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24화 (123/189)

124화. 미로의 숲 (1)

7차 예선 시험의 공략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숨어서 버티기에 돌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동맹을 늘려 경쟁자 사이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나와 나르본느의 은신 능력이라면 첫 번째 방법으로도 충분했지만, 헤라클레스와 디아까지 본선으로 데려갈 생각이라면 강세종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다른 약세종 참가자들도 이를 눈치챘는지, 라미아 무리가 하이 오크에게 다가가 제안했다.

“하이 오크 대전사 하크. 당신 혼자선 숲에서 버티기 힘들 거예요. 그러니 우리와 함께해요.”

주변을 둘러본 하이 오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라미아는 강력한 힘과 조직력을 자랑하는 몬스터다.

개미족으로 치면 울트라 급이라 할 수 있는데, 이곳에 참석한 라미아들은 준왕급 내지는 그에 근접한 전사들이었다.

나방왕은 우리 파티에 끼는 대가로 남은 참석자들의 목적을 하나씩 말해 줬다.

라미아 전사장 릴리스의 목적은 후임 양성.

하이 오크 대전사 하크의 목적은 무투회에서 얻을 수 있는 기연들과 강자와의 혈투.

트롤 킹의 목적은 미노타우로스들의 힘을 빌려 오거 숲에서 사라진 동족들의 행방을 알아보는 것과 개미족에 대한 견제.

“말벌족, 모기족, 바퀴족에 대한 정보는 없어요.”

전갈왕도 강세종의 힘을 빌리기 위해 왔고, 지네왕과 두꺼비왕은 버드나무 숲으로의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었다.

무투회 우승을 목적으로 하며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건 트롤 킹과 전갈왕 정도.

우리 쪽에서 우승 가능성이 있는 건 헤라클레스, 디아, 그리고 나 정도였으나, 활약할 기회가 없었던 나의 힘은 드러나지 않았다.

라미아는 하이 오크에 이어서 트롤 킹을 포섭하려 했다.

“나는 트롤들의 왕. 혼자서도 충분하다.”

“그렇군요. 생각이 바뀌면 절 찾아 주세요.”

트롤 포섭에 실패한 라미아는 말벌왕을 찾았다.

“내게 무슨 이익이 있지?”

“버틸 자신이 있다면 이익은 없죠.”

고민 끝에 말벌왕은 라미아와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만으로 충분한가?”

“아뇨. 우리 만으론 저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전갈왕과도 이야기가 잘 풀린 그녀는 마지막으로 헤라클레스를 찾아 왔다.

“저희만으론 강세종의 사냥감으로 전락할 뿐이에요. 그러니, 동맹을 제안하죠. 함께 강세종을 사냥합시다!”

“강세종 사냥이라… 나쁘지 않군.”

헤라클레스가 승낙하며 트롤 킹을 제외한 약세종이 하나로 뭉쳤다.

7차 시험 개시 전까지 작전 회의를 겸한 주도권 싸움이 있었다.

전갈왕과 헤라클레스가 한발 뒤로 물러나며 라미아 무리가 주도권을 잡게 됐지만, 그들이 세운 전략이 나쁘지 않았던 터라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이번 예선, 힘을 합쳐 강세종의 수를 최대한 줄여 뒀으면 합니다. 그러니 목적을 위해 과거의 은원은 잠시 잊었으면 해요.”

강세종을 상대하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했지만, 불안 요소가 없는 건 아니었다.

‘믿을 놈이 없단 말이지.’

* * *

라미아가 동맹을 제안하며 돌아다닐 때, 미노타우로스들이 오거와 키클롭스에게 제안했다.

“약세종부터 치우자!”

오그무트는 비릿하게 웃으며 키클롭스들의 대장 클롭에게 말했다.

“오거는 제일 강한 놈부터 친다.”

클롭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답했다.

“걸어오는 승부는 피하지 않겠다.”

오거와 키클롭스가 각을 세우자 우노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약세종은 우리가 제거할 테니, 방해만 하지 마라.”

“알아서 해라.”

“쉽진 않을 거다.”

“그래 봤자 약세종이지.”

미노타우로스의 말에 오그무트와 클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 * *

나와 나르본느는 능력을 사용해 각 집단의 전략적 목표를 파악해 둔 상태였다.

그렇다고 동맹원에게 정보를 공유하진 않았다.

정보를 공유하려면 필연적으로 내 능력을 밝혀야 하는데,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 상대에게 밑천을 드러낼 만큼 나와 나르본느는 어리석지 않았다.

