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56화 (155/189)

156화. 내전 (2)

제논과 동맹을 맺었다.

인간과의 동맹 소식이 페로몬을 타고 둥지 중심부에 전해졌다.

“뭐? 지하가 어수선한 이 시기에 인간과 전쟁을 치르겠다고?”

엄밀히 말해 인간의 전쟁을 지원하는 거지만, 결과적으로 병력을 차출해야 하니 페르는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 다크를 막아!”

페르의 신경질에 일리아나가 급히 장로 회의를 열었다.

“무슨 생각이냐? 다크.”

회의에 불려 간 나는 여덟 장로에게 둘러싸였다.

‘뭐야? 청문회야?’

제르다코가 차가운 시선으로 날 보며 질책했고, 그동안 받아먹은 게 많았던 언더리페는 더듬이를 비비며 미안해했다.

“쥐들과의 전쟁에서 많은 개미가 당했어. 지금은 둥지의 보수 공사만으로 개미가 부족한 실정이야. 미안하지만, 인간과 전쟁할 여력은 없다.”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4장로 네트리도 한마디 했다.

“둥지에선 하위 군체의 아이들까지 돌보고 있다. 일리아나도 하위 군체의 여왕들을 돌봐 주느라 바쁘지… 다른 장로들도 마찬가지야. 인간을 치는 건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포메온과 캐리도 개미가 부족하다며 성화였고, 트라이는 아무 말 없이 날 믿고 있다는 눈빛을 보내 왔다.

“다크가 생각 없이 인간과 싸우겠어? 인간들 전쟁에 껴서 한쪽을 쓸어버리자는 거잖아. 아니야?”

혈광을 번뜩이며 나서고 싶어 안달 난 블러리.

일리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그래, 다크… 네 생각 좀 들어 보자. 지금 상황에서 몇 마리나 데려갈 생각이야?”

장로들에게 중요한 건 어느 정도의 병력이 필요하냐였는데.

“블러리의 말대로 인간들의 싸움에 끼는 거라, 최소한만 데려갈 생각이에요.”

소수 정예만 빼 갈 거라고 말해 주니 장로들이 안심했고, 일리아나는 블러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는 필요 없으니까 데려가도 돼.”

내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장내의 분위가 훈훈해졌다.

긴 시간 동안 쥐를 상대하느라 욕구불만인 블러리.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그를 맡음으로 장로들의 승인이 떨어졌다.

페르는 여전히 불만이었지만, 장로 회의에서 통과된 안건이라 내 행동에 제동을 가하진 못 했다.

“그래, 니들 맘대로 해! 이대로 망하면 다 네 탓인 줄 알아!”

승인만 떨어졌을 뿐, 지원은 없다.

내게 허락된 병력은 고작 300마리.

그만큼 둥지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인간을 상대로 제일 위협적이라 할 수 있는 포병대가 있긴 하지만, 그들은 현재 공간 정화와 산성액 생산을 돕고 있어 차출하긴 힘들었다.

‘포룸을 빼내긴 어렵겠어.’

앞으로 상대하게 될 인간들은 클라우드 왕국의 인간들이고, 모두 직간접적으로 개미교와 인연을 맺고 있다.

‘미래의 자원이 될지도 모를 인간을 무차별 학살하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지 못하다.

‘범용성 있는 궁기병을 데려가는 게 합리적이군.’

명칭만 궁기병이지, 장창과 코피스도 갖추고 있어 근접전에도 강한 기병이다.

다수에게 포위를 당하거나 화공에는 취약하지만, 특정 상황만 피한다면 한 기가 기사 두셋을 감당할 수 있는 개미족의 정예 병종이 궁기병이었다.

제르피아는 저돌적이긴 하지만 주변을 잘 살폈고, 헤르피아는 전략적으로 부대를 운영하며 지원 능력이 탁월하다.

지휘력을 본다면 둘 중 하나를 데려가는 게 맞지만, 단순 무력만 보면 피어레스가 둘을 앞섰다.

‘누굴 데려갈까?’

누굴 데려갈지 정하는 건 제논과의 작전 회의를 끝내고 결정하기로 했다.

