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36화 (135/189)

136화. 삼신전

가진 출입증은 세 장.

곤충족은 출입증에 관심이 없었는데, 미노타우로스들까지 거래를 청해 오며 총 여섯 집단이 출입증을 원했다.

놈들은 주로 자신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걸 제시했다.

“우린 약초와 식량을 재배하고 있다. 그리고 몬스터의 뼈로 만든 무구를 쓰지.”

키클롭스는 식량을 재배할 수 있었으나, 수가 많지 않아 문명은 낙후돼 있었다.

그래도 물물교환의 원칙 정도는 알았는데, 오거는 그렇지 못했다.

“승부다! 네놈은 출입증을 걸어라. 내가 이기면 내 영역을 내주지.”

지리적으로 관리가 힘든 땅은 내게 필요치 않을뿐더러, 오거 놈들과 잘못 붙었다간 피떡이 될 수 있으니…….

‘이놈들과는 말이 안 통한단 말이지.’

하이 오크들은 부족 사회를 이루고 있음에도 오거만큼이나 단순한 사고방식을 지녔다.

“널 대전사로 인정해 줄 테니, 출입증을 다오.”

“대전사? 난 그런 거 필요 없는데.”

“대전사가 되면 숲의 모든 오크가 너희를 무시하지 않을 거다.”

“음… 지금도 무시당하고 있지는 않아서 말이야.”

무시하던 놈들은 모두 죽어서.

“그럼 원하는 게 뭐냐?”

“생각 좀 해 볼게.”

트롤레는 자신의 피를 내걸었다.

“내 피는 상당한 가치가 있을 거다.”

확실히 트롤 킹의 피는 귀하다.

그러나, 일반 트롤의 피만으로도 괜찮은 수준의 회복 포션을 생산할 수 있어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트롤레와는 따로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어 트롤레와는 따로 만나기로 한 나는 릴리스의 제시를 먼저 듣기로 했다.

라미아들은 독지에서 자라는 희귀한 독초와 약초를 많이 알고 있었다.

‘남부 독지에서 온 놈들이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정보를 많이 안단 말이지.’

“개미족이니, 독초와 약초 같은 건 필요 없을 테니…….”

둥지에는 전문 연구팀을 굴리고 있기에 다양한 독초와 약초가 필요하지만,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이런 건 어떤가요.”

릴리스는 필요할 때 다섯 마리의 정예 라미아를 1년간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고작 1년 동안 다섯 마리는 너무 적잖아.”

“저희도 수가 많은 종족이 아니어서…….”

장수족이었던 라미아는 기간은 늘려 줄 순 있어도 수는 늘려 줄 수 없다고 했다.

“조금 생각해 볼게.”

마지막으로 미노타우로스들의 제시를 들어 봤다.

미노타우로스들은 약세종과의 거래 경험이 많았고, 자신들의 힘을 빌려주는 대가로 출입증을 교환해 왔다고 했다.

“언제든 필요할 때 힘을 보태 주지.”

“얼마나?”

“보통 한 달 동안 열두 마리의 미노타우로스 전사를 보내 주지만, 네놈에겐 스물네 마리까지 지원해 주마.”

이만한 지원을 얻게 되면 숲에서 생기는 웬만한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 출입증… 상당한 물건이긴 해.’

하지만 결혼 비행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한동안 영역 확장 계획은 없었다.

‘이젠 내실을 다져야할 때니까.’

이들이 내게 뭘 해 줄 수 있는지 잘 들었다.

‘다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모르니…….’

저들의 역량을 알았으니, 이젠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 줄 차례였다.

나는 트롤레부터 따로 불러 교섭에 들어갔다.

트롤레가 출입증을 원하는 이유는 미노타우로스의 힘을 빌려 사라진 동족을 찾기 위해서였다.

“오거 숲에서 사라진 동족을 찾는다면 내게 물어보는 게 빠르지 않겠어?”

“개미족과 말이 통할 거란 생각을 안 해 봤군. 지금 물어보면 말해 줄 텐가?”

“대가에 따라서는.”

“그럼, 피를 주지.”

“얼마나 줄 건데?”

“원하는 만큼 주겠다.”

내가 원하는 양을 말하자 놈이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 양이면 날 십만 번을 죽여도 얻을 수 없을 거다.”

“당연하지, 그러니까 할부로 받을게.”

“할부?”

“매달 일정량을 받겠다고. 500년 할부 어때?”

“500년인가?”

포스는 마스터 가드 퀸이 되며 400년 이상의 수명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케어의 감정 능력으론 나의 수명을 알 수 없었다.

나르본느와 디아의 수명도 알 수 없는 걸 보아 케어의 감정 능력으론 사도의 수명을 볼 수 없는 것 같았다.

나르본느가 800년 이상을 살아온 걸 생각해 볼 때 나의 수명은 포스보다 길면 길었지, 절대 짧지는 않을 듯했다.