나방왕이 꾸준히 정보를 물어 오며 오거와 키클롭스의 움직임을 동맹원에게 알렸다.

그로 인해 나방왕의 정보 수집 능력이 드러났지만, 이 정도도 하지 못하면 짐밖에 되지 않는 놈이니 이제야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고 할 수 있었다.

예상한 삼파전이 없을 듯하여 어부지리를 노리려던 동맹의 전략도 수정됐지만, 이번 예선에서 강세종을 줄이겠다는 목표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거와 키클롭스가 붙는다면 차라리 잘됐어요. 저희도 전력을 다해 미노타우로스를 칩니다!”

라미아가 미노타우로스의 전력을 분석하여 대응책을 세울 때, 나는 나르본느와 크라스를 전력에서 제외하게끔 했다.

“우고, 우노, 우도. 이 셋만 막아 낼 수 있으면, 나머지는 저희가 한 마리씩 처리할 수 있어요.”

라미아의 주장으로 셋을 견제할 최강자를 선정했다.

헤라클레스와 전갈왕 스콜의 무력은 모두가 인정한 것이었고, 남은 한 자리에는 지네왕, 두꺼비왕, 디아가 후보에 올랐다.

디아가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건 6차 시험 때 폭주한 헤라클레스를 상대한 게 평가된 것이었다.

“크크크, 나보단 하와 영감이 더 강할 거다.”

“이 나이에 우마십장 후보를 상대하라니, 난 좀 빼 주게.”

지네왕과 두꺼비왕이 무력 서열 3위의 역할을 거절하여 디아가 서열 3위가 됐다.

갑각왕, 거미왕, 전갈왕 외에는 모두 종족과 이름으로 불렸다.

이는 왕급끼리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미족이신 다크 님은… 적당한 녀석 한 마리만 견제 부탁해요.”

“그러지.”

과소평가된 나는 잡몹 견제를 맡았다.

3일이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7차 예선을 시작하겠다.”

숲으로 들어가는 순서가 모두 달랐기에, 우린 곧바로 동맹원을 찾아 나섰다.

“다크, 저쪽이다!”

네론을 비롯한 날아다니는 몬스터들이 동맹원을 한 장소로 모았다.

받은 마석이 깨지거나, 숲에서 벗어나면 탈락.

두 경우를 조심해야 해서 버티기에 들어가는 게 정석이라 할 수 있지만, 정석을 택한 건 트롤 킹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경쟁자를 줄이기 위해 모여들어 네 개의 집단이 형성됐다.

오거와 키클롭스가 숲의 중앙에서 격돌했고, 미노타우로스와 약세종이 숲의 동쪽에서 맞붙었다.

미노타우로스의 수는 열다섯 마리.

나르본느와 크라스가 후방으로 빠지며 라미아와 가드비를 제외한 우리 쪽 전력은 열두 마리.

스무 마리의 라미아를 더하면 서른두 마리가 되고, 가드비까지 더해지면 서른네 마리가 된다.

열둘이서 열넷을 견제하는 사이 라미아들이 제일 약한 한 마리를 맡아 제거하기로 했다.

“제가 둘을 유인해 볼게요!”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나방왕과 바퀴왕이 둘씩 유인하여 시간을 끌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전장이 넓게 형성되어 전황을 알기 어려웠지만, 나는 개미 지배로 일행들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호언장담과는 달리 한 마리만 유인하게 된 바퀴왕 크로치.

워낙 재빠른 녀석이라 잡힐 것 같진 않으나, 미노타우로스를 오래 동안 붙잡아 두긴 힘들어 보였다.

말벌왕은 가드비들과 함께 한 마리의 미노타우로스를 괴롭혔다.

“상당히 강하군. 하지만 내가 더 강하다.”

말벌창에 찔리면 순간적으로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는 독이 주입되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호흡이 힘들어지고 쇼크를 일으켰다.

‘말벌왕 녀석은 어렵지 않게 한 놈 처리하겠어.’

모기왕은 섬뜩한 위기를 몇 번 겪더니, 맡은 녀석을 네론에게 떠넘기곤 도주해 버렸다.

“어딜 도망가느냐?”

“쳇, 두고 보자 소머리!”

바퀴왕이 놓친 한 마리와 모기왕이 상대하던 한 마리를 추가로 상대하게 된 네론.

자기 선에서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내게 구조 신호를 보냈다.

네론의 속도라면 곧바로 당하진 않겠지만, 체력이 고갈되면 위험해진다.

‘도우러 가야겠는걸.’

