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05화 (104/189)

105화. 베르제붑 던전 (1)

나에게 개미 지배 능력이 있듯이, 나르본느에겐 거미 지배 능력이 있다.

거미족 영역으로 넘어오니 나르본느와 감각이 연결된 거미들에게 감지됐고, 그녀가 마중 나왔다.

“싱싱한 인간들이네.”

“던전을 찾아온 인간들인 것 같아요.”

“아~”

나르본느는 인간들의 침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제거하실 생각인가요?”

“아니.”

“가끔 있어. 던전의 상태를 확인하고, 청소해 주는 인간들이.”

오히려 귀찮은 일을 덜었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저 정도 전력으로 괜찮아요?”

나르본느는 신관과 성기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꺼림칙한 기운을 풍기는 녀석들이라면 가능할 거야.”

베르제붑 던전이 까다로운 건 저주로 인해 마력이 오염되어 빅 플라이의 숙주가 되기 때문.

저주 내성이 있거나 해주 능력이 있다면 심층부까지 무리 없이 갈 수 있다.

“나오는 몬스터라 해봐야 빅 플라이와 자이언트 플라이 정도거든. 심층부엔 커스맨과 커스 킹이 있긴 한데, 걔들도 약해.”

처치하면 중급 마석이 나오는 인간형 파리 몬스터 커스맨.

3차 진화종인 워커맨과 동급의 몬스터면서 무력으론 2차 진화종인 스마트 워커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커스 킹은 커스맨의 상위종으로 최상급 마석이 나오지만, 준왕급에도 못 미치는 전투력을 가졌다고 한다.

‘저들도 암흑마창을 가져가려는 건가?’

물어보니 암흑마창은 열쇠 없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있고, 나르본느의 시험을 통과한 존재만이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럼 저들의 목적은 뭘까요?”

“베르제붑의 봉인을 확인하려는 게 아닐까? 잘 봉인돼 있는지 말이야.”

단순히 봉인 확인을 위해 왕의 후계가 이런 험지에?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왕세자에 관한 걸 나르본느에게 물어봤지만, 그녀에게 있어 인간의 신분은 관심 밖의 문제라 쓸 만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나와 나르본느는 베르제붑 던전 심층부의 암흑마창을 회수해야 한다.

인간들과 목적지가 겹치니 그들의 뒤를 밟아 어부지리를 노리기로 했다.

‘우리가 먼저 들어가서 볼일부터 보는 게 낫지 않나?’

던전에 들어서기 전까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들어와 보니 길을 뚫어 주는 인간들이 고마워졌다.

고블린 던전과 같이 마법진이 새겨진 지하 문을 거쳐 진입한 통로.

길이 복잡한 건 아니었지만, 머리통만 한 파리 몬스터가 달려들었다.

빅 플라이의 공격 방식은 몸에 달라붙어 강력한 산성 액체를 묻혀 적을 녹여 버리는 것인데, 떼로 몰려와 냉병기만으로 저지할 수 없었다.

“네론이 어디까지 설명해 줬어?”

“던전에 몬스터가 넘치면 던전 밖으로 내보낸다고요.”

“우린 그걸 아웃 브레이크라고 해.”

“또 던전은 침입자를 통해 성장한다고 했어요.”

“침입자가 많을수록 마력 밀도가 높아지긴 하지.”

나르본느가 던전에 대한 설명을 보충해 줬다.

모든 생물은 마력을 품고 있다.

축적하는 마력과 방식은 종족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격렬히 움직이면 품고 있는 마력이 소모되었다.

“너도 슬슬 느끼겠지만, 마력이 소모될 때 발생하는 뭔가가 있어.”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듯이, 마력의 찌꺼기가 몸 밖으로 배출되면, 던전은 이를 통해 다시 마력을 합성하는 듯 했다.

“침입자가 사용하고 남은 마력의 찌꺼기 외에도 던전은 인근 마력을 끌어들여.”

“그래서 마력 밀도가 높았던 거군요.”

“그렇지.”

마력 밀도가 높으면 성장에 도움을 주지만, 그것도 적당히 높아야지, 일정 수치 이상 높아지면 독이 된다.

던전은 높아진 마력 밀도를 자체적으로 낮추기 위해 아웃 브레이크를 발생시켰고, 아웃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전의 전조 현상이 몇 가지 있었다.

“마력 밀도가 높아지면 던전은 심층부에 강력한 몬스터를 만들지.”

일종의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는 셈.

“우린 그들을 파수꾼이라 부르는데, 파수꾼을 처리하고 마석을 회수하면 한동안 마력 밀도가 떨어져서 아웃 브레이크가 발생하지 않아.”

오거 숲의 고블린 던전도 마찬가지였으나, 그쪽은 방치된 상황에서 파수꾼 탄생에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걸리는 반면, 베르제붑의 던전은 침입자 없이도 해마다 파수꾼이 등장하기에 나르본느가 청소해 주지 않으면…….