회의에는 나의 직속 간부인 세크리와 피어레스를 비롯해 흑마법사 히나, 7장로 트라이, 8장로 블러리, 흑기사 디아, 악몽이라 불리는 칠미묘 타르, 남쪽의 일을 마치고 돌아온 거미왕 나르본느가 참석했다.

제논 측은 유리를 비롯한 정예 기사들이 참여했다.

유리의 오른팔 메르디크 준남작이 테이블에 깔린 전술 지도를 짚어가며 말했다.

“먼저, 지금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클라우드 왕국의 대영주는 일곱 명.

북으로 마일도스 후작, 쿠드라 후작, 카밀 후작.

남으로 가르탈 백작, 벨레삭 백작, 세야누스 백작.

서쪽에 다나스 백작이 있다.

쿠드라, 가르탈, 다나스가 전쟁에 특화된 인사라면, 마일도스와 카밀은 정치력이 우수한 귀족이었고, 벨레삭과 세야누스는 몬스터 사냥 경험은 많았으나, 전쟁 경험이 부족했다.

‘전쟁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건 쿠드라, 가르탈, 다나스. 이 셋이군.’

그동안 쿠드라, 벨레삭, 그리고 중앙 귀족들이 힘을 합쳐 7왕자파인 다나스, 마일도스, 카밀을 견제해 왔다.

쿠드라가 포카이 왕국을 침공한 사이, 중립이던 가르탈 백자이 7왕자에게 붙으며 균형이 깨졌다.

“클라우드 전하만 건재했어도…….”

왕의 죽음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는데.

“8장로의 짓이군요.”

히나가 말하길 왕의 죽음은 금속 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흑탑의 8장로, 호르카와 연관이 있을 거라 말했다.

왕의 서거에 맞춰 왕궁 장악에 나선 7왕자파.

왕국 최강 기사라 불리던 가일론 백작이 막아섰지만, 그들의 준비는 완벽했다.

“가일론이 죽음은 모두가 예상치 못했다. 이것도 흑탑의 힘입니까?”

“3장로 히스는 예전부터 전쟁과 관련된 마법을 연구해 왔어요. 마도사로서의 능력은 저와 동급일지 몰라도, 전투에선 그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제국에나 있을 거예요.

가일론 백작이 당하며 중앙 귀족이 쓸려 나갔고, 벨레삭 백작도 아들인 비에타에게 제거된 상황.

메르디크가 설명을 마치자, 제논 측 기사들이 침울해했다.

“흠…….”

제논이 왕궁을 되찾으려면 벨레삭 백작령을 거쳐 수도로 진격해야 하는데, 상대는 야만인과의 전쟁으로 이골이 난 다나스 백작과 가르탈 백작.

‘체크 메이트인가.’

절망스러운 상황.

그러니 지푸라기라도 쥐려고 발버둥 치는 제논이 남부 대산림에 발을 들인 것일 터.

이쪽 진영이 약세인 만큼 우리가 털어먹을 곳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다나스와 가르탈의 정예 병사가 문제야.’

두 정병을 해결하지 못하면, 지금의 제논의 세력으론 답이 없다.

‘개미족에겐 다나스와 가르탈을 상대할 만한 전력이 없어.’

설령 있더라도 둥지 상황상 장로들이 허락해 주지도 않는다.

개미족의 상황을 구구절절 말해 줄 필요는 없으니, 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만 말해 줬다.

“물자의 보급과 백작성 탈환은 개미 상단을 움직여 지원하지.”

“상단의 지원만으론 백작성 탈환은…….”

“걱정하지 마라, 개미 상단은 너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거대한 조직이다.”

오랜 시간 씨앗을 뿌려 왔다.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고, 그 땅에 뿌리를 내렸다.

‘벨레삭 백작령이라면 내 영역이라 할 수 있지.’

백작령의 의식주, 그리고 하인과 하녀들.

행정 관료와 병사들까지 모두 개미 상단의 입김이 닿아 있어, 아무리 대단한 놈이 그 자리에 있더라도 나의 마수에선 벗어날 수 없다.

‘백작성 탈환이야 문트리아와 베르딘이 움직이면 해결될 문제야. 문제는 다나스와 가르탈이지.’

다나스와 가르탈의 정병은 내가 발을 묶어 보기로 했다.

“가능합니까?”

제논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할 수 없을 것 같나?”

“가능하다고 믿고, 움직이겠습니다.”

