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40화 (139/189)

140화. 쥐와의 전쟁 (2)

‘결국, 경제란 말이지.’

돈이란 필요 자원을 교환하기 위한 매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내겐 인간들이 원하는 금은보화가 차고 넘쳤다.

‘삼신전에서 얻은 보물도 있고, 개미족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보석도 많지.’

내년 여름이면 베르제붑 던전에서 나르본느가 쓰레기라 여기는 보물들을 챙겨올 수 있고, 숲을 둘러보면 몬스터들이 쓰레기장이라 여기는 보물 창고도 곳곳에 있다.

‘팔 게 많단 말이야.’

금은보화는 자본가에게나 팔릴 물건이다.

왕국을 구성하는 인간의 절반이 농민이고, 나머지 절반이 용병, 노예, 상인, 광부, 그리고 생산 능력을 갖춘 장인과 의식주를 보장해 준다는 명목으로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이었다.

절대다수라 할 수 있는 이들이야말로 왕국을 구성하는 근간… 즉, 민심이 아닐까?

개미족의 습성과 나의 산업 지식이 합쳐지며 발생한 압도적 생산력.

이곳 인간들의 문명으로 따라올 수 없는 영역에 들어선지 오래였고, 나는 이를 통해 인간들을 지배할 수 있다고 봤다.

‘농민들만 내 손에 넣어도 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어.’

나는 잡화점을 통해 식량의 매입과 판매를 진행하며 농민들에 대한 장악력을 높였다.

지금의 잡화점은 바르퀴르 영지 한정으로 농민들의 경제권을 쥐게 됐고, 이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과 같았다.

용병은 돈으로 움직이는 녀석들이니 돈만 있으면 부릴 수 있고, 노예도 마찬가지다.

상인과 장인은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다.

이는 권력을 쥔 귀족들이 성공한 상인과 장인을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인과 장인은 귀족을 뒷배로 두고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을 바쳤다.

일종의 목숨값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바르퀴르 자작인 유리와 왕세자인 제논의 협력을 받고 있어, 적절한 수익을 분배해 주는 정도로 그쳤다.

‘면세 사업자라 할 수 있지.’

자본가라 할 수 있는 귀족은 0.1%도 되지 않는다.

성공한 평민이나 몰락 귀족 중에 중상층이 있긴 하지만, 이들의 수도 매우 적다.

그러니 이들은 나의 고객이 될지언정, 민심의 대변인이 아니었다.

나는 귀족과 중상층에게서 벌어들인 돈을 프릴과 릴리에게 투자하여 민심의 근간을 장악할 생각이었다.

술집과 암흑가를 장악하면 노예 시장을 손에 넣기 쉬워지고, 치외법권에 살아가는 하층민에 대한 영향력도 증가한다.

대다수 노동자가 하층민이니, 이들이야말로 민심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왕국을 먹으러 가 볼까?’

이곳의 문명 수준으론 나의 행보를 막을 수 없다.

나는 내성에 특화된 진화체라 날씨와 관계없이 활동하지만, 열기와 냉기에 약한 개미족은 보통 겨울에 바깥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서 활동하려면 하이 페어리들의 도움이 필요하단 말이지.’

하이 페어리 중에서도 내성이 강한 3.5차 녀석들을 소집했다.

“밖에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어?”

“저희 마력으론…….”

하이 페어리 열 마리면 한 시간은 버틸 수 있다.

중요한 일로 가는 것이라, 3.5차 하이 페어리를 모두 불러모았다.

중책을 맡은 녀석을 제외하니 50마리가 남았다.

즉,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 위장할 수 있게 된 셈.

준비를 마친 나는 프릴과 릴리, 그리고 스물네 명의 수녀를 이끌고 북쪽으로 이어진 지하 통로를 이용했다.

목적지는 바르퀴르 자작령의 개미 저택.

임무를 받아 귀환길에 오른 인간들은 들떠 있었다.

저택에 도착한 나는 프릴과 릴리에게 개미 정보국의 베르딘을 붙여 줬다.

“잘할 수 있지?”

“네. 엘리샤와 데이지의 도움을 받는다면 술집 장악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데이지는 흔한 이름이다.

프릴이 만나려는 데이지는 신관 데이지가 아닌 술집에서 매상 1위를 차지하던 데이지였다.

“그럼 가 볼게요.”

“지원은 아끼지 않을 테니까, 내가 알려 준 대로 차근차근 잘해 봐.”

“네!”

프릴은 허당 끼가 있어 믿음직스럽지 못했지만, 똑 부러진 릴리라면 잘 해낼 것 같았다.

