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55화 (154/189)

155화. 내전 (1)

벨레삭의 기마대의 호위를 받으며 백작성에 들어선 제논.

궁지에 몰리긴 했지만, 희망이 없진 않았다.

“안심하십시오 저하.”

백작성은 고지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

“반란군이 몰려와도 저하의 털끝 하나 건들지 못할 겁니다!”

버티기만 하면 포카이 왕국과 전쟁 중인 쿠드라 후작군이 돌아온다.

쿠드라 후작군은 가르탈 백작군과 쌍벽을 이루는 정병.

“병사들은 모두 개미표 강철 장비로 무장을 끝낸 상태입니다.”

그의 회군에 맞춰 세자파 귀족들이 일제히 몰아치면…….

“왕궁을 탈환하고, 반역자인 7왕자를 처단하겠습니다.”

벨레삭 백작이 호언장담한 그날 밤.

“무슨 일이냐? 비에타.”

“아버지, 이제 그 자리에서 내려오셔야겠습니다.”

“…못 들은 걸로 하겠다. 이만 돌아가 쉬어라.”

“쉬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닌 아버집니다.”

“아이젤 경, 저놈을 끌어내 주게.”

백작이 호위 기사에게 비에타를 끌어내라고 명했으나, 기사의 검은 백작을 향했다.

푹.

“바이젠트 아이젤… 널 자식처럼 여겼거늘…….”

백작은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바이젠트를 바라봤고, 바이젠트는 측은한 시선으로 주저앉는 백작을 내려다봤다.

“예전이셨다면 이런 기습에 당하지 않으셨을 텐데… 신 바이젠트 아이젤이 비에타 도련님을 보필하여 벨레삭 가문을 더욱 키워드리겠습니다.”

“네놈…….”

대전의 권좌에서 백작을 치워 버린 비에타.

그는 권좌에 앉아 맡은 구역을 정리하고 온 기사들을 맞이했다.

대전에 기사들이 가득 차자 비에타가 선언했다.

“대세에 거스르는 아비의 잘못은, 나 비에타 벨레삭이 바로 잡겠다!”

기사들은 검으로 갑주를 치며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형제들의 수급을 확인하던 비에타는 제논의 수급이 없자 의아해했다.

“세자는 아직 처리 못 한 건가?”

비에타는 세자의 수급으로 7왕자에게 충성을 맹세할 계획이었는데…….

“백작님! 세자가 도망쳤습니다!”

“뭐? 세자가 없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성에서 빠져나가진 못했을 겁니다.”

세자 혼자선 비에타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없었겠지만, 외부의 조력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부쉬트니 자작이 기사들을 데려와 세자를 데려갔습니다!”

“뭐? 부쉬트니 자작이!”

비에타의 반란을 미리 눈치챈 부쉬트니 자작이 제논을 빼돌린 것이었다.

“부쉬트니 놈! 유리한테 붙더니 제정신이 아니구나! 말을 준비해라, 놈이 성에 틀어박히기 전에 잡아야 한다!”

비에타는 기사와 기마대를 이끌고서 부쉬트니 자작성을 향했다.

*   *   *

제논을 데리고 나온 부쉬트니는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두 무리로 갈라져 말을 달렸다.

말을 달리며 백작의 소식을 전해 들은 제논이 허탈해했다.

“기사들이 날 위해 몸을 던질 때, 손발이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부쉬트니는 듣는 둥 마는 둥 말을 박찼다.

“백작이 죽다니… 무너진 성채 잔해에 깔린 기분이구나.”

숨이 막히는지 가슴을 부여잡은 제논.

“부쉬트니 경… 벨레삭 백작이 죽은 지금, 내 명에 움직여 줄 귀족은 없을 거야.”

제논은 절망 가득한 눈으로 부쉬트니와 메르손을 번갈아봤다.

“전란의 시대다. 너희들의 충정은 충분했노라. 내 수급을 이용해서라도 살아남도록 하라.”

제논의 뜻을 읽은 메르손은 침통해하며 고개를 숙였으나, 부쉬트니는 고개를 치켜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하, 저기 보십시오. 바르퀴르 자작성입니다.”

깊게 가라앉은 제논의 눈에 성이 담겼지만, 그에겐 성채가 거대한 관으로 느껴졌다.

“자네의 성이 아니군.”

“제 성으로 갔다면 추적자를 맞이해야 했을 테니까요.”

성채에 접근하여 자신의 정체를 밝힌 부쉬트니.

문이 열리길 기다릴 때 제논에게 물었다.

“저하는 도박을 좋아하십니까?”

