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쥐와의 전쟁 (10)
이곳 포커의 베팅에도 룰이 있다.
다섯이 앉은 테이블에서 시작 전 기본 단위를 베팅하고, 판돈의 절반까지 베팅할 수 있다.
상대가 베팅한 금액을 따라가지 못하면 패를 다 받아 볼 수 없어, 돈이 많은 내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판돈이 제일 큰 테이블의 기본 단위는 1실버.
처음 세 장을 받고, 한 장만 뒤집어 상대에게 보여 준다.
뒤이어 베팅이 진행되며 네 장을 더 받는데, 마지막 장은 상대에게 보여 주지 않는다.
네 장이 노출되고, 세 장이 감춰진 패로 마지막 베팅이 진행된 후 패를 까서 족보가 높은 쪽이 승리하고 깔린 돈을 모두 가져간다.
나는 첫 세 장을 받고, 레이스를 쳐서 판돈을 키웠다.
“하프, 하프, 하프.”
상대는 패가 좋든 나쁘든, 패를 받기 위해서라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콜.”
“콜.”
간혹 함께 레이스를 치는 인간이 있으면 판돈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5실버에서 시작된 게임.
다섯 장의 패를 받았을 때는 50실버에서 2골드가 깔렸다.
이쯤 되면 패에 자신 없는 자들은 모두 죽기에, 블러핑을 치려는 녀석이 생겼다.
상대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더듬이 감각 덕에, 내겐 블러핑이 통하지 않는다.
‘네놈의 심박 수가 낮은 패를 가졌다고 말해 주는군.’
나는 낮은 패로 공갈을 치려는 자와 치킨 레이스를 벌여 승리를 거머쥐었다.
룰렛에서 잃은 돈을 복구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가 돈을 따든 잃든, 판돈이 커질 때마다 안내인들이 기뻐하는 걸 보아, 담당 고객이 거는 액수에 따라 안내인에게 커미션이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니 내가 포커 판에서 오래도록 버틸수록 막대한 커미션이 담당 안내인에게 돌아간다.
“정말 대단하세요! 제가 운영 측에 말해서 급에 맞는 사람을 붙여 달라고 할게요.”
안내인은 바람잡이 역할을 충실히 하여 빈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수많은 인간이 허탈해하며 도박장을 떠나가게 됐고, 안내인과 루리아는 내가 벌어들인 칩을 주워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날 유심히 지켜보던 도박장의 관리인이 찾아왔다.
“고객님, 좀 더 큰 판에서 놀아 보시겠습니까?”
지금 판에서도 충분한 거액이 오가고 있었으나, 판돈은 클수록 좋은 법.
관리인을 따라간 별실.
네 명의 인간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자리를 채워 주실 분이 오셨군요.”
“이제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건가?”
각자의 앞에 5,000골드에 해당하는 칩이 쌓여 있었고, 나 또한 총알로 5천 골드를 준비했다.
“여긴 기본 판돈이 1골드라 조금 전처럼 레이스 하다간 한 판에 모든 걸 잃을 수 있어요.”
5천 골드면 웬만한 대영지의 운영 자금보다 큰 액수였고, 최상품에 해당하는 특급 마석을 구하고도 남을 돈이었다.
이 만한 돈을 도박판에 쓸 정도면…….
‘클라우드 왕국의 귀족이 아닐지도 모르겠군.’
게임이 진행되며 서로에 대한 탐색이 시작됐다.
험상궂게 생긴 사내, 특이한 복장의 남성과 여성, 그리고 노인이 한 명.
“다들 즐거운 승부가 됐으면 좋겠군요.”
예의를 갖추려 하지만 숨겨지지 않은 거친 말투와 강인한 외모.
‘안내인이 반응하는 걸 보니, 주최자 중 하나인 것 같군.’
선수로 보이진 않았고, 삭막한 분위기를 띄워 주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 것 같았다.
“내 고향에서도 골드로 노는 경우는 흔치 않지.”
“저희는 골드로 놀지만, 미스릴로 놀고 있는 곳도 있을 겁니다.”
“하하, 아스만의 제일 큰 판도 골드로 노는 게 고작이야.”
“아스만 분이셨군요.”
“이런… 들켜 버렸군.”
특이한 복장의 사내가 아스만 출신이라는 게 드러났고, 이어진 대화 속에서 그가 왕족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스만의 왕족이라.’
여성 또한 비슷한 복장인 걸 보아 아스만 쪽 사람이었다.
“그쪽 자금은 충분하십니까?”
“자금은 언제나 부족하죠. 이참에 경쟁자를 줄이고 자금을 좀 확보해야겠어요.”