저택에선 집사 세바스와 시녀장 줄리아가 나를 맞이했다.

“위대한 기둥을 뵙습니다.”

“인사는 됐으니까. 여기선 다크 님이라 불러.”

“그럼 다크 아가씨라 부를게요.”

“아가씨?”

아가씨란 호칭이 썩 맘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위장한 내 모습이 영락없는 귀족 영애라 감수해야 했다.

내가 왔다는 소식에 개미 상단의 문트리아, 개미 여관의 월리엄, 개미 고아원의 비앙카, 개미 용병단의 메틴이 찾아왔다.

“루리아와 존은?”

“둘은 벨레삭 백작령에서 교역을 담당하고 있고, 메르디아 님은 수도에서 왕세자를 돕고 있습니다.”

개미족에게 대륙의 글과 왕국의 예법을 전파한 메르디아는 수도에서 제논의 지원 아래 활동 중이었다.

문트리아가 보고서를 가져다 줬다.

보고서를 보며 눈을 의심했다.

‘뭐야? 순익률이 왜 이리 높지? 돈을 쌓아 뒀잖아!’

문트리아가 기대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문트리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차갑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묻자 장내에 모인 인간들이 당황했다.

“네?”

“넌 그동안 뭘 한 거냐고?”

“그게… 무슨…….”

문트리아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분명 확장 속도를 높이라고 말해 뒀을 텐데.”

“지시대로 핵심 영지마다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문트리아는 내가 보고서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보고서에 쓰여 있는 내용을 말해 주기 시작했다.

내가 가르친 걸 못 알아볼 리 없지 않은가?

나는 서류를 거칠게 내려 말을 끊었다.

“문트리아, 확실히 너는 손익계산이 빨라.”

그러니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 이익을 만들어 낸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말이지.”

돈이란 건 무언가로 교환했을 때 의미가 생기는 것이지, 쌓기만 해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거기다 내가 원하는 건 규모에서 오는 영향력이지 순익률의 극대화가 아니었다.

“내가 원한 건 장악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아와 노예를 최대한 사들여 교육을 진행했고,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며…….”

“그런 것 치고는 고아원 지출과 인건비가 적게 나왔어.”

“고아원을 늘리는 것보다 하품 노예를 사들이는 쪽이 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인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럼 매출 상승률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인건비와 자산 증가율은 어떻게 생각해?”

“불필요한 토지 매입을 줄였고, 효율적인 업무 분담과 적절한 임금 책정으로…….”

‘이게 적절하다고?’

호의가 계속되면 당연한 줄 아는 게 인간이라, 임금을 높게 측정하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문트리아가 생각한 적절함과 나의 적절함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난 노예를 원하는 게 아니라고 누누이 말했거늘.’

소속원의 역량을 키워 충분한 인재가 확보되면 그들로 하여금 인간 세상을 지배할 계획이었는데…….

문트리아는 소속원의 역량 개발은커녕, 제대로 임금을 지급해 주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거, 아무리 계산해도 인건비가 너무 적게 나가고 있어.’

“임금은 어느 정도 주고 있는 거야?”

“네, 충분히 만족하는 수준으로 줬어요.”

상단에서 일하는 인간들은 개미족의 교육을 통과한 자들이다.

그렇다 보니, 얼마를 주든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충분히 줬다는 게 얼마인데?”

“지역에 맞게…….”

이곳 세계의 기준으로 측정했다면.

‘굶어 죽지 않을 정도만 줬다는 소리잖아.’

내가 없는 동안 문트리아가 고급 인력을 열정 페이만 지급해 가며 노예처럼 굴려 순익율을 극대화한 듯했다.

* * *

문트리아는 다크의 반응을 보곤 당황했다.

‘이 정도론 부족했다는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받아 간 건가? 그때는 분명 허락해 줬었는데…….’

섬뜩함을 느낀 문트리아가 뒤돌아봤다.

시녀장인 줄리아가 무감정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왜 내 뒤에 선 거야?’

다크가 하려던 말을 멈추고 줄리아에게 물었다.

“줄리아, 뭐 하려는 거야?”

줄리아는 담담히 말했다.

“명령을 내려 주시면 다크 님의 기분을 언짢게 한 쓰레기를 치우겠습니다.”

“쓰레기?”

줄리아가 문트리아를 빤히 봤다.

문트리아는 황당한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네? 저를요?”

개미 저택의 시녀들은 치마 속에 호신용 무기를 감춰 뒀고, 유사시에 무력 지원이 가능하도록 훈련된 자들이라는 걸 장내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 문트리아가 주변을 둘러봤다.