귀족들은 대체로 도박을 즐겼고, 부쉬트니는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고 알려진 자였다.

“큰돈을 따려면, 큰 판에서 놀아야 하는 게 도박이죠. 저하가 만들어 주신 판, 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탐욕 가득한 부쉬트니 자작을 보며 제논이 물었다.

“승산은 있는 건가?”

“도박에 100%란 없습니다. 그리고 승산이 낮을수록 배당도 높은 법이지요.”

문이 열리며 부쉬트니가 앞장섰고, 제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뒤따랐다.

“제 아버지도 그렇게 자작위를 따냈으니, 전 백작위를 노려볼까 하는데… 저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벨레삭 백작을 잃은 이상, 가망이 없다고 여긴 제논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왕좌에 앉는다면 7왕자파의 귀족들을 정리해야겠지. 그 공백을 메우려면 자네가 후작이 되어야겠군.”

“그거… 참 좋은 이야기군요.”

부쉬트니와 제논은 기사의 안내를 받아 내성 집무실에 들어섰다.

그곳에선 유리와 다수의 기사들이 거대한 지도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마중 나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하.”

“클라우드 왕국의 큰 별, 왕세자 저하를 뵙습니다.”

“하던 일이 있어 보이는데, 계속 하게.”

작전 회의에 끼게 된 제논과 부쉬트니는 오가는 내용이 이상하게 느껴져 한마디 했다.

“지금, 백작성 탈환을 논의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백작성 탈환 후를 논의하고 있는 건가? 어느 쪽이든 가망이 없어 보이는군.”

제논은 자신이 직접 확인한 벨레삭 백작군의 위용을 말해 줬다.

“자네의 군대론 백작군을 이길 수 없네.”

그 말에 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백작군의 강함을 인정하자, 장내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때, 집무실 밖에 선 경비병이 문트리아가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개미 상단의 상단주 문트리아가 영주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들어오라 해라!”

유리는 문트리아를 열렬히 반기며 물었다.

“그래, 흑탑에선 제논 세자를 돕기로 했는가?”

문트리아는 미소 띤 얼굴로 답했다.

“그에 대한 답변을 가져 왔습니다.”

잠시 당황한 제논, 문트리아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   *   *

히나가 말하길 흑탑은 50년 전에 암흑 신전의 미치광이들에게 몰살당했다고 한다.

“마신의 선택 받은 미치광이들! 제국에서도 웬만해선 안 건드는 족속이죠.”

내가 사도라는 건 알아보지 못한 히나였지만, 디아와 타르를 보곤 사도라는 걸 바로 알아채곤 몸을 사렸다.

지금의 흑탑은 당시의 장로들이 남긴 후손이거나 제자였고, 히나는 2장로의 손녀로 장로직을 이었다고 한다.

“열두 명의 장로가 있고, 서열은 없어요.”

장로직을 계승하는 건 간단하다.

전 장로의 유산을 이으면 된다.

“이게 장로들과 통신할 수 있는 아티팩트예요.”

흑탑의 장로들은 통신구를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생존을 확인했다.

클라우드 왕국에는 전쟁을 부추기는 3장로 히스가 있고, 파리스 그린을 퍼트린 8장로 호르카가 있었다.

“둘은 마일도스 후작의 비호를 받고 있어요.”

대귀족의 비호 아래 흑마법사 사냥에서 무사한 두 장로.

“마일도스는 히스와 호르카를 언제든 처리할 수 있는 사냥개라 여길 테지만, 장로들에게 있어 마일도스는 이용하기 좋은 돈줄에 불과해요.”

히나는 장로들과 통신을 주고받으며 7왕자파의 결단을 알게 됐다.

“아무래도 왕을 독살하고, 7왕자를 즉위시킨 후, 수도인 테헤라에서 병력을 모아 회군한 쿠드라 후작과 일전을 치르게 할 계획인 듯해요.”

나의 계획이 왕국이란 거대 농장을 건설하는 것이라면, 히스는 7왕자를 조종해 남대륙을 피로 물들일 작정이었다.

이대로 두면 끊임없는 전장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든 클라우드는 멸망하고 만다.

멸망한 왕국 땅엔 시체만이 쌓인다.

‘아직 수확할 때는 아닌데 말이지.’

흑탑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도 양질의 영양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으나, 그동안 쌓아 온 기반이 아쉽다.

‘그렇다고 도울 수도 없고.’

현재 개미족은 쥐들에게 입은 피해를 복구하느라, 병력을 차출해 인간과 싸울 수 없었다.

‘교도들로 정규군을 상대하긴 쉽지 않을 거고.’

