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20화 (119/189)

120화. 낚시

남은 시간은 이틀.

벽 타기 자체는 몇 시간 걸리지 않으나, 로크의 견제를 뚫고 나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거기다 벽 타기에 미숙한 디아에게 맞춰 나아가야 해서 촉박한 감이 있었다.

우리 일행이 절벽을 오르기 시작하자, 전갈왕 스콜을 비롯한 나머지 약세종도 덩달아 절벽을 올랐다.

“내가 발목을 잡는군.”

“괜찮아요. 디아는 벽 타기에 집중해 주세요.”

디아를 보호하는 대형으로 천천히 올랐고, 네론과 나방왕이 날아다니며 습격해온 로크들을 요격하여 우릴 지켰다.

“공중은 나의 영역. 저번 같은 실수는 두 번 하지 않는다.”

“지켜만 주시면 지원하겠습니다.”

나방왕의 전투 방식은 독 가루를 뿌려 환각 혹은 마비를 일으켜 상대를 추락시키는 것이었다.

‘페르랑 비슷한 방식이군.’

즉효성이 떨어지고 독 내성을 어느 정도 갖춘 강자들에겐 통하지 않으나, 다수의 약자를 상대할 때는 나쁘지 않은 방식이었다.

몇 시간 후, 절벽을 절반 이상 오르자 로크 무리의 견제가 거세졌다.

거센 공세에 네론과 나방왕의 체력이 금세 고갈됐다.

“네론! 버플! 벽에 붙어!”

나르본느에 이어 크라스가 외쳤다.

“버플, 이쪽으로 붙어라. 이제부턴 내가 상대한다.”

네론과 나방왕이 벽에 붙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르본느와 크라스가 나서서 몰려온 로크들을 처리했다.

나르본느는 거미줄을 쏴서 로크들의 날개를 봉쇄하여 떨어뜨렸고, 크라스는 마기로 이루어진 참격을 날려 로크를 견제했다.

크라스 녀석은 나름대로 무산 마기를 흉내 내고 있지만, 완벽한 수준이 아니라 마력 소모가 꽤나 커 보였다.

“크라스, 마력을 아껴야 하지 않아요?”

“알고 있다.”

참격을 날릴 때마다 크라스의 마력이 점차 옅어지는 게 무산 마기를 익히는 과정 같았다.

‘습격이 잦아지고 있어.’

절벽을 오를수록 로크 무리의 습격이 잦아지며 오르는 속도가 점차 떨어져 갔다.

“전갈왕 녀석, 꽤 하잖아?”

나르본느의 감탄성에 옆 라인을 오르는 전갈왕을 보게 됐다.

어딘지 헤라클레스와 닮은 전갈왕 스콜.

그의 무기는 독침이 달린 강력한 꼬리였다.

‘꼬리라…….’

절지동물이며 거미강에 속하는 전갈의 꼬리는 엄밀히 말해 엉덩이라 할 수 있겠으나, 생김새는 꼬리와 다르지 않으니 그냥 꼬리라 칭하기로 했다.

“위에서 기다리마.”

전갈왕이 꼬리를 휘둘러 접근해 온 로크들을 박살 내며 빠르게 전진해 그나마 어그로가 분산됐다.

지네왕과 두꺼비왕이 전갈왕이 고립되지 않도록 지원했는데.

“크크크, 오랜만에 힘 좀 쓰겠군.”

단단한 외골격으로 무장한 인간형 몬스터인 지네왕은 팔이 수백 개의 관절로 이루어져 있어 순식간에 다섯 배 이상 길어질 수 있었다.

그는 길게 뻗은 팔을 채찍처럼 쓰거나 적을 묶는 용도로 썼고, 절벽 타기에도 활용했다.

“전갈왕아. 방심하지 말거라.”

두꺼비왕 하와는 점프로 징검다리를 타듯 로크의 몸을 찍어 눌렀고, 그의 발판이 됐던 로크는 중독 증세를 일으켜 추락을 면치 못했다.

소수 정예의 전갈왕 일행처럼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경쟁자가 있는 한편, 대다수의 약세종은 우리 뒤를 바짝 쫓으며 무임승차 중이었다.

60% 정도 오르니, 무임승차하던 약세종들이 지척까지 따라붙었다.

이젠 한 덩어리가 되어 로크들을 밀어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말벌왕이 로크들과 공중전을 펼치면서도 내 뒤통수를 노리는 것 같아 기분이 영 찝찝했다.

