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07화 (106/189)

107화. 암흑마창 (1)

“벤자민!”

왕세자를 지키던 메르손이 격분하여 벤자민을 향해 돌진했다.

캉!

“지금 네놈이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왕국의 미래를 위해서다!”

“네놈… 칠 왕자 편에 섰구나!”

벤자민과 메르손.

쿠드라 후작령에서 태어난 둘은 운 좋게 퇴역 기사에게 주워져 함께 무를 갈고 닦아온 사이로, 서로 간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캉! 캉!

“메르손! 왕국의 평화를 원한다면 날 막지 마라!”

“닥쳐라, 배신자!”

힘에선 메르손이 위였고, 기술에선 벤자민이 앞섰다.

“칠 왕자가 작위라도 준다고 했느냐?”

격돌 중 메르손이 벤자민에게 배신의 이유를 물었다.

“난 왕실 기사다. 작위 따위에 움직이지 않아!”

“그럼 왜냐! 왜!”

“세자가 왕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벤자민의 말에 메르손은 어이가 없었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벤자민?”

메르손을 밀어내 거리를 벌린 벤자민이 들이치는 빅 플라이 두 마리를 처리하며 말했다.

“카밀 후작과 다나스 백작이 칠 왕자 편에 섰다. 마일도스 후작 또한 칠 왕자를 지원하고 있지. 쿠드라 후작과 벨레삭 백작이 세자를 지원하곤 있지만, 그들의 힘으론 세자를 왕위에 올릴 수 없어!”

메르손은 꼬이는 파리들을 처리하며 분노를 날카롭게 벼렸다.

“칠 왕자께선 황가의 피를 잇고 있어. 만약 세자가 왕위에 앉으면 제국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단 말이다!”

벤자민이 울분을 토하듯 한 말에 메르손은 짧게 반문했다.

“그래서?”

벤자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곤 왕실 검법이 아닌, 어린 시절 퇴역 기사에게서 배운 벽검(壁劍)의 기수식을 취했다.

“가끔 부러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네가 말이야.”

메르손 역시 자신에게 맞게 변형한 벽검의 자세를 취하며 그를 마주하고 말했다.

“나도 네가 부러웠다.”

같은 뿌리를 지닌 둘은 서로에 대해 잘 안다.

그러니 승패는 쉽사리 나지 않는다.

“대련에선 항상 내가 이겼지.”

“그건 대련이었기 때문이다. 벤자민.”

후방에서 힘을 비축해 둔 메르손이 유리했으나, 벤자민은 이날을 위해 힘을 숨겨 왔다.

“유감이군, 메르손. 이걸로 끝이다.!”

캉!

벤자민의 회심의 일격이 막혔다.

놀란 벤자민에게 메르손이 외쳤다.

“그동안 전력을 보이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캉! 캉!

시리우스가 마법으로 메르손을 지원하려 하자, 제논이 저지하며 말했다.

“시리우스, 저들의 결투를 방해하지 마라.”

시리우스는 자칫하면 왕세자 전하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결투 따위가 무슨 상관이냐며 반문하려 했지만, 제논의 진지한 눈빛에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접근하는 빅 플라이들이 썰려 나가는 치열한 격전 끝에 벤자민의 팔이 베이며 승패가 갈렸다.

“벤자민, 결투 중에 딴생각하는 건 너의 나쁜 습관이다.”

“그렇군.”

승리한 메르손은 눈물을 쏟으며 친구였던 벤자민의 목을 날렸다.

목이 날아간 벤자민은 목적을 이루었다는 듯 환히 웃고 있었다.

벤자민의 목이 쳐질 무렵, 세 성기사가 촉수를 하나씩 붙들며 커스 퀸의 움직임을 봉쇄했고, 마도사들과 기사들의 지원으로 겨우 접근에 성공한 필라이가 커스 퀸과 격전 끝에 목을 칠 수 있었다.

커스 퀸이 죽자, 그녀에 의해 생성된 빅 플라이들은 힘을 잃고 추락했다.

수백에 이르렀던 빅 플라이들이 빛무리로 흩어지며 마석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파수꾼 사냥에 성공했다지만, 인간들은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용병과 마도사는 일찌감치 뒤로 물러나서 무사했지만, 신관이 벤자민에 의해 전멸했고, 기사와 성기사의 피해도 컸기 때문이다.

선봉에서 싸운 기사 중에 치명상을 면한 건 필라이 뿐이었고, 촉수를 붙들고 있던 성기사들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전장을 수습하던 중에 성기사 둘이 숨을 거뒀고, 기사 넷도 상처 악화로 사망하며 기사 전력은 필라이와 메르손, 성기사는 나이가 어려 미숙했던 키논만이 남게 됐다.

