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22화 (121/189)

122화. 크노소스 궁전

오거, 키클롭스, 미노타우로스는 각각 자기 종족이 새겨진 손잡이를 택해 들어갔다.

오거들은 처음부터 문제를 들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지혜의 문을 힘으로 돌파했다.

“정답이다! 힘이 없으면 머리가 고생하는 법. 오거 전사인 너희에겐 강력한 힘이야말로 진리임을 잊지 마라!”

1등으로 돌파한 오거들은 공터에서 다른 통과자를 기다렸다.

키클롭스들은 종족 특성인 혜안을 발동하여 문제의 답을 찾아냈다.

“모든 답은 눈앞에 있노라.”

미노타우로스 그룹은 뛰어난 두뇌로 촉망받던 우노가 대표로 나서서 손잡이가 내는 난제를 풀어 냈다.

“우마의 자손들이여, 패도의 끝은 패망임을 깊이 새기고 지혜롭게 살아가거라.”

전갈왕 파티는 지네왕의 직감에 따라, 지네 손잡이를 선택해 들어갔다.

“심해의 깊이를 아는가?”

지네왕이 나서서 답했다.

“크크크, 몰라.”

“하늘의 높이를 아는가?”

“크크크,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자이언트 센티페드의 다리 개수를 아는가?”

“크크크. 그걸 왜 일일이 헤아리고 있겠냐?”

자신 있게 나선 지네왕이 모두 모른다고 답하자, 전갈왕과 두꺼비왕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아무래도 이 문은 틀린 것 같군.”

“갈파고스야. 갓 진화한 자이언트 센티페드의 다리는 열다섯 쌍이고 세월에 따라 늘어나니, 좀 더 생각해서 답해 보지 그랬냐?”

“크크크, 하와 영감도 모르는 소릴 하는군. 자기 다리를 헤아려 보던 지네족은 벌써 굶어 죽었어!”

이어진 지네 손잡이의 말에 전갈왕과 두꺼비왕은 황당해했다.

“정답이다. 불필요한 것을 알기 위해 삶을 허비하지 않는 자세야말로 지혜로운 것이다!”

열린 문을 당당하게 지나는 지네왕과 달리 전갈왕과 두꺼비왕은 찝찝한 표정으로 문을 지나쳤다.

“아무것도 답하지 못했는데, 정답이라니…….”

“지네족 대가리엔 뭐가 들었는지 참으로 알 수 없구먼.”

3차 예선이 끝나고 기존 5인 파티로 돌아온 말벌왕.

하필이면 인간 손잡이가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을 주겠다. 세 문제의 답을 맞히면 문을 열어 주지. 고뇌해서 답하도록…….”

한 문제라도 틀리면 탈락.

인간 손잡이의 난이도는 다른 문보다 훨씬 높았다.

“새와 짐승, 나무, 꽃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쇠를 갉아먹고, 강철을 씹어 먹으며 단단한 돌을 가루로 갈아 내며, 왕을 죽이고, 마음을 파괴하며, 높은 산을 깎는다. 이것이 무엇이냐?”

인간 손잡이가 내준 문제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말벌왕 일행.

“다음 문제다.”

“몇몇은 숨으려 하고 몇몇은 속이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만나야 하는 존재. 때가 오면 반드시 알게 되는 그것의 존재는 무엇이냐?”

“마지막 문제를 내겠다.”

“죽은 자를 살려 내며 너를 울고 웃게 하고, 젊게 만들어 주며 찰나에 태어나지만, 평생 지속되는 것은 무엇이냐?”

“세 개의 답이 모두 맞으면 문을 열어 주겠다.”

말벌왕 일행은 시간만 고요히 흘려보냈다.

“시간이 지났다. 정답은 시간, 죽음, 기억이다.”

인간 손잡이는 말벌왕 일행을 한심해하며 축객령을 내렸지만, 문제 풀이를 일찍이 포기한 바퀴왕이 공기의 흐름이 이상함을 깨닫고 어둠 속을 탐색하여 비밀의 문을 발견했다.

“키르, 여기 샛길이 있어!”

“샛길?”

바퀴왕이 벽면을 눌러 감춰져 있던 문을 열자, 인간 손잡이가 말했다.

“어떠한 벽에 부딪혀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야말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법! 나아가도 좋다.”

라미아 손잡이를 선택한 라미아 전사장은 동료의 희생을 강요받았다.

“이 문제에 대답하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자 그럼 누가 답하겠느냐?”

“릴리스 전사장님…….”

“웃기지도 않는 문제다. 답할 필요 없으니 돌아가자.”

후임들의 견문을 넓혀 주기 위해 무투회에 참석한 라미아 전사장은 그대도 돌아섰다.