통수는 맞기 전에 때려야 제맛.

‘슬슬 시작해도 되겠어.’

로크 둥지가 밀집한 곳까지 도달한 나는 동료들에게 신호를 줬다.

그러자, 디아와 나방왕을 제외한 일행이 페이스를 올렸다.

“나부터 간다!”

“덤벼라, 진심으로 상대해 주마.”

“공중은 나의 영역!”

“네놈들의 부리는 내게 닿지 못한다.”

나르본느, 헤라클레스, 네론, 크라스 순으로 한마디씩 하며 로크 무리로 뛰어들었다.

“그럼 작전대로 부탁합니다!”

나 또한 한쪽을 맡아 돌격했다.

우리가 디아를 중심으로 부채꼴로 퍼져 나가며 로크들을 학살하니, 나방왕과 뒤따르던 약세종들이 당황했다.

“아니, 위험합니다! 이러면 저희 쪽 진영이!”

대규모 전투는 진영 싸움.

진영이 무너지면 우리와 함께한 몬스터 모두가 위험에 처한다.

우리 일행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도 체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로크 무리 속에 고립되면 오래 버티진 못한다.

“멈춰! 멈추라고!”

지능을 어느 정도 갖춘 녀석들은 선두에서 길을 뚫던 우리가 무너지면 남은 시간 안에 절벽을 오를 수 없다고 판단하여 바짝 쫓아왔다.

하나의 덩어리가 부채꼴로 흩어진 우리로 인해 여섯 조각으로 쪼개졌다.

말벌왕과 나방왕은 내 뒤를 쫓으며 나를 보호했는데.

“다 같이 죽을 셈이냐?”

“다크 님, 이대론 정말 위험합니다! 빨리 뭉쳐야!”

전갈왕 스콜도 급속히 무너지는 우리 쪽 진영을 보곤, 소리쳤다.

“시간을 벌어 주겠다! 물러나서 정비해라!”

우리가 무너지면 저들 차례니, 함께 페이스를 올려 어그로를 끌어 줬다.

약세종 그룹들이 급발진하여 어그로를 끌자, 기회라 여긴 강세종들이 전진 속도를 높였다.

“이때다! 몰아붙여라! 이대로 뚫어 버린다!”

정체되어 있던 로크 토벌이 가속되며 각자의 진영이 무너져 갔다.

난전에 돌입하게 된 무투회 참석자들의 피해가 급속히 확대됐다.

무리하게 전진한 나와 일행들이 고립되어 체력을 다해 갈 때, 몸에 붙어 있던 투명한 거미줄이 당겨졌다.

‘신호다!’

나르본느가 보내온 신호를 받은 나는 기척을 지우고서 이동을 개시했고, 다른 일행들도 정신없는 난전 속에서 어느 한 지점을 향해 이동했다.

* * *

다크 일행의 급발진에 낚여 모두의 페이스가 무너진 상황.

어느 순간 무투회 참석자들은 깨달았다.

누군가 물러나면 고립된 선두가 박살 날 것이고, 뒤처지면 낙오되어 절벽을 오르긴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함께 물러나서 재정비했다간 남은 전력으로 주어진 시간 안에 로크 무리를 뚫어 낼 수 없는 상황.

이젠 이판사판으로 전진만이 답이라 직감한 그들은 막바지 전력 사냥에 돌입했다.

“죽여!”

“물러서지 마!”

“낙오되면 탈락이다!”

많은 몬스터들이 낙오되는 가운데, 전진을 거듭하던 전갈왕.

어느 순간 옆 라인이 뒤처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이상하군. 무리가 쪼개졌다지만 나르본느와 헤라클레스가 있을 텐데? 왜들 힘을 못 쓰는 거지?’

전갈왕 그룹의 실력자들은 이상함을 느꼈으나, 선두에서 허우적거리던 말벌왕과 나방왕은 당장 눈앞의 로크들을 처리하느라 다크 일행의 부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개미족 녀석,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내 손으로 끝내고 싶었지만, 이렇게 무모해서야 얼마 못 가 죽겠군.’

‘속도를 늦춰야 해! 따라가다 내가 먼저 죽겠어!’

