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하늘의 제왕
모기왕이 라미아를 도와 미노타우로스 셋을 제압했을 때, 라미아 전사장과 하이 오크가 고마움을 표하곤 다음 작전을 이행하려 했다.
“갈파고스와 하와 님은 문제없을 거예요. 버플과 크로치는 위험할 수 있으니 도우러 가죠.”
“내가 왜 가?”
모기왕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더니, 과다 출혈로 쓰러진 미노타우로스들의 몸에 흡혈관을 박아 남은 피마저 흡수해 버렸다.
“퀴토! 다음 예선을 생각하면 죽이지 않는 게…….”
라미아는 미노타우로스들의 분노를 걱정하여 모기왕을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쫑알쫑알 되게 시끄럽네!”
푹!
모기왕은 방심한 라미아 전사장과 하이 오크 대전사의 몸에 흡혈관을 박아 피를 빨았다.
“퀴토!”
“네놈!”
기습에 당하긴 했으나, 둘도 준왕급 수준의 몬스터.
흡혈관을 자르기 위해 무기에 마강기를 두르자, 모기왕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흡혈관을 회수했다.
“언젠가 배신할 줄 알았지만… 조금 이르군요, 퀴토.”
“배신? 내가? 웃기네. 밥 좀 먹었다고 배신이라니.”
흡혈관에 당한 상처는 피가 응고되지 않아, 계속된 출혈이 발생했다.
미노타우로스들이 출혈 과다로 쓰러진 것 또한 피가 멎지 않아서였다.
모기왕은 라미아들 사이를 종횡하며 흡혈관을 쏘기 시작했다.
“다른 녀석들이 찾아오는 동안, 네놈들이 내 후식이야.”
“다들 뭉쳐! 저 녀석을 사냥한다!”
라미아들이 모기왕 레이드를 시작할 무렵, 네론이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를 유인해 왔다.
미노타우로스는 죽은 동료들을 보곤 격분하여 모기왕을 향해 돌진했다.
“네놈! 맹세를 어겼구나!”
“그런 거 모른다니까!”
동료들의 복수에 눈이 먼 미노타우로스는 금세 과다 출혈로 쓰러졌다.
“분하다…….”
그사이 살아남은 라미아들이 대피하긴 했으나, 하이 오크는 모기왕을 쫓다 자멸하고 말았다.
“녹색 피도 나름 맛있어.”
여덟 마리의 시험관이 몰려와 모기왕을 포위했다.
“당신들론 퀴토를 막을 수 없어요! 우마십장을 불러와야 해요!”
지혈제로 출혈을 막은 라미아 전사장 릴리스가 시험관들에게 경고했으나, 동료들의 죽음에 광분한 시험관들은 그녀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우리로 충분하다!”
네론을 쫓다 모기왕의 섬뜩한 마력을 느낀 우노.
“저긴가?”
네론을 무시한 우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네 명의 시험관이 당한 상태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 * *
7차 예선 시작 직후, 오그무트와 클롭이 맞붙었다.
“오거류의 권각술인가?”
클롭은 막대한 거력이 실린 오그무트의 공격을 키클롭스에게 전해지는 방검술로 막아 냈다.
“네놈도 꽤 하는군.”
클롭이 수세에 몰리는 듯했으나, 그들의 승부는 쉽사리 갈리지 않았다.
다른 오거와 키클롭스들이 전장 곳곳에 널브러졌을 때에도 오그무트와 클롭의 승부는 갈리지 않았다.
클롭의 방어를 뚫기 어렵다고 판단한 오그무트가 여러 차례 도발해 봤으나 효과는 없었다.
콰아앙!
갑자기 발생한 마력의 파동.
둘은 동시에 거리를 벌리며 모기왕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전장에서의 최강자는 우리가 아닌 것 같군.”
“동감이다.”
“최강부터 꺾고 오겠다.”
“우리도 가지.”
