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30화 (129/189)

130화. 최초의 철목

클롭이 앞으로 나서며 최초의 철목을 마주했다.

“후…….”

숨을 깊게 내뱉은 그는 뼈로 만들어진 곡도를 휘둘렀다.

팟.

‘빨라!’

덩치에 맞지 않는 쾌속한 움직임.

안정된 마기까지 더해져 상당한 위력을 보였다.

“호…….”

오그무트가 감탄했고, 시험관들도 우려 섞인 표정으로 한마디씩 했다.

“상당하군.”

“거신의 후예답게 잘 단련돼 있어.”

“우고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군.”

클롭이 남긴 흔적은 우고보다는 얕았지만, 우도보다는 깊었다.

우도는 화난 표정으로 씩씩거렸고, 클롭은 오그무트에게 바통을 넘기듯 물러났다.

“이제 내 차례인가?”

오그무트는 묵직한 강철 글러브로 마기를 일으켰고, 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아무런 기교도 섞이지 않은 단순한 주먹질.

그러나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는 장내의 모두를 놀라게 했다.

쾅!

“이게 무슨…….”

시험관들의 입이 벌어졌고, 몇몇은 보고를 위해 움직였다.

“이거, 내가 1등인가 보군.”

이로써 강세종들의 차례는 끝났다.

마력을 다루는 능력만 보면 강세종 중에서 클롭이 최고였고, 남긴 흔적은 오그무트, 우고, 클롭, 우도, 우노 순으로 등수가 정해졌다.

남은 참석자를 둘러보던 시험관이 트롤레를 지목했다.

“네 차례다.”

“그러지.”

트롤레가 마기를 일으키자 둔기에 희미한 녹색 증기가 피어올랐다.

둔기와 벽이 충돌하며 굉음이 일었고, 우노와 비슷한 수준의 흔적이 남겨졌다.

시험관들은 흔적을 자세히 살피더니 우노와 같은 등수를 매겼다.

“갑각왕과 전갈왕. 둘 중 누구부터 하겠나?”

“나부터 하겠다.”

스콜의 차례가 왔다.

스콜이 나섰을 때 지켜보던 시험관들 중 일부가 비웃었다.

“작군.”

벽을 마주한 그는 한동안 미동하지 않았다.

“예선부터 그걸 쓸 생각인가?”

헤라클레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콜의 검은색 외골격이 붉게 물들었고, 섬뜩한 마강기를 전신에 둘렀다.

장내의 강세종들의 여유롭던 표정이 굳었다.

콰앙!

스콜이 휘두른 꼬리가 벽과 충돌하며 굉음을 발생시켰고, 우고보다 못하나, 클롭 이상의 흔적을 남겼다.

“이게 내 전력이라 생각하지 마라.”

경고하듯 말하는 그였지만, 헤라클레스는 담담하게 고개만 끄덕여 줄 뿐이었다.

“알고 있다.”

그가 품고 있는 마력은 지네왕과 두꺼비 왕을 압도한 수준이며 헤라클레스 이상이어서 내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왕급쯤 되면 작다고 얕보면 안 되지.’

스콜의 괴력에 놀란 장내를 살피던 중, 나처럼 담담하게 포커페이스를 보이던 존재가 확인됐다.

외눈의 거인, 키클롭스 클롭.

월광초를 찾아내는 능력도 그렇고, 눈이 쓸 만한 종족인 듯한데…….

놈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적의는 없었지만, 날 경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 네 차례다!”

스콜의 재촉에도 해라클레스는 느긋한 움직임으로 시험관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겐 시간이 필요하다. 차례를 바꿔 줄 수 있나?”

“그렇게 해라. 그럼 누구부터 나서겠나?”

네론, 릴리스, 키르, 그리고 내가 남았다.

시험관들이 볼 때는 들러리에 불과한 존재들이라 대충 지목했다.

네론이 미스릴 검에 청색 마강기를 씌워 고속으로 돌진해 철목을 가격했다.

“단단하군.”

화려하긴 하나, 힘과 무게가 부족한 일격.

헤라클레스와 나를 고려했을 때, 본선에 들려면 우노와 트롤레 수준의 흔적은 남겨야 한다.

‘본선까지 못 가겠어.’

비행 능력을 제외하면 네론에겐 부족한 게 많다.

이를 메우지 못하면 지상의 몬스터에게 왕급으로 대우받긴 힘들어 보였다.

