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33화 (132/189)

133화. 헤라클레스의 분노

도끼와 창끝이 만났다.

저번에 만들어 둔 균열이 번져 갔다.

챙그랑!

도끼가 부서지며 우도의 중심이 무너졌고, 나의 창이 놈의 목에 닿았다.

“음머?”

얕게 찔려 피가 살짝 새어 나왔다.

장내가 차갑게 가라앉았고, 우도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눈만 껌벅였다.

그러다 미노스 쪽으로 바라보며 애원했다.

“미노스 님,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도끼만… 도끼만 부서지지 않았어도!”

미노스는 고개를 저었고, 우도는 우마십장에게 끌려갔다.

그가 끌려간 곳에서 애처로운 비명이 들려왔고, 심판이 나의 승리를 선언하며 작게 속삭였다.

“운이 좋군. 무기가 깨지지 않았다면, 네놈은 몸뚱이채로 짓눌렸을 거다.”

장내를 둘러보니 나르본느를 제외한 모두가 우도의 도끼가 부서진 걸 우연으로 치부했다.

‘미리 작업해 둔 거라곤 전혀 생각을 못하는군.’

내가 관전석에 돌아오니 다음 결투가 시작됐다.

예선 3위인 우고 vs 예선 8위인 트롤레.

“상대해 주마, 트롤 킹.”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미노타우로스.”

트롤레가 백전노장의 이미지라면, 우고는 차갑게 벼려진 기사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트롤레가 휘두른 둔기에 도끼가 튕겨 나가자, 우고는 살짝 놀랐다.

“힘은 좋군. 웬만한 오거 수준은 되겠어.”

“네놈은 예상보다 강하진 않군.”

할 만하다고 느낀 트롤레가 우고를 밀어붙였으나, 이는 우고가 체력을 아끼고자 진심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

“죽어라!”

트롤레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우고의 눈이 섬뜩하게 빛나며 둔기를 쳐 냈다.

우고가 당황한 트롤레의 목을 반쯤 베어 내는데 성공했으나, 재생 능력만큼은 몬스터 중 최고인 트롤 킹은 그 정도로 죽지 않을 뿐더러 물러서지도 않았다.

목을 내주며 팔을 부수려던 트롤레의 공격에 우고가 급히 물러났다.

“무식하군. 이게 트롤의 방식인가?”

“이게 네놈의 힘인가?”

“미안하지만, 아직 절반의 힘도 쓰지 않았다.”

우고가 공세에 나서자 트롤레가 압도당했다.

트롤레는 치명상을 피하며 버티기에 들어갔고, 그로 인해 결투가 길어졌다.

“네놈의 상대가 다른 강세종이어다면 지구전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상대가 미노타우로스라면 지구전은 통하지 않아.”

쉽사리 제압할 수 없다고 느낀 우고가 트롤레에게 항복을 종용했지만, 트롤레는 고집이 강했다.

“일족의 왕인 내가 항복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어쩔 수 없군…….”

우고가 도끼에 마기를 피워 올렸고, 트롤레도 그에 맞서 전신의 기운을 무기에 집중시켰다.

둘은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방대한 마력을 가졌으나, 거대한 무기에 장시간 마기를 피우긴 쉽지 않았고, 표면적이 넓은 트롤의 둔기는 마력 효율이 최악인 무기이기도 했다.

캉! 캉!

트롤이 아무리 잘 버티는 종족이라도 마력이 고갈되면 별 수 없다.

격돌할 때마다 조금씩 마기가 흐트러졌고, 피를 뱉어내며 싸웠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던 트롤레의 마력은 금세 고갈되며 결투 초기의 회복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그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 갔다.

“승부는 났다. 항복해라!”

“왕에게 항복이란 있을 수 없다!”

트롤레가 불굴의 투지를 불태우며 목숨을 내던지듯 우고에게 맞서자, 관전석의 라미아 전사와 하이 오크 전사들이 안타까워하면서도 감탄했다.

