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11화 (110/189)

111화. 믿음이 꺾이기까지

다크와 헤어진 제논 일행은 오크나무 숲으로 이동하던 중, 메뚜기 몬스터 로커스트들의 습격을 받게 됐다.

빅 워커 수준의 몬스터라 어렵지 않게 퇴치했는데, 연이어 무당벌레 몬스터인 빅 비틀 떼가 덤벼들었다.

계속되는 몬스터들의 습격에 제논도 검을 뽑아야 했고, 그는 하급 기사 수준의 검술을 선보였다.

이른 나이에 이룬 높은 경지.

모두가 놀랄 정도의 성취였지만, 경험이 부족했던 제논은 몬스터들을 상대로 수차례 위기에 빠지며 일행의 발목을 잡았다.

“세자 저하, 배운 검술은 잊으시고 기본에 충실하십시오!”

“흥분을 가라앉히고 적의 움직임을 보세요!”

기사들의 정중한 조언.

제논은 믿어 의심치 않던 자신의 재능을 돌아보게 됐다.

‘용병들의 보조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었다. 익스퍼트인 내가 이런 약한 몬스터에게 고전하다니. 그동안 내가 해 온 수련은 모두 죽은 수련이란 말인가? 왜 아무도 내게 실전을 쌓을 기회를 주지 않은 거지?’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제논이 중얼거렸다.

“그대들은 용병임에도 대단하군. 지금까지 이런 위험한 존재를 사냥하며 살아오다니.”

제논의 독백을 들은 용병들이 어이가 없어 말을 잃자 한스가 나서서 차분히 설명했다.

“깊게 들어온 만큼 저희를 인식한 몬스터가 많아집니다. 그래도 이렇게 몰려오는 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건가?”

제논의 질문에 키논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이건 아레스 님의 시련이라 할 수 있겠지요.”

남은 물자를 확인한 뱅이 필라이에게 말했다.

“이대론 물자와 체력 소모가 너무 큽니다. 조금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안 된다. 조금이라도 빨리 왕도에 올라가야…….”

필라이의 말을 제논이 막았다.

“복귀는 늦어져도 괜찮으니, 안전한 길을 찾아 주게. 더는 동료를 잃고 싶지 않아.”

뱅 파티가 좀 더 안전한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들이 찾은 길은 언제나 최악의 험지가 됐다.

모기 몬스터 모스키토, 바퀴벌레 몬스터 코크로치, 거대 독나방과 누에나방 몬스터까지 나타나며 그들을 괴롭혔다.

“이대론 숲을 빠져나가기 전에 죽겠어! 정말 안전한 길을 가고 있는 거 맞아?”

“…….”

연이은 실책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한스는 메르손의 불만에 아무런 대답도 해 줄 수 없었다.

“한스, 아카시아 숲 쪽으로 가 보자! 그쪽은 몬스터가 좀 더 적을 거야!”

“엇… 그래.”

뱅의 예상과 달리 아카시아 숲으로 넘어가는 길목은 사마귀 몬스터인 자이언트 맨티스와 자이언트 웹이 가득했다.

“안 되겠어… 다른 길을 찾아야 해!”

다시금 왔던 길로 돌아간 제논 일행은 거미족과 사마귀 몬스터의 기습을 피할 수 있는 공터에서 휴식을 취하게 됐다.

“여긴 시야가 트여 있어 기습을 막기에는…….”

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필라이가 외쳤다.

“숲으로 피해! 자이언트 네우라 떼다!”

잠자리 몬스터의 기습을 급히 피하느라 상당량의 물자를 잃게 된 그들은 상실감을 느끼기도 전에 자이언트 튤라의 습격을 받게 됐다.

마도사들이 마력을 쥐어짜내 튤라들을 견제한 덕분에 그들의 영역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마력을 회복할 틈이 없다. 이대론 위험해.”

“아레스 님께선 기도할 시간도 주지 않는군요.”

식량과 식수가 떨어진 상황에서 잠잘 틈 없이 들이닥치는 몬스터.

강적을 퇴치하면 더한 강적이 나타났는데.

“필라이 경, 울트라 튤라를 맡아 주세요!”

울트라 튤라와의 격전 끝에 살아남은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절망에 빠졌다.

