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혈투
암흑마창은 알 수 없는 소재로 만들어진 2.5미터 길이의 창이며 창대는 사슬에 휘감겨 있다.
‘공격력은 나쁘지 않아.’
육중한 무게 덕에 살상력은 상당했지만, 마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고, 그 때문인지 나르본느가 말한 파괴적인 마강기도 나타나지 않았다.
‘됐어. 이 녀석 상대론 물리력으로도 충분해!’
자칭 베르제붑이란 녀석이 부서질 때 흩어지는 마력을 흡수하니 놈이 차츰 작아지는 게 느껴졌고, 나르본느의 마력 또한 몸에 침투하여 회복을 방해했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마력이 세 방향으로 흩어져 분신을 만들어 내며 3대2 구도가 만들어졌다.
‘분신인가? 본체는 어느 쪽이지?’
마안으로 봐도 본체와 분신의 구분이 전혀 안 됐다.
‘전부 본체야!’
나와 나르본느가 하나씩 맡아도 한 개의 육신이 노마크인 상황.
재빨리 처리하고 나머지도 없애려고 했지만, 셋으로 나뉘었음에도 계속해서 재생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결국 노마크 상태에 놓인 놈이 양손에 검은 공간을 만들어 내며 광소를 터뜨리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하! 나 불멸의 베르제붑, 중간계를 공포에 밀어 넣은 권능의 힘을 보여 주마! 인피니트 서먼 플라이!”
놈이 주문을 외치자 검은 공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빅 플라이가 쏟아져 나왔다.
공간을 가득 메우며 덮쳐 오는 빅 플라이.
그건 마치 검은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나르본느, 조심해요!”
“알아!”
창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밀려오는 빅 플라이의 압박을 극복할 순 없었다.
‘묻히면 죽는다!’
난 마스터 가드 퀸인 포스처럼 전신이 외골격에 보호받고 있지 않다.
엉덩이가 작아지긴 했지만 약점으로 남아 있었고, 복부 쪽과 관절이 접히는 부분도 외골격이 없다.
전신에 마기를 피워 올릴 순 있으나, 마기가 강철 갑옷 같은 방어력을 선사해 주진 않았다.
그러니, 외골격이 없는 부위를 공략당해 알이 주입되면 나라도 별수 없다.
그건 나르본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거미줄을 이용한 입체 기동을 선보여 공격이 최선의 방어임을 증명했다.
그녀와 같은 재주가 없던 나는 창을 휘두르며 다급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빅 플라이들을 쳐 내며 거리를 벌리자, 견제에서 벗어난 베르제붑 하나가 급속히 회복하여 양손으로 검은 공간을 만들어 냈다.
‘한 명도 까다로운데 둘이라니.’
초당 십여 마리의 빅 플라이를 생성하는 검은 공간이 두 배로 늘어난 셈이었다.
나는 멀찍이 물러났지만, 나르본느의 입체 기동이라면 빅 플라이들의 견제를 뚫고 베르제붑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터.
그때, 빅 플라이들이 죽으며 흩뿌린 저주의 마력이 뭉치더니 구름의 형상을 만들었고, 올가미가 되어 나르본느를 옥죄었다.
“크하하하, 내게 복종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 주겠다!”
나르본느가 검은 구름에 묶이며 위기에 빠졌다.
“다크, 도망가!”
“그럴 수 없어!”
의리? 책임감?
그런 걸 떠나서, 진짜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열쇠의 반쪽을 네가 가지고 있잖아!’
힘으로 열 수도 있겠지만, 셋으로 분열된 놈이 내 도주를 허락해 줄 것 같지 않았다.
‘피할 수 없어!’
쌓인 보물을 장애물 삼아 빅 플라이 떼를 피해 움직이며 눈알을 열심히 굴려 마력의 흐름을 파악했다.
‘약점을 찾아야 해!’
암흑마창이 뽑힌 자리엔 흑마력이 샘솟고 있었고, 그 힘은 베르제붑에게 흘러가 빅 플라이를 무한정 생성하고 있었는데…….
암흑마창을 제자리에 꽂으면 베르제붑의 무한 증식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베르제붑이 빅 플라이들로 방벽을 쳐 둬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어쩌지… 방법이 없나?’
나르본느가 빅 플라이들에게 파묻히려던 순간, 내게 암흑마창의 떨림이 전해져 왔다.
마창에게서 느껴지는 의지.
그건 분명 자신을 쓰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뭐 어떻게 하라고!’
마창은 내 속내를 읽은 듯 강렬한 의지를 보냈고, 나는 본능적으로 창을 감고 있던 사슬을 걷어 냈다.
그러자 암흑마창에서 두 줄기의 마강기가 뻗어 나가 나르본느를 덮치려던 빅 플라이들을 쓸어버렸고, 그녀를 묶고 있던 검은 구름을 휘감더니 흑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마강기.
