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29화 (128/189)

129화. 제왕 탄생의 징조

월광초를 찾던 참석자들이 하나둘 꽃향기를 맡게 됐다.

“이게 뭐지?”

향에 이끌려 이동한 라미아는 헤라클레스가 수호 중인 꽃밭을 보게 됐다.

“마력초에… 꽃이 피다니!”

라미아 근처에 있던 스콜과 말벌왕.

둘은 헤라클레스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헤라클레스 녀석의 감지력으로 저런 명당을 찾아낼 수 없다. 분명 잠자리와 개미 중 한 놈이 찾아낸 장소겠군.”

“저런 장소가 있었을 줄이야. 좀 더 돌아볼 걸 그랬어.”

스콜과 말벌왕이 저 자리를 먼저 차지하지 못한 걸 아쉬워할 때, 라미아는 선대로부터 전해져 온 신화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제왕 탄생에 앞서 마력초의 향기가 숲을 뒤덮었다… 설마 과거에도 마력초가 꽃을 피웠던 건가?’

또 다른 장소에선 우도가 헤라클레스를 멀찍이서 노려보며 말했다.

“곤충족 주제에 운도 좋군.”

우노가 답했다.

“운이 아닐 거다. 놈들은 처음부터 여기로 왔어.”

“뭐? 그럼 꽃이 피는 곳을 어떻게 안 거야?”

“그건…….”

우노가 난감해할 때, 우고가 끼어들어 말을 돌렸다.

“마력초에 꽃이 폈다는 건 제왕급 존재가 출현할 거란 징조다. 무투회 우승자가 제왕급이 될 거란 의미도 있지.”

우도는 반짝이는 눈으로 우고를 바라봤다.

“그럼 우고가 제왕급이 되면, 미노스 님을 잇는 건가?”

“멍청아! 제왕급이 된다는 건, 브록 님과 동등해진다는 거야!”

우노가 버럭 화내며 한 말에 우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고가 브록 님과 동등해진다고……?”

놀라는 우도를 보며 우고가 실소를 머금었다.

“마력초의 꽃이 제왕급 출현을 예견한다는 건 미신에 불과해. 풍족해진 궁전의 마력 덕에 피어난 것이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우고는 애도하듯 눈을 감으며 말했다.

“궁전 내에서 모기 년의 손에 많은 형제가 죽었다. 형제들이 우릴 위해 꽃을 피워 준 것과 다름없어.”

번쩍 뜬 그의 눈에는 타오르는 듯한 각오가 서려 있었다.

“그러니 이번 무투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승해야 해. 우노, 우고! 너희들도 죽을 각오로 싸워라!”

우고의 말을 들은 둘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돌아선 셋은 심록 초원을 헤매며 월광초를 찾아다녔다.

꽃향기에 이끌린 오그무트는 클롭을 만났다.

“제왕 탄생의 징조라니! 이번 우승자는 예비 제왕으로 여겨지겠군? 나 정도가 아니면 제 명대로 살긴 힘들겠어.”

손이 근질근질하다는 듯 몸을 풀던 오그무트의 말에 클롭이 커다란 외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네놈은 재앙의 징조를 보고도 즐거운가 보군.”

“나와 너, 둘 중 하나가 될 텐데 뭐가 걱정인 거지?”

“그건 오만이다, 오그무트. 모기족을 보고도 느끼는 게 없나?”

“어차피 한 방인 놈이었어. 소머리들이 정리되면 처리하려고 했지.”

“네놈의 속도론 모기족을 처리할 수 없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다 보이니까.”

꽃밭을 유심히 관찰하던 클롭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한 가지 충고하마. 곤충족의 잠재력을 무시하지 않는 게 좋아.”

클롭이 떠나가고 홀로 남은 오그무트가 중얼거렸다.

“키클롭스 놈들은 언제나 자신들만 진실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지. 네놈들의 눈으로 뭘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느끼고 있다.”

꽃밭의 상공.

그곳을 지키는 단단한 존재감.

“오그르트가 인정한 네놈의 전력… 이번에야말로 끌어내 주마!”

참석자들이 마력초의 꽃을 보며 각자의 생각에 빠져들 때, 미노타우로스들의 왕 미노스의 호출로 우마십장이라 불리는 여덟 마리의 미노타우로스가 한자리에 모였다.

미노스가 예선 시험에서 있었던 일들을 시작으로 심록 초원에 꽃이 폈다는 사실을 알리자, 우마십장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꽃이 폈다고?!”

“우마신께서 우고 녀석을 알아본 것이다.”

“우고보다 강한 놈은 없겠지?”

“그런 녀석이 있다면 지금 당장 제거해야 해!”

