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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134화 (133/189)

134화. 토너먼트의 결말

내가 결투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서 언제든 헤라클레스를 구조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을 때, 헤라클레스가 분노하며 온몸에서 금색 광휘가 터져 나왔다.

‘나르본느가 말해준 금갑돌파의 풀 파워 상태야!’

금갑돌파는 감정이 최고조에 달해야 겨우 발휘되는 갑각왕의 필살기이며, 언제나 무덤덤한 헤라클레스는 자의로 발동할 수 없는 기술이라 했었다.

그래서 예전 헤라클레스에게 다양한 감정을 알려 준 적이 있었고, 평소에 그러한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뒀다 필요할 때 터트리는 요령도 알려 줬었다.

당시 큰 도움이 됐다며 내게 고마워하긴 했는데…….

‘제대로 성과가 있었던 것 같군.’

나르본느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면 헤라클레스의 형이 스콜의 여동생에게 죽었고, 스콜의 여동생은 헤라클레스에게 죽었으니 서로가 서로의 원수라 할 수 있었다.

분노를 터트리기 좋은 상대였으나, 곤충족은 형제와의 우애가 깊지 않다.

만약 곤충족이 형제와의 우애가 깊었다면, 나는 매일같이 죽어가는 자매들의 장례식을 치르며 눈물을 흘렸을 터였다.

그렇다 보니 곤충족인 우리의 뇌 구조상 형제의 죽음은 일상적인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형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헤라클레스가 분노치 맥스를 찍기에는 부족했을 텐데…….

‘도대체 뭐 때문에 풀 파워를 발휘할 수 있게 된 거지?’

헤라클레스가 스콜을 몰아붙이며 쏟아내는 말이 들려왔다.

“갑각충은 기본적으로 혼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종족이다. 하지만… 수호자가 된 나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게 됐지.”

나르본느에게서 들은 헤라클레스와 형의 관계.

‘그런 거였군! 나르본느의 말만 듣고 착각할 뻔했어.’

둘은 서로를 인정하며 수호자 자리를 양보하는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 우애 같은 건 전혀 없었고, 서로에게 수호자란 족쇄를 채우려던 사이였다.

전갈족 덕에 독박을 쓰게 된 헤라클레스는 백여 년간 책무에 의한 스트레스를 받아 온 듯했다.

“가끔 로커스트 놈들이 날아오를 때의 내 심정을 아나? 인간들이 숲에 발을 들일 때마다 나는 전쟁을 준비해야 했어!”

헤라클레스가 스콜을 탓하기 시작했다.

“그건 내 탓이… 컥!”

스콜은 억울했으나, 헤라클레스는 스콜의 변명을 들어 주는 대신 둔기를 휘둘렀다.

“숲에 귀찮은 무투파 몬스터가 얼마나 많은 줄 아나? 네놈이 아니라도 난 충분히 바쁘단 말이다!”

“그것도 나와는… 켁!”

“닥쳐라! 모두 네놈 탓이다! 네놈은 태어나선 안 될 존재였던 것이다!”

의식적으로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서라지만…….

‘이런 리스크가 있을 줄이야.’

분노를 위한 트집.

그의 금갑돌파는 심성의 바닥을 내비쳐야 비로소 발동되는 듯했다.

심성의 바닥을 내비친 대가로 절대적인 힘을 얻게 된 헤라클레스.

그에게 압도당하여 처 맞던 스콜.

장내는 스콜의 무력에 일차적으로 당황한 상태에서 헤라클레스의 전력을 보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갑각왕의 진정한 힘이란 말인가?”

나르본느와 크라스는 헤라클레스의 전력을 보곤 들떴다.

“죽여 버려!”

“꼬리를 뜯어내라!”

디아도 몸이 근질근질한지 엉덩이를 들썩였고, 말벌왕 키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말벌창을 힘껏 쥐었다.

‘이 정도 힘이면 우마십장을 쓸어버리고도 남을 거야!’