‘뭐, 잘하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되는 거지.’

네론 다음으로 킬러 킹 키르의 차례가 왔다.

그가 품고 있는 마력은 상당했다.

‘괜히 킹이 아니야.’

다만, 가진 마력을 잘 활용하지 못해 가공되지 않은 원석에 가까웠다.

그가 말벌창에 노란색 마강기를 두르자 강렬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강기를 짜내던 그가 참석자들을 돌아봤다.

그의 표정은 ‘어떠냐? 이게 바로 내 힘이다! 나는 강하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흠… 애매하네.’

왕급이 되지 못한 자들이 보면 풍겨오는 마력량에 놀랐을 테지만, 예선에서 걸러질 대로 걸러진 강자들은 다르게 느꼈다.

“마력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는군.”

헤라클레스의 평대로 그의 마강기는 속 빈 강정처럼 형편없는 밀도를 보였다.

쾅!

요란한 것에 비해 볼품없는 흔적.

네론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키르는 자신이 만든 흔적을 보곤 충격에 빠졌다.

‘그동안 몰랐던 건가?’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던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던 키르를 향해 라미아인 릴리스가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처음치곤 잘한 거예요.”

선의의 위로였지만 악의적인 조소로 느꼈는지, 강한 수치심을 느낀 키르가 창을 당겼다.

참석자들은 흥분한 키르가 살수를 펼칠 줄 알았는지,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아쉽게도 기대하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릴리스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 키르가 몸을 떨며 뒷걸음쳤기 때문이다.

이어진 정적 끝에 키르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창을 내렸다.

그를 지나치는 릴리스가 작게 속삭였다.

“현명했어요.”

라미아의 사안.

상대의 공포심을 자극해 움직일 수 없도록 한다곤 들었지만, 수준 이하의 약자들에게나 통하는 특성.

그게 통했다는 것 자체가 키르의 약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장내의 절반은 키르를 안타까워했고, 나머지 절반은 조소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나는 전자에 해당했다.

‘저 녀석, 내게 적대감만 없었으면 잘 굴려서 공군으로 써먹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네.’

릴리스는 호리호리한 몸매와 달리 뱀의 특성인 괴력을 지녔다.

그녀의 장검에 초록 마강기가 더해지며 상당한 일격을 선보였으나, 우노와 트롤레에 미치진 못했다.

“제가 이겼군요, 네론.”

“…….”

그래도 자신이 남긴 흔적에 만족하는지 그녀가 뿌듯해하는 게 느껴졌다.

아직 헤라클레스와 내가 나서지 않아 릴리스까지가 8위.

네론과 키르는 탈락이 확정됐다.

“난 여기까지군.”

“내가… 이렇게 약했다니.”

네론은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였고, 키르는 뭐가 그리 분한지 인근의 철목 하나를 대상으로 화풀이 중이었다.

나는 탈락 확정인 네론에게 둥지 쪽 일을 부탁했다.

“조만간 결혼 비행이 시작될 거야. 그때 호위 좀 부탁할게.”

“지금 가야 하나?”

“응.”

본선을 구경하고 싶어 망설이는 그에게 적절한 대가를 제시했다.

“지금 바로 가 주면, 지하 훈련장을 좀 더 넓혀 줄게.”

“비행하기 좋게 말인가?”

그동안 나와 지내며 교섭 능력이 급증한 네론이 요구 사항을 말했다.

“밖으로 오가는 전용 통로도 필요하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먹이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군.”

“그럼 사냥감을 키워보는 건 어때?”

나는 그에게 사냥감 양식을 제안했다.

“모기족을 키울 수 있는 거냐?”

“음… 못 키울 거야 없지.”

모기족은 물의 흐름이 적은 호수 같은 곳에 알을 낳는다.

물속에서 작은 물고기를 사냥하여 성장한 모기족 유충이 스몰 모스퀴토가 되고, 빅과 자이언트를 거쳐 퀸과 킹이 된다.

모기족은 피를 흡수하여 성장하기도 하지만, 주로 과일을 먹었다.

지하의 수자원은 풍부한 편.

모기족이 살 만한 호수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호수에 물고기도 풀어야겠는걸.’

개미족은 물과 친하진 않지만 워커맨들에게 낚시 정도는 가르칠 수 있을 거고, 정 힘들면 인간이나 고블린을 동원하면 된다.