지네왕은 팔을 채찍처럼 사용하여 미노타우로스의 공격을 쳐내며 팔목과 무릎을 박살 냈다.

“크크크, 약한 녀석이 걸렸군! 재밌어!”

죽일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지네왕은 그러지 않았다.

“날 더 즐겁게 해다오!”

두꺼비왕은 나무 사이를 오가는 입체 기동을 선보이며 드롭킥을 날렸다.

강력한 발차기에 당황하던 미노타우로스는 중독 증세를 일으키더니, 호흡이 곤란한지 매우 힘들어했다.

‘강해.’

약한 상대를 붙여 준 게 아닌데 놀라웠다.

압도하는 그들을 보니 지네왕과 두꺼비왕은 상당한 수준의 강자였다.

다만, 둘은 나와 마찬가지로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자신의 상대를 가지고 놀았다.

“개미족, 네 상대는 나다!”

“꼭 나여야 하나?”

“그게 무슨 말이지?”

“따라와 보면 안다.”

나는 미노타우로스와 격돌하지 않고 급히 이동했다.

“거기 서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지네왕과 두꺼비왕이 보였다.

“뭐야?”

“이것 좀 맡아 줘!”

나는 그들에게 내가 맡은 녀석을 떠넘기곤 네론을 도우러 갔다.

네론과 합류하면 2대 3 상황이 된다.

그렇지만 네론의 공격이 미노타우로스에게 먹히지 않아, 사실상 1대 3이나 마찬가지일 거다.

아무리 나라도 미노타우로스 셋이 상대라면 고전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암습으로 수를 줄여야 해’

놈들은 네론에게 정신이 팔려 있어, 암습하기에 최적의 상황.

은신으로 기척을 감추고 한 마리와의 거리를 좁혔다.

한 손으론 암흑마창을 휘둘러 상대의 살점을 뜯어냈고, 다른 한 손으론 미스릴 창을 찔러 넣어 상급 개미기공 심화 단계인 폭렬기를 사용했다.

마기가 순간적으로 압축됐다 터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쾅!

한 마리의 아킬레스건을 날려 버린 나는 다시금 기척을 숨기며 숨었다.

미노타우로스들은 숨어 있는 날 경계하느라 네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됐다.

‘좋아.’

하이 오크는 미노타우로스와 박빙의 격전을 치루고 있었고, 우고, 우노, 우도는 전갈왕, 헤라클레스, 디아가 각각 맡았다.

디아에게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우도를 맡게 한 건 나의 의도였으나, 놈들도 디아에 대한 정보가 있었는지 우노와 우도가 위치를 바꾸며 헤라클레스와 디아의 상대가 바뀌었다.

나름 두뇌파라는 우노를 상대하게 된 디아.

힘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디아는 충격량이 쌓일수록 강해진다.

‘나를 제외하면 전투 준비를 마친 디아를 이길 수 있는 몬스터는 없어.’

그러니 디아가 질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문제는 헤라클레스와 전갈왕.

둘은 우도와 우고를 상대로 언제 깨져 나갈지 모를 강렬한 격돌을 이어 갔다.

그때, 라미아들의 전투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녀들은 몬스터 부산물로 무장했고, 각자 다루는 무기에 따라 역할이 달랐다.

큰 방패와 짧은 검을 든 라미아는 탱커 역이었고, 창을 든 라미아는 견제를 했으며 후위의 궁수들이 딜러 역을 맡았다.

‘화살에 독이 묻어 있어.’

그렇게 궁수들이 짤짤이로 미노타우로스를 괴롭혔고, 탱커 뒤에 숨어 있던 양손 검을 든 라미아들이 틈을 노려 강력한 일격을 날렸다.

‘탱커 둘, 견제, 근딜, 원딜이 한 마리씩 있는 건가?’

다섯 마리씩 조직된 움직임을 보이는 그녀들이 사방에서 압박하니 미노타우로스는 가랑비에 옷 젖듯 붉은 피를 뿌렸다.

‘완전 레이드군.’

“내가 졌다!”

라미아에게 레이드 당하던 미노타우로스가 항복하며 기절했다.

라미아는 그가 가지고 있던 마석을 깨곤 작전대로 하이 오크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 *

라미아가 떠난 자리에 모기왕이 나타났다.

그녀는 기절한 미노타우로스의 상처에 흡혈관을 찔러 넣었다.

“하… 바로 이 맛이야! 여기 오길 잘했어.”

미노타우로스가 미라가 될 때까지 피를 흡수한 모기왕의 털이 핏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더… 더 많은 피가… 강자의 피가 필요해!”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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