세바스, 메틴, 월리엄은 고개를 돌려 외면했고, 비앙카는 일찍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나도 열심히 했다고!’

매우 억울했지만, 조금이라도 내색했다간 줄리아에게 당한다는 걸 직감한 문트리아는 급히 사죄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내년에는 지금의 두 배! 아니 다섯 배를 만들어 볼 테니! 한 번만 더 기회를!”

다크의 표정이 구겨지자, 줄리아가 치마 속에서 단검을 뽑아 그었다.

“꺅!”

* * *

줄리아와 비앙카는 초창기부터 개미족과 함께한 인간들이며 나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

둘의 충성심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질책 좀 했다고 동료에게 단검을 휘두를 줄은 몰랐다.

다행히도 줄리아의 움직임은 내겐 느리게 보여, 문트리아를 구할 수 있었다.

캉!

손등으로 단검을 막았다.

줄리아는 나를 보곤 잘못을 깨닫곤 울상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사죄의 의미로 바닥에 머리를 꽂으려는 그녀를 잡아 줬다.

“괜찮으니까. 일단 앉자.”

줄리아를 진정시킨 나는 넋 나간 문트리아를 보며 생각했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단 말이야.’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다들 앉아 봐.”

나는 인간들을 편하게 앉히곤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잘 들어. 순익률이 높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 한 명씩 이야기해 봐.”

“원가 대비 판매가가 높다는 의미로…….”

모두 개미 교육을 거친 인재들이다.

다들 알고 있을 내용으로 긴장을 풀어 주자, 문트리아도 내 말에 곧잘 답하게 됐다.

“원가 구성도는 외우고 있지?”

“네.”

오랜만에 전공 분야를 말하니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졌다.

“원가는 직접원가, 제조원가, 총원가, 판매원가로…….”

복습을 어느 정도 시켜 준 나는 심화 교육에 들어갔고, 수 시간 후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까 순익률이 높다는 건 그만큼 확장에 투자하지 않았다는 거지.”

그나마 상재가 있던 문트리아만이 따라오고 있을 뿐, 나머지 인원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무분별한 확장으론 돈을 모을 수가…….”

“모아서 뭐하게?”

“그건… 왕국 장악을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테니…….”

“자금으로 어떻게 장악할 생각인데?”

“…….”

문트리아가 생각하는 동안 나는 줄리아가 따라준 홍차에 영양을 듬뿍 타서 마셨다.

‘홍차는 어디서 구한 거지? 요즘 이런 게 유행하는 건가?’

한참이나 생각해 보던 문트리아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작위를 손에 넣고 사병을 길러야 해요. 그리고 때를 기다려야죠.”

이곳 상인들은 재물을 추구하며 권력을 얻으려 했고, 귀족은 권력을 추구하여 재물을 얻으려 했다.

그러니 귀족에게 있어 상인은 자신들의 권력을 탐하는 존재였고, 부족한 재물을 얻기 위한 약탈의 대상이라 할 수 있었다.

“돈으로 작위를 얻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문트리아의 꿈을 듣게 됐다.

그녀는 귀족이 되어 약탈의 대상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장내의 인원들은 그런 문트리아를 이해한다며 공감해 줬지만, 나는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이상이 너무 낮아.”

고작 귀족이라니.

나와의 관계가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다.

당황한 그녀에게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상을 말해줬다.

나의 말이 이어질수록 문트리아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고, 그건 다른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는 대륙의 모든 인간이 개미족의 생산력에 의존하며, 개미족을 위해 일하고 있겠지.”

전쟁? 그런 건 궁핍하니 하는 짓이다.

진정한 부자는 약탈 따윈 필요치 않다.

하지만… 지금의 난 궁핍하니, 쥐들부터 쓸어버려야 한다.

“메틴은 용병 길드에게 말해서 묘족 좀 구해 봐.”

메틴을 보낸 나는 문트리아게 쌓인 돈을 모두 쓰라고 했다.

“전부요?”

“고아원 지원을 늘려. 간부들 특별 보너스도 돌리고, 인원도 확충해. 점포랑 고아원 수도 늘리고, 구입 가능한 토지 사용권은 모두 사 버려. 장인은 실력 관계없이 모두 포섭하고…….”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상세히 알려 줬다.

당황한 그녀가 어찌할 줄 몰라하다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정말 지시하신 대로 다 쓸 거예요.”

뒤돌아서던 문트리아를 잡았다.

“앗 이것도…….”

무욕의 팔찌에 담긴 금은보화들을 쏟아 내자, 문트리아는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말했다.

“한동안… 바빠지겠어요.”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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