‘과일나무와 동물들로 가득 채워야겠지.’

양식장을 꾸려 줄 순 있지만, 날벌레인 모기족을 제어하는 건 쉽지 않다.

‘네론이 잘할 수 있을까?’

놈들의 개체 수 조절을 네론에게 맡겨야 해서 불안한 감이 있었지만, 모스퀴토 퀸도 쉽게 척살했으니…….

‘맡겨도 되겠지.’

네론이 바쁠 때는 에어 앤트 페스트도 있고, 정찰대의 사냥 훈련용으로 쓰면 될 것 같았다.

내가 제시한 대가에 만족한 네론이 즉시 둥지로 돌아갔다.

현재 8위는 라미아인 릴리스.

나와 헤라클레스가 없었다면 본선까지 노려볼 수 있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운이 나빴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 황금빛으로 변한 헤라클레스가 장수풍뎅이 뿔 모양의 금빛 둔기를 차징하여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존재감은 강세종들이 긴장할 정도였다.

다른 참석자들이 크게 휘둘러 충분한 파괴력을 얻은 것과 달리 헤라클레스는 벽에 둔기를 대기만 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시험관이 헤라클레스를 재촉하려 할 때, 오그무트가 그를 막아섰다.

“멈춰 봐!”

클롭의 외눈이 크게 떠지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고, 우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헤라클레스의 미는 힘에 의해 철목이 움푹 파였고, 파인 곳을 중심으로 균열이 번져 갔기 때문이다.

“…일등이다.”

시험관이 헤라클레스의 흔적을 참석자 중 최고임을 인정했다.

헤라클레스의 차례가 끝났다.

싸늘하게 식은 장내.

모두가 따가운 시선으로 헤라클레스를 본다.

아무도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아 서운할 정도.

‘그럼, 우고나 트롤레 두 녀석이 공동 7위니…….’

전신 호흡, 개미의 힘, 오거의 힘, 혈액 조종을 통한 혈류 가속.

강화 능력을 활성화한 나는 두꺼비 각력으로 창을 당겨 힘을 모았다.

사용한 창은 봉마의 사슬에 묶인 암흑마창.

마강기도 두르지 못하는 놈이지만, 내 힘을 실기에는 적당한 물건이다.

팟.

정면으로 쳤다간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비껴 침으로써 내 의도대로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뒤늦게 내가 만든 흔적을 발견한 시험관이 나의 흔적을 7위로 인정하며 우노와 트롤레, 둘 중 하나가 탈락 위기에 처했다.

공동 8위인 둘에게 결투라도 시키지 않을까 하여 참석자들이 기대했지만, 미노타우로스들은 둔기로 마기를 일으킨 트롤레의 흔적이 좀 더 크다는 걸 들어 우노의 탈락을 선언했다.

“음머~”

우노가 주저앉아 울었다.

소머리라 그런지 소가 우는 듯했다.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고 있으면, 전생 시절 먹어본 마장동의 한우 맛이 떠올랐다.

이곳 세계에선 황소는 못 봤어도 근육질의 흑우는 먹어 봤다.

개미족의 입맛에는 괜찮은 맛이었지만, 기억 속의 소고기 본연의 맛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들… 황소를 닮았단 말이지.’

미노타우로스들은 홀로 침공해 오는 경우가 적고, 동료의 시체를 꼭 회수해 가는 녀석들이라 고기 얻기가 매우 힘들다.

이번 결혼 비행만 무사히 치러지면 5년 안에 미노타우로스를 세력으로 압도할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놈들의 고기를 포식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몰랐다.

‘결혼 비행은 잘 준비되고 있겠지?’

공주들이 날아오르면 숲의 포식자들이 움직인다.

이번 결비는 총력을 다해 포식자들을 제거하기로 해서 둥지는 매우 바쁠 터였다.

‘일리아나와 세크리가 잘 처리하겠지.’

내가 없어도 그 공백을 1장로와 세크리가 메워 줄 테니, 걱정은 접고 시험관의 안내를 따랐다.

9차 예선 통과자와 탈락자가 함께 이동하여 크노소스 궁전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탈락한 일행과 재회했고, 한동안 시험관이 정해 준 숙소에 머물게 됐다.

“삼신전이 열리는 날에 맞춰 무투회를 열겠다!”

토너먼트 형식의 무투회가 열리기까지 며칠간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