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45화 (144/189)

145화. 쥐와의 전쟁 (7)

꼬리가 하나임에도 용병들이 꺼리는 묘족.

‘악몽이라.’

녀석은 제쳐 두고, 묘인족을 구하기 위해 노예 시장부터 들렸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노예상이에요.”

위생은 엉망이었지만, 부유층 인간이 꽤 보였다.

“크네.”

“왕도니까요.”

중심가에 투기장이 있어 무력을 갖춘 고품질 노예가 많았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건 인간뿐.

“여기서 묘인족은 팔지 않나?”

노예를 취급하던 상인이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그런 불길한 게 있을 리가 있나요. 특이한 걸 찾으신다면 야만인은 어떠신지요. 지금 막 괜찮은 상품이 들어왔습죠.”

이들이 말한 야만인은 대산림의 남서쪽 일대에 거주하는 자들로, 개개인의 잠재력은 뛰어났지만 왕국을 형성하지 못한 인간들이었다.

“좀 더 둘러보고 올게.”

“네, 언제든 다시 방문 주시면 최상품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종족 말살 정책을 펼치고 있는 제국 때문인지 노예상들은 수인을 취급하고 있진 않았다.

‘여기 아니면 구할 곳이 없는데…….’

수인은 구하지 못했지만, 죽어 가는 인간들 위주로 헐값에 사들였다.

수도에는 아직 지하 기지가 완성되지 않았기에 사들인 노예는 외곽 마을로 보냈다.

그곳의 지하 기지를 통해 치료와 교육이 진행될 것이다.

베르딘이 묘인을 구할 방법을 알아 왔다.

“암시장에서 취급하고 있답니다.”

암시장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열렸고, 시중에선 팔 수 없는 장물들이 많았다.

“개최까지 10일 정도 남았습니다.”

제국의 물건도 다수 풀리기에 귀족들도 주목하는 행사였다.

“지금 암흑가에선 출입증을 팔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오를 테니, 지금 확보해 두는 게…….”

베르딘이 출입증 확보에 나선 동안, 나는 저택에서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개미 지배로 도시를 살폈다.

나야 앉아서도 개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어 심심할 틈이 없었지만, 루리아가 일이 없어 심심해하는 듯하여 그녀에게 장기 휴가를 줬다.

“암시장이 열릴 때까지 놀다 와.”

“전 괜찮은데…….”

“집을 한 번 찾아보던지.”

루리아에겐 금의환향일 테니 돈도 잔뜩 쥐여 줬다.

돈주머니를 본 루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제가 안 돌아오면 어쩌시려고요?”

“그럼 잡으러 가야지.”

루리아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력의 파동을 보아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 * *

개미교의 신관은 여섯 뿐이다.

루리아는 나름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메르디아가 루리아에게 두 명의 호위병을 붙여 줬고, 암중 호위로 스물네 명이 따라다녔다.

받은 돈으로 뭘 할까 고민하며 시장을 둘러보던 루리아는 채소를 팔고 있는 여인을 유심히 보게 됐다.

“쟤는 분명…….”

마을 친구를 발견한 루리아.

다가가려다 상대의 모습을 보곤 멈칫했다.

자신과 달리 세상의 풍파를 직격으로 맞은 듯한 모습에, 집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선명히 알 수 있는 마른 몸과 상처들.

딸과 함께 필사적으로 채소를 팔려 하지만, 개미족이 생산한 채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떨어졌다.

“뭐야? 이거 얼었잖아! 이딴 걸 팔려는 거야?”

“아저씨, 정말 싸게 줄 테니 하나만 사 주세요.”

누더기를 입고서 악취까지 풍기는 모녀는 행인들에게 채소를 사달라며 필사적으로 구걸했으나, 누구도 모녀의 채소를 반기지 않았다.

“싸게 준다면서 가격이 비싸잖아!”

“날이 추워져서 얼마 나오지 않는 채소라 그래요.”

“그래도 이건 너무 비싸잖아!”

화를 내는 사내에 당황한 소녀.

“요즘 개미 잡화점에서 채소를 얼마에 파는지나 알아?”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거야 며칠 전이지, 이거랑 이거를 합쳐서 이 가격에 팔아도 고민할 텐데, 무슨 배짱으로 이런 쓰레기를 가져다 파는 거야? 양심 없어?”

일부 사람들은 사내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지만, 루리아는 그 사내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바르퀴르 영지의 농민들 때문에…….’