“자이언트 웹들에게 포위됐다!”

“사방이 거미줄이야!”

“자이언트 웹들을 지휘하는 울트라 웹들이 있어!”

도저히 활로를 찾을 수 없었던 필라이가 외쳤다.

“나와 메르손이 주의를 끌겠다. 뱅 파티는 저하를 모시고 길을 뚫어라!”

기사들이 마지막을 불태우려 할 때, 장내를 짓누르는 듯한 기운에 인간과 몬스터들이 일제히 멈췄다.

“이건!”

위압감을 풍기며 나타난 인간형 사마귀 몬스터 크라스.

시리우스가 외쳤다.

“최상급 몬스터인 블레이더다!”

크라스가 마기로 이루어진 참격을 쏘아 거미줄과 자이언트 웹들을 제거하자 격분한 울트라 웹들이 크라스를 향해 거미줄을 쏘며 들이쳤다.

“너희들의 독니는 내게 닿을 수 없다.”

이에 크라스는 쌍검에 마강기를 두르며 격의 차이를 보여 줬다.

촤악!

인간들은 왕급에 한 발 걸친 크라스의 신위에 놀랐지만, 놀라고만 있을 수 없었다.

“지금이야! 달려!”

그 틈에 포위망을 뚫고서 달아난 제론 일행.

“이대론 블레이더에게 추적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누군가는 미끼가 되어야 해요!”

메르손의 주장에 필라이가 제논에게 말했다.

“저와 메르손이 미끼가 되겠습니다. 저하는 용병들과 함께 가십시오!”

필라이의 충심에 제논이 감격할 때, 용병 검사 진이 코웃음 쳤다.

“미끼? 최고 전력인 두 분 없이 저희가 이 숲에서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 한 명이라도 빠지면 숲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뱅도 말을 보탰다.

“진의 말이 맞습니다. 흩어지면 백 퍼센트 죽어요! 그러니, 지금은 어떻게든 블레이더 영역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죠!”

제논이 용병들의 말에 힘을 실어 주며 일행은 불필요한 무장과 짐을 모두 버리곤 이동속도를 올렸다.

“아레스 님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 합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그 과정에서 체력을 다한 짐꾼 두 명이 낙오됐지만, 뒤돌아볼 순 없었다.

버드나무 숲을 벗어나 오크나무 숲에 도착한 인간들은 블레이더의 영역에서 벗어났다며 안도할 새도 없이 연이은 고블린의 습격을 받게 됐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와 나르본느.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죠.”

“그 녀석들 나서려 하지 않을 텐데.”

어중간한 전력을 보여 주면 오히려 토벌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쪽에선 확실히 보여 줘야 했다.

너희들이 건드려선 안 되는 곳이라고.

“네론과 헤라클레스는 이미 대기 중이에요.”

“정말이야?”

나는 나르본느에게 제논 일행의 행선지를 짜 줬다.

“알겠어. 그런데, 괜찮겠어?”

“뭐가요?”

나르본느가 투명 거미줄로 인간들을 보호하고 있으며, 위급 상황이 오면 바로 개입할 수 있도록 대기 중이라 경호에는 문제가 없다.

“굶어 죽는 것까진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데…….”

“그러고 보니, 많이 말랐네요. 몸도 많이 상했고.”

밥은 먹여 가며 굴려야 할 것 같아, 제논 일행의 일정을 다시 짰고, 숲에 퍼져 있는 꿀벌족에게 미리 언질을 해 뒀다.

“가끔 쉴 수 있도록 했으니, 죽지야 않을 거예요.”

* * *

고블린 한 무리를 격퇴한 인간들.

“아레스 님의 가호는 어디로 간 거야?”

“뭔가 잘못됐어. 여기서 벗어나야 해!”

최단 경로?

그런 건 포기한지 오래였고, 그저 살기 위해 움직이다 보니 서쪽 고블린 산맥에 들어서게 된 인간 일행.

“목말라. 며칠째 물 한 모금 못 마셨어.”

진의 말에 한스가 다그쳤다.

“졸지 마! 죽고 싶은 거야?”

며칠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여 도저히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나, 수시로 들이치는 고블린 무리는 그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안 되겠어. 고블린이라도 먹자!”

