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15화 (114/189)

115화. 클라우드 왕국의 변화

남부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클라우드 왕국 전역으로 퍼지며 이를 조사하기 위해 나선 제논 일행.

제논의 예상과 달리 전염병과 베르제붑 던전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인간들의 마을이 나올 거야. 그럼 난 이만.”

제논 일행은 개미족의 도움으로 남부 대산림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다크가 오거 숲의 훈련소에 도착했을 무렵, 제논 일행은 바르퀴르 자작령에 도착했다.

“살아 있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군.”

“저희도 그렇습니다.”

무일푼인 그들은 살짝 난감한 상황이었다.

“세…….”

제논은 신분을 함부로 드러냈다간 돌아가는 길에 불필요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해 호칭에 주의를 기울였다.

“제논이라 불러라, 시리우스.”

“…제논 님.”

“그래.”

“이곳 영주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신분을 증명할 물건이 있을까요?”

제논은 거지꼴인 자신을 내려다보곤 고개를 저었다.

“없군.”

뱅 파티는 잔금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낙담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왕성까지의 호위 의뢰를 받기로 했다.

“뱅 파티의 노고는 잊지 않겠다.”

“그럼 이걸로 두둑이 보상해 주십시오.”

“정말 그걸로 충분한가? 그대들의 공로라면 근위 기사 자리를 내줄 수도 있어.”

“저희는 지금 신분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안타깝지만… 그대들의 프라이드를 존중하겠네.”

선금이 없는 대신 성공 보수를 높여, 이번 의뢰만 마치면 뱅 일행은 몇 년간 등 따시고 배부르게 지낼 수 있을 터였다.

“난감하군요. 저희가 이곳에 온 걸 아는 사람은 국왕 전하와 그분의 최측근뿐이라. 이 꼴로 영주를 찾아갔다간 사칭죄로 즉결 처분당할 겁니다.”

“애초에 이곳 영주가 어떤 자인지 모른다. 그의 도움을 받는 건 위험 요소가 커.”

메르손과 제논의 말에 일행이 고심할 때, 성기사 키논이 나섰다.

“아레스 신전으로 가시죠. 그곳이라면 세… 제논 님께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일행은 키논이 신성 모독 발언을 내뱉던 걸 떠올렸지만, 암묵적으로 모두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

“그래, 우리를 수호하신 아레스 님이 있었지. 안내 부탁하네.”

키논도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그럼 신실한 신의 종인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아레스 신전에 도착하여 책임자인 성기사와 인사를 나눈 제논 일행은 금전적 지원을 요청했다.

“죄송합니다.”

“아니, 카론 님… 이분은 정말 세자 저하가…….”

“알고 있다. 그래도 지원은 해 줄 수 없다.”

키논이 제논 일행의 신분을 공증했음에도 책임자인 성기사가 지원을 거절하자 제논 일행의 표정이 굳었다.

“이게 아레스 님의 뜻입니까?”

필라이의 물음에 신전 책임자인 카론이 답했다.

“아레스 님의 뜻은 모르겠으나, 신전에 돈이 없습니다.”

“네?”

귀족의 금고가 비어 있다는 것처럼 현실성 없는 말에 제논 일행이 벙 쪘다.

“진짜 돈이 없습니다. 대신 숙식 정도는 해결해 드릴 수 있겠군요.”

숙소를 안내받은 제론 일행.

제공된 식사는 부실했다.

평소라면 아레스 교의 검소함을 찬양했겠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레스 교가 제논을 홀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죄송합니다. 세자 저하. 이건 아레스 님의 뜻일 수 없습니다. 제가 카론 경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아니야. 여기까지 오면서 보니, 신전의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았다. 홍수와 전염병 피해가 있었다고 하니, 그 여파겠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신전에 돈이 없다는 건…….”

카론이 부정한 방법으로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고 의심한 키논.

그의 말을 시리우스가 끊었다.

“속단하긴 이르니, 조사해 보는 게 좋겠군요.”

“조사라면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추가 비용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럼, 부탁하네.”

다음 날 뱅 파티가 용병 길드를 찾았다.

미스릴급 용병패를 지닌 그들은 길드에서 다양한 편의를 제공 받았다.

“개미 여관 덕에 홍수 피해도 크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하면 전염병도 오래가진 않았죠.”