망설임 없는 그녀의 결정에 라미아 손잡이가 폭소했다.

“동료를 버리는 쓰레기의 답변이 어찌 지혜로울 수 있겠는가. 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답이니, 지나가도 좋다.”

하이 오크들도 라미아들과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다.

“오크들이여! 동료를 선택하겠느냐? 희생을 딛고 나아가겠느냐?”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손잡이는 오크였고, 들어올 때의 문에 새겨진 그림 또한 희생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우린 물러서지 않는다!”

하이 오크 대전사는 망설임 없이 제일 약한 부하를 오크 손잡이 입으로 밀어 넣었다.

와그작와그작.

하이 오크 하나를 맛나게 먹어 치운 손잡이가 말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종족을 위한 냉철한 판단. 정답이다.”

각기 다른 문, 각기 다른 시험을 통과한 몬스터들이 통로를 지나 한 공터에 모였다.

* * *

공터에는 3차 예선 시험 통과자가 꽤 모여 있었다.

본선은 토너먼트 형식의 무투회.

보통 여덟 마리가 진출한다고 들었으므로, 지금 모인 이들이 여덟 마리로 줄어들 때까지 예선이 치러질 듯했다.

‘파티 없이 혼자 움직인 어중이떠중이들만 떨어져 나갔군.’

3차 시험은 개별 시험이 아니었던 터라 유력한 본선 진출 후보의 탈락은 발생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공터에 박힌 마광석의 빛이 은은해졌다.

“해가 졌군. 그럼 다음 예선을 시작하겠다.

미노타우로스들이 3차 시험 통과자의 수만큼 인간을 데려왔다.

모두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었고, 단발에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마력 잠재력이 높은 아이들이야.’

보기 드문 최상품이 잔뜩 있어 욕심이 났는데, 다른 몬스터들도 이를 알아봤는지 군침을 흘렸다.

몇몇은 시험관에게 한입만 달라고 졸랐지만, 시험관은 이들이 4차 예선 시험에 필요하다며 거절했다.

“이건 우마의 제물로 바쳐진 인간들이다. 이걸 통해 너희들의 관찰력과 판단력을 시험하겠다.”

시험 내용은 인간 아이들의 성별을 구별해 낼 것.

여자아이를 선택하면 그 아이가 지낼 곳과 다음 시험을 알려 줄 것이고, 남자아이를 선택하게 되면 탈락이다.

“기회는 한 번뿐. 선착순으로 지낼 곳과 주어질 식량이 정해지며 다음 예선 시험을 바로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선착순이란 말에 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빨리 통과하면 다음 시험을 먼저 진행할 수 있어.’

미노타우로스가 시험 시작을 알렸다.

2차 성장기를 겪지 않은 아이들.

모두 단발이라 육안으로 봐선 남녀 구분이 쉽지 않다.

그러나 나의 마안은 마력을 볼 수 있었고, 인간의 마력에는 남녀 차이가 존재했다.

“전부 여자예요.”

“확실한가?”

끄덕.

“그럼, 누가 더 빠르게 판단하냐의 시험이군.”

“속도전이에요!”

우리 일행은 즉시 시험관에게 말해 아이를 하나씩 골랐고, 키클롭스도 눈을 빛내더니 망설임 없이 아이를 선택했다.

“개미족 다크, 통과다. 갑각왕 헤라클레스, 통과다… 키클롭스 클롭 통과다!”

통과자들은 선택한 아이의 안내를 받아 한동안 지내게 될 장소로 이동했고, 나머지 인원은 여자아이만 모아 둔 곳에서 여자를 찾아내기 위해 고뇌에 빠져들었다.

“그럼 조금 이따 봐요.”

안내된 장소에서 통과 랭킹에 따라 숙소를 배정 받았다.

그리고 다섯 번째 예선 시험에 관한 걸 듣게 됐다.

“1등으로 통과한 네겐 최고의 숙소와 식사가 주어질 것이다.”

흙과 나무로 만들어진 조잡한 집을 배정 받았지만, 그 내부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다섯 번째 예선 시험은 인내와 절제. 3일 후 진행될 예선까지 금식한 채 사고만 치지 않으면 통과다.”

숙소 내부의 음식이 줄어도 안 되고, 시중을 들기 위해 바쳐진 인간이 죽거나 미쳐도 탈락이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통과할 수 있는 시험으로 보이나, 실상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덩치가 큰 강세종들은 하루에 섭취해야 할 식량이 적지 않아.’

곤충족 중에서도 연비가 나쁜 녀석들은 매일같이 사냥을 통해 배를 채워야 하고, 독기를 품고 있는 녀석들은 얼떨결에 인간을 죽일 수 있다.

