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월광 초원
7차 예선의 조기 종결로 인해 미노타우로스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삼신전이 열리기까지 아직 한 달은 남았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철목숲에서 나무를 치게 하는 건 좀…….”
준비된 예선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걸로 참석자들을 한 달간 붙잡아 둘 수 없다고 판단한 시험관들은 추가할 예선 시험을 고민했다.
“모기족을 막지 못한 우리 실책도 있으니, 남은 참석자들이 만족할 만한 시험을 준비해야 할 텐데.”
100년 전, 비슷한 경험이 있던 시험관의 수장이 말했다.
“많은 왕급 몬스터가 죽었다. 지금 크노소스 궁전은 그들의 마력으로 가득 차 있을 테지. 그러니 심록 초원을 개방하겠다.”
심록 초원을 개방하겠다는 말에 시험관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거라면 모기 놈을 막지 못한 저희의 실책도 묻히겠군요.”
“실책을 덮기 위한 게 아니다. 진정으로 강한 일족의 탄생을 원하기에 심록 초원을 개방하는 거지.”
“네!”
그렇게 시험관들은 보너스 스테이지 준비에 들어갔다.
* * *
7차 예선이 조기 종결되고 휴식할 틈도 없이 8차 예선 시험이 시작됐다.
“통과 조건도 탈락 조건도 없다. 8차 예선은 그냥 한 달간 심록 초원에서 안정을 취하면 된다.”
나방왕이 탈락하는 바람에 정보원을 잃은 나는 심록 초원이 어떤 곳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뭐 하는 곳이지?’
주위를 둘러보니, 강세종들이 살짝 놀라며 기뻐하는 듯했다.
‘라미아 녀석도 뭔가 아는 눈치야.’
상기된 라미아 쪽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심록 초원에 대해 알아?”
잠시 동안 날 경계하며 다양한 표정을 짓던 라미아가 입을 열었다.
“월광 초원이라 불리기도 하는 마력초 밭이에요. 있다고만 전해질 뿐, 실제로 어떤 곳인지는 가 봐야 알겠죠.”
오그무트가 다가와 말했다.
“월광 초원은 확실히 있지. 미노타우로스 놈들도 백 년에 한 번 정도만 개방하는 곳이라 운이 좋아야 출입할 수 있지만.”
‘마력초 밭이라…….’
마력초는 회복 포션과 마력 포션의 재료로 쓰이는 풀이었고, 개미족은 아카시아 숲에서 채취하던 걸 둥지에서 재배하는 중이었다.
낮은 등급의 몬스터가 먹으면 마력 증진에 도움이 되지만, 3차 진화종만 되도 회복제 이상의 효과를 얻진 못 한다.
자연에선 희소한 편이며 재배에 성공한 개미족 둥지에서도 자라기까지 상당 시간이 걸려 수확량이 부족했다.
‘귀한 마력초로 가득한 풀밭?’
7차 통과자들은 그곳에서 한 달간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우리가 초식 동물도 아니고 말이야, 풀이나 뜯어 먹으라니. 게다가 마력초 따위 이제 와서 별 쓸모는 없을 텐데.’
누구 하나는 불만을 제기할 줄 알았는데, 모두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다들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거지?’
예선 장소에 들어선 순간, 참가자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력 밀도가 확연히 달라!’
숨만 쉬어도 몸이 가벼워졌고, 마력이 깊어지는 것이…….
수련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확실히 보너스 스테이지가 맞네.’
통과 조건이 없으며 참석자 간의 충돌도 불허되어 탈락자가 발생하지 않는 건 아쉬웠으나, 이만한 장소에서 한 달간 쉴 수 있다는 건 기연이나 다름없었다.
‘이참에 마석이나 흡수해야겠어.’
각자 흩어지며 쉴 곳을 찾을 때, 우리를 제외한 참석자들이 풀밭에서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네 잎 클로버라도 찾나?’
뭘 찾나 싶어 의아해하니, 헤라클레스가 말해 줬다.
“월광초를 찾는 거다.”
“월광초요?”
“가끔 마력초 밭에 월광초가 발견된다. 마력을 안정시켜 주는 효과가 있어서 우리들에게도 기연이 되곤 하지.”
설명을 마친 헤라클레스는 구석진 곳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나는 한 달간 이곳에서 쉴 생각이다만, 따로 생각해 둔 작전이라도 있나?”
“아직은 없어요.”
오늘따라 네론이 날아다니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것이 상태가 걱정되어 관심을 가졌다.