치열한 격전으로 쓰러져 있던 오거들과 키클롭스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더니 모기왕이 느껴지는 장소로 이동했다.
* * *
우고와 스콜, 우도와 헤라클레스도 전투 중에 모기왕의 마력을 느꼈다.
우고와 우도는 동족들을 걱정했으나 스콜과 헤라클레스는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한 상대를 더욱 몰아붙였다.
격전을 이어가는 중에도 모기왕의 마력이 점점 강해졌고, 자신들의 상처에서 피가 증발하여 모기왕에게 흡수되고 있음을 느낀 우고와 우도는 잠시간 휴전을 제안했지만…….
“내 알 바 아니다.”
“네놈이 걱정해야 할 건 나다.”
스콜은 휴전의 필요성이 없다고 느꼈는지 우고를 향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고, 헤라클레스 또한 휴전 제안을 거절했다.
“피가 빨리고 있는 게 안 느껴지냐?”
“알고 있다.”
“모기 놈부터 제거하지 하지 않으면, 예선이고 뭐고 모두 전멸이란 말이다!”
우도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한 말에 헤라클레스는 담담히 대답했다.
“그전에 네놈을 쓰러뜨리고 모기왕도 쳐 죽이면 된다. 가고 싶으면 날 꺾고 가라!”
“소원대로 죽여주마!”
쾅!
* * *
전생의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모기가 72만, 인간이 47만, 뱀이 5만, 개가 2만 5천 명의 인간을 죽인다고 했다.
‘모기, 파리, 바퀴벌레는 3대 해충이었지.’
전생에서도 활약한 만큼 이곳 세상의 모기족도 포텐셜이 대단했다.
피를 충분히 흡수한 모기왕의 털이 붉게 빛났고, 어느 순간부터 피를 조종할 수 있게 됐다.
“이거야! 이게 바로 모스퀴토 퀸의 진정한 힘이야!”
순식간에 웬만한 왕급 이상의 무력을 가지게 된 모기왕.
흡혈관 없이도 숲의 피를 끌어와 흡수할 수 있었고, 일대에 붉은색과 초록색의 안개를 형성하여 자유롭게 다루는 모습을 보였다.
피의 안개는 접촉한 대상의 몸에 침투하여 상처를 악화시켜 피를 뽑아냈다.
오거와 키클롭스는 피의 안개 속에서 모기왕을 잡으려 했으나, 놈은 치고 빠지기 전략으로 강세종들을 괴롭혔다.
약한 강세종부터 하나둘 쓰러졌고, 우노를 노리다 다리 한쪽을 잃은 모기왕은 그로부터 일정 수준의 강자는 직접적으로 상대하지 않았다.
뭐, 건들지 않아도 피의 안개만으로 피를 뽑아 가고 있으니, 강세종의 전멸도 머지않아 보였다.
잃은 다리도 금세 재생해 버리는 모기왕.
외골격이 없어 방어력이 약하단 약점이 있지만, 왕급을 초월한 이동속도로 회피력을 갖추며 방어력 문제를 극복해 버렸다.
‘이걸 어쩌나…….’
나는 멀찍이서 모기왕이 강세종을 짓밟는 걸 지켜봤고, 네론도 자신의 임무를 마쳤다는 듯 내 옆에서 휴식을 취했다.
‘원래도 빠른 녀석이 히트&런까지 구사하고 있단 말이지.’
이미 미아의 숲 전역이 놈의 전장이 된 상황.
나는 물론이고, 이곳의 모든 몬스터가 놈의 공격 범위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르본느나 크라스만 무사했어도…….’
탁월한 반응속도와 공속을 가진 크라스라면 모기왕이 아무리 빨라도 카운터를 먹일 수 있고, 나르본느의 거미줄은 날벌레 속박에 탁월했다.
‘두꺼비랑 지네를 너무 빨리 처리했어.’
