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43화 (142/189)

143화. 쥐와의 전쟁 (5)

문트리아에게 말해 충분한 자금을 챙긴 나는 베르딘을 불렀다.

“수도 쪽 저택까지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해.”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이쪽 일은 괜찮아?”

맡긴 일이 있어 베르딘이 자리를 비워도 되나 싶었으나,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제 밑에 실력자가 많아서 저 없이도 잘 돌아갑니다.”

* * *

프릴과 릴리가 직속 수녀들을 동원해 여덟 개의 술집을 개혁하고 있을 때, 비어베어의 간부 아론은 조직원의 보고를 받곤 책상을 내리쳤다.

“뭐 하는 놈들인데 날 건드려!”

부하들을 닦달해 봤지만, 그림자에 대해 알 수 없었던 아론은 정보 담당 간부 첸을 찾았다.

“자고 일어나니 열두 개의 술집 중 여덟 개가 넘어갔어, 어디서 튀어나온 놈들이야?”

“그림자라 불리는 놈들이야. 전직 암살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뭐? 암살자?”

“그래, 우리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처리하기 힘들 거야.”

맞붙었다간 피해가 클 것이라고 첸이 조언했다.

“이대로 물러서면 놈들이 날 뭐로 보겠어!”

아론은 조직원을 보내 야습을 가해 봤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아론 님, 술집의 상납금이 줄고 있습니다.”

“뭐? 어느 쪽이야? 본보기를 보여 주고 마담을 교체해!”

“몇 번 교체해 봤지만…….”

마담들을 소환해 사정을 듣게 된 아론.

“그러니까 맥주 때문에 손님의 발이 끊겼다? 술집이 무슨 술만 마시는 곳인 줄 알아! 가격을 낮춰서라도 손님을 받아야 할 거 아니야!”

공격적인 경영을 지시했으나, 술집 경영이 적자에 돌입하며 아론의 주머니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도대체 술에 뭔 짓을 했길래…….”

맥주를 탈취해온 아론이 한 입 마셔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비겁한 놈들, 약을 쓰다니!”

단지 품질에서 월등한 차이가 있을 뿐이었지만, 아론은 중독성 강한 마약을 탔다고 생각했다.

“네놈들, 큰 실수를 했군.”

아론은 중독자가 늘어나면 경비대에 고발하여 그림자 일당을 소탕할 생각이었지만, 그보다 일찍 보스인 비어베어의 서재에 소환당했다.

“아론.”

비어베어는 의자에 앉은 채 손으로 호두를 굴리며 물었다.

“요즘 일이 잘 안 되고 있다지?”

“죄송합니다. 보스.”

아론이 식은땀을 흘리며 함께 불려 온 첸을 바라봤다.

첸 또한 사정이 비슷한지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첸, 네놈은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제가 배신이라뇨! 요즘 부유층이 돈을 안 써서…….”

“이상하군. 마르코가 말하길 노예가 없어 못 팔 지경이라는데, 부유층이 돈을 안 쓴다?”

“그건 개미 저택에서…….”

“그리고 난 배신이란 말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

“핑계는 됐다. 충심을 증명하고 싶다면 돈을 가져와.”

보스와 면담을 마친 첸과 아론.

둘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첸, 아무래도 나 혼자선 방법이 없다.”

“미안하지만 나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보스의 분노를 잠재울 방법은 알고 있어.”

“뭐? 방법이 있다고?”

“마약이다…….”

둘은 힘을 합쳐 그림자 일당을 소탕할 계획을 세웠다.

“놈들이 가진 약을 확보하면 보스도 만족할 거야.”

“확실히 마약이 맞아?”

“마약이 아니면 그런 맛은 불가능해. 큭, 벌써 금단현상이…….”

둘의 음모가 차곡차곡 진행됐다.

* * *

비어베어 일당과 그림자들이 암중에서 소리 없는 공방을 이어 가는 동안, 릴리는 다크의 말을 떠올리며 술집을 개혁했다.

‘지금의 서비스론 손님들의 주머니를 털 수 없다고 했어.’

음주 중인 개미 그림을 간판으로 내걸게 된 술집에선 고품질 맥주에 맞춰 다양한 안주를 팔았고, 술자리에서 할 수 있는 주사위 놀이를 개발해 전파했다.

‘물 흐리는 고객은 과감히 쳐 내라 했지.’

릴리는 실력 좋은 경비를 상주시켰고, 마담에게 알려 수준 이하의 고객을 쳐냄으로써 직원들을 철저히 보호했다.

