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결혼 비행
“수개미들의 상태는!”
“모두 양호해요!”
결비 시즌에 앞서 둥지의 개미들은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공주들의 교육은 모두 마쳤어요. 지금 페르 님이 공주들을 통제하고 있어요.”
세크리가 공주 개미들의 교육 상태와 페르의 상황을 파악해 일리아나에게 전했다.
“곧 페르 님의 힘이 필요할 거야. 페르 님을 산란방으로 데려가 힘을 비축하게끔 해! ”
“그게… 페르님이 제 말을 듣지 않아서…….”
“제르다코가 페르님을 호위하고 있을 거야. 그 녀석에게 말해 둬!”
“네! 제르다코 님께 전할게요.”
“영역의 청소 상태는 어때?”
“피어레스, 게아, 네아, 데아, 메르, 베르가 각각 궁기병 300기씩 데리고 고블린 산맥까지 소탕을 마쳤어요.”
“아카시아 숲은?”
“제르피아와 헤르피아, 그리고 포룸의 포병대 300기가 청소 중이에요.”
“페스트의 정찰대는 뭐 하고 있어?”
“영역 내의 비행 몬스터들의 둥지를 찾아 표식을 남기는 중이에요.”
포메온 휘하의 자이언트 워커가 급히 뛰어와 일리아나에게 소식을 전했다.
“경비대 1,000기! 오크나무 숲 장악을 끝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더리페 휘하의 자이언트 워커도 소식을 전해 왔다.
“공사 개미 일동, 신여왕 둥지 조성을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칠 장로 트라이가 맡은 본대가 오거 숲 장악에 나섰다.
네임드 울트라들이 포진한 트라이의 본대는 2,000기의 하드 워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 단단함을 앞세워 숲의 포식자들을 포위 섬멸했다.
하이 팩토리인 네트리가 고품질의 영양 생산을 맡았고, 하이 워커인 캐리가 운반 개미들을 동원해 공주 개미들의 배를 빵빵하게 채워 놓았다.
“신여왕들에게 주어질 예비 둥지에 물자들이 충분히 쌓였다고 합니다!”
“좋아!”
“네론 님이 정찰대 지원을 와 주셨어요!”
네우라 킹인 네론이 둥지에 도착해 정찰 부대를 지원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며 결비 준비는 더욱 가속됐다.
행정을 맡고 있는 세크리를 제외한 다크 휘하의 간부들은 장로들을 지원하며 생산에 힘쓰는 중이었고, 나우피어와 블러리는 소드 앤트 부대와 함께 자이언트 시절 워커로 구성된 벌목 부대로 결비에 방해되는 나무들을 솎아 내는 중이었다.
“내가 왜 후방에 있는 거지?”
블러리는 최근 피와 살이 튀는 사냥에 나서지 못해 기운이 없었다.
“그거야 나무 해체에 동원되서 그런 거잖아요.”
“나우피어, 우리가 해체 전문은 맞지만, 벌목 전문은 아니지 않나?”
“그래도 블러리 님이 제일 많이 벴어요.”
“아무리 그래도 말이지…….”
블러리는 둥지 최강 부대인 소드 앤트 부대까지 동원되어 벌목 따위를 하는 것에 불만이 컸지만, 부관 역을 맡고 있던 나우피어는 나무를 상대로 갖은 기술을 시험해 보며 후방에서의 달콤한 일상을 즐겼다.
“하, 썰고 싶군.”
나우피어의 미소가 밝아질수록 블러리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동쪽 끝에선 제르피아, 헤르피아, 포룸의 부대가 황무지에서 넘어오는 놀 부대와 격돌했다.
이족 보행의 들개 몬스터 놀.
신체 주요 부위에 가죽과 철판을 덧댔고, 뼈 몽둥이를 쓰는 녀석들이 수백 마리.
놀은 오크와 비견되는 몬스터로 황무지에서 꽤나 큰 세력을 일구고 있었지만, 포병대가 산성액을 퍼붓자 혼비백산했다.