두 녀석도 모기왕과의 상성이 괜찮았을 텐데 말이다.
지금 보니, 모기왕을 사냥할 만한 종족은…….
‘네론 뿐이야.’
잠자리의 특성을 가진 네론은 모기족의 천적이긴 하지만, 고속 이동을 제외하면 준왕급 수준인 그가 상대하기에는 모기왕이 너무 강해졌다.
“안타깝지만, 모기왕의 마석은 포기해야겠어.”
땅속에 숨어 버티기에 들어가자고 제안할 생각이었는데, 네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포기하는 거지?”
“그야… 놈이 너무 컸으니.”
“그래봤자 모기족이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오만함을 보이는 네론.
‘그래그래, 고작 모기지. 강세종들을 한 끼 밥으로 여기는 모기이긴 하지만…….’
나는 네론에게 헤라클레스를 불러오게 했고, 적당한 장소를 선정하여 땅을 팠다.
“그럼 다녀오겠다.”
네론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기왕의 마력이 사라지며 피의 안개도 흩어졌다.
“마력을 감춘 건가?”
뭣 때문에 기척을 감췄는지 이해가 안 되서 멍하게 있는데, 네론이 돌아왔다.
“뭐야? 벌써 갔다 온 거야?”
“아니…….”
가는 길에 뭐라도 먹었는지,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네론이 길 가다 주웠다며 내게 뭔가를 건넸다.
받아 든 것은 영롱한 핏빛 마석이었고, 그동안 봐 온 어떤 마석보다 강렬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어라? 어떻게 된 거지?’
* * *
헤라클레스를 향해 이동하던 네론은 모기왕에게 포착되어 습격을 받았다.
모기왕의 속도는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빨랐으나, 네론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 냈다.
“이걸 피해?”
“모기 주제에 건방지군.”
“잠자리 놈이!”
모기왕은 네론이 자신의 천적인 네우라 킹임을 알았지만, 그녀는 일말의 경계조차 하지 않았다.
‘느리고 약하잖아? 정말 네우라 킹이 맞나?’
다크의 지시로 움직이던 네론은 그녀와의 승부를 피해야 했으나, 속도전에서 한참 밀려 그녀를 피해갈 수 없음을 인지했다.
‘이거… 피하긴 힘들겠군.’
피할 수 없는 싸움.
네론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잘됐군. 매번 네년을 볼 때마다 배가 고팠는데.”
네론의 얕보는 듯한 태도에 모기왕이 격분했다.
“멍청한 놈. 왕급도 못 되는 놈이!”
“모기가 강해 봐야 모기일 뿐.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음을 알아라.”
모기왕은 자신이 왕급을 뛰어넘어 제왕급에 한발 걸쳤다고 생각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선 종족의 상성 따윈 무의해진다는 걸 보여 주마!”
강렬한 붉은 강기를 양손에 두른 모기왕이 네론을 향해 날아들었다.
팟!
지상의 강세종들은 공중에서 벌어진 전투에 주목했고, 네론이 처참히 찢어질 것이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게…….
붉은 잔상밖에 보이지 않는 모기왕의 속도에 비하면 네론은 멈춰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투가 시작되고 수 초.
하늘에선 네론을 중심으로 붉은 선들이 무수히 그어졌다.
촤자자자작!
붉은 선 하나하나가 공간을 찢으며 움직이는 모기왕의 잔상이었는데, 네론은 그러한 잔상들의 중심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지상의 관전자들은 붉은 잔상으로 덮인 공중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중 우승 후보로 여겨지던 자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군요. 이게 왕급을 넘어선 힘인가요?”
라미아 전사장인 릴리스의 말에 오그무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눈에는 저게 보이지 않는 거냐?”
“그게 무슨…….”
“잠자리 녀석이 다 피하고 있잖아!”
오그무트의 외침과 함께 하늘에서 대량의 피가 뿌려지며 피의 비가 우수수 내렸다.