“호~ 그대, 본국의 상인인가?”
“…답하지 않겠습니다.”
“고맙군.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절 알아보신 것 같으니, 저도 예를 차리는 게 좋을까요?”
“여긴 암시장이다. 예는 필요 없다.”
여성은 아스만 왕국에서 온 상인이었고, 노인은 끝내 정체를 밝히지 않았지만, 아스만 쪽 인물들과의 관계를 보아 클라우드 왕국에서 제일 돈이 많다고 알려진 마일도스 후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암흑가 실세, 아스만의 왕자와 상인, 그리고 마일도스 후작.
나는 제국의 귀족 컨셉으로 이들을 속이며 마일도스를 털어 보려 했으나, 그는 확실한 패가 아닌 이상 승부를 보지 않았다.
‘쟤들이라도 털어야겠다.’
나는 왕자와 암흑가 사내를 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거 졌군. 난 그만 일어나겠네.”
“저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저희끼리 한 판 어떠신가요?”
상인의 제안에 마일도스로 여겨지는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아무래도 행운의 여신께선 내 편이 아닌 듯하니, 난 이만 가 보지.”
노인이 떠나고 여인과 나만 남았다.
우린 조용히 일대일 포커를 이어 갔다.
“잘하시는군요.”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패를 보지 않고 베팅하고 있었다.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인식 저해 마법을 뚫고 상대의 속내를 알아채는 능력은 상당하네요.”
확신에 찬 말투와 달리 긴가민가한 그녀.
“상대의 동작은 보이잖아요. 동작만으로도 묻어나는 습관이 있으니까요.”
더 했다간 의심만 깊어질 것 같아 칩을 정리했다.
“서로 바쁜 사람일 테니, 막판은 행운에 맡겨 보는 건 어떤가요? 많이 땄으니 한 판 정도는 어울려 주실 수 있으시죠?”
딴 돈이 많았던 터라 개평으로 한 판 정도는 져 줘도 상관없지만, 나는 불확실한 승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할 일이 있어서,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도망가는 건가요?”
그녀의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나의 수양은 얕지 않다.
“작전상 후퇴라 해 두죠.”
별실에서 나오니 안내인이 문을 닫아 줬다.
쾅!
문 너머로 누군가가 책상을 내려친 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저쪽도 2천 골드는 잃었지.’
* * *
별실에서 나온 노인에게 로브의 사내가 다가가 칩이 든 가방을 받아 줬다.
“가신 일은 잘되셨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스만 제국의 왕세자와 어스 상단의 막내딸이 있더군.”
“제국 쪽 인사는 없었나 보군요.”
“제국 귀족인 척하는 이상한 놈은 있긴 했지.”
노인은 도박장을 둘러보며 주의해야 할 사람들을 찍어 줬다.
“내가 알아본 건 이 정도라네.”
노인이 말을 마치자 로브의 사내가 물었다.
“후작님, 나머지 칩은 어디에 두셨습니까?”
“나도 모르니 묻지 말게.”
* * *
도박장에서 자금을 불린 나는 노예 상점을 향해 가는 중에 안내인의 권유로 무기점에 들리게 됐다.
“여긴 최근 유행하는 브랜드 장비를 파는 곳이에요.”
“다크 님, 저쪽에 개미표 장비도 있어요.”
“개미표 장비도 인기 상품이죠.”
무기점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다.
“여기 진열된 스무 개의 무기 중 하나만이 제국산 미스릴 무기고, 나머지는 모두 특수 금속으로 처리된 가짜입니다. 안목에 자신 있으시다면 도전해 보십시오!”
“재밌는 이벤트를 하는군.”
“앗, 미스릴 뽑기 말씀이시군요.”
스무 개 중 하나를 뽑으려면 1골드.
두 개를 뽑으려면 5골드.
세 개를 뽑으려면 20골드를 내야 했다.
제국산 미스릴 검의 가치는 200골드를 가뿐히 넘었으니, 누구라도 혹할만했다.
“겉만 봐선 진짜 미스릴 검을 찾아내기란 힘들어요.”
안내인의 조언대로 무시하고 지나치려는데, 베르딘이 내게 속삭였다.
“다크 님, 아래쪽에 진열된 세 개 중 하나가 진짜 미스릴 검인 것 같습니다.”
“확실해?”
베르딘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20골드로 저 세 개를 뽑으면 200골드짜리 검을 얻는 건가?”
베르딘이 칩을 들고 나서기 전 누군가 선수를 쳤다.
“저 세 개를 고르겠네.”
“이런, 한 발 늦었군.”
