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25화 (124/189)

125화. 미로의 숲 (2)

마석이 깨지며 발생한 마력 파동을 읽은 미노타우로스들이 구조를 위해 미로의 숲에 들어왔다.

그들은 시험관임을 나타내는 검은 가죽을 팔에 둘러 참석자와의 충돌을 피했다.

“늦었군.”

미라가 된 동족의 시체를 본 시험관들이 차갑게 분노했다.

“피를 모두 빨렸어.”

“모기 놈의 짓인가?”

“그런 것 같군요.”

시험관들이 의논 끝에 예선에서 모기왕을 배제하기로 했다.

“놈은 맹세를 어겼다.”

“명예가 없는 녀석에게 삼신전에 출입을 허용해 줄 순 없다.”

시험관들이 모기왕을 쫓기 시작했다.

* * *

라미아들이 하이 오크를 도와 한 마리의 미노타우로스를 더 제거했을 무렵, 말벌왕도 하나를 처리했다.

지네왕과 두꺼비왕도 세 마리를 상대로 압도해서 한결 여유로운 상황이 될 뻔했는데…….

나방왕이 붙잡혀 패대기쳐졌고, 바퀴왕이 방심하다가 상하로 잘렸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만큼 반으로 갈렸다고 죽지 않는 바퀴왕이지만, 마석도 깨지고 회복에 시간도 걸릴 듯하니 무력화 됐다고 할 수 있었다.

나방왕과 바퀴왕을 처리한 미노타우로스 세 마리가 라미아와 하이 오크를 습격했다.

라미아 세 마리가 미노타우로스의 도끼에 찍히며 시작된 전투.

하이 오크가 한 마리를 맡긴 했으나, 마력이 소진됐는지 벅찬 듯 보였다.

‘이거 좋지 않은걸.’

말벌왕은 전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있어 여유롭게 숨을 고르고 있었고, 지네왕과 두꺼비왕은 자신들의 상대를 처리하곤 전장을 이탈했다.

‘저 녀석들!’

예상은 했지만, 작전에 따르지 않는 녀석들 때문에 전장에 남은 약세종이 위험에 처했다.

* * *

다크가 믿고 있던 디아는 우노의 힘에 밀려 구석으로 몰렸다.

슬슬 디아의 전력이 폭증하는 시점에 우노가 말했다.

“동족들의 이주를 방해했다지?”

“…….”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붙어 보니 정말 터무니없군. 아무리 강하게 밀어붙여도 타격을 받기는커녕 점점 강해지다니.”

마신어를 알아듣지 못해 그대로 돌진한 디아.

“하지만 시험은 무식하게 힘만 세다고 통과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우노는 그런 디아를 받아치며 멀찍이 날려 버렸다.

야구공처럼 멀찍이 날아간 디아가 떨어진 곳은 미아의 숲 바깥.

시험관 두 마리가 놀란 눈으로 옆에 떨어진 디아를 쳐다봤다.

“깜짝이야…….”

디아가 다시 숲으로 들어가려 하자, 두 시험관이 앞을 막았다.

“어디 가는 것이냐?”

“숲을 이탈했으므로 넌 탈락이다.”

마신어를 알아듣지 못한 디아는 손에 잡힌 대검을 내려다보며 잠시간 고심하다 자신의 실책을 인지하곤 물러섰다.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은 디아는 숲속에서 웃고 있는 우노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당했군.”

우노가 숲으로 자취를 감추자 디아가 독백했다.

“뭐, 다크라면 내가 빠진 상황도 대비해 뒀겠지.”

디아는 다크를 굳게 믿고 있었다.

* * *

전혀 대비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디아가 장외 처리 당했어!’

우승 후보 한 놈 정도는 줄여 줬어야 할 디아가!

‘큰일이다!’

우노가 전장에 합류하면 균형이 무너진다.

‘지네와 두꺼비의 공백도 작지 않아.’

이쪽은 멋대로 움직이는 오합지졸.

시간이 지날수록 진형이 무너질 텐데.

‘너무 빨리 무너졌어!’

거기다 지네왕과 두꺼비왕의 움직임이 거슬렸다.

‘설마 나르본느와 크라스를 노리는 건가?’

그러고 보니, 둘의 목적은 버드나무 숲으로의 영역 확장.

즉, 나르본느의 제거였다.

‘타이밍이 좋지 않아.’

당장이라도 나르본느를 도우러 가고 싶지만, 네론을 두고 갈 순 없다.

‘네론과 함께 물러나면 헤라클레스가 위험해져.’

헤라클레스에게 전력이 집중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지켜야 하는데…….

“하, 빌어먹을.”

고심하면서도 한 마리의 아킬레스건을 터트렸다.

이젠 셋이던 상대가 하나만 남았다.

“비겁한 놈! 숨지 말고 나서라!”

남은 적의 말은 무시하고 개미 지배로 라미아들의 상황을 살폈다.

위기에 처한 라미아와 하이 오크 앞에 모기왕이 나타났다.

‘저 녀석, 뭔가 변했어.’

모기왕은 라미아와의 격전으로 약화된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의 등에 붙어 흡혈관을 찔러 넣었다.