각종 충동과 본능을 억누르며 3일을 보낸다는 건 종족에 따라선 매우 힘든 일.

‘이거… 판단 미스인걸.’

다음 예선까지 버텨야 하는 시험.

빨리 통과한 자일수록 이곳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진다.

숙소에 들어가 보니 화려한 만찬이 차려져 있었고, 시중을 위한 소녀가 셋이나 있었다.

“네 녀석에게 배정된 최상급 제물 셋이다.”

마력 잠재력이 높은 소녀들은 영양 등급이 매우 높았다.

‘상급인가?’

아무런 수련을 쌓지 않았음에도 기사급의 영양이라니.

무수히 많은 인간을 봤으나 이런 인간은 처음이었다.

꿀꺽.

워커 출신인 나는 그리 강렬한 식탐이 없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최고급 만찬이 앞에 있으니 절로 군침이 돌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내가 아닌 다른 녀석이 1등을 하여,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분명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번 예선은 우대를 받을수록 불리해지는 시험이야.’

4번째 예선을 빠르게 통과한 게 독이 됐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동료들을 믿으며 인내와 절제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3일이란 말이지.’

3일간 정적인 수련과 더불어 정보를 모으기로 했다.

크노소스 궁전 내부에도 개미는 많다.

나는 개미 지배 능력으로 이곳에 대해 파악했다.

‘생각보다 인간이 많아.’

사용하는 언어는 대륙 공용어가 아니었고, 피부색도 조금 다른 게 클라우드 왕국민과는 뿌리가 다른 듯했다.

‘문명도 훨씬 낙후됐고, 미노타우로스를 신으로 모시는 것 같단 말이지.’

구석에 방치한 세 소녀 중 하나에게 말을 걸어봤다.

“이름이 뭐야?”

마신어는 당연히 통하지 않았고, 셋 중 하나가 대륙 공용어를 할 줄 아는지, 내 물음에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우리 마가레 족, 하얀 아이, 미노타우로스, 제물…….”

“왜 제물이 된 거야?”

“부족 많고 약하다. 숲, 위험. 살려면, 미노타우로스 힘 필요.”

숲에는 다양한 원시 부족이 살고, 그들은 미노타우로스를 섬기는 것으로 안전을 보장받는다고 했다.

“제물을 해마다 바치는 거야?”

끄덕끄덕.

몬스터와 공존하는 인간 부족들.

그들의 믿음은 보호에 대한 대가였지, 맹목적이진 않았다.

지금의 개미족은 강세종들에 비해 세력이 약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개미기공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개미족이라면 강세종인 미노타우로스와 일전을 치를 수 있을 터였다.

‘그전에 첨단 화기로 무장해서 밀어 버릴 수도 있을 테지.’

훗날 미노타우로스의 땅을 점령하게 되면 이들에게 개미족 신앙을 퍼트릴 수 있을 것이고, 제물이란 대가를 받을 수 있을 듯했다.

3일이란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흩어졌던 무투회 참석자들이 다시금 모였다.

이번 시험에서 탈락자가 꽤 나왔는지, 수가 많이 줄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어렵지 않게 통과했고, 먹이를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나르본느와 크라스도 문제없이 통과했다.

“배고파… 다크, 뭐 좀 뱉어 봐.”

“며칠 굶는 것 정도야 항상 있는 일이었다.”

디아와 나방왕도 여유로웠고, 문제는 네우라 킹인 네론이었는데.

잠자리 습성을 가진 그는 매일같이 사냥하여 배를 채우는 대식가여서 3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운이 없었다.

내가 영양을 뱉어 줬으나, 네론은 개미 영양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영양을 억지로 삼키던 네론이 어딘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봤다.

그곳엔 피부가 반질반질해진 모기왕이 있었다.

‘그동안 흡수한 힘을 안정시켰군.’

시험관이 인내와 절제의 시험으로 초췌해진 참석자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여섯 번째 예선 시험을 설명하겠다.”

3일간 굶은 채로 시작된 여섯 번째 시험.

“이곳 환상의 길을 지나, 미아의 숲으로 가라.”

목적지인 미아의 숲까지, 꽃밭을 통과하는 게 여섯 번째 시험이었다.

내가 나방왕에게 눈짓하자 그가 추가로 설명해 줬다.

“환상의 길은 환각 작용의 독을 이겨내는 시험이에요.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인 독이 아니기에 독 내성이 있어도 버티기가 힘들어요.”

설명을 마친 나방왕이 우릴 버렸다.

“동료가 많을수록 위험해지니, 전 따로 움직일게요.”

나방왕이 떠나고 참석자들의 이동이 시작됐다.

일행의 내성을 믿었는데, 크라스, 네론이 이상 증세를 보였고, 헤라클레스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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