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19화 (118/189)

119화. 이해관계

시간이 흘러 주어진 휴식 시간이 끝났다.

“두 번째 예선 시험은…….”

시험관 역을 맡은 미노타우로스가 대략적인 시험 내용을 설명했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시험 종목은 절벽 타기였다.

주어진 시간은 10일.

서로 방해하면 탈락이다.

‘아쉽네.’

저 규칙만 없었다면, 이 기회에 참석자를 대거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절벽을 오르지 않고 돌아서 올라가도 탈락이다.”

혹시 모를 편법을 미리 방지한 시험관.

“날아서 가는 건 되나?”

말벌왕이라 불리는 녀석의 질문에 시험관이 짧게 답했다.

“절벽에 붙어 난다면 상관없다.”

그 말에 날개 달린 곤충족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설명을 마친 시험관이 무투회에 참석한 동족들을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충고했다.

“급하게 오르지 마라, 왜 10일이 주어졌는지 충분히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란다.”

오거, 키클롭스, 미노타우로스.

그들은 참석 인원이 많아 강세종이라 불렸고, 나머지는 종족 대표급이 한둘 밖에 없어 약세종이라 불렸다.

아무리 왕급과 준왕급이라지만, 중소형 몬스터가 포진한 약세종과 달리 대형 몬스터인 강세종은 떨어지면 중상을 면치 못할 듯했다.

그러니, 신중하게 올라야 하는 게 맞겠지만…….

곤충족인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럼 두 번째 예선 시험을 시작하겠다!”

“가라! 네론!”

시험이 시작되자 나르본느가 네론을 출발시켰다.

“우리도 간다!”

네론의 필두로 비행 몬스터들이 위로 쏘아졌다.

이대로 시험 시작 2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통과자가 나올 줄 알았는데.

하얀 새 떼들이 몰려와 네론을 비롯한 비행 몬스터들을 덮쳤다.

“저건 로크 떼잖아!”

“뭐가 저렇게 많아!”

몬스터들이 경악할 때, 내 옆에서 절벽을 올려다보고 있던 나방왕 버플이 말했다.

“통곡의 절벽은 로크들의 성지. 대둥지라고도 불리지요.”

대둥지를 그대로 뒀다간 모두가 곤란해질 수 있어 미노타우로스들이 책임지고 로크를 사냥해 왔다고 한다.

“최근, 오거 숲으로 이주하려는 미노타우로스들의 사망과 부상이 잇따르며 로크 사냥꾼이 감소했더군요.”

개미족 영역을 넘보다 미노타우로스들의 피해가 누적되며 로크 사냥에 나설 노동력이 줄었다.

그로 인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로크가 불어난 상황.

“거기서 놈들이 떠올린 겁니다. 아, 우리끼리 토벌하면 피해가 클 테니 무투회 예선 시험 때 처리해 버리자! 뭐… 그런 상황인 거죠.”

무투회를 핑계로 숲의 강자들을 공짜로 부릴 생각을 하다니.

‘소머리치곤 영리한걸.’

내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나방왕은 턱을 괴며 물었다.

“기분 나쁘지 않으신가요? 이대론 예선 내내 이용당할 텐데…….”

미노타우로스 놈들에겐 분명한 목적이 있어 속이 훤히 보였지만, 나방왕이 내게 접근해 오는 목적은 알 수가 없었다.

‘의도는 알겠는데. 놈이 진정으로 이루려는 목적을 모르겠어.’

“네놈이 날 이용해서 저놈들을 견제하려는 것보단 덜 기분 나빠.”

뜨끔한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얀 새 떼가 등장한 절벽 위의 상황은 박진감이 넘쳤다.

날개를 펼쳤을 때는 대형 몬스터와 맞먹는 크기의 거대 조류가 수만 마리.

수만의 로크가 하늘을 덮고 있으니 비행 몬스터들이 나아갈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와 크라스에겐 자신들의 신체 일부가 변형된 무기가 있고, 나르본느는 등에 달린 여덟 개의 단단한 다리가 무기 역할을 해 줬지만, 나와 네론에겐 그러한 무기가 없어 도구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충분한 공격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네론에게 가벼우면서도 날카로운 미스릴 세검 두 자루를 만들어 줬는데.

로크 무리에 막혀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네론은 무리하게 뚫고 나아갈 생각인지 개미표 미스릴 세검을 뽑아 들었다.

“하늘은 나의 영역이다.”

네론이 로크들을 토막 내며 고속으로 돌진하여 로크 무리 속으로 침투했다.