한참이나 피를 빨린 미노타우로스가 도끼를 내리며 말했다.

“내가 졌다!”

“그래서 뭐?”

“…….”

“졌으면 밥이 되는 거지, 뭘 항복하고 있어.”

“네놈… 맹세를 지키지 않을 셈이냐?”

“맹세? 그게 뭐야? 먹는 건가?”

모기왕은 상대가 항복 선언을 했음에도 피를 흡수하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네놈!”

미노타우로스가 나무를 향해 돌진해 등으로 들이받으려는 순간, 모기왕이 등에서 떨어졌다.

쾅.

나무를 박은 미노타우로스의 등이 터지며 피를 뿌렸다.

“멍청하네.”

모기왕은 투우사처럼 흥분한 미노타우로스를 요리조리 피하며 흡협관을 쏘아 피를 야금야금 갈취했다.

“이거야! 내가 원한 게 이런 거야! 더! 더 필요해!”

과다 출혈로 미노타우로스가 쓰러지자 격분한 동료 미노타우로스 두 마리가 하이 오크와 라미아를 무시하고 모기왕을 향해 돌진했다.

모기왕은 그런 두 놈을 여유롭게 피해내며 피를 빨았다.

“피가… 더 많은 피가 필요해!”

모기왕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이 전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기세가 전해질 정도였다.

“이 기운, 설마 모기 녀석인가?”

네론도 폭증한 그녀의 마력을 느끼곤 의아해했다.

‘피를 흡수할수록 강해지나 보군.’

모기왕의 한계를 알 수 없으니 걱정되는 부분이 있긴 했으나, 당장에 급한 건 나르본느를 노리는 지네왕과 두꺼비왕의 견제였다.

‘모기왕을 이용하자!’

“네론!”

나는 네론에게 우노를 비롯한 미노타우로스들을 모기왕에게 몰아주게끔 했다.

‘미노타우로스 둘을 상대로도 피를 빨 수 있는 녀석이야.’

나는 모기왕이 미노타우로스에게 큰 피해를 안겨 주길 바랐다.

네론이 인근의 미노타우로스들을 도발해 모기왕 쪽으로 유도할 때, 나는 나르본느와 크라스가 있는 곳으로 다급히 이동했다.

근처에 있던 말벌왕이 나를 뒤쫓아 왔다.

날아다니는 녀석이라 나보다 좀 더 빨라 떨쳐 낼 순 없었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 거지?”

“네가 상관할 바 아니다!”

섬뜩한 무언가를 느낀 나는 급히 옆으로 몸을 틀었다.

쾅!

‘뭐야?’

나와 말벌왕이 피한 그것은 두꺼비왕의 혀였다.

“호… 이걸 피하다니. 제법 하는군.”

고속으로 날아와 순식간에 회수되는 혀.

음속을 돌파한 놈의 혀는 총알과 다르지 않았다.

‘눈으로 보고 피하면 늦어.’

“갈파고스에게 귀찮은 걸 떠넘겼던 개미구나. 어딜 그리 급히 가는 것이냐?”

“너야말로 왜 작전에 따르지 않고 전장을 이탈했지?”

나의 물음에 두꺼비왕은 왜 당연한 걸 묻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 사냥하러 가는 게 아니겠나?”

“네가 말한 사냥이, 거미 사냥이냐?”

“잘 아는구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한 손에는 암흑마창, 다른 손으론 미스릴 창을 빼 들었다.

“호. 나와 싸울 생각이냐?”

“동료를 사냥하겠단 녀석을 그냥 보내 줄 정도로 매정하진 않아서 말이야.”

“몬스터가 정이라니,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거기 말벌족 녀석도 같은 생각이냐?”

말벌왕도 전투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난 녀석과 관계없다. 그냥 네놈을 사냥하고 싶을 뿐.”

말벌왕이 마력을 잔뜩 끌어올려 두꺼비왕을 압박하자 그가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 둘이라면 날 어찌할 수 있다고 보다니. 독왕이라 불리던 내가 참으로 우스운 꼴이 됐구나.”

두꺼비왕이 갈무리하고 있던 마력을 개방하자, 놀란 말벌왕이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뒷걸음쳤다.

그도 그럴 게, 두꺼비왕이 개방한 마력이 무투회의 우승 후보들을 가뿐히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두꺼비왕이 당황한 말벌왕을 향해 말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몬스터가 있다. 너희 같은 피식자와 나와 같은 포식자지.”

놈이 다리를 구부려 돌진 자세를 취했다.

‘위험해!’

섬뜩함을 느낀 나는 급히 몸을 틀었다.

“피식자가 아무리 발악해 봐야 먹이에 지나지 않노라.”

팟!

놈이 미사일처럼 앞으로 날아들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큭!’

나와 말벌왕은 직감에 따른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 냈다.

“이것도 피하다니. 확실히 왕급이라 반응이 좋군.”

완전히 피한 줄 알았지만, 놈이 두른 마기에 스쳤는지 말벌왕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쿨럭!”

“개미족에겐 산성 내성이 있고, 말벌족에겐 독 내성이 있을 테지. 하지만, 내 독은 그 정도 내성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시금 돌진해 온 놈이 팔을 휘둘러 왔다.

