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38화 (137/189)

138화. 돌아온 둥지

“내 낫이…….”

브록이 죽자, 그가 쥐고 있던 낫이 사라졌고, 시체가 분해되듯 붉게 빛나며 신전에 흡수됐다.

‘이놈, 죽이면 안 되는 거였나?’

막혔던 통로가 복구되어 돌아가는 길이 생겼으나 지금 신전 밖으로 나갔다간 브록의 죽음이 밝혀질 것이고, 그럼 미노타우로스들과 마찰이 생길지도 몰랐다.

‘한 달이면 신전이 닫힌다고 했으니, 며칠만 여기서 버텨 볼까?’

브록의 마석을 사교위에 넣은 나는 공터에 숨겨진 게 없는지 둘러봤다.

예상대로 단상 쪽에 인위적인 마력의 비틀림이 있었다.

‘마법의 흔적이야.’

단상 쪽을 탐색하여 원형으로 새겨진 문자를 발견했다.

‘마법진이군.’

새겨진 문자들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마력의 흐름을 통해 어떤 마법이 새겨져 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브록 녀석이 순간이동 할 때와 날 전송시킬 때 사용된 마력과 흡사해.’

전송 마법이 새겨져 있다고 판단한 나는 공허의 마력을 최대한 갈무리한 채, 마법진 위에 섰다.

‘어떻게 작동시키는 거지?’

금강 모드로 마력을 주입하니, 마법진이 발동됐다.

밝은 빛에 휩싸인 나의 시야가 바뀌었다.

‘여긴…….’

마광석의 은은한 푸른 빛이 금은보화에 반사되어 멋진 풍경을 자아냈다.

‘보물 창고다.’

창고는 그리 크진 않았고, 출입구가 없었다.

‘출구부터 찾아야겠는걸.’

둘러보니 브록이 사용한 무구들이 진열돼 있었고, 진열된 무구 앞에 비석이 있었다.

‘처음 보는 문자야.’

어떠한 작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비석의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

“그대의 의지가 만물을 베어 낼지니.”

다른 무구 앞에 새겨진 비석도 읽어 봤다.

“힘을 원하는 자, 분노에 몸을 맡겨라.”

“위대한 대지의 힘이 깃들어 있노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원하는 게 없다면 욕심 또한 없다.”

다섯 개의 무구.

각각 공간의 낫, 분노의 도끼, 지폭의 곡괭이, 우마의 갑주, 무욕의 팔찌라 쓰여 있었다.

‘흠.’

다섯 무구는 마력 장막에 보호받고 있었지만, 손을 가져다 대면 장막이 사라졌다.

‘불길하단 말이지.’

무구와 신전의 마력이 동조하듯 연결돼 있어 이걸 취하면 뭔가 일어날 듯하여 건드리지 않았다.

‘좀 더 둘러보자.’

내가 나타난 장소 뒤쪽 벽면에서 문자를 발견했다.

‘이것도 읽을 수 있군.’

벽면의 문자를 읽어 봤다.

“이곳은 우마신의 보물 창고.”

“가져갈 수 있는 신기는 단 하나.”

“하나를 선택하면 출구가 나올 것이다.”

두 개를 가져가려 하면 어떻게 될까?

벽면의 문장이 나의 의문을 해소해 줬다.

“하나를 얻고자 하면 확실히 얻을 것이고, 두 개를 얻고자 하면 모든 걸 잃게 될 것이다.”

‘두 개를 가져가려 하면 함정이 발동된단 소리군.’

신기라 여겨지는 다섯 보물.

무엇을 가져갈지 고르던 중 정신이 몽롱해졌다.

‘어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잠시 당황했지만, 지금 내 상태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누적된 피로 때문이겠지.’

각종 마석을 흡수하여 피로를 느낄 수 없게 됐지만, 브록과의 전투로 어딘가에 부하가 걸린 듯했다.

‘위험신호야. 쉬어 주지 않으면 안 되겠어.’

휴식을 취할 겸 사교위에서 마석을 꺼냈다.

숨을 고르며 미노스가 건넨 마석부터 흡수했다.

미노타우로스의 마석 세 개를 흡수하여,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강대한 생명력을 얻었다.

능력으론 광폭화를 얻었지만, 이성과 생명력을 대가로 힘을 얻는 기술이라 리스크가 너무 컸다.

‘이건 쓸모가 없을 것 같네.’

컨디션을 회복한 나는 브록의 마석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지금 흡수해 버릴까?’

신전이 닫히게 되면 안에 있던 몬스터는 밖으로 강제 전송된다고 들은 바 있어 갇힐 리스크는 없었다.

그렇다고 오래 머물기에는 동료들이 걱정됐다.