포위망에 뛰어든 어리석은 짓이지만, 공중전이라면 그 누구보다 강한 네론이었으니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는 듯했다.

그런 네론조차 로크들의 포위망 속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체력을 다했는지 망신창이가 된 몸으로 힘겹게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네론이 당했어!”

나르본느가 추락하는 네론을 회수하여 거미줄로 상처 부위를 감아 응급처치를 해 줬다.

네론이 추락한 후 다른 비행 몬스터들 역시 로크 떼의 습격을 받아 하나둘 떨어졌고, 상당수가 예선 시험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

그나마 네론은 치명상을 입지 않아 며칠 쉬면 나아질 듯했다.

‘이건 절벽 타기가 아니야.’

사실상 절벽 위를 오를 때 습격해 오는 로크들을 처리하는 시험.

아무리 왕급과 준왕급의 시험이라지만, 네론이 공중전에서 당할 정도의 난이도.

‘쉽진 않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비행 몬스터들이 속수무책으로 물러나는 걸 지켜본 자들은 모두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

반나절이 지났다.

그동안 아무도 절벽을 오르려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일행과 함께 어떻게 로크 무리를 뚫고 절벽을 오를지 고심 중이었다.

‘역시 밤을 노려야 하나?’

밤에는 로크들이 모두 둥지에서 자고 있을 테니 가능성이 있어 보였으나, 밤을 노린 몬스터들은 모두 로크들의 영역 한가운데에서 발각되어 죽음을 면치 못했다.

‘몰래 지나가는 건 안 되나 보네.’

시험이 시작되고 하루가 지났다.

남은 시간은 9일.

대형 몬스터들이 동족끼리 모여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됐군요.”

절벽 곳곳에는 움푹 파인 곳들이 많았고, 대형 몬스터가 잠시 쉬어갈 정도의 공간도 있었다.

그들은 동족들과 함께 오르며 서로를 지켜 줬고, 쉴 수 있는 동굴을 찾아 교대로 쉬어 가며 절벽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영역의 패자들인 놈들이 한데 뭉치니, 열악한 지형에서의 전투임에도 쉽사리 당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땅따먹기를 하듯 로크들을 조금씩 밀어내며 전진했다.

이러한 전략은 오거, 키클롭스, 미노타우로스 같은 강세종이어야 가능한 거지, 약세종들은 로크들의 집중 공격에 버티지 못한 채 하나둘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번 시험의 공략을 알 것 같았다.

‘협력 없이는 올라갈 수 없어.’

절벽을 오르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약세종끼리의 협력은 쉽지 않다.

‘뭐, 꼭 협력만이 정답은 아니지.’

목적은 절벽 위로 오르는 것.

로크가 어느 정도 토벌되면 다른 몬스터들이 뚫어 둔 길을 이용해 슬렁슬렁 올라가면 될 문제였다.

‘늦게 움직일수록 유리한 게임이야.’

우리가 늦게 움직일수록 먼저 움직인 녀석들의 피해도 클 테니…….

‘일석삼조라 할 수 있겠지.’

계획을 세운 나는 일행에게 작전을 공유해 줬다.

“조금 비겁한 것 같군.”

“비겁하긴, 딱 좋구먼.”

“다른 몬스터들에게 얕보일지도 모른다.”

“다크는 존재 자체가 얕보이는데 관계없지 않아?”

헤라클레스는 어부지리를 노린 작전이 비겁하다며 반대했지만, 기습 본능을 가진 나머지 일행은 은근 좋아하는 눈치였다.

헤라클레스의 설득은 어렵지 않다.

그저 자존심을 조금 세워 주고 명분을 만들어 주면 된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나서면 다들 우리와 속도를 맞추려 할 거예요. 그럼 약세종의 피해가 가중될 수밖에 없어요.”

“맞아 맞아. 원래 나와 너 정도 되는 어르신은 늦게 나서 주는 게 예의라니까? 저기 두꺼비왕이랑 지네왕도 안 나서잖아.”

“하긴, 어린 것들이 로크 사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겠군.”

“그래, 이건 절대 비겁한 게 아니라 배려야 배려.”

“네, 사려 깊은 배려죠.‘

나르본느의 지원 사격으로 헤라클레스의 설득을 마친 나는 적당히 떨어진 곳에 캠프를 꾸렸다.

“저도 함께해도 되겠습니까?”

“안 된다고 하면?”

“그럼, 뚫어 주신 길을 따라 오를 수밖에요.”

어부지리의 어부지리를 노리겠다는 나방왕.