그래서 평생 놈에게 빨대를 꽂을 요량으로 500년을 부른 것이다.

조율을 통해 200년 정도로 낮춰 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트롤레는 500년이란 말에도 고개를 끄덕일 뿐, 내가 예상한 격한 반응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트롤의 수명이 어떻게 됐지?’

물어보니, 트롤의 수명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수명이 다해 죽는 녀석을 본 적이 없다.”

자기 수명도 모르는 녀석이니 500년 할부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정기적으로 피를 받는 대가로 트롤들의 소식 일부를 전해 줬다.

“개미족 둥지에서 잘 지내고 있어.”

적대적인 트롤은 모두 공장행이었고, 우호적인 놈들은 지금 개미족과 상부상조하고 있다.

“살아 있다니 다행이군. 그들을 돌려보내 줄 순 없나?”

“보내 줄 순 있지만, 조건이 있어.”

“조건이 뭐지?”

결국 둥지에 필요한 건 트롤의 피.

현재 둥지에선 트롤의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쉽지만은 않다.

거기다 3차 진화종 다수가 트롤의 둥지 생활을 돕고 있어, 투입된 노동력에 비해 생산 효율이 떨어지기도 했다.

놈들이 자의적으로 번영해서 피를 거래해 주면 좋겠지만, 풀어 주면 가족 단위로 흩어져 번영은커녕 자멸할지도 모를 놈들이라…….

‘난감했단 말이지.’

이 문제를 트롤레가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몇 가지를 물어봤다.

“나의 존재는 일족의 번성을 의미하기도 하지.”

역시나, 놈도 고블린 킹처럼 일족 증식을 가속하는 토템 역할을 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그들에게 거주지와 식량을 내주는 대가로 피를 요구했다.

“좋다!”

“정말?”

상당한 양의 피를 요구했음에도 트롤레는 할부란 함정에 빠져 흔쾌히 받아들였다.

트롤을 동맹으로 삼은 나는 클롭을 불러 내가 원하는 걸 말해 줬다.

하나는 그들의 영역에 관한 정보.

‘쓸 만한 게 있으면 교역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역대 최강 키클롭스들의 마석.

‘키클롭스들의 특성이 탐난단 말이지.’

마지막으로 불가침조약이었다.

“빨리 결정해 줘. 너희 말고도 원하는 자들은 많으니까.”

클롭은 고민 끝에 거래에 응하기로 했다.

세부 조율을 거쳐 수량과 양도 시기가 정해졌다.

마석은 당장에 받진 못했지만, 미노스가 공증을 서서 양도일을 어기게 되면 미노타우로스들이 해결해 주기로 했다.

공증 수수료로 출입증 거래 우선권을 주게 됐지만, 어차피 놈들에게 한 장 정도 넘길 생각이었기에 내가 손해 보는 건 없었다.

남은 한 장은 라미아에게 넘기기로 했다.

미노타우로스에겐 서쪽 일대의 정보와 역대급 전사의 마석, 그리고 필요할 때 무력 지원을 받기로 했고, 라미아에게도 같은 요구를 했다.

수량을 비롯한 양도 시기에 관한 세부적인 조율에서 두 종족은 진땀을 빼야 했고, 거래를 마쳤을 때는 퀭한 얼굴로 돌아갔다.

내 수중에는 출입증이 한 장도 남지 않았으나, 본선 진출자는 순위에 따라 삼신전에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정해진 순위는 1위가 나였고, 2위는 우고다.

3위를 가리는 결투가 치러지며 장갑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오그무트가 금갑돌파를 발동하지 못한 헤라클레스를 꺾었다.

“왜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냐?”

“네놈은 내 전력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이겼음에도 불만 가득한 오그무트와 졌음에도 오만한 헤라클레스.

둘은 한동안 티격태격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5위부터는 전투 없이 우마십장의 주관으로 결정됐다.

5위 스콜, 6위 클롭, 7위 트롤레, 8위 우도.

“왜, 제가 8위입니까!”

우도가 항의하자, 우마십장 중 하나가 그를 조용한 곳으로 끌고 갔다.

예절 교육을 받고 온 우도는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착한 미노타우로스가 돼 있었다.

“도끼 한 번 못 휘두른 나 같은 쓰레기가 8위라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아, 이 멍 말인가? 명예의 상처라 할 수 있지.”

스콜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사망 처리된 상태였고, 남은 일곱 마리가 차례대로 삼신전에 들어갔다 나오면, 출입증을 소지한 자들이 들어갈 수 있다.

키클롭스 전사 하나와 미노타우로스 전사인 우노가 출입증을 쓰기로 했고, 라미아 쪽은 출입증을 간직하기로 했다.

삼신전에 들어가기 전, 미노스를 통해 마석 세 개를 받았다.

“네가 요구한 마석이다.”

“좋은 거래였어.”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미노타우로스의 마석이니, 흡수하게 되면 상당한 힘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잘 다녀와라.”