길드의 정보 담당자를 만난 뱅 파티.

“그럼 신전에 돈이 없다는 건 거짓말인가?”

“신전에 돈이 없다는 말은 진실일 겁니다.”

“그건 왜지?”

“포션이 안 팔리기 때문이지요.”

“포션이 안 팔린다니?”

“대체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는 정보를 접한 뱅 파티는 식단과 술집, 암흑가까지 찾아가 이곳 상황을 파악하여 제논에게 전했다.

이야기를 들은 제논은 생각에 빠졌다.

‘이상해. 포션이 팔리지 않는 이유가 일개 상단 때문이라니, 정말 새로운 포션이라도 개발해낸 건가? 왕실의 연금술사들도 해내지 못한걸… 이런 구석진 자작령의 상단에서? 그건 불가능해.’

다음날, 카론이 찾아왔다.

“이곳 사정은 알아보셨는지요.”

뜨끔한 제논 일행을 향해 카론이 온화한 미소를 지어 주며 말했다.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며칠 전에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믿어 줄 것 같지 않아 지금 찾게 됐군요.”

카론이 말하길, 개미 상단이 부정한 방법으로 선량한 상인들의 이권을 뺏어 바르퀴르 영지의 유통망을 장악했다고 한다.

“일개 상인이 신이 내려 주신 양식을 틀어쥔 상황이지요.”

이곳 세상에선 시장이 독점되는 건 흔한 일이었고, 문제가 생기면 영주가 나서서 해결했는데…….

“그뿐만이 아닙니다. 놈들은 빈민가 청소란 명목으로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고, 길거리에 아이들도 시끄럽다고 잡아갔죠.”

아이를 빼앗긴 부모들이 아레스 교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여 영주에게 중재를 청한 적이 있었다.

“재판장에 끌려온 아이들은 겁에 질려 부모의 곁에 돌아가고 싶단 말을 할 수 없었지요. 그들도 아는 겁니다. 자신들이 돌아가면 가족들이 악독한 개미 상단 놈들의 표적이 될 것이란 걸…….”

뱅 파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가 듣던 거와는 많이 다르군요.”

뱅의 말에 카론이 고객을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겁니다. 아무도 진실을 말해 주지 않았을 테니.”

“그게 무슨?”

뱅의 의문에 카론이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개미 상단의 영향력은 암흑가에도 미칩니다.”

암흑가 이야기가 나오자 제논이 주먹을 그러쥐었다.

“암흑가와 손을 잡고 있단 말인가? 그럼 영주에게 말해서…….”

“영주인 유리 바르퀴르도 한패나 다름없지요.”

“영주가?”

“이런 상황이다 보니 우둔한 교도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고, 현명한 사람만이 살아남아 개미 상단을 찬양하고 있는 거지요.”

카론의 이야기를 들은 제논은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어찌, 영주란 자가 일개 상단을 앞세워 영지민을 핍박한단 말인가!’

카론의 말이 진실이라면 이곳 사람들은 영주의 하수인인 개미 상단의 감시를 받고 있어 거짓된 웃음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게 분명했다.

흥분한 제논과 달리 마도사들은 신중했다.

시리우스가 제논의 귓가에 다가가 작게 말했다.

“저하, 아무래도 용병들의 가져온 정보와 다른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개미 상단에 대한 건 저희가 직접 조사해 보는 게…….”

카론은 제논이 이 상황을 벨레삭 백작에게 알려 줬으면 했다.

제논도 당장에 벨레삭 백작을 불러와 철퇴를 내리고 싶었지만, 일개 상단 일로 백작을 움직이는 건 매너가 아니었다.

‘명분이 필요해.’

마도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제논은 개미 상단의 부정을 밝히고, 이곳 영주와의 관계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필라이의 호위를 받으며 영지 시찰에 나선 제논.

“내년이면 루나의 달이 뜨지 않나?”

“그렇지요”

흉년에 이어 몬스터 웨이브를 대비하느라 왕국 전역의 식품 가격이 폭등한 것에 비해 개미 잡화점에서 유통하는 식품은 매우 저렴했다.

“어떻게 된 거지? 카론 경의 말과는 조금 다르군.”

“물어보니 각지의 상단들이 몰려오며 작년보다 오른 가격이라고 합니다.”