‘남자의 사냥 본능을 자극하라고 했는데…….’

개미 주점에선 일정 이상의 돈을 써야 직원과 동석할 수 있는 자격을 줬고, 더욱 많은 돈을 써서 직원의 마음을 사야 2층에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을 줬다.

자격만 줬을 뿐, 2층 술값은 시세의 두 배를 받았다.

값이 오르며 고객이 줄고, 술과 안주로 보내는 시간이 기니, 테이블 회전 속도도 떨어졌다.

덕분에 직원들의 노동 강도는 크게 줄었지만, 매상은 수직으로 상승했다.

술과 안주를 팔아 버는 돈의 일부는 그 테이블을 담당한 직원에게 주어져서, 부유한 고객에게 지명받기 위해 내부에선 치열한 서비스 경쟁이 벌어졌다.

프릴은 각 점포를 돌며 이를 중재했고, 좋은 방향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룰을 짜 줬다.

직원들은 주머니가 무거워질수록 불안해했다.

그동안 암흑가에서 갖은 이유를 붙여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저… 왜 부르신 건지.”

프릴에게 불린 여인은 모은 돈을 빼앗길까 싶어 불안했으나, 우려하던 일은 없었다.

“그냥 앞으로 뭘 하며 지내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었어.”

미래에 관한 이야기.

프릴은 절망 속에서 내일을 기대할 수 없었던 직원의 마음을 보듬어 줬다.

엘리샤는 프릴과 릴리로 인해 변해 가는 술집 분위기에 미소를 머금었다.

“마담이 웃었어.”

“마담도 많이 벌었을 테니 좋은가 보지.”

하지만, 엘리샤는 알았다.

‘비어베어가 가만 있지 않을 거야.’

엘리샤는 프릴과 릴리에게 충고했다.

“떠나 줘.”

“싫어.”

“말 좀 들어.”

“지금은 내가 윗사람이야.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엘리샤라고.”

엘리샤와 프릴을 중재하듯 릴리가 끼어들었다.

“저희도 엘리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요. 그래도 한 번 믿어 봐요.”

“난 너희만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도망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없어.”

“걱정하지 마요, 엘리샤. 저희는 싸워 이기는 법을 배워 왔으니까요.”

“여기 남을 거라면, 아무도 믿지 마. 나를 포함해서 말이야.”

엘리샤가 충고한 날로부터 수일이 지났다.

프릴과 릴리는 과거의 후배였던 케서린의 권유로 예전 함께 일했던 멤버와 달구경을 나왔다.

“케서린, 어디까지 가는가야?”

“선배, 저기에요. 저기에 괜찮은 장소가…….”

머뭇거리는 케서린에게 프릴이 물었다.

“왜? 길을 잃은 거야?”

“그게…….”

뭔가를 깨달은 엘리샤가 케서린의 뺨을 세게 때렸다.

“너, 아론 녀석에게 우릴 팔려 한 거지?”

“미안해요. 어쩔 수 없었어요. 동생이…….”

“네가 어떻게…….”

“죄송해요, 죄송해요.”

엘리샤가 케서린을 향해 내려치려던 손을 릴리가 저지했다.

“저희는 괜찮아요, 엘리샤.”

릴리의 힘에 놀란 엘리샤가 토끼 눈을 떴고, 프릴이 눈물범벅의 케서린을 안아 주며 진정시켰다.

“케서린, 우린 괜찮아.”

프릴이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안내해 줘.”

망설이던 엘리샤는 앞서가는 일행이 걱정되어 따라붙었다.

케서린의 안내로 도착한 공터.

매복 중인 아론과 첸 일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했다, 케서린!”

케서린을 칭찬한 아론이 그녀를 옆으로 불러들였다.

“너희는 미끼다. 그림자 놈들을 불러들일 고급 미끼지!”

엘리샤는 암흑가 분쟁이 끝날 때까지 엎드려 있을 생각이었는데, 릴리에게 저지당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엘리샤.”

어둠 속에서 검은 코트의 인형이 하나둘 나타나 비어베어 일당과 마주했다.

“저들의 말 대로 우린 미끼에요. 그것도 간부를 낚은 고급 미끼죠.”

엘리샤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두 세력의 격돌을 바라봤다.

수로는 비어베어 일당이 앞섰지만, 질적으로 차이가 컸고, 13호와 붙어 본 아론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 녀석들 만만치 않아!”

