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51화 (150/189)

151화. 돈 복사, 무한 확장 (1)

종이 화폐가 쓰이지 않던 옛날.

지구에서도 이곳처럼 금속 화폐가 쓰였다.

16세기 영국에선 금세공업자들이 금고를 만들어 금을 보관했고,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장부를 썼다.

금고가 안전하다고 소문나자, 금을 가진 사람들이 금세공업자에게 금을 맡겼다.

금세공업자는 보관증을 써 줬고, 보관세를 받았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무거운 금 대신 보관증으로 거래를 했다.

사람들이 금을 찾아가지 않자, 금세공업자는 맡은 금으로 돈놀이를 시작했다.

‘남의 돈으로 말이야.’

맡은 금으로 막대한 돈을 번 금세공업자.

이를 알아챈 고객들이 항의하자, 금세공업자는 수익 일부를 고객에게 나눠 주기로 했다.

‘예금의 탄생이지.’

당시 금고 안에 얼마의 금이 있는지, 그걸 아는 건 금고의 주인뿐.

금화보다 보관증이 더 쓰일 무렵, 금세공업자는 보관증을 마구 찍어 냈다.

금고 속 금화의 10배가 넘는 보관증이 유통되며, 당시의 데이터를 토대로 은행의 지급준비율이 10%로 정해졌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니까 남의 돈을 10배로 만들어 쓸 수 있단 말이지…….’

지구에서 한차례 검증된 돈 치트.

이곳 세상에 맞게 개량해 써먹을 생각이었다.

돈 치트에 필요한 기술적 지원을 받기 위해 엔지를 찾았다.

“다크 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개미족의 각종 기술서가 보관된 연구원.

그곳에서 엔지는 여러 연구팀을 운영했다.

“인쇄와 방직 쪽 연구들 좀 보려고.”

“그럼 산업 연구원 쪽으로 모실게요.”

산업 연구원에선 두뇌파 워커맨들이 새로운 설비와 소재에 관한 데이터를 쌓아 가는 중이었다.

“이건?”

“다크 님이 말씀 주신 동력 기관, 마력 엔진이에요.”

발명이란 노가다라 했던가?

다수의 워커맨이 수년간 축적한 기술력의 결정체를 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 이 정도 물건을 만들어 내다니.’

그들이 만든 내연기관은 지구의 것과 비교해도 처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왜 마력 엔진이야?”

“연료로 액화 마석이 쓰여요.”

마석을 녹인 액화 마석은 마력액이라 불린다.

초기의 마력액은 애벌레의 위산으로 만들었고, 둥지가 커지며 생산 특화 개미인 펙토리 워커의 위산으로 생산하게 됐다.

그러나 위산을 통한 액화 과정은 상당한 시간이 걸려, 충분한 양의 마력액을 얻을 수 없었다.

지금에 이르러선 지하에 발견된 마력수와 반응시켜 마력액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대량 생산도 가능해졌지.’

내연기관은 기압을 통해 마력액을 폭발시켜, 가스 대신 마력의 힘으로 돌아갔다.

내연기관이 작동되면 일대의 마력 농도가 짙어져, 환경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석유의 상위 호환 격이야.’

21세기에도 석유 이상의 에너지원은 많았으나, 석유만큼 가성비가 월등한 에너지가 없었다.

‘가성비가 문제지.’

마력액은 개미들의 마력 증진이나 다양한 약품에도 쓰이고 있어, 아무리 많아도 모자란 자원.

그런 마력액을 연료로 쓰기엔 몹시 아까웠으나, 쥐와의 전쟁으로 개미 수가 줄어 생산 공장들이 멈춰 있었다.

그동안 개미들은 동력 기관 설치를 반대해 왔는데,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지금이 공장 자동화의 적기였다.

“엔지, 각 공장에 마력 엔진을 설치하고 마력액을 대신할 연료 개발에 착수해 줘.”

“드디어… 이걸 설치할 날이 왔군요.”

엔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연구원에선 마력 엔진 외에도 다양한 기계 장치가 개발돼 있었다.

하지만, 개발이 무조건 실용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연구 개발을 통해 다양한 기술을 축적하고 있을 뿐.

그동안 개미족이 발전시킨 종이, 잉크, 방직 기술을 점검한 나는 관련 연구를 진행하던 워커맨을 모아 보관증 대신 발행할 화폐 개발에 착수했다.

한국의 화폐는 종이보단 섬유에 가깝다.