“개미야? 독 내성을 갖춘 말벌 놈이 쓰러졌는데, 네놈은 꽤나 버티는구나.”

나는 놈의 공격을 피하며 패턴을 읽었다.

“네놈은 약한 독으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놈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 나를 가지고 놀려 했고, 나는 놈의 총알 같은 혀를 경계하느라 손발이 꼬여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떠냐! 슬슬 몸이 말을 듣지 않겠지? 이것이 죽음이란 것이다!”

놈이 전투 중에 흩뿌리는 건 독 속성 마강기.

그 밀도는 강세종에게도 먹힐 정도.

한참이나 놈과 붙으며 의문이 생겼다.

이 녀석의 독은 다른 우승 후보들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

원하는 게 있다면 힘으로 취할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무투회에 참석한 걸까?

‘버드나무 숲을 노린다고 했지.’

세력도 없으면서 영역을 넓히려는 이유는?

“나르본느를 노리는 이유가 뭐지?”

놈이 멈춰서더니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의 난 버드나무 호수의 주인으로 독왕이라 불렸었지…….”

그가 수백 년도 더 전의 이야기를 꺼냈다.

“전대의 갑각왕이 내 손에 죽었고, 강세종들조차 내게 공물을 바쳤노라!”

독으로 숲을 제패했던 독왕 하와.

독 내성이 강한 나르본느를 만나 패배의 쓴맛을 알게 됐다.

남쪽으로 쫓겨난 그는 설욕을 갚기 위해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든 맹독들을 섭취했다고 한다.

“오백 년이다! 독지에서 오백 년간 축적한 내 힘은 아무도 막아 낼 수 없어! 설령 독 내성을 갖춘 놈이라도 내겐 무의미하다!”

놈은 독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말이 길어졌군. 거미 녀석은 지네 놈에게 당했겠어 클클.”

“…….”

“그럼 슬슬 끝내 주마.”

놈이 두르고 있던 짙은 독기.

풀과 나무를 시들게 한 죽음의 마강기가 그의 양손에 집중되어 밝은 녹빛으로 빛났다.

“그럼 죽어라!”

자부심을 넘어 자만으로 똘똘 뭉쳐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독왕 하와.

나는 그에게 한 마디 해 줬다.

“이게 다냐?”

독왕은 내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는지, 전과 다르지 않은 패턴으로 돌진했다.

“또 이건가?”

처음 놈이 마력을 드러낼 때만 해도 그의 힘을 경계했으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확실히 네놈의 독은 대단한 것 같아.’

독으로 최강이라 불리던 하와.

독을 빼면 그저 평범한 왕급 몬스터에 지나지 않았다.

‘운이 나쁜 녀석이네.’

과거 나르본느의 독 내성을 넘어서지 못해 굴욕을 맞본 그는 나라는 존재를 만나 또 한 번 벽을 마주한 셈이다.

푹! 쿵!

돌진한 녀석의 면장을 마창으로 쳐 내고, 미스릴 창으로 어깨를 뚫어 바닥에 박제해 버렸다.

“컥!”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의 놈.

“어떻게…….”

“나르본느도 그렇게 무식하게 돌진해 오진 않아.”

돌진기는 읽히기 쉽다.

그래서 나르본느는 의도를 숨기려 페이크 동작을 섞었는데, 놈은 그런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냐!”

놈은 자신의 움직임이 읽힌 것보다 내가 중독되지 않은 것에 격하게 반응했다.

“개미 따위에게 내 독이 통하지 않을 리가 없다!”

“미안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놈이 창을 그러쥐며 악귀 같은 표정으로 마력을 밀어 넣었다.

“죽어라! 고통에 몸부림쳐라! 죽어!”

고작 독이 막혔다고 현실 부정이라니.

“한심하군.”

발버둥 치는 놈의 다리 한 짝을 마창으로 뚫어 땅에 고정한 나는 손으로 놈의 가슴을 헤집어 마석을 그러쥐었다.

“감히 맨손으로 내 심장을 그러쥐어! 죽음을 자초하다니!”

“네놈, 아직도 모르겠나?”

“…….”

벙 찐 표정의 두꺼비왕.

“나의 독 내성은 나르본느의 일억 배 정도 된다.”

나는 놈을 한번 비웃어 주고 마석을 꺼냈다.

녀석은 죽어서도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이었다.

“네놈에겐 독왕이란 칭호보단 불운왕이란 칭호가 어울리겠어.”

끄집어낸 마석은 영롱한 녹색으로 빛났다.

‘특급 마석중에서도 특상품이군.’

마석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 주변 땅이 죽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흡수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사교위에 넣어 뒀다.

독왕에게 스친 것만으로 전투 불능 상태인 말벌왕이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봤으나, 놈에게 허비할 시간은 없었다.

‘나르본느가 위험해!’

내가 독왕을 상대하는 동안 지네왕의 습격을 받은 나르본느가 위기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모기왕은 라미아와 하이 오크의 피까지 빨았고, 몰려오는 시험관들의 피까지 흡수해 무한정 강해지고 있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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