소녀를 감싼 여인이 굽신거리며 사내가 요구한 값까지 낮춰 줬지만, 사내는 여인이 쥐여 주는 채소를 뿌리쳤다.

“병든 년들이 파는 걸 왜 먹겠냐?”

“이것도 끼워 드릴 테니 제발…….”

“필요 없다니까!”

사내는 매달리는 모녀를 거칠게 뿌리치곤 개미 잡화점을 향해 떠났다.

그 모습을 본 모녀는 원망 가득한 눈으로 잡화점을 노려봤지만, 문 양옆으로 선 경비병과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서늘한 바람에 노출된 모녀가 채소를 지키며 웅크린 모습을 바라보던 루리아는 생각했다.

주머니에 있는 돈이라면 분명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다크 님이 행하신 일을 방해하는 것일지도 몰라.’

이번 겨울까지는 저들도 비축 곡물이 있을 테니 괜찮을 거라 생각한 루리아가 몸을 돌려 시장 거리를 벗어나려 할 때, 암흑가의 사내들이 나타나 시장 사람들에게 돈을 뜯기 시작했고, 돈을 내지 못한 사람을 폭행했다.

그들은 호위병과 함께 있는 루리아를 보곤 소곤거렸다.

“저거… 귀족 아니야?”

“설마, 귀족은 아닐 거야.”

“혹시 모르니 저긴 가지 말자.”

“그래. 저쪽 수금은 내일 하자.”

루리아를 피해 간 그들은 그녀가 주시하고 있던 모녀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어이, 자릿세는 준비됐냐?”

“하루만 더 시간을…….”

“하루? 하… 하루 더 줄 테니, 딸 하나는 우리가 데려가 쓰마.”

함께 장사하던 딸이 끌려가고 있음에도 체념하는 여인을 보며 루리아가 걱정하자, 메르디아가 붙여 준 호위병 하나가 물었다.

“루리아 님, 저 여인과 아는 사이십니까?”

“어릴 적에 호밀빵을 나눠 줬던 친구예요.”

순간, 호위병에게 신호를 받은 암중 호위들이 움직였다.

행인으로 위장하고 있던 암중 호위 하나가 소녀를 거칠게 끌고 가는 사내들에게 다가갔고, 여인에게 다가간 호위들이 채소를 모두 사줬다.

호위들이 떠나자 사내들이 여인에게 다가갔다.

채소 판 돈을 급히 꺼내 상납금을 준비하던 여인에게 흉악한 얼굴의 사내가 말했다.

“네년, 귀족이랑 호밀빵 나눠 먹던 사이였냐?”

“네?”

“하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사내는 여인에게 딸을 돌려주며 누군가 빚을 탕감해 줬다고 말했다.

여인이 감동의 눈물을 쏟으며 물었다.

“누군가요. 누군지라도 알아야…….”

“내가 알고 있는 건 호밀빵뿐이다.”

“네?”

“몰라! 호밀빵이라고!”

사내들이 떠난 자리를 보며 루리아가 호위병에게 말했다.

“전 도우라고 명한 적이 없어요.”

“메르디아 님께서 불편 없도록 모시라고 했습니다.”

“제가 불편해 보였나 보군요.”

이러한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루리아의 표정이 변할 때마다 암중 호위들이 움직였고, 순식간에 장내의 문제가 해결됐다.

그뿐이 아니었다.

“전 그냥 구경했을 뿐인데…….”

“7초 이상 시선이 머무른 건 모두 사 두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든 루리아의 기분을 상하게 한 자들은 모두 호위병의 노트에 기록됐다.

“그건 왜 쓰는 거죠?”

“조만간 사라질 자들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돈을 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루리아.

‘집이라도 가 봐야겠어.’

루리아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잔돈만 챙긴 채 고향으로 돌아가 봤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테니, 절대 따라오지 마세요.”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농가에 들어선 루리아는 둘째 오빠를 만났다.

“작은 오빠?”

“넌… 루리아?”

둘째 오빠는 첫째 오빠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줬다.

“오늘은 여기서 자도록 해.”

“고마워.”

“아니야. 방을 내준 형님에게 고마워해야지.”

“앗, 그렇구나.”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첫째 오빠인 장남이 농지를 이은 상황.

장남 일가는 루리아를 막 대하진 않았지만, 차남 일가를 노예처럼 부렸다.

‘여긴 여전하네.’

장남이란 절대 권력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계급제.

진짜 귀족을 상대하던 루리아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루리아는 신성력을 이용해 바글거리는 벼룩을 물리치곤 뿌듯해하며 침대에 누웠다.