고래 싸움에 꼈다간 피해가 클 터니, 개미교도들도 몸을 사려야 했고…….

부득이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

이대로 숟가락만 얹기엔 아쉬워 제논을 활용해 수확 장소와 시기를 조정해 보기로 했다.

개미 상단이 제논을 지원하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때마침 휘하로 들어온 흑탑의 히나를 이용해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 봤다.

대략 유리에게 전한 내용은 이러했다.

7왕자파에 흑탑의 장로 두 명이 있다.

둘은 흑탑의 배신자로 척살령이 떨어졌으니, 개미족과 협력 관계인 2장로가 나서서 처단하기로 했다.

몬스터인 개미족과 흑탑은 전면에 나설 수 없어 난감하다.

벨레삭 백작성을 찾아 줄 테니, 그들을 견제해 달라.

그 사이, 흑탑이 나서서 두 장로를 처단하겠다.

다시 말해 최소한의 도움을 줄 테니, 알아서 잘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내 뜻이 전해진 직후, 제논이 기사들을 이끌고 오크나무 숲에 들어왔다.

‘뭐야? 왜 온 거야?’

빈약한 무장으로 진입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피어레스를 불렀다.

“궁기병을 이끌고, 저들을 보호해 줘.”

오래간만에 출격한 피어레스는 궁기병 100기로 야생 고블린과 맹수들을 몰아냈고, 때마침 위기에 처한 제논 일행을 구해 왔다.

나는 히나를 앞세워 제논을 맞이했다.

“흑탑의 장로 히나입니다. 왕세자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히나의 물음에 제논은 테이블에 전략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전면에 나서 주게.”

당황한 히나가 말을 더듬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하고 계십니까?”

“알고 있다.”

공식적으로 흑탑과 손을 잡겠다는 제논.

그렇게 되면 남대륙의 모든 왕국과 척을 지게 됨은 물론이고, 여러 교단이 클라우드 왕국을 이단의 국가로 지목할 것이다.

“잃는 게 더 많을 겁니다.”

7왕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 이상의 지옥이 펼쳐질 텐데.

“왕궁을 되찾지 못하면 나는 끝이다. 다시 말해 잃을 게 없다는 말이지.”

지원군 요청 정도만 들어줄 생각으로 히나를 대표로 앉혔는데, 상대가 못 먹어도 고를 외치니,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재밌군.’

제논과 공식적으로 동맹 관계를 맺으면 전쟁에 참전할 명분을 얻게 된다.

‘지상은 지하가 안정되면 차츰 공략해갈 생각이었는데…….’

시기상 좋지 못했지만, 다시없을 좋은 기회임은 틀림없었다.

구석에서 지켜보던 내가 히나 옆으로 다가가자 장내의 시선이 모였다.

날 만난 적 있던 제논이 물었다.

“포식왕께서 할 말이 있으십니까?”

“한 가지 묻지, 개미족인 내가 전면에 나서도 되겠나?”

“제국엔 뱀파이어 공작이 있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이종족 탄압에 앞장선 제국에 뱀파이어 공작이 있었고, 제논은 제국의 사례를 들며 날 설득하려 했다.

“포식왕께 공작위를 드리고, 흑탑의 마도사분들께 마탑 건설 허가를 내드릴 생각입니다.”

제논도 자살 희망자가 아니다.

제논은 제국 쪽에 선이 닿은 7왕자로 인해 반제국 인사로 찍혔다.

“제국과 척을 진 제가 왕이 된들 부국강병은 이룰 수 없습니다.”

제국의 속국으로 50년간 고통 받아 온 클라우드 왕조.

그 역사를 알고 있는 제논은 제국을 향한 반기를 들기로 결심했다.

“지금이 아니면 제국에 맞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왕 찍힌 거 흑탑, 이종족, 이단, 개미족 할 것 없이 제국에 반하는 세력을 끌어들여 대항해 보겠다는데…….

“클라우드 왕국이 살아남기 위해선 제국에 대항할 힘이 필요합니다. 포식왕, 그리고 흑탑의 2장로께서 절 도와주십시오.”

왕세자 제논이 무릎을 꿇고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함께 대륙의 절반을 취해 봅시다!”

여우를 쫓기 위해 개미굴에 머리를 들이민 제논.

‘개미 공작이라…….’

천 년 전, 헬리오스교를 등에 업은 왕국이 주변국을 흡수해 헬리오스 제국이 됐다.

제논이 제2의 헬리오스 제국을 꿈꾼다면, 나는 제2의 헬리오스교가 되어 보기로 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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