놈은 베르딘을 보며 비웃었는데, 이를 알아볼 수 있는 건 더듬이 감각으로 상황을 살피던 나뿐이었다.
베르딘이 아쉬워할 때, 직원이 무기를 바위에 내리쳐 깨트려 버렸다.
“이런, 모두 꽝입니다.”
“그럴 리가! 분명 미스릴이었는데…….”
날뛰려던 그는 대기 중이던 덩치들을 보곤 얌전히 퇴장했다.
베르딘도 놀랐는지 눈을 껌벅였다.
“이상하군요. 분명 저 중에 미스릴 검이 있어야 하는데.”
가짜 미스릴 검 세 개를 추가한 직원이 검은 천을 덮곤 진열 위치를 바꿨다.
준비를 마친 직원이 검은 천을 걷어 내고 다시금 호객 행위에 나섰다.
“제 말이 맞죠? 육안으론 구분할 수 없어요.”
안내인이 말하길 특수한 시액과 조명등으로 인해 진짜 미스릴 검과 가짜 미스릴 검을 구분할 수 없다는데.
‘확실히 인간의 눈으론 구별할 수 없겠어.’
나는 눈을 감았다.
마력, 생명력, 온도, 진동, 냄새.
다양한 정보가 뇌리에 흘러들어왔고, 진열된 검의 내구도와 마력 전도율을 알 수 있었다.
‘저거군.’
내가 검을 하나 골랐다.
장내의 인간들은 나의 선택을 비웃었다.
그도 그럴 게, 아무리 봐도 가짜 티가 팍팍 나도록 세팅된 검이었으니까.
“그럼 확인해 보겠습니다.”
챵!
바위와 충돌해 울리는 맑은 음성.
미스릴 검임이 확인된 순간 시끌벅적하던 장내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축하드려요.”
안내인이 얼떨떨해하며 축하해 줬고, 뽑기 담당 직원은 진열장에 검은 천을 씌운 채 세팅에 들어갔다.
다시금 진행된 뽑기.
인간들은 도저히 아닐 것 같은 검만 골랐지만, 매번 새롭게 세팅되는 뽑기에서 전과 같은 방식의 전략은 통하지 않았다.
‘재밌네.’
나는 모여든 인간들이 덫이란 것도 모른 채 절망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십여 명이 깡통을 차고 뽑기에 관심을 잃어갈 때, 베르딘에게 지시하여 미스릴 검을 뽑게 했다.
그러자 인간들이 또다시 불나방처럼 뽑기 게임에 돈을 퍼붓기 시작했다.
루리아, 메르디아, 안내인이 검을 하나씩 뽑았을 때, 도박장에서부터 날 미행하던 암흑가 사내들이 다가왔다.
“잠깐 따라와 주시죠?”
강압적인 분위기.
놈들을 따라가니 별실에서 내게 털린 사내를 만났다.
“도박장에서도 그렇고, 정말 대단하군요. 제 업장에서 이 정도 해 줬으면 이쪽에서도 가만있을 수 없어 불렀습니다.”
일행이 긴장하며 미스릴 검을 뽑아 들었고, 안내인도 얼떨결에 검을 뽑아 들었다.
놈이 나를 향해 뭔가를 던졌다.
처음에는 암기라 생각했지만, 받아보니 미스릴로 만들어진 배지였다.
“이건?”
“VIP 전용 배지입니다. 클라우드 왕국 내에서라면 어디서든 먹히는 물건이죠.”
놈이 VIP 전용 카탈로그를 꺼내 보여 주며 암시장의 핵심 상품을 소개했고, 안내인도 지배인급 인사로 교체해 줬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 주십시오. 뭐든 구해서 원하는 장소에 배송해 드리겠습니다.”
노예와 관련된 것은 카탈로그에 나와 있지 않아 직접 가야 했다.
“여긴 최고급 노예만 있는 곳입니다.”
확실히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인재들로 넘쳤으나, 내가 원하는 묘인족은 없었다.
“묘인족은 없나?”
“흠, 그거라면 마법사들이 연구 목적으로 예약한 것들이 있긴 한데…….”
노예상이 난감해하자, 안내인이 눈치를 줬다.
“아닙니다. 마법사들에겐 제가 양해를 구해 보겠습니다.”
잘 포장된 어린 묘인족 50명을 벨레삭 영지에서 인계받기로 한 나는 며칠간 암시장에 머물며 다양한 이벤트를 즐겼다.
불어나는 칩으론 하급 노예, 마석, 광물 등을 싼값에 사들였고, 암시장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경매에 참석하게 됐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