‘겨울 준비도 안 했을 텐데…….’

슬슬 둥지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고, 인간 사회에 벌여 둔 사업들이 잘 돌아가는지도 확인해 봐야 했다.

‘브록의 마석은 미노타우로스의 것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

이 정도 밀도의 마석을 흡수하려면 최소 두 달은 걸리겠지만, 한 번 흡수했던 마석과 같은 계열이라면 좀 더 쉽게 흡수할 수 있다.

‘20일 정도면 될 것 같아.’

브록과의 전투, 그리고 회복에 투자한 시간을 계산해 본 나는 얼추 신전이 닫히기 전까지 브록의 마석을 흡수할 수 있다고 봤다.

‘흡수해 보자.’

브록의 마석 흡수 작업에 돌입했다.

무의식이 마석을 분석해 필요한 정보를 가져와 신체를 강화했다.

흡수를 마치고 눈을 떴다.

아직 신전 창고인 것을 보아 신전이 닫히지 않은 듯했다.

브록의 마석도 흡수했으니, 남은 일은 신기 하나를 취해 돌아가는 것.

‘그럼 뭐로 할까?’

일단 공간의 낫.

뭐든 베어 내는 힘은 매력적이긴 했으나, 강자와의 싸움에선 궤적이 읽힌다.

‘강력한 원거리 무기이긴 한데, 사거리와 적용 범위가 애매했어.’

전투용으로 쓰기보단 추수용으로 쓰면 딱 좋아 보이는 비주얼이기도 했고…….

‘참, 내가 신기를 두고 무슨 생각을.’

이어서 분노의 도끼를 살펴봤다.

공간의 낫과 달리 붉은 균열이 아주 멋들어져 보였다.

도끼의 증폭기는 나와 상성이 좋았지만, 명칭이 맘에 들지 않았다.

‘이 정도 무기라면 분명 이름에도 의미가 있을 테지.’

분노의 도끼.

개미족의 분노는 포유류가 느끼는 분노와 사뭇 다르다.

혹여, 분노란 감정이 도끼의 힘을 끌어내는 스위치라면…….

가져가 봐야 벌목용 도끼밖에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곡괭이를 살폈다.

이 녀석의 흙기둥 공격은 사거리와 적용 범위가 나쁘지 않으나, 발동까지 걸리는 시차 때문에 준왕급과의 전투에서도 쓰기 힘들 듯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브록에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놈이 대전용으로 적합하지 않은 신기를 사용해 줬기 때문인 듯한데.

‘아무리 봐도 곡괭이는 농사용이야.’

파종 전 흙을 뒤집는데 쓰는 도구.

지렁이들이 해 주고 있는 일을 굳이 신기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으니, 지폭의 곡괭이는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회복의 갑주.

나의 급속 재생과 합쳐지면 시너지가 나쁘지 않으나, 착용하면 느려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체급이 작은 내가 느리기까지 하면 강세종들에게 두들겨 맞기 딱 좋은 상태가 되니…….

‘이것도 별로야.’

앞서 본 네 개의 신기는 흡사한 마력의 색을 두르고 있는 것이, 같은 존재가 만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살피게 된 무욕의 팔찌.

브록도 이 팔찌는 보여 주기만 했을 뿐, 사용하지 않아 어떤 능력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것만 마력 색이 다르단 말이지.’

새겨진 문구를 다시금 읽어 봤다.

“원하는 게 없다면 욕심 또한 없다.”

보이는 마력 패턴을 분석해 보면 공간과 관련된 물건 같았다.

‘추수용 낫에 벌목용 도끼, 농사용 곡괭이와 노동용 갑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만든 신은 농사의 신이 분명해.’

농사의 신이 만든 것으로 짐작되는 신기를 거르면 남는 건 무욕의 팔찌뿐.

나는 진열장에서 무욕의 팔찌를 꺼냈다.

무욕의 팔찌를 선택한 순간 내가 나타났던 곳의 마력이 비틀리더니 전송용 마법진이 생겨났고 비석에 새겨진 문구가 바뀌었다.

“모든 걸 가졌기에 원하는 게 있을 수 없다…….”

팔찌를 착용한 순간, 팔찌의 기능을 알 수 있었다.

팔찌는 공간계 능력을 증폭시켜 주며 수납 능력을 갖춘 신기였다.

신전에서 얻어야 할 걸 얻었으니, 전송진을 타고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전송진 앞에 선 나는 남은 신기들과 벽면에 새겨진 경고문을 번갈아 봤다.

‘두 개를 얻고자 하면 모든 걸 잃을 거라 했지.’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라 생각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모든 걸 걸어야 한다면 두 개로는 부족하지.’

주어진 기회를 잡아채는 것 또한 엘리트의 자질.