나도 놀랐지만, 제일 당황한 건 베르제붑이었다.
“멍청한 놈! 봉마의 사슬을 거뒀구나!”
여유를 잃은 그의 반응을 통해 활로가 내 손에 있음을 깨달았다.
“어이, 마창. 이 상황 좀 어떻게 해 봐.”
말을 알아들은 건지 마창이 나의 마력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였고, 나는 그걸 저지하지 않았다.
내 행동에 놀란 베르제붑이 외쳤다.
“네놈! 저것의 제물이 되려고 작정한 것이냐!”
나의 마력을 듬뿍 먹은 암흑마창.
두 줄기였던 마강기가 십여 줄기로 늘어나 빅 플라이들에게 박혔다.
빅 플라이들을 구성하던 마력이 마강기에 빨리더니 마창의 힘을 더해 줬고, 더욱 많은 마강기를 뿜어내 일대의 빅 플라이와 검은 구름을 흡수했다.
“잘했어, 다크!”
검은 구름이 걷히며 자유를 되찾은 나르본느는 마강기 줄기를 피해 가며 베르제붑 하나를 다른 하나가 있는 곳까지 몰아붙여 둘을 함께 썰어 버리기 시작했다.
“파리 놈, 죽어라!”
노마크인 베르제붑 하나.
놈은 날뛰는 나르본느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마창을 노려봤다.
“또 저건가…….”
원망 가득한 시선으로 암흑마창을 주시하던 그는 빅 플라이 생성을 멈췄다.
“나 베르제붑이 한 번 당해 본 수법에 또 당할 거라고 생각하나?”
베르제붑이 마력을 끌어모아 창을 생성했다.
“무한 증식!”
순간, 하나의 마력창이 수백으로 분열됐다.
“죽어라!”
나와 나르본느는 재빠르게 물러나며 창을 쳐 냈지만, 마력창이 연기로 흩어지며 몸속으로 침투했다.
‘저주의 마력이다!’
공허의 마력은 모든 마력을 포용한다.
베르제붑이 쏜 마력창은 내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지만, 연기에 노출된 나르본느는 피부가 검게 물들며 쓰러졌다.
“씹어 먹을 파리 새끼가…….”
나르본느가 쓰러지니 셋으로 분열된 베르제붑의 공격이 내게 집중됐다.
“어리석은 개미 놈. 저것의 봉인을 풀면 날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여유를 되찾은 놈이 날 한껏 비웃었다.
“저것이 아무리 강해도 그 사용자가 고작 4차 진화종의 개미족이라면 무용지물이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베르제붑이 자기 혼자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저것의 흡수 능력이 미치는 범위는 생물과 강기다. 대기에 퍼트려 둔 마력을 흡수하진 못해. 설령 흡수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양은 극히 미비하지!”
놈이 말한 마창의 공략법.
그건 바로 마창이 클 수 있도록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확실히 대기에 퍼진 저주의 마력은 흡수하기 좋은 형태가 아니다.
그러나 저주의 연기는 날 죽이기 위해 몸속으로 끊임없이 침투했다.
놈이 초당 수백 발씩 쏘아 내는 마력창이 연기가 되어 내게 흡수됐다.
흡수된 마력은 마창에 전해지고 있었다.
한참이나 공격을 쏟아 낸 베르제붑이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 안 쓰러지는 거지?”
나는 그에게 말해 줬다.
“운이 좋았어.”
“운?”
“너와 나의 상성 운 말이야.”
상성 운이란 말에 놈이 화들짝 놀랐다.
“설마 네놈, 저주를 흡수한 것이냐?”
그에 대한 답은 마력을 한계치까지 축적한 마창이 대신 해 줬다.
마창에서 마력이 폭발적으로 뻗어 나가며 셋으로 분열된 베르제붑을 덮쳤다.
쏟아진 마강기 수백 줄기.
피할 공간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컥!”
방심하고 있던 베르제붑들의 몸에 수십 줄기의 마강기가 박혔다.
마력을 빨리기 시작한 베르제붑.
실시간으로 죽어 가던 그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목숨을 구걸했지만, 너무도 가식적이었던 터라 무시했는데, 놈의 몸이 쪼그라들며 절반 정도의 크기가 됐을 때쯤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서 웃기 시작했다.
‘뭐지? 미친 건가?’
아무리 봐도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어 보였으나, 놈의 웃음이 날 불안하게 했다.
‘뭔가 있어!’
웃음을 그친 녀석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개미족이라 그런지 표정이 썩 맘에 들지 않아.”
죽어 가는 녀석이 보일 수 없는 여유.
나는 놈이 드러내지 않은 비장의 수를 찾아내기 위해 마안과 더듬이 감각에 집중했다.
“좀 더 기뻐하라고! 넌 나 베르제붑을 상대로 승리… 할 뻔했으니까! 푸하하하!”