동귀어진을 노리는 트롤레에 맞서 우고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치고 빠지기 전법으로 확실한 이득을 취했다.

‘다음 경기를 위해서라도 상처를 입지 않겠다는 거군.’

승패는 일찍이 갈렸음에도 결투는 한동안 이어졌다.

우고의 호흡이 거칠어 질 무렵, 트롤레가 선 채로 의식을 잃었다.

그제서야 심판이 우고의 승리를 선언할 수 있었다.

“우고, 승!”

부서진 둔기, 너덜거리는 사지.

트롤레의 투지는 관전석의 많은 몬스터를 감동시켰으나, 곤충족의 감성을 자극하진 못했다.

“무모했다.”

“소머리 녀석, 제압할 수 있었는데 그냥 가지고 논 거 아니야?”

나는 헤라클레스와 나르본느에게 우고의 전략적 선택을 해석해 줬다.

“다음 경기를 위해서라도 부상만큼은 피해야 하니까요.”

크라스는 예선에서 떨어진 걸 아쉬워했다.

“나라면 놈의 다리 하나는 날렸을 거다.”

우고가 결투장에서 내려간 후, 심판이 오그무트와 클롭을 불렀다.

예선 2위인 오그무트 vs 예선 5위인 클롭.

오그무트의 무장은 주요 부위만 가린 가죽 갑옷과 묵직해 보이는 강철 장갑이다.

‘저건 어디서 난 거지?’

둥지의 기술력으로도 만들기 쉽지 않아 보이는 장갑에 눈길이 갔다.

클롭은 몬스터의 뼈를 빈틈없이 장착해 외골격을 가진 거대한 몬스터처럼 보였다.

왼손으론 방패를 들고, 오른손으로 곡도를 든 클롭.

그의 등에는 손에 든 것보다 훨씬 큰 방패가 등껍질처럼 자리했고, 한 자루의 창이 꽂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리춤에는 예비 검들이 있었고, 다리 쪽에는 단검들도 있다.

‘전쟁이라도 할 셈인가?’

태생적인 신체적 우월함을 믿고 싸우는 몬스터치곤 과도한 무장.

“그럼 결투를 시작하겠다!”

8강 세 번째 결투가 시작됐다.

미로의 숲에서 결판을 내지 못했던 둘.

“네놈과는 결승에서 만나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 점은 나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마안으로 봤을 때, 최강 후보들의 격돌이라 할 수 있었다.

“안 오나? 그럼 내가 가지!”

쾅! 쾅!

공기를 가르는 묵직한 오그무트의 주먹.

약세종이었다면 스치는 것만으로 데미지를 입을 듯한 주먹에 맞서 클롭은 방패와 검을 사용해 정교한 움직임으로 충격을 흘렸다.

‘제대로 된 무기술이야!’

힘은 오그무트가 앞설지 몰라도 기교에선 클롭이 압도적.

장기전으로 가게 되면 정교한 무기술로 체력 소모를 줄인 클롭이 유리할 듯했다.

쾅! 콰쾅!

두 거구의 격돌로 공기가 비명을 질렀고, 승패는 쉽사리 갈리지 않았다.

‘장기전으로 흘러가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움직임이 읽힌 오그무트가 불리해지는 듯 보였으나, 오그무트에게선 시종일관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오히려 효율적으로 전투를 풀어 가고 있는 클롭이 초조해했는데…….

“장갑의 힘은 언제 쓸 거지?”

“알고 있었나?”

“키클롭스의 혜안을 무시하지 마라.”

“그렇군. 네놈들은 눈이 좋았지.”

살짝 거리를 벌린 오그무트가 장갑에 마기를 일으켰다.

클롭도 그에 맞서 방패에 마기를 둘렀다.

클롭의 마기 쪽이 밀도가 높았으나, 강철 장갑이 빛을 뿜으며 오그무트의 마력을 증폭시켜 밀도만으론 극복할 수 없는 양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

“그게… 장갑의 힘인가?”