헤라클레스의 남 탓 신공에 억울함을 호소하던 스콜이 폭발했다.

“네놈이 말한 것들과 나랑은 하나도 관계없다! 삼중독강!”

외침과 함께 스콜의 검붉은 마강기가 선홍빛으로 폭사하며, 외골격 또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변화한 그는 강렬한 포스를 풍기며 헤라클레스의 둔기를 양 손으로 막아 세웠다.

“우승은 포기하마… 그 대신, 네놈과의 악연은 이 자리에서 끝내겠다!”

콰쾅!

피를 충분히 흡수한 모기왕도 울고 갈 고속의 격돌.

강세종이 부딪혀도 멀쩡하던 바닥에 균열이 번졌다.

왕급 이하들은 전해져 오는 충격파만으로 타격을 받는 수준.

‘대단하군.’

왕급을 초월한 듯한 힘.

생물의 영역을 한참이나 벗어난 움직임을 보이는 둘이었지만, 이런 힘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뿐더러 리스크가 컸다.

헤라클레스의 둔기와 스콜의 꼬리가 무수히 격돌하며 부서져 갔다.

각자의 무기가 박살나자 육탄전에 돌입했다.

주먹질과 발차기.

방어를 무시한 둘은 서로를 분쇄할 기세로 난투전을 벌였다.

공방이 이어지며 둘의 외골격에 균열이 퍼졌다.

“강하구나. 금갑돌파의 힘에도 밀리지 않다니!”

“내가 할 소리다, 갑각왕! 삼중독강 상태의 나와 비등하다니!”

쾅!

십여 합의 충격음이 하나의 충돌음으로 들려오며 둘은 서로의 턱을 가격해 결투장 밖으로 날아갔다.

스콜은 급히 일어서다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큭, 몸이…….”

몸이 능력의 부하를 이겨 내지 못한 듯했다.

‘끝났군.’

헤라클레스도 금갑돌파를 유지하기 힘들었는지 금색 외골격이 갈색으로 돌아왔지만, 색채가 돌아오며 벗겨진 외골격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헤라클레스가 이겼어.’

힘겹게 결투장으로 돌아온 헤라클레스가 쓰러진 스콜을 내려다봤다.

“네놈이 무투회에 참석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숲의 수호자를 자처한 이상 우승을 양보할 생각은 없다.”

헤라클레스가 승리의 세리머니로 주먹을 힘껏 치켜들자, 나르본느를 시작으로 장내의 몬스터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

스콜은 그런 헤라클레스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네놈은 괴물이다.”

말을 마친 스콜이 의식을 잃었다.

동료가 없어 쓸쓸하게 방치된 스콜.

미노타우로스 하나가 그런 스콜을 챙겼다.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나르본느, 잠시 보고 올게요.”

“빨리 와. 4강 결투가 바로 진행될 거니까!”

“급할 때는 거미줄을 당겨서 알려 주세요.”

“세 번 당겨지면 무조건 뛰어와야 해!”

“알았어요.”

패자를 어떻게 처리하나 싶어 따라가 봤다.

‘여긴 의무실인가?’

약초로 가득한 곳에서 미노타우로스들이 스콜을 보곤 혀를 찼다.

“감당 못할 독으로 몸을 망쳤군.”

“이건 무슨 약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

“라미아들에게 물어봐야 하나?”

“이건 마력 고갈이다. 라미아를 불러도 약초가 없을 테니 살릴 수 없을 거야.”

“의식은 있는 것 같은데 어쩌지?”

“동족도 아니니 그냥 가져다 버릴까?”

“그래도 무투회에서 죽은 녀석이니 제대로 묻어 줘야 해.”

스콜의 의식이 돌아왔음에도 의무실의 미노타우로스들은 놈이 곧 죽을 거라고 판단했다.

“내가 묻고 오지.”

졸지에 생매장을 당해버린 스콜.