“버드나무 숲 일대가 파리지옥이 된다는 말이야.”

나르본느가 던전을 청소하는 동안, 크라스와 네론이 호수를 노리고 남쪽 늪지에서 올라오는 리자드맨을 견제했다.

리자드맨은 도마뱀 인간으로 단단한 비늘을 가졌지만, 힘은 오크보다 약했고, 자이언트 워커 수준의 무력을 지녔다.

‘그래서 여름엔 바빴던 거군.’

“베르제붑 던전의 파수꾼 등장 주기가 다른 던전에 비해 빠른 건 암흑마창이 보관돼 있어서야.”

암흑마창은 던전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마력을 끌어들이는 성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만 회수해도 매년 생고생할 일이 없어질 거야.”

왕급인 나르본느에게 파리 사냥은 어렵지 않지만, 수가 워낙에 많아 지루한 노가다나 마찬가지였다.

‘물량 하나만큼은 고블린 이상이야.’

던전에 들어오니 기사와 용병들보단 마도사와 신관이 힘을 썼다.

온화하게 생긴 마도사 시리우스, 다혈질 마도사 페이론, 비쩍 마른 마도사 푸아그라.

셋은 왕실 소속의 마도사로 각각 물, 화염, 번개를 다루어 몬스터들을 학살했고, 태양신 헬리오스의 문양이 의복에 새겨진 신관들 또한 성화란 불꽃을 피워 빅 플라이들을 학살했다.

‘저게 신성 마법인가?’

아레스의 성기사들은 자신에게 각종 마법을 부여하여 내성을 높였고, 탱커 역할을 자처하며 전투 중에도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치지 않는 좀비가 따로 없군.’

언젠가 개미교도 신관과 성기사가 생길 예정이라, 그들의 전투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신마력이 마신의 권능을 품은 흑마력이라면, 신성력은 신의 권능을 품고 있는 백마력이다.

마신은 열두 명의 사도들에게만 권능을 전했지만, 천신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권능을 나눠줌으로써 보다 많은 신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들이 정말 있는 건가?’

나로 인해 신도를 확보하게 될 개미 신 키틀레야.

달의 여신 중 막내라 여겨지는 루나의 부하 중 하나로, 신화를 깊게 공부한 인간들 정도나 아는 하급 신이었다.

‘신이라……..’

개미교의 신도들이 신성력을 각성하고 있는 이상,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순 없으나, 신화에서 나온 이곳의 신들은 전지전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가족도 있고, 상하 관계도 있고, 각자 맡은 업무가 있고. 마치 현대의 직장인 같은 이미지였어.’

잠깐 딴생각을 하는 동안, 인간들은 빅 플라이 떼를 열심히 사냥했다.

빅 플라이들이 죽으며 저주의 마력을 퍼트리자, 아레스교의 성기사들이 나서서 신성 마법을 펼쳤다.

“아레스시여, 당신을 믿는 전사들에게 어둠에 맞설 힘을 주소서… 홀리 스킨!”

성기사들의 집단 버프.

효과는 저주로 인한 마력 오염을 막는 것이었다.

인간들의 사냥 방식은 정교하게 짜여 있어 우리가 나서서 사냥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보였다.

‘하루 이틀 해 본 게 아니야.’

한차례 사냥을 마치면 신관들이 성수를 뿌려 일대를 정화한 후 포션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용병들은 포션의 값이 아까운지 입만 살짝 대는 정도에 그쳤다.

‘왕실과 신전은 물자를 아끼지 않는군.’

휴식을 마친 마도사와 신관들은 일대에 마도구와 성물을 설치하여 들끓는 마력을 안정시켰다.

마도구는 마법 시전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고, 성물은 성직자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이정도 쉬었으면 된 것 같군.”

“그럼, 몬스터를 몰아오겠습니다.”

마도사와 신관들이 일을 마치자 뱅 파티의 레인저 한스와 성기사들이 나서서 빅 플라이들을 몰아왔다.

이틀 동안 지하 1층의 빅 플라이 80%를 쓸어버린 인간 무리는 지하 2층으로 내려가 같은 방식의 사냥을 되풀이했다.

나와 나르본느는 지하 1층에 머물며 인간들이 놓친 빅 플라이들을 마저 처리했고, 감각이 이어진 개미와 거미를 통해 인간들의 상황을 파악했다.

‘잘해 주고 있네.’

인간들이 충분히 전진했다고 판단했을 때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우린 거리를 두고서 심층부까지 미행하기로 했는데, 아쉬운 건 인간들이 마석을 모두 챙기고 있단 점이었다.

‘저게 다 얼마야…….’

마석은 아깝지만, 인간들 덕에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던전 지하로 내려갈수록 공간이 넓어졌고, 지하 4층까진 빅 플라이가 떼거지로 나왔다.

‘많다.’

지하 5층은 휴식을 위한 공간인지 깨끗한 마력으로 가득 찬 분수 딸린 공터가 있었다.