판돈이 크긴 하지만, 그만큼 얻게 될 것도 크니.

‘해 보자!’

장식장의 마력 장막이 나의 손을 저지했고, 비석의 문구가 바뀌었다.

[물러가라. 네게 허락되지 않은 보물일지니.]

“알고 있어.”

나는 공허의 마력으로 장막을 지워 버리곤, 팔찌의 능력을 사용해 신기를 수납했다.

내게 허락되지 않은 신기를 챙김으로써 예정된 재앙이 닥쳐왔다.

장식장을 중심으로 균열이 퍼져 나가며 신전이 무너지려 했다.

‘이대로 무너지는 건가? 전송진은?’

다행히도 전송진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너지기 전에 전송진을 타고 탈출하면 되겠어!’

남은 신기를 모두 챙긴 나는 널려 있는 금은보화마저 챙겨 전송진을 향해 뛰었다.

퍽!

투명한 뭔가에 충돌해 튕겨나 엉덩방아를 찍었다.

몸을 일으켜 공허의 마력으로 투명한 벽을 지워 보려 했으나, 이건 마력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무엇인지 고민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했다.

암흑마창에 힘을 실어 부숴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단단해!’

아무리 단단해도 공간을 베어 버리는 낫이라면…….

공간의 낫을 꺼내 휘둘렀다.

분명 투명한 벽을 베어 냈지만, 이 벽은 살아 있기라도 한 듯 금세 복구됐다.

‘전송진이 사라지고 있어.’

투명 벽 너머, 경고문이 새겨진 벽에서 섬뜩한 문구가 나타났다.

[탐욕의 대가를 치러라.]

신전은 마력 장막을 지워 내는 존재를 대비해 뚫을 수 없는 투명 벽을 준비한 것 같은데.

브록의 마석을 흡수하며 얻은 근거리 공간 도약 능력인 블링크를 막아 내진 못했다.

팟.

투명 벽 너머에 도달한 나는 전송진을 발동시켰다.

“대가는 외상으로 달아 둬라.”

팟.

전송진이 작동하며 빛무리에 휩싸였다.

전송진을 통해 나타난 곳은 크노소스 궁전 내부가 훤히 보이는 상공.

추락하면서도 웃음을 지울 수 없었다.

* * *

궁전 내부의 몬스터들이 오그무트를 추적하기 시작할 무렵.

제물로 바쳐진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허락된 장소에서 미노타우로스 석상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소녀 하나가 고개를 들어 석상을 바라볼 때, 굉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쿨럭쿨럭!”

여성들이 입을 막고 물러났고, 먼지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먼지가 가라앉자, 장내의 사람들은 박살난 미노타우로스 석상을 볼 수 있었다.

이를 본 인간들의 장로가 중얼거렸다.

“심판이 날이 머지않았구나… 때가 오면 우리에게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니, 기회를 놓치지 말자꾸나.”

장로의 말에 절망 속에 잠겨 있던 소녀들의 눈에 자그마한 의지가 깃들기 시작했다.

* * *

착지에 실패하여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큭.’

먼지가 가라앉을 무렵 몸을 회복한 나는 전신 호흡으로 기척을 감췄다.

‘인간에게 제공된 신전인가?’

신상을 부순 것 같아 미안했던 나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삼신전의 입구 쪽으로 가니, 신전의 잔해만 보였다.

‘흠, 궁전 내부의 신전은 내가 다 부순 것 같네.’

금빛으로 빛나는 헤라클레스 덕에 일행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잔해에 깔렸다고 생각하나?’

다들 허탈한 표정으로 잔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기척을 살포시 드러냈다.

제일 먼저 알아챈 건 나르본느였다.

“이 익숙함은…….”

디아도 내 존재를 느꼈는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잠깐만.”

나르본느가 날 찾아왔고, 나는 나르본느에게 일행을 조용히 빼와 달라고 했다.

“왜 기척을 숨기고 있는 거야?”

“…신전을 무너뜨려서요.”

“아 그거…….”

나를 본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우린 크노소스 궁전을 조용히 빠져나가 둥지로 돌아갔다.

둥지에 도착해 편히 쉬려고 했는데, 상황이 좋지 못했다.

“큭… 다크 님, 죄송합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세크리의 사죄를 시작으로 간부급 개미들이 보고했다.

이번 결혼 비행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그 후에 터진 쥐들과의 전쟁으로 둥지가 망해 가고 있었다.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자, 함께한 일행들은 각종 핑계를 대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훈련장으로 떠나갔다.

내 옆에 남은 디아가 물어왔다.

“무슨 일이지?”

“쥐들 때문에 둥지가 망해 가는 상황이요.”

디아는 말없이 내 등을 토닥여 줬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