선두에 있던 그들은 자신들이 선두 그룹에서 낙오됐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말벌왕을 뒤따르던 모기왕은 로크들의 피를 듬뿍 흡수하여 급속히 강해지고 있었고, 바퀴왕 또한 큰 부상을 극복할 때마다 전투력이 급증하는 모습을 보였다.

말벌왕도 로크들을 상대로 전투 경험을 쌓으면서 잠재력이 개화되고 있었다.

예전 이상으로 강해진 그들이었지만, 로크 떼를 상대로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숨 돌릴 틈 없는 처절한 전장에서 사라진 다크 일행은 나르본느가 찾아낸 동굴에서 거미줄로 입구를 막은 채 지친 몸을 달래고 있었다.

* * *

헤라클레스가 일행을 둘러보곤 말했다.

“다들 살아 있어서 다행이군.”

나를 포함한 헤라클레스, 나르본느, 디아는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네론과 크라스는 조금만 늦었어도 다신 못 볼 뻔했다.

나는 사교위에 저장해 둔 최상급 포션을 뱉어 냈고, 나르본느가 거미줄을 붕대 대용으로 감아 줬다.

잠깐 숨을 돌리긴 했지만, 동굴 속에서 버티기만 하면 남은 시간 안에 절벽 위에 도달할 수 없다.

‘적을 피해 시간을 허비하는 건 악수나 다름없어.’

그렇다 해도 지금 밖으로 나가면 거센 폭풍과 다름없는 로크들의 공세를 견뎌야 한다.

아무리 거센 폭풍이라도 그 중심은 고요한 법.

나는 금강 모드의 마강기를 미스릴 창에 둘러 천장을 파내기 시작했다.

“헤라클레스는 절 도와주시고, 나머지 분들은 흙더미를 옮겨 주세요.”

이렇게 천장을 쑤시다 보면 동굴이 무너지는 게 정상이지만, 개미족에겐 벽을 강화할 수 있는 접착액이 있었다.

나는 동굴이 무너지지 않게 접착액을 바르며 위로 향하는 통로를 만들었다.

절벽 위까지 땅굴을 파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치열한 전장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까지 길을 만들었다.

길을 만드는 중간에 로크 둥지 몇 군데를 지나쳤지만, 모두 밖에서 전투 중이었는지 들키진 않았다.

몇 시간 후, 절벽 밖으로 나온 우린 아래쪽에서 진격해 오는 몬스터들에게 정신 팔린 로크들을 볼 수 있었다.

중급 마석이 나오는 로크는 개미족으로 치면 3차에 해당하는 녀석들이었고, 가끔 상급 마석이 나오는 대장급 로크도 있다.

대장급은 3.5차 개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대장급 로크들을 통솔하는 로크 킹이 절벽 어딘가 있으나, 놈은 로크들이 일정 이상 줄면 동족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고 했다.

“이거, 우리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나르본느의 말대로 로크들은 둥지 밀집지 너머에 도달한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느려 터진 디아의 갑주를 벗게 한 나는 그녀를 업고서 남은 절벽을 탔다.

아무런 견제도 없이 질주한 일행은 절벽 끝에 도달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놀란 눈치인 미노타우로스 시험관들을 볼 수 있었다.

“두번째 예선 시험,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

* * *

통곡의 절벽에서 치러진 두 번째 예선 시험.

마지막 날이 되자 로크 무리를 뚫어낸 미노타우로스 세 마리가 절벽 끝에 도달했다.

“힘들군.”

“오거와 키클롭스 녀석들에게 밀리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어.”

“놈들에게 밀렸다면 사부님께 죄송하지.”

그들은 각각 우마십장이라 불리는 여덟 마리의 미노타우로스 중 하나를 사부로 모시고 있는 자들로 우승 후보들이라 할 수 있었다.

“우고, 우노, 우도… 제2 예선 시험,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

시험관의 차가운 축하에 고개를 갸웃한 셋.

얼마 후, 자신들보다 먼저 통과하여 쉬고 있는 다크 일행을 보곤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된 거지?”

“시험관, 이건 부정이야! 벌레 따위가 우리보다 먼저 올라왔을 수는 없어! 분명 길을 우회했을 거야!”

“맞아! 지금 약세종들은 로크들에게 고전 중이라고!”

흥분한 우노와 우도가 시험관에게 따지고 들었고, 시험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절벽을 타고 올라왔으니, 부정이라 할 수 없다. 자리로 돌아가 다음 시험까지 쉬도록.”