종이는 수십 번만 접었다 펴면 찢어져 버리지만, 면섬유는 최대 만 번까지 견딜 수 있다.

면과 종이의 합성, 최적 비율을 알아내기까지.

나 혼자 작업했다면 몇 달은 족히 걸렸을 일이었지만, 다수의 워커맨 연구원이 보조해주니 3일이면 족했다.

3일 만에 뚝딱 만들어진 합성 종이는 페어리 워커의 강화 가루와 개미족의 접착액이 쓰이며, 이곳 문명으론 절대 위조가 불가능한 재질이었다.

물론 세상에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법.

누군가 비슷한 종이를 만들어 오면 개미족이야 접착액의 냄새로 바로 구분해 내겠지만, 시각만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인간은 알아채기 힘들다.

“잉크 연구팀을 모아 줘.”

그동안 쌓인 기술력을 토대로 다양한 색상과 특정 조건에 반응하는 잉크들을 선별하여 위조 방지 장치를 만들었다.

연구를 거듭하여 숨은 그림, 볼록 인쇄, 숨은 은선을 구현해냈다.

21세기 화폐에선 홀로그래피 기술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다른 그림이 보이도록 했는데, 아직 개미족에겐 그만한 기술력이 없어 각도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는 잉크로 홀로그램을 대신했고, 마석에 반응하여 빛을 내는 잉크도 사용됐다.

1쿠퍼, 5쿠퍼, 10쿠퍼, 50쿠퍼, 1실버, 5실버, 10실버, 50실버, 1골드, 5골드까지…….

최소 단위인 쿠퍼를 포함해 10종의 화폐 디자인이 나왔다.

각 화폐에는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에 해당하는 위인 대신, 개미족의 다양한 진화체를 새기도록 했다.

보급종인 스몰, 빅, 자이언트, 울트라는 쿠퍼에 새겼고, 실버에는 보급종 솔져들을, 골드에는 희소종인 시절 솔져와 블레이드 솔져를 새겼다.

‘이 정도면 되려나?’

지금 이곳 문명 수준으로 절대 따라 만들 수 없는 화폐.

그렇다 해도 방심할 순 없다.

“엔지, 위조 방지 연구원을 만들어.”

“네, 워커맨 20마리를 투입하겠습니다.”

“아니, 50마리를 투입해.”

누군가 방패를 뚫어 낼 창을 만들려 한다면, 개미족은 창이 박혀도 끄떡없는 성벽을 짓고 있을 터다.

연구팀으로 인해 화폐 관련 기술이 빠르게 쌓이는 걸 지켜본 나는 그제야 위조지폐에 대한 걱정을 덜었다.

‘이게 바로 시스템의 힘이지.’

일개 개인의 머리론 이룰 수 없는 발전 속도.

내가 마련한 연구 개발 시스템이야말로 현 개미족의 진정한 힘이라는 걸 개미족조차 모르고 있다.

생산 개미 대다수가 쥐 소탕에 동원되어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다른 모든 일에 앞서 화폐 공장부터 만들었다.

화폐 공장이 만들어지고, 화폐가 찍혀 나왔다.

아직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한 종이.

이걸 화폐로 만들기 위해 나는 바르퀴르 자작령에 있는 개미 저택을 찾았다.

자금 부족으로 삐꺽거리는 상황이라 문트리아의 혈색은 좋지 못했다.

“죄송해요, 다크 님…….”

문트리아는 사업성이 좋지 못한 사업을 포기하고 한동안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나는 개미 상단에 우호적인 영지 위주로 환전소를 겸한 보관소를 만들게 했다.

“보관소요?”

“금고는 둥지에서 만들 거니까, 잡화점 옆에 보관소를 열어줘.”

“용병 길드에서 환전과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서 상단의 보관소를 이용해 줄 사람이 있을지… 그리고 보관소를 운영하려면 경비 인력을 다수 차출해야 해요. 지금 가용 가능한 자금으론 다음 달 직원들의 월급이 부족해요.”

문트리아는 부족한 자금을 끌어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에 투자하고 싶지 않아 했다.

“정말 무리에요. 이 이상 확장했다간 개미 상단 전체가 무너지고 말 거예요!”

무릎 꿇고 비는 문트리아에게 차분히 말해 줬다.

“동전은 무겁고, 단위도 이상해서 거스름돈 받기가 힘들었어.”

“네?”

1쿠퍼, 1실버, 1골드.

단위가 100단위라 어딜 가든 잔돈을 잔뜩 들고 다니며 상대가 요구하는 만큼 줘야 했는데…….