“그래. 하루에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힘이지만, 네놈을 꺾으려면 어쩔 수가 없군.”

마력이 증폭된 오그무트.

그에게 차츰 밀리기 시작한 클롭.

마기가 흔들리며 방패와 무기가 부서지자 클롭은 등에서 거대한 방패를 꺼내 들었다.

“장갑의 빛이 옅어졌어, 버티면 나의 승리인가?”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허접한 장갑이 아니다.”

거대한 방패도 얼마 버티지 못해 부서졌고, 클롭의 예비 무기들과 방어구도 하나둘 부서져 갔다.

“그 장갑이 탐나는군.”

“날 죽이면 네 것이다!”

결국, 템빨에 밀려 피투성이가 된 클롭.

오그무트는 장갑의 힘이 소실되기 전에 전력을 다한 일격으로 클롭을 날려 버렸다.

“하… 하…….”

한 차례 폭풍이 몰아친 결투장.

심판이 오그무트의 승리를 외쳤다.

오그무트는 빛을 잃은 장갑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결승에서 쓰고 싶었는데, 아쉽군.”

나를 비롯해 우고와 오그무트의 4강 진출이 확정됐고, 마지막 8강전으로 예선 1위인 헤라클레스와 예선 4위인 스콜이 붙었다.

“헤라클레스, 네놈도 전력을 다해야 할 거다.”

“알아서 하겠다.”

스콜은 자신의 독을 활용해 신체를 강화할 수 있었고, 강화 상태에 돌입하면 외골격이 붉게 변한다.

“간다!”

헤라클레스는 감정이 고양됨에 따라 외골격이 금색으로 변하며 신체 능력이 폭증했고, 무기 또한 금색으로 뒤덮여 강력해졌다.

쾅!

붉게 변한 스콜과 금색 헤라클레스의 격돌.

둔기와 꼬리가 부딪혔고, 헤라클레스의 발차기와 스콜의 주먹이 충돌했다.

어느 순간 둘은 각자의 무기에 마강기를 더해 서로를 분쇄할 기세로 맞섰고, 시간이 흐르자 전신에 마강기를 두르고 부딪혔다.

오그무트와 클롭에 비해선 임팩트가 약했지만, 속도는 훨씬 빨라 관전석의 몬스터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군요. 갑각왕과 전갈왕이 이 정도일 줄이야…….”

놀라는 버플.

옆에 있던 크라스와 나르본느는 헤라클레스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도 그럴게, 헤라클레스의 힘은 감정이 고양될수록 강해진다.

지금의 헤라클레스는 살짝 들뜬 정도?

그러니 전투가 이어질수록 흥분할 테니…….

‘이기겠군.’

전력이 아니었던 건 스콜도 마찬가지였다.

“네놈을 무투회에서 만날 수 있어 기뻤다.”

차츰 밀리기 시작하자 거리를 벌린 스콜이 2차 각성기를 꺼내들었다.

“우리의 악연은 여기서 끝이다!”

스콜의 붉은 외골격이 검붉은 색으로 변했고, 몸에 두른 마강기의 색채도 짙어졌다.

스콜에서 풍기는 강렬한 마력 파동에 장내의 몬스터들이 당황했다.

‘이건… 오그무트와 클롭 수준을 넘어섰잖아!’

나르본느가 다급히 말했다.

“말려야 해! 저 녀석, 헤라클레스를 죽일 생각이야!”

지금의 스콜을 헤라클레스가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전신 호흡으로 존재감을 지우곤 결투장 근처로 이동했다.

‘지는 건 괜찮아! 하지만, 헤라클레스를 잃을 순 없어.’

이동하는 내게 은밀히 따라붙은 나르본느가 헤라클레스에 관한 옛이야기를 해 줬다.

* * *

쾅!

헤라클레스의 둔기를 한 손으로 잡아낸 스콜.

“흠… 네놈, 언제까지 숨길 거지? 아니면 힘을 잃었나?”