“죽여라! 케헤헤! 학살이다!”
무질서하게 후퇴하는 녀석들을 궁기병이 뒤쫓으며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덕분에 둥지는 대량의 하급 마석과 중급 영양을 얻었고, 놀의 상위종인 블러드 놀의 부산물도 다수 얻게 됐다.
둥지의 전력이 결비를 준비하느라 외부로 빠져나간 사이, 둥지 내에선 재앙적 존재들이 폭증하고 있었다.
이를 제일 먼저 알아챈 건, 창고를 관리하던 행정 개미들이었다.
‘이상하군. 식량 재고가 맞지 않아…….’
하지만, 식량 재고 문제가 거론되기 전에 대기의 마력이 요동치며 개미족의 결혼 비행이 시작됐다.
페르가 오크나무 숲에서 강렬한 유도 페로몬을 흩뿌렸고, 수만의 공주 개미가 잇따라 페로몬을 발산하여 남부 대산림의 공주 개미와 수개미를 불러들였다.
한 곳에서 결비를 치르는 건 그만큼 위험 요소가 크다.
날아오르는 공주와 수개미를 따라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포식자들도 모여들었다.
사방에서 몰려온 하얀 새, 로크 무리가 공주와 수개미를 덮치려던 순간, 네론을 위시한 정찰 개미들이 나섰다.
스카이 워커와 플라이 워커로 구성된 정찰 개미는 크기가 그리 크지 않고 몸도 가벼워 전투력이 형편없었다.
덤벼 봐야 로크들의 한 끼 식사였지만, 희생을 각오하고 로크들을 궁기병이 매복한 장소로 유인했다.
나무 위에 매복한 채 대기 중이던 궁기병이 다가온 로크를 저격해 떨구면 본대인 하드 워커들이 덮치는 방식으로 사냥이 이어졌다.
“로크 킹이다! 화살이 맞질 않아!”
“여긴 로크 퀸이다!”
저격이 통하지 않는 존재로 인해 궁기병과 본대가 휩쓸리는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또 다른 장소에선 로크 킹 이상의 강함을 보이는 코카트리스 한 마리가 들이닥쳤다.
닭과 공룡을 닮은 비행 몬스터인 코카트리스.
입으로 불까지 뿜어 대는 녀석은 개미족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꼬카오! 꼬카오!”
괴상한 울음을 터트리며 네론과 페스트를 쫓아낸 놈이 공주와 수개미를 학살하며 날아다녔다.
“포스는 뭐 하고 있는 거야!”
화난 페르가 포스를 찾았지만, 그 시각 포스는 어둠 속에 숨어 공주 개미를 포식하던 흑표범 몬스터인 다크 비스트와 격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큭.”
체고 3m를 자랑하는 놈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암습을 가했고, 한 방 한 방이 오거의 일격과 비견될 정도여서 풀 버프 상태의 포스임에도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크 비스트가 전투 중에도 경비대 개미들을 뜯어 먹자, 포스는 치열한 격전에 낄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리던 포메온에게 외쳤다.
“이 녀석은 내가 맡을 테니, 너는 페르를 지켜라!”
“알겠습니다!”
포스의 상황을 포메온으로부터 듣게 된 페르는 분노했다.
“뭐? 다크 비스트 따위에 고전하고 있다고!”
포메온은 더듬이로 당황스러운 감정을 나타내며 말했다.
“다크 비스트는 일렉트론 베어, 그리고 코카트리스와 같이 건들면 큰일 나는 녀석들로 절대 만만한 놈들이…….”
“그럼 이대로 두고 보자는 거야? 어떻게든 몰려온 놈들을 죽여 놔야 공주들이 살아서 신여왕이 될 거 아니야!”
자신이 손수 가르친 공주들이 떼죽음 당하는 모습에 참지 못한 페르가 전투 페로몬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내가 나서야겠어.”
“페르 님이요?”