던전에서 죽은 자는 빛무리로 흩어져 던전에 흡수됐고, 그들이 착용한 물건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커스 퀸이 죽으면서 흩뿌린 마력 때문에 몸이 망가지고 있던 제논이 키논에게 물었다.

“키논, 마력 정화가 가능한가?”

“죄송합니다. 아레스 님께선 정화의 힘을 저희에게 하사하질 않았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시금 확인받은 제논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가…….”

제논을 비롯한 인간들은 빛무리로 흩어지는 신관의 시체를 보며 절망했다.

“뭐, 이런 경우도 예상 범주 안에 있던 거 아니었나? 우린 하던 일이나 마무리하지.”

시리우스가 나서서 마도사들을 다독였고, 그들은 권좌를 중심으로 새겨진 마법들을 살피며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어떤가? 봉인 상태는.”

제논은 왕국 남부에 퍼진 전염병을 해결하기 위해 베르제붑 던전을 찾은 것이었다.

“예상과 달리 크게 이상이 없군요.”

시리우스의 답변에 제논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남부의 전염병과 이곳은 연관이 없었던 거군.”

“그렇게 되는군요.”

시리우스의 말에 인간들이 허탈해할 때, 제논만은 안심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다행이야.”

마력 정화가 가능했던 신관이 부재인 상황에서 저주의 마력에 노출된 그들은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서로 죽어 가는 처지에 군신 계약도, 예의도 필요치 않았으나, 용병을 제외한 인간들은 마지막까지 제논을 챙겼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필라이가 머리를 숙이며 사과하자, 제논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대는 언제나 내 버팀목이 되어 줬어. 이런 결말을 맞이한 건 모두 나의 부덕함 탓이겠지. 그동안 날 지켜 줘서 고마웠다.”

“세자 저하…….”

제논은 소년다운 미소로 웃으며 말했다.

“트니프 필라이 자작.”

“하명하십시오.”

“스승인 그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

“그냥, 살아 온 이야기 말이야.”

인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을 준비할 때, 밖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다크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들이 마력 오염으로 죽어가는 걸 깨닫고는 굳게 닫힌 문을 힘껏 밀었다.

* * *

인간들의 레이드는 성공했지만, 그들은 절망했다.

처음에는 왜 저러나 싶었지만, 그들의 마력이 차츰 변질되는 것을 보고 이유를 깨달았다.

‘저주에 노출됐군.’

성기사의 저항 강화로는 커스 퀸이 흩뿌린 저주를 막아 내지 못하는 듯했다.

즉, 정화를 담당하던 신관이 모두 죽고 없는 상황에서 치유는 불가능.

‘벤자민이 이걸 노린 거였어.’

신관만 없애면 던전에서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니…….

배신자 하나 때문에 인간 무리가 전멸하게 생겼다.

‘던전에서 죽으면 흔적도 남지 않을 테니, 전말을 알기란 불가능하겠지.’

이대로 문이 열리기까지 기다렸다간 저주의 영향으로 커스맨으로 변한 인간들을 볼 수 있을 터.

‘흠.’

나르본느도 제논이 죽어 가는 것에 당황했지만, 오염된 마력 정도야 공허의 마력으로 처리할 수 있다.

‘세자만큼은 살려 보내고 싶단 말이지.’

이참에 제논에게 빚을 지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열리려나? 아니면 벽이라도 부수고 들어갈까? 벽 좀 부쉈다고 던전이 무너지진 않겠지?’

내가 문을 밀자 문 너머에 있던 나르본느가 중얼거렸다.

“그거 힘으로 열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개미의 힘과 오거의 힘을 동시에 일으키니, 문이 삐꺽거렸다.

‘엇, 된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문이 열리자 나르본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힘으로 열리기도 하는구나.”

통로에 진입한 나는 나르본느와 합류하여 인간들에게 모습을 드러낼 타이밍을 쟀다.

* * *

“저는… 고아였습니다.”

최상급 기사 필라이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장내의 인원들이 귀를 기울였다.

야만족들과의 전쟁을 일삼던 가르탈 백작이 거리를 떠돌던 그의 무재를 알아봤고, 그를 양자로 삼아 기사로 키웠다고 한다.

당시 트니프 반 가르탈이라 불리던 그는 성인이 됐을 무렵 무사 수행에 나섰다.

“용병으로 활동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죠.”

용병으로 활동한 이야기를 듣던 도끼 전사 조르딕이 물었다.

“혹시, 살귀 트니프가 필라이 경이셨습니까?”

“그렇게 불리던 때도 있었지.”

“…….”

잔혹한 손속을 보이던 그는 살귀 트니프라 불리며 사람들의 두려움을 샀다.

필라이가 왕실 기사가 되기까지.

왕실 기사가 되어 제논의 생모였던 왕비의 호위가 되기까지.