스콜은 잡힌 헤라클레스를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퍼퍼퍼퍽!

고속으로 휘둘러진 꼬리 공격에 헤라클레스는 속수무책이었고, 스콜은 헤라클레스의 외골격이 부서지기 직전에 놓아 주었다.

그제야 한두 걸음 물러났지만, 타격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무릎이 접힌 헤라클레스.

스콜은 그런 헤라클레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게 전력이라면 넌 여기서 끝이다. 죽기 전에 할 말은 있나?”

무기를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킨 헤라클레스가 물었다.

“아직도… 날 원망하나?”

슬픈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스콜이 말했다.

“과거의 이야기라면 벌써 잊었다. 우린 그런 존재 아닌가?”

“…….”

“하긴, 네놈은 많이 달랐었지.”

오크나무 숲의 왕좌를 두고 헤라클레스와 그의 형이 대립하던 때가 있었다.

“더 강한 갑각왕이 수호자가 되는 거다!”

“그럼 형이 해라. 날 이겼지 않나?”

“아니. 금갑돌파를 사용한다면 네가 나보다 훨씬 강할 테니, 네가 수호자다!”

갑각왕의 특성인 금갑돌파.

당시의 헤라클레스는 다른 갑각족과 달리 분노를 잘 느끼지 못하여 금갑돌파를 사용하지 못했다.

“난 금갑돌파를 쓸 줄 모른다.”

“아니, 넌 쓸 수 있어!”

헤라클레스의 형은 매일 같이 그를 설득하여 숲의 수호자 자리에 앉히려 했다.

“네 재능을 썩일 생각이냐?”

“재능?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군. 선대 수호자는 날 금갑돌파도 쓰지 못하는 반품이라 그러던데….”

“금갑돌파도 없이 이만큼 강하다는 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거잖아! 그러니 수호자는 네가 해야 해!”

무력과 지력, 모든 면에서 형 쪽이 우수했으나, 형은 헤라클레스의 잠재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황무지에 먹을 게 부족해져 전갈족 일부가 숲으로 이주해 왔다.

이주해 온 전갈족이 갑각충을 포식했고, 이를 막기 위해 헤라클레스의 형이 나섰다.

“돌아가라!”

“내게 돌아가라는 건, 죽으라는 것과 같아!”

“그렇다면 힘으로 쫓아내 주지!”

“흥! 수호자도 아닌 갑각왕 정도야!”

전갈족 대표와의 전투 끝에 헤라클레스의 형이 죽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네놈도 죽으러 왔냐?”

분노한 헤라클레스는 완성된 금갑돌파를 선보여 이주해 온 전갈족을 모두 격살했고, 그곳에 있던 전갈족 대표가 스콜의 여동생이었다.

소식을 들은 스콜이 오크나무 숲을 찾았고, 금빛에 휩싸인 헤라클레스의 존재감을 느끼곤 공포를 느꼈다.

‘괴물이다! 이 녀석, 내가 독을 써서 각성해도 어쩔 수 없는 놈이야!’

격의 차이를 느낀 스콜은 복수를 포기했다.

황무지로 돌아간 그는 수년에 한 번 숲으로 넘어와 헤라클레스를 지켜봤다.

‘놈은 어째서인지 힘을 숨기고 있어.’

가끔 헤라클레스를 도발해 봤지만, 예전 같은 힘을 내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무투회에서 격돌하게 된 둘.

새로운 독으로 2차 각성을 이룬 스콜이 압도하자, 헤라클레스의 외골격이 부서져 내리며 찬란한 금빛 외골격이 드러났다.

“난 아직 잊지 않았다. 아니, 잊을 수 없었지.”

그동안 쌓인 분노를 쏟아내는 헤라클레스가 외쳤다.

“네놈이 수시로 찾아와 날 귀찮게 했으니까!”

수시로라는 말에 반박하려 한 스콜이었지만,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휘둘러 온 둔기에 직격당하며 반박할 기회를 상실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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