첸도 이를 느꼈는지 상대하던 그림자를 쳐 내곤 조직원을 뒤로 물렸다.

가벼운 접전으로 서로의 힘을 파악한 두 세력.

거리를 벌리고 진영을 정비했다.

“저희가 60명, 저쪽이 120명…….”

두 배 차이가 난다지만 무장 수준이 달랐다.

릴리와 프릴의 옆으로 직속 수녀가 합류하며 여유 가득한 표정을 짓자, 아론이 폭소를 터트렸다.

“너희들이 우릴 낚았다고 생각하나 보군. 미안하지만 틀렸다.”

비어베어 진영이 갈라지더니, 신장 2미터는 될 법한 거구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의 양옆으로 손도끼를 든 전사와 날카로운 인상의 검사가 섰다.

엘리샤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보스야… 옆에는 도살자 마르코와 살인귀 웨인이고.”

기사급으로 여겨지는 세 존재의 등장에 13호를 비롯한 그림자들이 뒷걸음쳤다.

보스의 등장과 함께 비어베어의 조직원이 그림자와 여인들을 포위하듯 모여들었다.

“300… 500…….”

긴장한 표정의 릴리와 프릴이 옥쇄를 각오하며 단검을 빼 들었다.

보스가 입을 열었다.

“유흥거리는 없나?”

아론이 케서린에게 단검을 쥐어 주며 돌격을 명했다.

“안 할 거냐? 그럼 네 동생이 죽는데?”

단검을 쥔 소녀가 울먹이며 몸을 떠는 모습에 보스가 웃자, 조직원들이 함께 웃었다.

죽음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딘 케서린.

13호는 그런 케서린에게 작게 속삭였다.

“당신의 동생은 우리가 보호 중입니다.”

소음 속에서 들려온 말에 케서린의 떨림이 멈췄다.

“뭐야? 안 가고 뭐 해!”

13호의 말을 듣지 못한 아론이 케서린을 윽박지르자, 케서린이 돌아서며 아론의 배에 칼침을 놓았다.

“어?”

케서린을 밀쳐 낸 아론은 배를 감싸 쥐며 차갑게 말했다.

“네놈과 동생은 오늘 죽는다.”

“죽여! 죽이라고! 이젠 네놈들 손에 놀아나는 것도 지긋지긋해!”

여흥을 보다 표정을 굳힌 보스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장내를 지배했다.

“재미없군.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보스의 명이 떨어지며 포위망을 형성한 조직원들이 그림자와 여인들을 향해 돌격해 왔다.

프릴과 릴리는 장렬한 죽음을 각오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충돌 직전, 뒤와 양옆에서 돌진해 온 조직원이 그림자와 여인들에게 합류했고, 전방에서 돌격하던 조직원들은 동료들의 배신으로 죽어 나갔다.

비어베어의 조직원은 누가 적인지 몰라 우왕좌왕했고, 당황한 아론과 첸이 보스에게 뛰어가 말했다.

“배신입니다. 간부 중 배신자가 있습니다!”

보스와 마르코의 눈이 마주쳤다.

마르코는 입꼬리를 올리며 손도끼로 보스의 어깨를 내리쳤다.

대처가 늦어 어깨에 상처를 입은 보스가 마르코를 보며 외쳤다.

“마르코! 네가 날 배신하다니!”

“배신, 웃기는군. 약한 놈은 먹힌다. 그게 암흑가의 생리 아닌가?”

“그래. 약한 놈은 먹히는 거지.”

보스는 비릿하게 웃으며 자신을 호위하듯 옆에 선 웨인에게 명했다.

“웨인, 네 직속 부대를 동원해 배신자를 처단해라!”

“우린 비싸다 보스.”

“두당 1골드 쳐 주마. 다 죽이면 200골드다!”

“마르코도 1골드인가?”

“그래.”

“그럼 내 목도 1골드인가?”

“그게 무슨 말이냐?”

웨인이 흐릿한 붉은 검기가 넘실거리는 검을 휘둘렀다.

“크악!”

순식간에 난도질당한 보스가 무릎을 꿇자, 웨인의 직속 부대원이 보스를 포위하듯 다가왔다.

“웨인… 너마저…….”

“말했지 않나? 우린 비싸다고.”

조직의 무력을 담당하던 웨인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아론.

그가 떨리는 눈으로 첸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너도?”

“그래. 나도 살아야지.”

퍽!

무한자원 개미군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