“뭐? 지금 새싹을 우리가 나서서 밟자는 거냐? 네놈은 우마십장이란 자각이 있는 거야?”

“이것이 죽어간 형제들의 염원인가…….”

“모기족은 몰살시켜야 해! 전부 쓸어버리겠어!”

“…브록 님의 예언대로 제왕급 존재가 탄생한단 말인가?”

놀람, 기쁨, 염려, 두려움, 수치, 슬픔, 분노, 당황…….

십장의 반응을 살피던 미노스가 입을 열자 장내가 조용해졌다.

“심록 초원에 꽃이 폈다. 이게 재앙이 될지, 축복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또한 우마신의 뜻이겠지. 삼신전이 열리기까지 며칠 남지 않았으니,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준비를 마치도록 하라!”

* * *

마력이 아무리 단단히 뭉쳐 있어서 마력일 뿐.

무아지경 속에서 모기왕의 마석을 조금씩 녹여 먹었다.

다양한 정보가 흘러들어 오는 게 느껴졌지만, 대부분이 내게 쓸모없는 정보였는지 걸러지기 일쑤였다.

20일을 소모하여 모기왕의 마석을 성공적으로 흡수했다.

‘그래도 몇 개는 건졌군.’

더듬이 감각과 마안을 통해 생명체가 품고 있는 피를 느낄 수 있게 됐다.

‘생명 탐지 능력인가?’

지금은 딱히 유용하다 할 수 없지만, 감각에 적응하면 마력만으로 알 수 없었던 상대의 잠재력, 무력, 영양 등급, 감정, 약점 같은 걸 예전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을 듯했다.

감각이 확장된 것과 더불어 혈액에 담겨 있던 마력량이 급증했으며 피를 제어해 신체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이건 혈액 조종이군.’

모기왕 정도로 피를 다루려면 상당한 수련이 필요하겠지만, 트롤의 재생력이나 오거의 힘처럼 이미 개미족을 벗어난 능력을 여럿 얻은 내게 또 다른 강화 능력이 추가된 건 상당한 진전이었다.

내가 세 개의 마석을 흡수하는 동안, 네론과 헤라클레스에게도 진전이 있었는지 전보다 강해진 게 느껴졌다.

상태 파악을 끝낸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 피어 있던 마력초 꽃이 지고 열매가 달려 있었다.

앵두 같은 작은 열매들.

상당한 마력을 품고 있었고, 영양으로 치면 하나하나가 특급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배고팠는데, 잘 됐어.’

내가 마석 흡수를 마쳤으니 헤라클레스가 경계를 풀었고, 셋이서 열매를 먹게 됐다.

네론은 세 개를 먹었고, 헤라클레스는 열다섯 개를 먹었다.

“이 이상은 못 먹겠군.”

“더 먹으면 독이 된다. 자중하도록.”

각자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는 양이 정해질 정도로 상당한 마력을 품고 있는 과일이라 우리에겐 기연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몬스터에겐 섭취 한계가 있을지 모르나, 신체의 마력 수용 한계가 크게 확장된 내게는 한계 섭취량이 없었다.

‘황홀한 맛이야.’

열매를 닥치는 대로 포식한 나를 보며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놈의 몸은 섭취 효율이 떨어지는군.”

“그렇긴 하죠.”

네론과 헤라클레스는 씨앗을 먹지 않았다.

나도 씨앗에선 영양 등급을 느낄 수 없어 뱉어 두긴 했지만, 씨앗이 품고 있는 마력이 과육의 십여 배라는 것은 나만이 알 수 있었다.

‘이게 진짜인 것 같은데…….’

어차피 먹어 봐야 마력밖에 되지 않는 씨앗.

심어서 키우면 마력초 이상의 뭔가가 나올 것 같아 하나만 먹어 보고 나머지는 모두 사교위에 담았다.

과일도 앞으로의 끼니 해결을 위해 영양화하여 사교위에 듬뿍 채워 뒀다.

과일을 따면 마력초가 푸스스 거리며 시들었고, 시든 풀 아래로 작은 잎사귀가 자라났다.

언제 과일을 맺었는지 모르게 흔적이 모두 지워진 풀밭.

나는 그곳에서 개미 지배를 사용해 월광초를 찾아봤다.

이미 참석자들로 인해 한 차례 수확된 월광초.

키클롭스인 클롭이 제일 많이 발견한 것 같고, 미노타우로스 놈들도 만만치 않게 발견하여 먹은 듯했다.

트롤 킹인 트롤레를 제외하곤 모두 하나씩은 먹어 만족한 표정인데…….

다들 더는 월광초가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그들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쉽네.’

시간이 흘러 시험관들이 8차 예선 시험 종료를 알렸고, 참석자들은 크노소스 궁정 밖으로 안내됐다.