“네론, 무슨 일 있어?”
네론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배가 부르다. 한동안 사냥하지 않아도 되겠어.”
“그거 잘됐네.”
네론도 모기왕을 소화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듯하여 우리 셋은 적당히 구석진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마석부터 흡수해야겠지.’
월광초는 내게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시간이 남으면 개미 지배로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8차 예선 수련의 시간.
나는 세 개의 마석을 토해 냈고, 무엇부터 흡수할지 고민했다.
지네왕의 마석은 강렬한 생기로 꿈틀거렸고, 두꺼비왕의 마석은 짙은 독기가 흘러나왔다.
남다른 존재감을 내뿜는 모기왕의 마석은 핏빛으로 단단하게 응축돼 있어 흡수하려면 상당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럼 제일 만만한 것부터.’
지네왕의 것에 손을 대니, 헤라클레스가 말했다.
“하와 것부터 흡수하는 게 좋을 듯하군.”
헤라클레스가 말하길 지네의 기운은 거칠고 두꺼비의 기운은 잠잠하여, 흡수하려면 두꺼비 왕부터라고 했다.
“네… 그러죠.”
조언에 따르기로 한 나는 마석 섭취에 앞서 위험 요소들을 떠올려 봤다.
‘흡수하는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된단 말이지.’
그 문제는 헤라클레스가 해결해 주기로 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어.’
특급 마석에는 그 종족의 특성 정보가 담겨 있다.
‘유전자 정보 같은 건가?’
강한 녀석의 마석일수록 더 많은 정보가 들어 있는데, 어찌 됐든 나는 마석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특성 정보를 얻고, 그로 인해 대상의 특성 능력을 갖추게 된다.
포스의 기운을 받았을 때처럼 마력의 속성이 추가되는 게 아니다.
신체를 구성한 세포 조직의 변화로 트롤의 고속 회복과 오거 같은 힘이 추가된 것이다.
‘말하자면 세포 변이에 가깝지.’
그러니 두꺼비왕의 마석을 섭취하면 나의 신체에선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텐데…….
모든 변화가 옳은 방향일 거란 보장은 없다.
‘뭐, 아직까진 문제 된 건 없으니까.’
그래도 두꺼비 왕의 능력을 떠올려 볼 때 예상되는 변화는 있었다.
‘독을 다루는 능력이려나?’
준비를 마친 나는 마석을 무릎 위에 올리곤 공허의 심상을 되뇌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텅 비어 있기에 무엇이든 채울 수 있노라.’
마석이란 형태로 응축된 마력의 실타래가 풀리며 내게로 흡수됐다.
베르제붑과의 일전으로 뇌의 기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탓인지, 그동안 마석을 흡수할 때 인지하지 못했던 정보들이 흘러들어 왔다.
기름, 독, 위장, 위액, 호흡, 감각, 재생, 각력, 혓바닥, 울음.
나의 무의식이 토드 킹의 특성 정보를 하나하나 분석했다.
기름과 독 생성 능력은 필요 없다고 판단했는지 버려졌고, 위장과 위액 정보를 받아들여 위벽과 소화액을 강화했다.
두꺼비 왕의 호흡과 감각 능력을 흡수해 피부 세포의 변화가 발생했고, 재생 능력의 정보가 세포에 더해지며 급속 재생이 강화됐다.
각력의 정보가 더해져 근섬유가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고, 혓바닥과 울음, 그 외의 자질구레한 특성 정보들이 걸러졌다.
마석을 흡수하고 깨어난 나는 찌뿌둥한 몸을 풀어 줬다.
그러고 나서 변화한 신체와 새롭게 얻은 특성들을 확인했다.
‘독은 얻지 못했네.’
재생력과 힘이 강해진 것은 물론이고 감각이 예리해졌다.
세포 하나하나가 머금을 수 있는 마력량은 폭증했으나, 마석에 담긴 마력 자체는 크게 늘지 않았다.
바다에 물을 들이부어도 티가 나지 않듯, 그만큼 내 마석에 축적된 마력이 방대하단 반증이었다.
‘어디 보자.’
급속 재생과 오거의 힘처럼 뇌리에 떠오르는 게 없나 살펴봤다.
‘두 개나 있어.’
새로운 기술로 개미족의 기문 호흡과 두꺼비 호흡이 합쳐진 전신 호흡을 쓸 수 있게 됐다.
‘두꺼비 호흡인가?’
처음에는 독에 대한 능력을 얻지 못해 아쉬웠지만, 전신 호흡을 써 보곤 생각이 달라졌다.