명백한 비웃음.
“아무리 암흑마제의 창이라 해도 한계라는 게 있지.”
“…….”
“아직 모르겠나? 이 몸이 친히 알려 주마.”
놈이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며 외쳤다.
“무한 증식!”
그의 육신을 구성하던 마력이 끊임없이 증폭됐고, 넘쳐흐르는 마력이 그를 무수히 분열시켰다.
셋이었던 베르제붑이 여섯으로, 여섯이 열둘로 불어났고, 불어난 열둘은 수십 줄기의 마강기에 뚫려 마창의 먹이로 전락했다.
먹히고 있는 그와 먹고 있는 암흑마창.
분명 이기고 있는 건 나였음에도 놈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나의 저주를 흡수한 걸 보니 네놈은 마신의 권능을 하사받은 사도겠군. 대단한 권능이긴 하나 그뿐이야. 하이 데몬인 나와 넌, 상성 이전에 절대 넘볼 수 없는 격의 차이가 있지.”
흡수할 수 있는 마력량의 한계에 치달았는지 마창의 마력이 내게로 역류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주입한 마력의 수십 배가 되돌아왔다.
‘큭.’
방대한 마력이 흘러 들어오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어때, 고통스럽나? 그럴 테지. 조그만 그릇으로 무한을 담아내려 하니 당연한 결과다.”
‘시끄러운 자식…….’
급속 재생이 육신을 재구성하여 마력 총량을 고속으로 확장했으나, 확장 공사가 마력 유입량을 따라가지 못했는지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난 말이야. 이겼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자가 절망하는 그런 반전을 좋아한단 말이지…….”
내가 터지길 기다리는 녀석.
그러나 터질 듯 말 듯 터지지 않는 날 보며 놈은 또 한 번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시간이 더 흐르자 놈이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뭐냐 넌!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나는 찌그러진 표정을 펴며 그에게 물었다.
“왜? 너의 권능도 한계가 있나 보지?”
“한계? 무한에 한계란 없다!”
흥분하는 놈의 마력.
‘놈도 한계가 있다!’
부풀어 오른 육체를 정상적으로 되돌린 나는 한껏 미소를 지은 채 말해 줬다.
“개미족은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많아서 말이야… 좋은 게 있으면 나눠 먹어야 하거든!”
“설마… 개미족의 각성 능력이냐?”
“오~ 그걸 알고 있다니, 영광이네.”
틈틈이 연결 작업을 강화해 온 터라 거의 만에 이르는 3차 진화종 외에도 십만이 넘는 개미들과 연결돼 있던 나.
마창에서 마력이 역류해 왔을 때, 나는 곧바로 각성 능력을 활성화하여 연결된 모든 개미에게 마력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놈이 무한이라 외치던 마력조차 십만의 개미가 나눠 보면 그리 많은 양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내 상황이 그리 좋은 건 아니었다.
‘각성 능력에는 타임 리미트가 있어.’
나의 시간이 먼저 다할지, 놈의 권능이 먼저 다할지.
목숨이 걸린 승부에서 나는 조금이라도 승률을 올리기 위해 놈을 자극했다.
“무한치곤 너무 부족하군. 더 늘어나진 못하나 보지? 그럼 이 승부, 나의 승리다!”
“무한에 한계란 없다!!”
열두 명의 베르제붑이 스물네 명으로 불어났고, 한 번 더 늘어나 마흔여덟 명이 됐다.
최종적으로 100명이 되어 무식하게 마력을 쏟아 내기 시작한 놈은 금세 탈진하여 하나둘 마창에 흡수되어 사라져 갔다.
“하이 데몬인 내가 어떻게 데몬 따위에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마지막 베르제붑.
놈이 암흑마창에 흡수되며 나와 베르제붑의 승부는 막을 내렸다.
마창에서 포만감과 만족감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내겐 승리의 고양감이 없었다.
‘각성 능력을 과도하게 썼어.’
십만이 넘는 개미들에게 마력을 보내려면 단시간에 방대한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일시적이라지만 초월적인 속도로 정보를 처리했던 나의 뇌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육체 또한 마찬가지였다.
‘뜨거워. 타들어 갈 것 같아.’
의식의 끈도 겨우 붙잡고 있는 상황.
‘아직이야. 아직 뒤처리가…….’
쓰러지더라도 할 일을 하고 쓰러지는 것이 엘리트의 미덕.
나르본느가 있는 곳까지 힘겹게 이동한 나는 그녀의 몸 위로 포개지듯 쓰러졌고, 공허의 마력을 주입하여 그녀의 몸을 파괴하는 저주의 마력을 모두 지워 버렸다.
그러곤 사교위에 보관해 둔 최상급 포션을 쏟아 내 나르본느를 적셔 준 후 의식을 잃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