우리가 심록 초원을 나설 때, 상당수의 미노타우로스가 투입되어 내가 있던 장소를 조사했다.

며칠 일찍 왔다면 꽃과 과일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 남은 건 새롭게 자라는 평범한 마력초 뿐.

건질 게 없어 보이나, 그들이 뭐라도 알아낼까 싶어 개미 지배로 유심히 지켜봤다.

결과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해 허탈해하는 미노타우로스들을 보게 된 게 다였다.

문제를 내는 문이 아닌, 뒷문을 이용해 크노소스 궁전 밖으로 나왔다.

한참을 이동해 거무튀튀한 나무들이 빼곡한 숲에 도착했다.

시험관이 숲의 중심에는 세계의 시작과 함께한 나무가 있다고 했다.

전생 때는 높이 100m만 넘어도 세계적인 나무로 취급됐는데, 이곳에선 200m를 가뿐히 넘어가는 나무가 워낙에 많아 큰 나무를 봐도 감흥이 없었다.

‘말벌족의 둥지만 해도 200미터가 넘는 나무 위에 있었지.’

강세종들은 이동하며 무기로 쓸 만한 나뭇가지가 없는지 훑어봤는데.

‘그러고 보니 묵철 도끼를 쓰는 녀석이 있긴 했어.’

그동안 내가 봐온 흑색 철이 나무였다는 사실에 살짝 놀랐다.

‘운석이라도 녹여 쓴 줄 알았는데, 헛다리 짚고 있었군.’

중심에 도달하니 월등한 굵기를 자랑하는 나무를 보게 됐다.

아니, 나무라기보단 검은 광물로 이루어진 성벽을 보는 듯했다.

“9차 예선 시험은 최초의 철목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한 번의 공격으로 철목에 흔적을 남겨야 했고, 그 흔적이 짙은 여덟 명을 선정해 본선 진출자를 정한다고 했다.

즉, 이번이 마지막 예선이란 의미였고 필요한 건 공격력!

나름대로 자신 있는 분야였지만, 네론의 공격력으론 여기까지란 생각이 들었다.

우고, 우도, 우노, 클롭, 오그무트.

체급이 월등한 놈들이라 공격력 자체가 남다르다.

트롤 킹도 강세종과 비견되는 체격을 가져 꿀리지 않을 듯했다.

시험관들이 은연 중에 여섯을 본선 진출자로 여겼고, 남은 두 자리를 두고, 헤라클레스, 스콜, 네론, 말벌왕 키르, 라미아 릴리스, 그리고 내가 경쟁하는 구도가 되는 듯했다.

그들의 예상대로 흐른다면 헤라클레스와 스콜이 본선에 진출하는 뻔한 결과가 나올 터였다.

“흔적의 깊이와 범위를 볼 테니 강세종부터 한 명씩 나와라!”

“나부터 하겠다.”

우고가 첫 주자로 나섰다.

강세종들은 체내의 마력을 활성화해 신체를 강화하긴 했으나, 마기를 발현하는 경우가 없었다.

애초에 마기를 발현하지 않아도 충분한 살상력을 가졌으며, 거대한 무기에 마기를 두르려면 방대한 마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고가 거대한 도끼로 마기를 발현했다.

도끼의 크기만큼이나 무지막지한 양의 마력이 풍겨 오며 장내를 짓눌렀고, 나를 제외한 참석자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쾅!

도끼가 철벽을 때린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폭음이 들려왔다.

꽤 긴 흔적을 남겼지만, 그리 깊은 흔적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켜보던 시험관들이 당황한 표정을 보면, 우고가 역대급 흔적을 남긴 듯했다.

다음으로 우도가 나섰다.

그는 마기를 두르진 않았지만, 강화된 육신에서 나온 압도적인 힘을 선보였다.

쾅!

“대단하군. 우마십장에게 밀리지 않는 힘이다.”

시험관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노는 앞서 나선 두 미노타우로스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이지 못했지만, 시험관들이 만족하는 걸 보아 준수한 수준인 듯했다.

‘저 정도 하면 된다는 거군.’

본선도 아닌 예선에서 모든 걸 보일 생각은 없다.

그러니 나는 적당히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수준의 힘만 보일 생각이었다.

오그무트와 클롭이 나설 때, 스콜이 헤라클레스에게 말했다.

“보여 주마. 네놈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나의 진정한 힘을…….”

타오르는 듯한 스콜의 시선을 마주한 헤라클레스가 그에게 말했다.

“안 보여 줘도 된다.”

“아니, 잘 봐라.”

“궁금하지 않다.”

“똑똑히 봐야 할 거다!”

“…….”

뭐랄까…….

스콜은 집착이 심한 듯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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