‘세이브 포인트 같군.’

지하 5층까지 탐사해 보며 느낀 게 하나 있는데, 이곳은 마치 침입자를 위한 사냥터로 설계된 것 같았다.

이러한 시설들이 유지되도록 고대의 마법들이 작용하고 있었는데.

‘대단해.’

마도사들과 신관들이 공터에 새겨진 문자들을 보며 감탄하는 걸 보아 현대의 마법이 고대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도 문명은 쇠퇴를 거듭한 것 같다.

마법진이 새겨진 곳이 발견될 때마다 예전에 읽었던 마법 입문서가 떠올랐다.

‘흑마력의 특성상 마법을 쓸 순 없어.’

그럼에도 흑마법사란 존재가 있으니…….

‘흑마법이라면 익힐 수 있지 않을까?’

술집에서 사용되는 윤활제에 흑마력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것이 흑마법사의 손길을 거친 물건이라 확신했고, 베르딘에게 은밀한 조사를 지시해 뒀다.

윤활제가 벨레삭 백작령의 암흑가에서 생산된다는 것까지는 알게 됐지만, 제작자는 아직 알아내지 못한 상황.

‘마안으로 보면 한눈에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동안은 상대에게 노출되고 싶지 않아 직접 움직일 생각이 없었지만, 4차 진화를 이루며 어떠한 적이 상대가 되더라도 쉽사리 당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미노타우로스 건이 해결되면 직접 다녀와야겠어.’

인간들이 지하 6층으로 진입했다.

6층부터는 자이언트 플라이가 나와 산성액을 쐈고, 엉덩이에서 튀어나온 기다린 침을 인간의 몸에 박아 넣으려 했다.

암컷의 침은 산란관이었고, 수컷의 침은 마력을 오염시키는 독침으로 보였다.

“태양의 신 헬리오스시여, 어둠에 물든 사악한 존재로부터 저들을 지켜 주소서… 퓨리 스킨!”

신성 마법의 주문이 매번 다른 걸 보니, 정해져 있는 건 아닌 듯했다.

“전쟁의 신 아레스시여, 어둠에 굴하지 않는 전사들의 길을 비춰 주소서… 홀리 스킨!”

신관과 성기사들의 신성 마법이 기사들을 감싸며 산액과 저주로부터 일행을 보호해줬다.

“헬리오스시여, 심판의 힘을 빌려주소서. 홀리 파이어!”

신관들이 불꽃을 피우자 성기사들이 주문을 외워 기사와 자신들의 검을 날카롭게 세웠다.

“아레스시여, 사악을 처단하기 위해 검이 되고자 하니 힘을 빌려주소서. 홀리 인챈트, 샤프니스!”

기사와 용병이 한 마리씩 손쉽게 처리했고, 마도사들도 가세하여 범위 마법으로 쓸어버렸지만, 인간만 한 녀석들이 떼로 몰려오니 그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벤자민! 메르손! 세자 저하를 지켜라!”

벤자민, 메르손, 시리우스, 그리고 신관과 성기사의 리더가 밀려오는 자이언트 플라이들을 상대로 왕세자인 제논을 보호했다.

전투가 이어지자 인간들은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을 마셔 가며 싸웠다.

개미 지배 능력으로 인간들을 지켜보니, 기사들의 리더 필라이가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벤자민에게서는 배신의 마력이 느껴졌다.

‘눈 굴리는 걸 보니 저 녀석, 사고 칠 것 같은데.’

기척을 지우는 건 특기지만, 원거리 지원은 자신이 없어 나르본느에게 부탁했다.

“저기 있는 소년을 은밀히 지켜 줄 수 있나요?”

“쟤? 어렵진 않은데, 왜?”

“저 꼬마가 여기서 죽으면 인간들이 군대를 이끌고 올 것 같아서요.”

“그건 귀찮겠네.”

은밀한 작업 끝에 나르본느의 투명 거미줄이 제논에게 붙었다.

“됐다. 위험해지면 내가 나설 테니 걱정하지 마.”

나는 벤자민의 돌발 행동을 경계해 달라고 추가 요청을 하곤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에 나르본느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습격해 온 자이언트 플라이를 모두 처리한 인간들이 통로에 뻗어 휴식을 취했다.

“잠깐 정찰 좀 다녀오겠습니다.”

체력을 회복한 뱅 파티의 레인저 한스가 정찰을 나간 사이, 인간 무리는 물자를 확인해 가며 토벌 계획을 세웠다.

한스가 돌아와 쉬기 좋은 공터로 안내했고, 그들은 공터를 중심으로 진을 쳤다.

베이스캠프를 정한 그들은 인근 통로에 마도구와 성물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그곳을 전장 삼아 유인 섬멸 작전에 돌입했다.

“오래 걸리겠는데요.”

“우리도 몸 좀 풀까?”

“그러죠.”

나와 나르본느가 은밀히 나섰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