진이 중독을 각오하곤 고블린 고기를 먹으려던 걸 한스가 뜯어말렸다.

“조금만 버텨!”

“뭘 더 버텨! 이대론 굶어 죽는다고!”

“쉿, 뭔가 날아다니는 소리다!”

용병들이 무너지기 직전 필라이가 자이언트 허니비를 발견했다.

“자이언트 허니비다!”

자이언트 허니비가 돌아다닌다는 건 근처에 수원이 있고, 식용 식물이 풍족하다는 걸 의미했다.

거기다 놈들의 둥지만 털 수 있으면 값비싼 꿀을 잔뜩 획득할 수 있으니…….

“한스, 조용히 추격해서 꿀을 확보하자!”

양식과 물을 확보하기 위해 자이언트 허니비를 쫓던 인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이언트 허니비와 꿀벌 떼에 포위되고 말았다.

“수가 너무 많아!”

“마도사님들, 마법으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미안하네. 지금은 마력이 부족해.”

“꿀 좀 먹어 보려 했는데, 꿀이 되게 생겼어.”

“아레스 님 곁으로 갈 때가 된 것 같군요.”

꿀벌족은 그들을 포위만 하고 있을 뿐 공격하지 않았다.

“뭔가 기다리는 것 같군요.”

한참 후, 십여 마리의 허니 퀸이 나타났고, 그중 하나가 인간들에게 말을 걸었다.

“무엇 때문에 저희 둥지 근처로 접근했는지 모르겠지만, 물러가 주신다면 공격하진 않겠습니다.”

제논은 대륙 공용어를 구사한 허니 퀸에게 놀랐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의 포위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살아서 꿀벌족의 포위망에서 벗어난 인간들.

하지만, 그들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꿀벌족의 둥지 근처에는 분명 수원이 있을 거고, 먹을 수 있는 식물도 풍족할 거야.”

진의 말에 한스가 답했다.

“그렇다고 꿀벌족을 자극했다간… 지금의 우리로선 상대하긴 어려워.”

“그럼 이대로 굶어 죽을 거야?”

“내가 식량을 구해 올 테니, 여기서 마도사님들의 회복을 기다리자.”

그들은 며칠간 한스가 구해온 풀떼기를 씹으며 회복을 꾀했다.

요리할 여건조차 되지 못해 생으로 먹었는데, 그가 구해 온 풀떼기에 독초가 섞여 있었는지 배앓이를 하게 됐다.

“레인저란 자식이 세자에게 독초를 먹여!”

“평소에 접하던 식용 식물이라 방심했습니다. 날것으로 먹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죽진 않으니 좀 참으세요.”

“죽진 않아도 이대론 싸울 수가 없다고!”

“그럼 키논 님께서 치유 마법을…….”

“죄송합니다. 아레스님이 내려 주신 마법은 외상 한정으로만 효과가 있어서요.”

“…….”

배가 아파 제대로 싸울 수 없던 상황에서 고블린들이 습격해 왔다.

“꿀벌족 영역으로 피해!”

부득이하게 꿀벌족 영역을 다시금 찾게 된 제논 일행.

허니 퀸들이 꿀벌들을 이끌고 나와 그들을 압박했다.

“여기서 나가 주세요.”

마도사들이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지자, 제논이 나서서 머리를 조아렸다.

“부탁한다. 잠시만 이곳에 머물게 해다오!”

허니 퀸들의 대표가 고심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허니 퀸 하나와 자이언트 허니비 수십 마리가 인간들의 감시를 맡았고, 나머지 꿀벌족들은 숲을 가꾸기 위해 흩어졌다.

그렇게 안전한 장소를 확보하게 된 제논 일행이 몸을 추스릴 때, 허니 퀸이 꿀단지를 건넸다.

“꿀이에요.”

제논이 꿀을 받으며 물었다.

“왜 우리에게 꿀을…….”

“당신들이 둥지 근처에 있으면 불안해요. 그러니 빨리 떠나 줬으면 해요.”

의도야 어떻든 제논은 그저 감사했다.

굶주린 인간들은 꿀을 섭취하며 눈물을 흘렸다.

“달아. 이렇게 맛있는 건 태어나 처음이야.”

“아레스 님이 내려 주신 게 분명합니다.”