시험관의 말대로 휴식을 취하던 우도는 화를 참지 못했는지 거구를 일으켰다.

“이건 말도 안 돼!”

다크 일행에게 다가간 우도가 말했다.

“네놈들이 어떻게 시험관의 눈을 속였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명예에 먹칠한 이상 몸 성히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선전포고를 날리며 살기를 뿌리던 그의 앞으로 헤라클레스가 다가갔다.

“한 가지 말해주마. 소머리.”

헤라클레스가 강렬한 안광을 쏘며 말했다.

“모두 얻고자 하는 게 있어, 목숨을 걸고서 이곳에 있다.”

쾅!

장수풍뎅이 뿔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둔기로 땅을 내리친 헤라클레스가 말을 이었다.

“우스운 협박 따위는 상대를 봐 가면서 해라.”

헤라클레스의 양옆으로 나르본느와 다크, 그 옆으로 네론, 크라스, 디아가 서며 투기 가득한 눈을 빛냈다.

자신의 살기에 맞서 이만한 투기를 보이는 자를 본 적이 없던 우도.

자신이 뒤로 한 발 물러났음을 뒤늦게 깨닫곤 분노했다.

“소원대로 죽여주마!”

그가 도끼를 높이 치켜든 순간, 상황을 주시하던 시험관들이 뛰어들어 우도를 붙잡았다.

“진정해라 우도.”

“진정? 지금 난 충분히 냉정하다. 벌레 따위가 미노타우로스인 날 모욕했으니, 죽어 마땅한 거다!”

시험관은 셋으로도 우도를 제압하지 못하자 그의 사부를 들먹였다.

“신성한 무투회의 예선에서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건 네 사부를 욕보이는 행동이다!”

그제야 우도가 멈췄다.

“후…….”

호흡을 길게 뱉어 흥분을 가라앉힌 우도가 몸을 돌렸다.

“갑각왕 헤라클레스. 본선까지 와라. 그럼 우마십장 서열 3위 무도 님의 제자인 나 우도가 직접 숨통을 끊어 주마.”

그가 떠나갈 때 다크가 일행을 향해 속삭였다.

“사부까지 들먹이며 자신을 소개하는 걸 보니, 본선에선 보기 힘들겠군요. 뒤에 있는 우고란 녀석은 숨겨 둔 한 수가 있어 보이는데…….”

우도의 귀가 쫑긋했다.

힘도 없어 보이는 개미족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여긴 우도가 격분하여 뒤돌아서며 도끼를 던졌다.

장내의 시험관들은 통과자 중에서도 최약체로 보이는 다크를 향해 육중한 도끼가 날아가자 화들짝 놀랐다.

막아 주기엔 늦었다고 판단한 시험관들이 참담한 미래를 떠올렸고, 다크의 실력을 알고 있던 자들은 담담하게 날아오는 도끼를 지켜봤다.

포탄이나 다를 바 없는 파괴력이 실린 도끼.

다크가 금강 모드로 바닥을 단단히 부여잡은 채 마창을 휘둘러 쳐냈다.

캉!

공중 높이 떠오른 도끼가 중력의 작용으로 다시금 떨어져 내렸다.

다크는 마창을 한 번 더 휘둘러 주인에게 도끼를 돌려줬다.

그 일련의 동작이 매끄럽게 이어졌던 터라, 장내의 시험관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도끼를 받은 우도가 황당해할 때, 절벽에서 흉터로 가득한 오거 하나와 각종 몬스터 부산물로 무장한 키클롭스가 올라왔다.

“그만둬라. 소머리, 깝치다 뒈지는 수가 있다. 오그르트도 그렇게 뒈졌지.”

오그르트의 동생 오그무트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우도에게 다가갔고, 대장급 키클롭스 클롭이 다크 일행을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위험한 녀석들이 많군.”

우도를 옆으로 밀친 오그무트가 헤라클레스와 마주했다.

“어이, 헤라클레스. 오랜만이군.”

“오그르트의 죽음은 유감이다.”

“괜찮아. 같은 부모를 뒀다지만, 내겐 동족애 같은 건 없으니까.”

그는 헤라클레스의 양옆을 훑으며 물었다.

“그래도 궁금하긴 하군. 오그르트를 죽인 놈이 누구일지 말이야.”

형의 죽음을 묻는 오그무트의 눈엔 일말의 분노도 서려 있지 않았다.

오직 강자와 승부를 보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을 뿐.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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