“보관소에선 좀 더 가볍고 보관이 쉬운 화폐를 제공할 거야.”

“화폐를 제공한다고요?”

나는 화폐를 보여 주며 은행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갈지 자세히 설명해 줬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문트리아의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다크 님의 말대로만 된다면… 이거, 사기에 가까운…….”

은행의 사업성을 깨달은 문트리아가 공격적으로 보관소를 늘려 갔다.

잡화점 옆에 들어선 보관소는 마석을 비롯한 각종 소재를 시세에 맡게 금속 화폐로 바꿔 줬고, 금속 화폐를 맡아 주며 보관증을 겸한 종이 화폐를 유통했다.

환전 수수료와 보관비는 용병 길드보다 적게 받았다.

초기 고객은 개미 상단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었지만, 첨단 금고와 양질의 경비 수준이 알려지며 인간들이 집에 쌓아 둔 은화와 금화를 가지고 왔다.

바르퀴르 자작령을 비롯한 여러 대영지에서 동시에 시작된 종이 화폐의 유통.

개미 간판이 걸린 상점이라면 종이 화폐를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용 시 10% 할인이 적용되었다.

그러자 인간들은 너도나도 금속 화폐를 종이 화폐로 교환하기 위해 보관소를 찾았다.

그럼에도 1쿠퍼는 주로 동전이 쓰였지만, 위 단위의 종이 화폐가 널리 쓰이기 시작할 무렵, 나는 임의로 꺼내 쓴 90%의 금화를 다시 채워 넣고, 종이 화폐를 찍어 내 사용했다.

그렇게 남의 돈을 열 배로 만들어 쓰게 된 개미 상단은 마르지 않는 자금의 샘을 얻게 된 것이다.

시중에 종이 화폐가 많아지는 시기에 맞춰 각 상점에선 지갑을 판매했고, 보관소에선 본인 거래만이 가능한 예금 서비스를 운영했다.

이자율은 연간 10%

보관료 없이 돈을 맡길 수 있단 혁신에 인간들은 열광했고, 귀족과 부유층의 숨은 돈이 개미 상단에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돈 쓰는 게… 너무 힘들어.”

그동안 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문트리아의 탄식을 들은 부하 직원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쥐 사냥에 디아와 갑각왕도 나섰지만, 소 잡는 칼로 쥐를 잡아 봐야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나르본느, 크라스, 네론은 여름 시기에 남쪽 습지를 경계하느라 바빴다.

쥐의 습격을 잘 막아내고 있지만, 그동안 입은 피해만으로 복구에는 수년이 걸릴 터였고, 방어에 투입된 병력이 상당하여 한동안 확장은 불가한 상황이었다.

오거 숲에 트롤 킹 마을을 마련해 줬고, 맹약을 이은 덕에 서쪽 미노타우로스의 침공은 더 이상 없었다.

동쪽 황무지 쪽은 예나 지금이나 조용하다.

‘언제 한번 베르제붑 던전의 보물을 회수해 와야 하는데…….’

둥지 내의 생산 시설을 재건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자신의 한계를 느낀 문트리아가 내게 SOS를 쳐서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미아 전사 다섯 마리가 둥지를 찾아왔다.

“수석 전사 레이미, 대가를 치르러 왔다.”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과 달리, 나르본느의 거미줄에 묶여 바닥을 기어온 라미아들.

간절한 눈빛으로 내게 거미줄을 끊어 줄 것을 요구했다.

‘무투회에 참석했던 라미아군.’

무투회에 참석했던 전사장 릴리스의 부관 레이미.

무투회 때, 삼신전 출입증 한 장의 대가로 다섯 마리의 라미아 전사를 1년간 빌리고, 역대급 전사의 마석 세 개를 받기로 했었다.

“마석은 제대로 가져왔나?”

“내 품에 있다. 풀어 주면 꺼내 보이겠다.”

이들에게선 남쪽 영역에 관한 정보를 얻어 침공, 혹은 방어 전략을 세울 계획이었는데…….

쥐를 방어하느라 힘겨운 상황이어서 남쪽 습지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시기가 좋지 않아.’

특급 마석 세 개를 받고, 적당히 대접해 준 후 쥐 사냥에 투입했다.

울트라 수준으로 강한 그들이었지만, 다섯으론 쥐 사냥에 큰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여겼는데.

하반신이 뱀이었던 라미아들이 숲에서 뱀을 잡아 와 둥지에 풀어버렸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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