포메온이 의문성에 페르가 미간을 찌푸리곤 말했다.
“메가피르, 게르피아, 피어레스를 불러! 피어레스의 궁기병으로 놈을 떨궈서 뭉개버려야겠어!”
그게 됐으면 일찍이 처리했을 거란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한 포메온.
그가 쩔쩔매자 호위대장인 제르다코가 말했다.
“페르 님, 본대의 정예는 일렉트론 베어와 고전 중입니다.”
“그럼 놀고 있는 정예 부대를 데려와!”
예비대로 힘을 비축하고 있던 소드 앤트 부대와 아군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둥지에 있던 포병대가 불려왔다.
“오~ 너희들이 놀고 있었단 말이지…….”
섬뜩한 미소를 지은 페르, 그에 맞춰 블러리와 포룸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불러 줘서 감사합니다! 누구부터 썰어 버릴까요?”
“학살인가? 다 죽이면 되는 건가?”
제르다코와 포메온이 곁에 있었지만, 페르가 지휘를 맡기로 했다.
“포메온, 각성 능력 발동!”
“네!”
포메온의 각성 능력 영역 선포가 발동됐다.
영역 선포는 일정 범위 내의 아군을 강화하는 능력이었다.
“그럼 포병대, 코카트리스 놈을 떨어뜨려라!”
포메온이 다급히 말렸다.
“페르 님, 공주와 정찰 개미의 산성 내성으론 포격에 휘말려 큰 피해를 입을 겁니다!”
“나도 알아! 그렇다고 저대로 뒀다간 다 먹히게 생겼잖아!”
“그럼 공주 개미부터 대피 시키겠습니다!”
“멍청아! 그럼 코카트리스 놈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페르는 포메온의 머리를 마구 치며 말했다.
“개미족이 언제부터 이렇게 싸웠다고! 우린 예전부터 뭉치면 닥치고 돌격하던 종족이었어!”
코카트리스가 공주들을 불태워 죽이며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에 더는 참지 못한 페르가 포병대를 향해 명했다.
“피해는 내가 책임진다! 그냥 퍼부어!”
페르의 명령을 받은 포룸이 광기 가득한 눈을 빛내며 외쳤다.
“페르 님이 허락하셨다! 공주를 다 죽여도 상관없으니 무차별 폭격이다!”
페르가 화들짝 놀라 포룸을 돌아봤다.
“내가 언제 다 죽여도 된다고 했어! 그리고 무차별이라 안 했잖아! 코카트리스를 저격하라고!”
포룸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명령을 전했다.
“공주는 죽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무차별 폭격이다!”
“야! 너 이 새끼!”
50마리의 개틀링 워커와 250마리의 캐논 워커가 산성액을 퍼부었다.
일대의 하늘이 산성액으로 뒤덮였고, 코카트리스에게 노려지던 공주와 수개미가 휩쓸렸다.
수백의 공주와 수개미가 추락했으나, 포병대는 개의치 않았다.
“케헤헤, 다 죽여라!”
산성액을 덮어쓴 코카트리스가 괴로워하며 추락하는 중에도 포병대의 포격이 멈추지 않자 페르가 소리쳤다.
“조준이라도 하고 쏴!”
“조준해서 무차별 포격을!”
“됐어, 그만하라고! 이미 떨어졌잖아! 너 이 새끼, 우리 편 아니지?”
포룸이 시무룩해하며 포격 중지 명령을 내렸고, 페르는 그런 포룸을 보며 생각했다.
‘둥지에 왜 저런 미친놈이 있는 거지?’
페르가 들뜬 모습으로 대기 중이던 블러리와 소드 앤트 부대를 보며 말했다.
“놈이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아 둬.”
그동안 욕구 불만으로 힘들었던 블러리와 소드 앤트들은 이번 기회에 제대로 썰고 싶어 살기 가득한 눈을 빛냈다.
“알겠습니다! 소드 앤트 부대 돌격!”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페르가 물었다.