거인들이 건축한 듯한 거대한 신전.

‘장식이 없어.’

겉으로 봐선 어떤 신을 모시는지도 불명인 곳.

듣기론 미노타우로스가 따르는 우마신, 오거가 믿는 귀신, 키클롭스가 믿는 거신, 이렇게 세 신의 권능으로 특정 시기에 생성되는 신전이라 했다.

“그럼 먼저 갔다 와라.”

우고가 내 등을 떠밀었고, 나는 자격을 가진 자만이 열 수 있는 문 앞에 서게 됐다.

‘여길 통해 들어가면 된다는 말이지.’

미노타우로스들은 삼신전의 시련을 통과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했고, 오거들은 숲의 최강자와 붙어 볼 수 있다고 했다.

키클롭스들은 숲의 현자가 삼신전에 있다고 했고, 버플을 비롯한 곤충족들은 악마가 산다고 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알 수 없지만, 다들 악마를 만나기 위해 삼신전에 들어가는 건 아닐 테니…….

‘들어가 보면 알겠지.’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행의 걱정 속에 삼신전이란 곳에 발을 들였다.

문을 여니 거대한 통로가 나왔고, 통로 끝에 대전이 나왔다.

대전 뒤편에는 세 개의 통로가 있었고, 세 통로 위로는 각각 미노타우로스, 오거, 키클롭스를 닮은 석상이 있었다.

나는 마력과 생명력이 짙게 풍기는 길을 택했고, 그곳은 미노타우로스를 닮은 석상이 있던 통로였다.

* * *

“미노스님의 최고 기록은 오후까지 버티는 거였어. 오그르트가 반나절을 버티긴 했지.”

삼신전 밖에서는 몬스터들이 모여 다크가 언제 나올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르본느는 곤충족이 삼신전에 머무른 기록이 매우 짧다는 걸 듣곤 떠날 준비를 마쳤다.

“다크가 나오고, 헤라클레스가 들어갔다 오면 바로 출발하자!”

“그러죠.”

“디아, 너도 돌아갈 준비해 둬.”

디아는 나르본느의 말을 못 알아들었지만, 뉘앙스는 느낄 수 있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지쳤어. 이렇게 몬스터가 모일 줄 알았으면 그냥 훈련장에서 쉴걸 그랬어.”

곤충족들은 기본 아웃사이더여서 행사를 좋아하진 않았다.

나르본느와 크라스는 이번 겨울 동안은 푹 쉴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많은 이들의 기다림이 이어지며 하루가 지났다.

“죽은 건가?”

우고가 삼신전의 문에 다가가 확인해 봤고, 문이 열리지 않는 걸 보아 다크가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더 흘러도 다크가 나오지 않자, 본선 진출자들이 난감해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지 않아?”

특정 시기에만 문이 열리는 삼신전의 특성상 누군가 오래 머물게 되면 뒷 순위의 자들은 어렵게 쟁취한 자격을 써 보지도 못하고 날리게 된다.

이를 걱정한 오그무트가 초조해하며 말했다.

“이러다 우린 들어가 보지도 못하는 건 아니겠지?”

시간이 더 흐르자, 3순위의 오그무트는 보험 삼아 출입증을 확보할 요량으로 릴리스를 찾았다.

하지만 라미아들은 이미 크노소스 궁전을 떠나간지 오래였다.

“젠장, 이대론 삼신전이 닫히겠어!”

귀찮았던 예선들을 떠올린 오그무트.

격분한 그가 삼신전의 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쾅! 쾅!

가끔 있는 일이어서 다들 무시하고 있었는데.

신전 문에서부터 균열이 번지더니 폭삭 무너졌다.

우르르 쾅쾅!

굉음과 함께 피어 오른 먼지가 가라앉았다.

다크가 나오길 기다리던 본선 진출자들이 황당해하며 주먹을 내지른 채 굳어 있던 오그무트를 바라봤다.

“…….”

상황을 파악한 몬스터들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헤라클레스를 제외한 진출자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어 올렸다.

“잠깐만, 진정해… 친구들. 이건 분명 사고일 거야.”

말로 진정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오그무트는 도주를 택했고, 소식을 들은 미노스도 미노타우로스들을 풀어 오그무트 추적에 나섰다!

“찾아라! 놈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오그무트 소동으로 크노소스 궁전이 시끌벅적할 때, 다크의 일행들은 허탈해하며 무너진 신전 잔해를 바라봤다.

“이거 어쩌지? 다크의 기척이 안 느껴져.”

나르본느에 이어 크라스도 한 마디 했다.

“다크가 괜찮다고 해서 겨울 식량도 준비해 두지 않았다.”

헤라클레스의 금갑돌파가 발동됐다.

“놈이 죽었다면 맹약을 새로 계승해야 해.”

디아는 대검으로 잔해를 치워 보다 포기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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