“내가 말하긴 좀 그렇지만, 넌 자존심도 없냐?”

요리조리 빌붙으려는 나방왕을 한심하게 생각한 나르본느가 한마디 하자, 그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태생이 좋지 못했던 터라, 자존심까지 챙기며 살 수는 없었지요.”

“불쌍한 척 하지 마! 안 속으니까.”

“속이다니요. 제 눈이 거짓을 말하는 눈 같습니까?”

“응, 짜증 날 정도로 가식적이야.”

나방왕이 합류하긴 했지만, 그의 목적은 여전히 불투명하여 완전한 일행으로 받아들일 순 없었다.

‘한동안 지켜보자.’

5일이 지났다.

몬스터들이 절벽 중턱까지 올라 로크와 본격적인 전쟁을 치르는 걸 멀찍이서 지켜보며 일행과 함께 로크 요리 풀코스를 즐겼다.

“저기 실한 놈 하나 떨어지네요.”

“오! 내가 챙겨올게.”

“슬슬 올라가야 하지 않나?”

갑각왕의 물음에 나는 하얀 새 떼들이 지워지는 속도를 대략 계산하여 말했다.

“3일 후부터 오르면 될 것 같아요.”

미노타우로스들이 길을 제일 잘 뚫어 뒀으니, 그 뒤를 쫓아 오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세종 몬스터들은 6일 차부터는 쉽사리 오르지 못했고, 약세종 몬스터들도 더는 전진하지 못하여 하나둘 절벽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려온 약세종 몬스터들은 고민 끝에 오거, 키클롭스, 미노타우르스 중 하나를 선택해 빌붙기 시작했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말벌왕이라 불리는 녀석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였다.

놈은 초기에 나섰다가 로크들에게 호되게 당한 후론 절벽 아래에서 약세종 몬스터들을 끌어들여 세를 불린 상태.

세가 충분히 불어나면 절벽을 오르겠거니 했는데.

약세종 몬스터들의 줄서기가 끝났을 무렵에도 놈들은 나서지 않았다.

‘왜 우리 쪽을 보는 거지?’

우승 후보 격인 헤라클레스가 주목받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내 착각이 아니라면 놈들은 우리가 나서길 기다리고 있었다.

비겁하다 욕하면 내 얼굴에 침 뱉기니.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미노타우로스들이 뚫어 둔 길로 가려 했는데, 날 적대하면서 이용까지 하려는 놈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어진 나는 작전을 변경하기로 했다.

‘성동격서로 가야겠다.’

그리고 이틀이 더 흘러 슬슬 움직일 때가 왔다.

절벽 쪽으로 다가가니 전과 다른 기류가 느껴졌다.

웅성웅성.

장내의 시선이 모인 곳에는 새롭게 합류한 몬스터가 있었다.

딱 봐도 전갈처럼 생긴 전신 갑주의 인간형 몬스터.

그는 시험관에게서 이번 시험의 설명을 듣곤 헤라클레스에게 접근했다.

“네놈이 무투회라니. 의외로군”

“…왜 온 거냐?”

“뭐… 나도 미노타우로스 놈들에게 원하는 게 있으니 왔겠지.”

아카시아 숲 너머의 황무지에서 찾아온 전갈왕 스콜.

놈과 헤라클레스의 시선이 교차하며 강렬한 스파크가 튀는 듯했다.

‘은원 관계인가?’

그의 등장에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몬스터들이 움직였다.

지네왕 갈파고스와 두꺼비왕 하와.

상당히 깊은 마력을 갖춘 두 녀석이 스콜에게 접근하여 팀을 형성하자 나르본느가 인상을 찌푸렸다.

“다크, 저 새끼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왜죠?”

“저놈들의 목적은 아마도 나와 헤라클레스일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에게 관심 없는 오거와 키클롭스.

개미족과 영역을 다투고 있는 미노타우로스.

나를 적대하며 이용하려는 말벌왕과 약세종들.

나르본느와 헤라클레스를 노리는 듯한 전갈왕 파티.

그리고 내 주변을 맴돌며 가식적인 웃음으로 속내를 숨기고 있는 나방왕.

이해관계로 얽힌 몬스터들이 모인 무투회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지만, 눈앞의 시험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그럼 가시죠.”

내가 챙겨온 무장은 공허와 금강 속성의 마강기를 일으킬 수 있는 2미터짜리 미스릴 창과 무게만으로도 강력한 파괴력을 갖춘 2.5미터 암흑마창.

장내의 약세종들의 주목 아래 나는 마창을 들었고, 일행들도 각자의 무기를 선보였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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