“다크가 없어졌다.”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어요.”
전신 호흡을 쓰면 자연과 동화되어 기척이 지워졌다.
그냥 지워진 수준이 아니다.
가만히 있을 때는 헤라클레스가 눈앞에 나를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이니, 은신을 넘어 존재 희석에 가까운 상태라 할 수 있었다.
“거기 있었군. 원래도 그다지 없던 존재감마저 희미해졌어. 마석 흡수의 부작용인가?”
움직이면 상대도 나를 알아차리긴 하지만, 희미한 존재감으로 상대의 감각을 교란할 수 있어 전투에 유용한 기술이었다.
‘공허의 마력과 시너지도 좋아.’
전신 호흡과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공허의 마력.
두 특성이 더해져 나의 암습 능력을 극대화했다.
거기다 전신 호흡을 사용하면 각종 감각이 확장됐으며, 호흡을 통한 마력 축적 및 회복 속도가 급증했다.
‘상시로 쓸 수 있게 되면 엄청 나겠어.’
정리하자면, 전신 호흡은 색적, 은신, 성장까지 책임져 주는 뛰어난 능력이었다.
또 하나의 능력으론 힘을 모아 터트리는 두꺼비 각력을 얻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
두꺼비 각력은 점프에만 적용된 능력이 아니며 근육을 수축한 시간에 비례하며 강한 힘을 얻었다.
은신하여 힘을 모아 개미의 힘과 오거의 힘까지 더해 쓰면…….
‘누구든 한 방에 보낼 수 있어.’
두꺼비 왕에게서 얻은 걸 정리하던 나는 해라클레스에게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죠?”
“3일 정도 지났다.”
“그렇군요.”
한 달은 있어야 할 곳.
아직 27일이나 남았다.
몸을 풀며 공터를 둘러보니, 며칠 전보다 마력초가 많아진 것 같았다.
‘마력초가 품고 있는 마력량도 증가한 것 같아.’
마안으로 봤을 때도 미비한 차이.
착각인가 싶어 무시했다.
‘그럼 지네 녀석의 마석을 흡수해 볼까.’
전신 호흡이 쓰이며 기척이 지워짐과 함께 흡수 속도가 빨라졌다.
지네왕의 마력은 매우 거칠었으나, 두꺼비 왕의 독기가 지워지듯 거친 마력이 아무리 날뛰어도 공허의 일부가 될 뿐이었다.
무아지경으로 마석을 흡수한 후 눈을 떴다.
‘뭐지?’
다른 참석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걱정 마라. 내가 있으니, 아무도 접근하진 못한다.”
헤라클레스와 네론이 각각 지상과 공중에서 다른 참석자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견제했다.
그들이 왜 우릴 주시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향기?’
둥지에서도 마력초를 재배했기에 잘 알고 있다.
마력초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거지?’
둥지에선 뿌리를 잘라 삽목하는 방식으로 번식시켰고, 자연에서도 뿌리를 통해 씨앗을 맺던 마력초인데, 어째서인지 나를 중심으로 마력초가 꽃을 피운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다른 참석자들이 신기해하며 이쪽을 주시하는 것도 당연했다.
뭐, 직접 다가올 생각은 없는 듯하지만.
시선을 무시한 나는 지네왕의 마석을 흡수해 얻은 걸 수습했다.
두꺼비 왕만큼 다양한 능력을 얻진 못했으나, 원래 강하던 생명력이 더욱 강해졌고, 세포가 품고 있는 마력량 또한 급증했다.
얻은 능력 중 하나는 급속 재생과 합쳐졌고, 다른 하나의 능력은 나와 상성이 그리 좋지 않아 사용할 일이 없을 듯했다.
쉬는 동안 개미 지배로 월광초를 찾아봤지만, 그런 풀은 없었다.
내가 자리한 곳에서만 핀 꽃은 상당한 마력량을 품고 있으며 맛도 나쁘지 않았다.
‘이거, 어떻게 피우는 거지?’
꽃이 핀 것과 마석 흡수.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겠으나, 단순히 마력만 주입한다고 꽃이 피는 게 아니어서 인위적으로 꽃을 피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뭐, 이건 나중에 연구해 보면 알겠지.’
남은 마석을 잡았다.
‘이건 좀 걸리겠는데.’
모기왕의 마석에 비하면 앞서 흡수한 두 마석은 애피타이저에 불과했다.
‘그럼 어디, 메인 디쉬를 먹어 볼까.’
메인 디쉬인 만큼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