“그럼 작년에는 더 싸게 팔렸단 말인가?”

“그렇다는군요.”

개미 상단의 부정을 찾지 못한 제논은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슬럼을 한번 가 봐야겠다.”

제논과 필라이는 슬럼을 찾아봤지만, 개미 상단에 의해 정상적인 거리로 변한 지 오래였고, 간혹 생기는 빈민들 역시 모두 구제 중이라 아무리 살펴봐도 슬럼 비슷한 곳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 수 없는 왕자 일행.

“슬럼이 없다니, 설마 모두 죽였단 말인가?”

“없어진 아이들의 행적을 찾았습니다. 모두 개미 상단이 운영하는 고아원으로 연결되더군요.”

“가 보지.”

제논은 아이들의 행방을 쫓아 고아원을 방문했다.

높은 담벼락으로 인해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시설이라 참관을 위해선 관계자의 허가가 필요했다.

“냄새가 나는군요.”

고아원 관계자와 인사를 나누게 된 제논과 필라이는 아이들의 생활을 참관할 수 있게 됐다.

“여긴 3세 이하 아이들이 있는 곳이에요. 고아가 아닌 아이들이 맡겨지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보육원이라 불리고 있어요.”

아이들이 먹는 음식과 보모 수준에 놀란 제논.

그에게 안내자가 말했다.

“개미 저택의 주인님께선 3세 이전의 아이들에겐 영양 결핍이 발생하면 성장 한계점이 떨어진다며 식단까지 짜 주셨어요.”

“성장 한계? 그게 무슨 말이지?”

“그것까진 저도 잘 모르겠어요. 비앙카 원장님이라면 알고 계실지도 몰라요.”

“비앙카 원장을 만나볼 수 있나?”

“저택 근처의 제1 고아원에 있으실 텐데…….”

바르퀴르 영지에는 여섯 개의 고아원이 있다.

그 여섯 고아원을 총괄하는 대표 원장이 비앙카였다.

‘아이들이 학대받은 흔적이 없어. 여긴 위장 시설이 분명하다. 그럼 숨겨진 장소가 따로 있을 거야.’

제논이 고아원을 조사하는 동안 메르손과 시리우스가 개미 상단과 약국을 조사했다.

개미 상단을 조사한 시리우스는 취급품의 품질에 놀랐고, 서비스에 또 한 번 놀랐다.

상단에서 나와 약국을 방문한 시리우스와 메르손.

“시리우스 님, 약은 진짜입니까?”

“흠… 이건 포션이 아니다.”

“그럼 가짜군요.”

성급한 메르손의 말에 시리우스가 곧바로 반박했다.

“포션은 아니지만, 효과가 없다곤 할 순 없어.”

“약효가 있다면 엄청난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약효만 있다면 저하께 큰 힘이 되겠지만, 효과가 없을 경우가 문제지.”

고아원 조사를 어느 정도 마친 제논은 시리우스와 합류하여 모은 정보를 교환했다.

“용병들이 조사한 대로였습니다.”

“나도 부정한 행위는 보지 못했다. 오히려 개미 저택의 주인이 궁금해지더군.”

“속단하긴 이르나, 쉽사리 꼬리를 드러낼 것 같진 않더군요.”

제논 일행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대기 중인 마차 세 대가 있었다.

“개미 상단 상단주 문트리아입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정중한 문트리아의 인사에 제논과 시리우스의 표정이 굳어졌고, 필라이와 메르손이 검을 잡았다.

“내가 누군지 아나.”

“저 따위가 입에 담아선 안 될 분이란 것은 알고 있습니다.”

망설이던 제논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심정으로 마차에 타게 됐다.

도착한 개미 저택.

상당한 수의 경비병을 감지한 필라이는 걱정이 앞섰다.

“함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험한 수준인가?”

“저와 시리우스 님이 있다면 문제없습니다.”

“그럼, 놈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봤으면 한다.”

접객실로 안내한 문트리아는 사람을 물리곤 무릎부터 꿇었다.

“개미 상단 상단주 문트리아가 왕국의 큰 별이신 세자 저하를 뵙습니다.”

“역시 날 알고 있다는 건 허언이 아니었군.”

“저택 주인께서 부재중인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문트리아와 제논의 만남.

이는 대륙의 큰 변화를 가져올 불씨였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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