매정한 놈들 같지만, 몬스터 사이에서 묻어 주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

만약 명예를 중시하는 미노타우로스가 아닌 개미족이었다면 어차피 죽을 녀석이니 신선할 때 회부터 쳤을 거다.

미노타우로스는 근처에서 커다란 비석을 가져와 스콜이 묻힌 곳을 꾹 눌러 줬다.

“됐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해 준 거지.”

자신의 작품에 만족한 미노타우로스가 떠난 직후, 나는 급히 스콜을 꺼냈다.

한참이나 눈을 껌벅이던 스콜이 피를 토하곤 물었다.

“쿨럭, 뭐 하는 거냐?”

회광반조라도 일어난 듯한 스콜.

“패자에 대한 동정인가?”

“동정이 아니야. 그냥 고민하고 있어. 네놈을 살릴지 마석만 회수해 갈지.”

“먹지도 못할 내 마석을 원하다니, 별난 개미족이군.”

스콜은 힘겹게 손을 움직여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여기에 있다… 가져가라.”

눈을 감으려던 그에게 물었다.

“무투회에 참석한 이유가 뭐야? 듣기론 전갈족이 무투회에 참석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는데.”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숲의 놈들은 들어도 모를 거다.”

“그래도 말해 봐.”

스콜은 아련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원한 물 한잔이 마시고 싶었을 뿐.”

그 말을 끝으로 스콜은 의식을 잃었고, 숨소리가 끊기려 했다.

‘물이라…….’

정말로 물을 얻어 마시려고 무투회에 참석한 건 아닐 거다.

아무래도 황무지의 수자원이 메말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미노타우로스들의 힘이 필요한 것 같았다.

‘황무지 쪽으론 확장해 봐야 얻을 게 없단 말이지.’

정말 수자원이 메말랐다면 황무지의 몬스터들이 숲을 침공해 올지도 몰랐다.

‘이건, 스콜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

영역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주변 정세를 파악하고, 그쪽 지배자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좋다.

‘황무지 쪽은 무지하단 말이지.’

그러므로 나는 헤라클레스와 오래도록 인연을 맺어온 스콜을 살려 보기로 했다.

지금의 스콜은 마력이 고갈된 상태다.

‘마력만 채워 주면 어떻게든 되겠지.’

마력을 채워 줄 만한 약은 내 사교위에 있다.

‘마력초 씨앗을 부숴서 영양에 섞어 먹이면 충분할 거야.’

씨앗을 손가락으로 짓이겨 가루로 만들고 영양과 섞은 후, 놈의 입가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스콜의 고갈된 마력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자 숨소리가 안정됐다.

고요한 무덤에 내버려 두면 알아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네놈의 마석은 다음에 가져갈게.”

나르본느가 거미줄을 두 번 당겼다.

‘4강 결투가 시작됐다는 신호야.’

이놈의 무투회는 쉴 틈을 주지 않으니, 놈의 회복을 기다려줄 순 없었다.

일행이 있는 관전석에 도착하니, 오그무트와 우고가 결투 중이었고, 나는 헤라클레스의 기권으로 부전승을 한 상황이었다.

“지금 내 상태론 금갑돌파를 쓸 수 없다.”

그동안 축적한 감정을 모두 소진했다는 헤라클레스.

“다음 상대를 이길 수 없을 듯하니… 다크, 네가 힘써 줬으면 좋겠다.”

“뭐, 이런 경우를 상정해서 제가 온 거니까요.”

축적된 감정이 소진된다는 감각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으나, 뒤는 내가 맡기로 했다.

‘내 결승전 상대는 오그무트와 우고, 둘 중 하나인가?’

둘 중 누가 올라와도 이길 자신은 있다.

문제는 어떻게 이기냐인데, 결승에선 내 힘을 충분히 보여 숲의 지배자들에게 나를 알릴 생각이었다.

‘그럼, 개미족의 영역을 건드릴 놈도 줄어들겠지.’

영역을 안정시키면 발전 속도가 높아질 것이다.