“부끄럽게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군요.”

“부끄러워 할 것 없다, 메르손. 이건 왕실 요리장도 흉내 낼 수 없는 황홀한 맛이야.”

“마도의 끝에 도달한다고 할지라도 이 맛은 흉내 낼 수 없을 겁니다.”

평범한 꿀이 아니었는지 꿀을 섭취한 일행은 배앓이를 멈췄고, 체력과 마력이 빠르게 회복됨을 느꼈다.

며칠간 꿀벌족의 영역에서 컨디션을 회복한 제논 일행.

“제논 님, 슬슬 출발해도 될 것 같군요.”

“떠나기 전에 값을 치르고 싶군.”

제논은 자신들을 감시하던 허니 퀸에게 말했다.

“덕분에 회복했다. 혹 고민거리가 있다면 우리가 해결해 주지.”

허니 퀸은 한참을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야.”

“우린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말해 보는 건 어떤가?”

“저쪽 지역에 말벌족들의 구역이 있다. 최근 놈들의 수가 늘었는지 가끔 구역을 벗어나더군. 만약 너희들이 말벌족의 둥지 두 곳만 토벌해 준다면 저번보다 더 나은 꿀을 내줄 수 있어.”

“그것 참 군침 도는 이야기군.”

돌아가는 길에 식량이 필요했던 제논 일행은 말벌족 토벌에 나서기로 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거긴 숲의 말벌족을 모두 모아 둔 곳이나 다름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위험하다 싶으면 싸우지 말고 도망쳐. 놈들도 영역 밖으론 쫓아오지 않으니까.”

제논은 마도사들의 마법 몇 방이면 둥지 하나 정도는 손쉽게 토벌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그들이 향한 곳은 멸종 위기에 처한 말벌족을 위해 개미족이 마련한 자치구로 숲의 말벌족을 몽땅 모아 둔 곳이었다.

그러니 둥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자이언트 킬러비 한 마리만 잘못 건드려도 수십 개의 둥지에서 병력을 쏟아 냈다.

거기다 이 지역을 벗어나면 개미족에게 토벌당하니, 먹이가 들어오면 절대 살려서 보내지 않았다.

“몬스터 밀도가 이상해!”

“여기서 벗어나야 해!”

“퇴로가 막혔어! 놈들이 우릴 사냥하려 한다!”

사냥꾼과 사냥감이 반전된 상황.

인간들은 습격해 온 말벌족을 줄여 가며 도주하려 했지만, 날아다니는 녀석들의 추적을 뿌리칠 순 없었다.

이대로 끝인가 싶을 때, 말벌족들이 추적을 망설이기 시작했다.

“영역 밖으로 벗어난 거야!”

기쁨도 잠시, 말벌족들이 인간들을 몰아쳐 자신들의 영역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그쪽이 아니야! 저쪽으로 이동해야 해!”

단시간에 많은 위기를 겪으며 성장한 제논은 죽음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시리우스, 저게 뭔지 아나?”

“저건… 모두 엎드려!”

순간, 고속으로 날아온 물체가 영역 밖으로 나온 자이언트 킬러비들의 날개를 뜯어냈다.

“최상급 몬스터 네우라 킹입니다.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합니다.”

네론의 등장에 인간들은 놀랐으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벌족의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후 오거 숲에 밟을 들인 인간들은 떠돌이 오크들에게 쫓기게 됐고, 갑각왕의 도움을 받아 또 한 번 위기를 넘겼다.

인간들은 멘탈이 탈탈 털리는 와중에도 착실히 숲의 외곽과 가까워졌고, 오크나무 숲 북쪽에 도달했을 때 숲을 가득 메운 고블린 떼의 습격에 맞서며 신을 원망했다.

“아레스 이 개자식아! 돌아가면 개종하고 만다!”

“기적은 없소. 그러니 신 또한 없소.”

“그만 좀 괴롭혀라!”

밀려오는 녹색 파도에 맞서 분투하던 인간들은 고블린을 지워 버리며 다가오는 검은 파도에 경악했다.

“하드 워커와 자이언트 워커다!”

“수천… 아니, 그 이상일거야!”

제논 일행은 개미들에게 쓸려 나갈 미래를 떠올렸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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