고블린에 관한 걸 논했다.
다른 왕급과 준왕급이 전력 증강으로 바쁠 때, 나르본느는 할 일 없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르본느는 수련 안 해요?”
“다크는 종족 한계라고 알아?”
“종족 한계요?”
“종족마다 도달할 수 있는 한계점이 존재한다는 설이야.”
성장 한계에 부딪힌 나르본느는 수련이 무의미하다고 했다.
“나르본느, 플루스 울트라라는 말 알아요?”
“그게 뭐야?”
라틴어로 ‘보다 더 멀리 나아가다’, ‘이상을 향해서’란 의미를 가진 말로…….
“나르본느가 싫어할 법한 말이에요.”
“너! 지금 나 무시했지?”
왕급과 준왕급은 간혹 함께 모여 대련의 시간을 가졌고, 이는 서로의 장단점을 알아가기 위한 훈련이었다.
상성 차이와 장소에 따라 대련의 승패가 결정됐다.
나는 갑각왕과 나르본느를 이길 수 없었지만, 포스와는 대등했으며, 가끔 디아를 이길 수 있었다.
‘내가 이길 수 있는 건 디아 뿐인가?’
그런데, 갑각왕, 나르본느, 포스는 디아를 이길 수 없다.
왕급 다섯이서 무수한 대련을 치렀고, 전적을 기준 삼아 서열을 정했다.
서열 1위는 흑기사 디아.
2위는 갑각왕 헤라클레스.
포스가 상성 우위로 나르본느를 앞서며 서열 3위가 되고, 나르본느가 4위가 됐다.
가끔이지만, 1등을 꺾을 수 있던 나는 승률이 낮아 5위에 그쳤다.
‘다들 전투 센스가 좋아.’
대련을 거치며 나의 특성으로 인해 포식왕이라 불리게 됐다.
“포식왕 다크. 어때, 맘에 들어?”
“칭호는 맘에 드는데, 제가 서열 5위라는 건 좀 그렇네요.”
“서열 같은 건 신경 쓰지 마. 진짜로 붙으면 내가 다 이기니까.”
나르본느가 미노타우로스를 상대로 싸우는 걸 몇 번 봤지만, 제대로 활약한 적이 없었다.
‘포스에게도 밀리면서 내게만 이상할 정도로 강하단 말이지.’
전력을 다한 크라스는 20초 정도 왕급과 비빌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뒷심이 없었고, 네론은 고속 비행 정도나 쓸 만한 약골에 불과했다.
두 준왕급은 왕급들과의 대련으로 경험치를 쌓아 갔다.
“다크 님, 오그르트의 영양으로 만든 진화석을 저들에게 내줄 필요가 있을까요?”
“양은 충분하잖아.”
“그렇지만…….”
“개미족이 밀리면 숲 전체가 미노타우로스와 키클롭스의 영역이 될 텐데, 쟤들도 그걸 바라진 않을 거야.”
말하자면 운명 공동체.
“베풀 때는 확실히 베푸는 게 맞아.”
크라스와 네론은 사 장로 네트리가 만든 특급 진화석과 마력수의 지원으로 그동안 막혀 있던 성장 한계를 뚫어 냈다.
‘내년 봄까지 왕급이 될 수 있으려나.’
두 준왕급이 왕급이 되어 가는 동안 케어와 페르가 4차 진화의 실마리를 찾으며 각성 능력이 한 단계씩이 성장하는 쾌거를 거뒀다.
‘둘 다 강해지고 있어.’
블러리를 제외한 장로들도 하나둘 각성 능력을 얻게 됐고, 그들의 능력 활용처를 찾아보기도 했다.
겨울이 끝나갈 때쯤 나르본느가 내게 물었다.
“너, 혹시 미노타우로스들과 총력전을 생각하는 거야?”
“아뇨. 지금의 전력으론 힘들어요.”
“지금은 힘들다는 건 준비하고 있다는 거지?”
“그렇죠.”
나의 대답에 나르본느가 토끼 눈을 떴다.
“진심이야?”
진심이고 뭐고.
놈들이 계속 쳐들어오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지 않겠어요?”
나의 반문에 나르본느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갑각왕이 말해 주지 않았어?”
“무슨 말이요?”
“잘 들어. 수백 년간 놈들을 감당할 수 있었던 건 키클롭스와 오거 정도야.”
나르본느는 개미족의 전력으론 미노타우로스의 아성을 넘을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의 개미족은 확실히 강해. 앞으로 더 강해지겠지. 하지만 넘을 수 없는 종족의 한계라는 게 있어.”
‘종족 한계는 게으름 피우기 위한 핑계가 아니었던 건가?’
미노타우로스와 키클롭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문이 생겼다.
강함으로 따지면 키클롭스, 오거, 미노타우로스 순이었고, 개체 수로 보면 미노타우로스, 키클롭스, 오거 순이다.
오거보다 강한 키클롭스에겐 눈이란 약점이 있었고, 미노타우로스는 비교적 약한 대신 부족 간의 결속력이 남달랐다.
무력과 수에서 키클롭스에게 밀린 오거.
전성기에도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전에 말한 맹약 때문인가?’
나르본느에게 물어보니, 오거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세력전의 결과가 아니었다.
“무투회야.”
“무투회요?”
미노타우로스들은 마의 축복 기간에 토너먼트 형식의 무투회를 연다.
“왕급과 준왕급 몬스터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디아도 참여할 수 있나요?”
“인간이 참여한 전례가 없으니… 그건 놈들에게 물어봐야지.”
그곳에서 1위를 하면 최강의 미노타우로스와 겨룰 기회가 주어지며, 원하는 걸 한 가지 들어준다고 한다.
“그럼 전면전 없이도 무투회에서 1등만 하면 불가침조약도…….”
“가능할 거야.”
지금의 개미족으론 미노타우로스들과의 세력전에 이길 수 없다.
이걸 제일 잘 아는 게 나르본느와 헤라클레스.
둘은 세력전이 아닌 무투회로 미노타우로스들의 침공을 막고자 했다.
“헤라클레스는 너희가 앞으로 1년만 버텨 주면 내년에 열릴 무투회에서 맹약을 계승할 생각이었을 거야. 약골처럼 보여도 놈에겐 그럴 만한 힘이 있거든.”
맹약이 갑각왕에게 넘어간다지만, 나무 위의 갑각충과 지상의 개미족이 부딪힐 일은 없으니 맹약의 대상자가 굳이 개미족일 필요는 없었다.
내년이면 마의 축복 기간이고 결혼 비행이 있는 해였다.
‘그럼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거잖아!’
단 1년의 디펜스 게임.
키클롭스라는 변수가 있긴 하나, 그리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변수라면 무투회에 있었다.
“너도 무투회에 나가야 해.”
“왜죠?”
“그건… 갑각왕 혼자선 예선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야.”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