“야, 너 견제만 하러 가는 거 맞아?”
블러리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뛰쳐나가자, 나우피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페르에게 말했다.
“저희는 울트라 같은 단단한 외골격이 없어요. 그래서 견제의 의미도 여왕님이 생각하시는 것과는 조금 다를 거예요.”
“뭐가 다르다는 거야?”
“앗, 이러다 늦겠어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지상에 떨어진 코카트리스가 상처를 빠르게 회복하며 사방에 불을 뿜어 댔다.
“썰어라! 죽기 전에 죽여서 놈의 움직임을 봉쇄하라!”
블러리와 소드 앤트 부대가 광기 어린 표정으로 달려들었고, 불길을 뚫고서 코카트리스의 몸에 검을 박았다.
소드 앤트의 죽창 전법을 목격한 페르가 멍한 표정을 짓자, 포메온이 작게 중얼거렸다.
“제가 피해가 클 거라고 말했잖아요. 저래서 후방으로 물려 둔 건데, 소드 앤트들에게 코카트리스의 견제를 맡기면 어떻게 합니까?”
포메온을 한 번 째려본 페르는 정신을 차리곤 페로몬 능력을 끌어올렸다.
둥지 최강 병종으로 여겨지는 소드 앤트들은 마력으로 내성을 강화하여 전장의 열기에 어느 정도 버텼으나, 오래 버티진 못했다.
몇몇은 코카트리스의 화염 공격에 휩쓸려 태워졌고, 나머지는 전장의 열기 속에서 탈진하여 나가떨어졌다.
부하들이 죽어감에도 블러리는 코카트리스를 베는데 집중했다.
죽기 전에 죽여야 피해를 최소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우피어의 판단은 조금 달랐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동료를 살리기 위해 구조 활동에 힘 썼다.
“의료대! 여기 지원 부탁한다! 메디 좀 불러 줘!”
상급 개미기공의 7단계, 무산 마기까지 습득한 블러리와 나우피어는 열기로 휩싸인 전장에서 오래 버티긴 했으나, 그들도 코카트리스의 회복을 저지하진 못했다.
“놈이 도망갑니다!”
포룸이 다시금 포격하려 할 때, 페르가 저지했다.
“됐어, 충분해.”
큰 희생을 치러가며 코카트리스 격퇴에 성공했다.
즉, 사냥에 실패한 것인데 페르는 코카트리스를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페르는 소드 앤트를 경유해 충분한 페로몬을 코카트리스에게 묻혔고, 수련을 통해 깨닫게 된 페로몬 능력을 사용했다.
“페로몬 변환, 진미의 페로몬!”
코카트리스의 몸에 묻은 페로몬 향이 퍼져 나가며 로크들의 후각을 자극했다.
“죽어라, 코카트리스!”
아무리 코카트리스가 일당백이더라도 만신창이 상태의 몸으로 수백 마리의 로크 무리를 이겨 내긴 힘들었고, 거기에 네론과 페스트가 가세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휴, 여유 좀 생기지 않았어?”
무식한 방법으로 희생을 치러 가며 코카트리스와 로크 무리 하나를 처리한 페르.
그녀 덕에 의료 부대가 바빠졌다.
“코카트리스 사체를 회수해! 그리고, 남은 녀석들은 나와 일렉트론 베어를 사냥하러 가자!”
페르를 중심으로 개미들의 막무가내식 돌격이 시작되자 일렉트론 베어와 다크 비스트가 도주했고, 배를 채운 로크 무리도 하나둘 떠나갔다.
페르의 과격한 방식을 흡족해하던 블러리와 포룸은 강적들이 도주한 것에 입맛을 다셨다.
“이걸로 끝인가?”
나우피어가 안도하며 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쪽 상공이 노랗게 뒤덮였다.
“젠장… 옐로우 로커스트 떼다!”
하필이면 결비 시기에 맞춰 노란 재앙이 들이닥친 것이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