왕비의 호위였던 그가 제논의 검술 선생이 되기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쿨럭쿨럭.”

이야기를 듣던 인간들의 숨소리가 가빠지며 기침이 잦아지자 성기사가 움직였다.

“세자 저하, 이젠 시간이 없을 듯합니다.”

“그런가?”

“변하기 전에 아레스 님의 곁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기왕이면 세레나 님 곁으로 보내 줬으면 하는데.”

“그건 아레스 님에게 부탁하시죠.”

성기사가 일행을 향해 검을 뽑았다.

나는 더 이상 늦기 전에 나서야 했다.

* * *

다크와 나르본느가 통로에서 나오자, 마도사들이 경악했다.

‘몬스터다!’

‘특급 몬스터들이야!’

탐색 마법에 걸리지 않고 지척까지 접근해 온 다크와 나르본느에게 경악한 마도사들과 마찬가지로 기사들도 기척 없이 다가오는 둘을 보며 경악성을 터트렸다.

“이건 대체!”

“아레스시여 어찌 이런 시련을…….”

경지에 든 전투 요원들은 다크와 나르본느에게서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며 강렬한 압박을 받았다.

필라이조차 검을 뽑는 걸 주저하며 떨리는 몸을 가누지 못했는데, 나르본느를 알아본 레인저 한스가 외쳤다.

“거미왕이야! 공격했다간 모두 죽어!”

용병의 말에 메르손이 외쳤다.

“그럼 가만히 당하고 있으란 거냐!”

“아레스 님이 주신 최후의 시련, 그건 용맹의 증명일 겁니다!”

마지막 힘을 짜낸 메르손과 성기사 키논.

두 사람이 나르본느를 향해 들이쳤고, 창을 내려 둔 다크가 나서서 두 인간의 검을 손으로 잡아챘다.

“느려.”

무심해 보이는 다크의 보랏빛 눈과 마주한 둘은 동공 지진을 일으켰고, 검기와 신성력을 흡수해 버린 다크가 둘의 가슴을 밀어 치자 멀찍이 날아가 벽에 부딪혀 피를 토했다.

상급 기사와 성기사의 합공을 맨손으로 잡아챈 것도 모자라 한 방에 상황을 정리해 버린 다크.

그 모습을 본 마도사들과 필라이가 허탈해했다.

“이게… 특급 몬스터?”

그때, 레인저 한스가 작게 말했다.

“무기를 버리고 엎드려. 거미왕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한스의 말에 용병들이 무기를 버리곤 엎드려 굴복의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본 마도사와 필라이가 갈등할 때, 제논이 무릎을 꿇자 그들도 무릎을 굽혔다.

곰을 만났을 때 죽은 척하면 누워 있는 먹이가 될 뿐이다.

거미왕을 만났을 때 굴복의 자세를 취하면 살 수 있다는 것도 미신에 가까웠으나, 인간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들의 선택이 정답이길 기도했다.

다크가 짐꾼과 제논을 향해 다가가자, 필라이와 시리우스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저하, 아무래도 우리를 적으로 간주한 모양입니다.”

“저 빛나는 문양. 문헌에서 본 개미족의 상위종과 비슷하군요. 아마 거미왕과 동급인 몬스터일 겁니다.”

가만히 엎드려 당할 수 없다고 느낀 필라이와 일행이 무기를 들려 하자 제논이 물었다.

“이상하군.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

제논의 말에 인간들의 몸이 굳었다.

“한 가지 확인하고 싶네, 필라이 경.”

“말씀하십시오.”

“저들에게서 살기가 느껴지나?”

“…….”

필라이가 아무런 대답을 못 하자 시리우스가 답했다.

“살기는커녕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그 말을 들은 제논이 몸을 일으켰다.

“다들 일어나지 마라. 대화를 시도해 보겠다!”

제논의 행동에 마도사들과 필라이가 경악했고, 페이론이 다급히 말렸다.

“몬스터와 대화라니요?”

“조금 전, 놈은 대륙 공용어를 구사했다.”

“몬스터가 인간의 말을 구사한다고 말이 통할 거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통하지 않으면 그뿐. 어차피 꺼져 가는 생명, 세레나 님을 뵙기 전에 이야깃거리 하나 정도는 만들어 가도 좋지 않겠나?”

경지에 이른 존재들은 다크와 나르본느에게 벽을 느꼈지만, 제논은 경지에 들지 못해 둘에게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덕분에 당당한 모습으로 다가온 다크를 마주할 수 있었던 제논.

“…….”

“이걸 줄 테니, 물러가 주지 않겠나?”

두근두근.

긴장한 제논과 인간들.

다크가 미소 띤 얼굴로 최상급 마석을 받아 주자 인간들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나서 이어진 다크의 행동에 필라이가 검을 뽑았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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