붉은 잔상이 사라진 공간.
모기왕의 머리와 팔다리가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었고, 네론이 가슴 뚫린 모기왕의 몸통을 뜯어 먹고 있었다.
탈락한 참석자들도 숲 밖에서 네론과 모기왕의 공중전을 볼 수 있었는데, 미노타우로스에게 치료받던 나방왕 버플이 독백했다.
“하늘에서 천충왕을 사냥하려 하다니, 이래서 멍청한 놈들은 금세 죽어 버린단 말이지.”
다른 장소에서 깨어난 나르본느도 하늘을 메운 붉은 선들을 보며 한마디 했다.
“네론이 약하긴 하지만, 공중전만큼은 제왕급이지.”
숲에서 벗어나 숨을 고르던 바퀴왕 크로치가 혀를 차며 말했다.
“바보 같긴. 차라리 숨어서 원거리로 혈액 흡수만 계속 썼으면 이길 가능성이 조금은 있었을 텐데…….”
한때 모기왕을 완전히 압도한 적 있던 말벌왕 키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약한 것인가?”
식사를 마친 네론은 손에 쥔 마석을 보며 아차 했다.
‘다크의 계획을 망쳐 버렸어.’
모기왕으로 강세종을 모두 제거하려던 다크의 계획을 자신의 손으로 망쳤다고 생각한 네론.
“잔소리 좀 듣겠군.”
빈손으로 가면 잔소리가 길어질 거라 여긴 그는 던져 버리려던 마석을 챙겼다.
‘이거라도 가져다주면 잔소리가 줄겠지.’
* * *
땅을 파느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지 못한 나는 네론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전투에서 네론이 이겼다고 한다.
‘아니, 어떻게!’
일단 상처가 없는지 확인해 봤다.
“너무 날 무시하는군.”
“그런데… 어떻게 이긴 거야?”
“그야 놈이 공중전을 걸어 왔으니까.”
“자세히 좀 말해줘.”
네론의 말로는 모기왕은 빠르기만 할 뿐, 형편없는 비행 실력을 가져 날아다니는 게 신기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아니야! 내가 알기론 모기족은 비행 지속력이 떨어질 뿐, 비행 능력 자체는 네우라족 다음이었어.’
네론은 자신의 겹눈을 툭툭 치며 말했다.
“거기다 놈은 여기가 심히 딸리더군.”
“눈?”
잠자리의 사냥 성공률은 95%
쫓는 게 아니라 사냥감의 동선을 예측하여 잡아채는 사냥 방식을 쓴다.
비행 실력만큼은 원탑이라 할 수 있는 잠자리 특성을 그대로 잇고 있는 네론.
종의 격은 블레이더였던 크라스보다 높았지만, 무력이 형편없어 저평가됐을 뿐, 애초에 공중전으로 그를 이길 수 있는 곤충족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기왕의 깽판 덕에 7차 예선은 조기 종결됐다.
생존자들은 미노타우로스들에게 구조되어 치료를 받았다.
시험관들은 탈락자들에게 크노소스 미궁 한쪽에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줬다.
“본선 경기의 관전을 원한다면 여기서 기다리도록!”
그리고, 7차 예선을 통과한 참석자는…….
우고, 우도, 우노, 오그무트, 클롭.
헤라클레스, 스콜, 트롤레.
네론, 키르, 릴리스.
나까지 더하여 열두 마리였다.
‘의외군. 말벌왕과 라미아 전사장이 통과하다니.’
디아, 나르본느, 크라스의 탈락은 아쉬웠지만,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정면 승부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헤라클레스를 본선에 올리는 것.
‘흠…….’
헤라클레스의 무력은 믿지만, 우고, 오그무트, 클롭, 스콜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어려운 싸움을 쉽게 만들어 주기 위해, 경쟁자를 최대한 줄여 주는 게 나와 네론의 역할이라 할 수 있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