콰아앙!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경기장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분명 하루에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필살기를 소진해 버린 오그무트보단 우고 쪽이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을 텐데.

어째서인지 둘이서 피 튀기는 혈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 * *

심판이 4강전의 시작을 알렸다.

헤라클레스가 심판에게 다가가 기권을 선언하자, 심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개미족 녀석, 정말 운이 좋군. 제대된 전투 없이 결승까지 가다니… 하지만, 무투회 우승은 운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곧 깨닫게 되겠지.”

그렇게 다크의 결승 진출이 확정되고 두 번째 시합이 시작됐다.

오그무트 vs 우고.

오그무트는 결투가 시작된 순간 장갑을 벗어 던지며 돌진했다.

“그렇게 내 장갑이 탐나면 가져가라, 소머리!”

“흥, 무기를 버리다니,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냐?”

날아오는 장갑을 도끼로 받아친 우고는 경악했다.

‘이게 대체!’

던져진 장갑이 예상 이상으로 육중했기 때문이다.

장갑을 벗음으로써 한층 가벼워진 오그무트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우고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컥!”

그 한 방을 허용한 것으로 우고의 자세가 무너지며 수세에 몰렸다.

우고는 자세를 정비하기 위해 도끼를 휘둘러 봤으나, 오그무트는 나비처럼 피해 벌처럼 쏘며 주먹을 꽂아 넣었다.

관전석에 돌아와 결투장을 지켜보던 클롭은 당연한 결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우마십장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저 녀석, 오거 주제에 왜 저리 빠른 거야?”

“그동안 무식한 힘만 보인 건, 결승전까지 전투 방식을 숨기기 위한 거였어!”

“이대론 우고가 지겠어!”

이대로 허무하게 질 수 없다고 생각한 우고는 소수의 미노타우로스만이 습득할 수 있었던 비기를 꺼내 들었다.

“광우난무!”

우고의 눈이 점차 붉게 물들었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을 퍼부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빨리지는 도끼에 맞서 오그무트도 치명적인 공격만을 피하며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렇게 몇 분간 공방이 이어진 결과, 가속된 우고의 도끼에 전신을 난도질당한 오그무트가 물러섰다.

“항복이다.”

탈진한 오그무트가 쓰러지자 우마십장 여덟 마리가 결투장에 난입했다.

“잡아!”

“막아!”

우마십장의 합공으로 제압된 우고는 몇 분 후 제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네가 광우난무를 터득했을 줄은 몰랐다.”

우마십장은 우고의 뛰어남을 자랑스러워했고, 미노스 또한 뿌듯해하는 모습이었다.

장내가 정리되는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심판이 결승전의 시작을 알려왔다.

“개미족의 워커, 다크. 오거의 주먹 오그무트를 꺾고 올라온 우마의 자손 우고. 둘은 결투장으로 올라와라!”

우고가 결투장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환호성이 터졌다.

그에 비해 나를 응원해주는 건 나르본느 뿐이었다.

“개미족, 네놈의 운도 여기까지군.”

심판이 나를 한껏 비웃었고, 우고가 도끼를 어깨에 걸치며 돌진 자세를 취했다.

그에 맞서 나는 놈에게 감각을 집중하며 자세를 낮췄다.

장내의 미노타우로스들은 우고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고, 나는 전력을 다해 우고를 박살 내 미노타우로스의 자존심을 꺾어 주려 했다.

그런데, 우고는 돌진하려다 엎어지더니, 일어나다 또 엎어졌고, 도끼를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키다 다시금 엎어졌다.

“잠깐 미끄러졌을 뿐이다.”

절호의 기회였지만, 지금 놈을 치면 운으로 우승했다는 불명예를 안게 될 테니, 그가 일어나길 기다려줬다.

그리곤, 거구를 일으킨 우고가 몸 점검을 끝내곤 공격 자세를 취하던 중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쓰러진 녀석은 일어나지 못했고, 숨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죽은 건… 아니겠지?’

“…….”

심판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와 미노스를 번갈아 봤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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