방음이 되지 않는 집이라 장남 일가의 사생활이 훤히 들렸다.

“오빠도 참…….”

신음성이 잦아들자 오빠와 새언니 사이에선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그 내용 중 절반이 루리아에 관한 이야기였다.

새언니는 루리아가 오래 머물며 식량을 축낼까 봐 걱정했다.

‘잔돈만 챙겨 왔지만, 그래도 적은 돈은 아니니까.’

내일 기회를 봐서 큰오빠와 작은 오빠에게 돈을 주려던 루리아였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농가에선 할 일이 많다.

날이 밝기도 전에 큰오빠의 부인인 새언니가 루리아에게 천짜기를 할 줄 아는지 물었고, 못한다고 답하자 인상을 찌푸리며 빨랫감을 줬다.

루리아는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냇가에 갔다.

“집에서 돈을 잔뜩 훔쳐 도망갔다는 고모 맞죠?”

“그렇긴 한데…….”

“고모는 귀족가의 하녀인가요?”

루리아가 아니라고 말해 주자, 아이들이 실망했다.

“너무 예쁘셔서 귀족가의 하녀인 줄 알았어요.”

루리아가 빨래를 마치고 돌아오니, 새언니가 집 청소를 시켰다.

“천도 못 짜니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오빠들이 일을 보러 밖을 도는 동안, 루리아는 조카들과 함께 노예처럼 부려졌고, 밤이 됐을 무렵 녹초가 되어 침대에 드러누웠다.

꼬르륵.

“희멀건 죽으로는 배도 안 찬다고.”

장손을 제외한 아이들에겐 빵 한 조각 주어지지 않은 현실에 루리아는 실소를 머금었다.

‘정말… 달라진 게 없어.’

그날 밤, 루리아는 자신이 가져온 돈주머니가 없어졌음을 눈치챘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다음날 찾아보기로 했다.

날이 밝고 새언니가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루리아의 돈주머니를 풀어 보였다.

“루리아가 가지고 있던 돈이에요.”

조금만 챙겨 온 것이었지만, 오빠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면 내 빚을 갚고도 남겠어.”

자기들 멋대로 가져가 어떻게 쓸지 의논하는 큰오빠와 새언니를 보며 루리아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천짜기는 배워 둬. 널 받아 줄 곳을 찾아보고 있으니까.”

“나 결혼할 생각 없어.”

루리아의 말에 새언니가 눈치를 줬다.

“루리아도 계속 여기서 살순 없잖니.”

루리아는 새언니와는 말이 통하지 않을 듯해, 오빠들만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갈 곳이 있다니 다행이구나.”

오빠들은 더는 그녀에게 간섭하지 않았지만, 새언니는 어디서 얼마나 받으며 일하는지 꼬치꼬치 캐물었고, 가더라도 생활비를 보내 달라고 했다.

“장남인 네 오빠가 잘 풀려야 너도 좋지 않겠니.”

농민이 잘 풀려 봐야 농지가 넓어질 뿐인데…….

오랜만에 찾은 집에서 고역을 치른 루리아는 도망 나오듯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돌아가는 길목에 그동안 친해진 작은 오빠의 딸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 봤어요.”

농가의 자식답지 않게 생각이 깊던 소녀.

“비단 속옷이랑 은목걸이요.”

소녀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루리아는 총기 가득한 조카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랑 같이 갈래?”

조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가 따라가면 받은 신붓값을 돌려줘야 해요. 그럼 우리 집이 곤란해져요.”

농가의 여식은 시집갈 때 신붓값을 받았고, 그들에겐 꼭 필요한 수입원이었다.

루리아는 가족을 생각하는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소중히 간직해 온 목걸이를 건넸다.

손때가 잔뜩 묻은 나무 모형에 실이 엮인 목걸이.

“이건 뭐에요?”

“내가 만든 거야.”

“소중히 할게요.”

루리아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고모인 날 찾으렴.”

“이걸로 고모를 어떻게 찾아요?”

“찾을 수 있을 거야.”

* * *

루리아가 휴가를 보내는 동안, 나는 개미 지배로 묘인을 찾아봤다.

수도 안에선 도저히 찾을 수 없었으나 소득은 있었다.

‘저 녀석이 악몽이군.’

악몽이란 놈은 검은색 고양이로 흑마력을 품고 있었다.

‘평범한 흑마력이 아니야.’

놈이 디아와 같은 사도임을 직감했다.

‘디아를 데려올걸 그랬어.’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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