벨레삭 백작성을 되찾기 위한 회의가 이어졌다.

“백작성만 되찾으면 휘하 귀족들을 모을 수 있습니다. 놈들의 침공을 한 번만 버텨 내면…….”

제논은 백작성에서 수비를 단단히 하여 쿠드라 후작과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해야 할 일이 정해졌으니, 각자 준비에 들어갔다.

제논과 유리는 바르퀴르 자작성으로 돌아가 휘하 귀족들에게 서신을 보냈다.

서신의 내용은 개미 상단의 지원을 받기로 했으니, 병력을 이끌고 합류하라는 것이었다.

‘아직 반제국파를 흡수하겠다는 포부를 밝히진 못하는군.’

나는 개미교의 핵심 인사들을 불러 총력을 다해 제논을 도우라고 지시했다.

개미교도들의 6신관 중, 신앙심이 제일 강한 데이지가 물어왔다.

“개미교가 드러나도 괜찮나요?”

“그럼.”

제논이 패하면 개미교는 더욱 깊숙이 숨어들어 때를 기다려야 한다.

‘놈들이 정권을 잡으면 개미 보관소부터 털어 갈 거야.’

보관소의 돈은 이미 옮겨 뒀기에 놈들은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지만, 그동안 쌓아 둔 기반이 무너져 가는 건 살짝 슬픈 일이었다.

‘텅 비었으나 가득 차 있으며, 무엇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나니…….’

공허의 마력을 다루는 개미족의 특성상 떠오르던 감정이 금제 지워지며 평정을 되찾았다.

놈들과 맞서기엔 기껏 키워 둔 인재를 잃게 되니 이대로 개미교를 숨길 생각이었으나, 제논과 동맹을 맺으며 개미교의 생존 전략이 바뀌었다.

“확실하게 보여 줘. 개미교가 어떤 존재인지.”

“키틀레야 신의 미천한 종 데이지, 위대한 개미족의 아홉 번째 기둥이신 다크 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힘이 부족한 신생 종교는 이단으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를 아는지 데이지가 각오 서린 얼굴로 명을 받자, 나머지 다섯 신관도 무릎을 굽혔다.

클라우드 왕국에 풀린 개미교 전원이 제논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나는 고블린 로드 데카이저와 제사장 키카를 찾았다.

쥐들과의 전쟁으로 고블린들도 피해가 컸지만, 상위종인 홉 고블린은 건재했다.

“키카, 제물이 필요하다 했지?”

“고카구카 님이 대량의 제물을 원하고 있어요.”

“잘됐네.”

전쟁만큼 고블린 신이 좋아하는 제물은 없다.

나는 그들에게 가르탈 백작령을 부탁했다.

“인간들의 영역이군. 그들의 전력을 알고 싶다.”

가르탈 백작의 전력을 들은 데카이저.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블린 로드로선 무모한 전쟁은 피하고 싶다.”

“섬멸하라는 게 아니야. 성을 함락하라는 것도 아니고, 너희는 여기서 적군의 발만 묶어 주면 돼.”

“그 정도는 어렵지 않다.”

홉 고블린 병단은 데카이저가 육성했지만, 제사장인 키카의 허가 없인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간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린 키카.

“고카구카 님의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무신론자인 나로선 신이 허락한 건지, 그녀가 허락한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고블린이 가르탈을 맡아 주기로 한 사실은 변치 않는다.

만면에 미소를 잔뜩 머금은 데카이저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 큰 몸은 아니지만, 잘 조형된 근육질의 몸.

“다녀오겠다.”

마력이 흐르는 길인, 기혈이 손상된 데카이저.

과거와 같은 힘을 낼 순 없으나 지휘 능력을 상실한 건 아니었고, 압축된 근육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일반 보병으로 잘 무장된 홉 고블린 2천이 가르탈 백작령을 향해 진군했다.

홉 고블린은 지휘 능력에 특화된 개체다.

그들은 이동하며 야생 고블린을 흡수해 규모를 키웠다.

아마 가르탈 백작의 휘하 영지에 도착했을 때쯤이면…….

‘과거에 데카이저가 일으킨 고블린 웨이브보다 한 차원 높은 재앙이 되겠지.’

고블린을 보낸 나는 오거 숲의 오크들을 끌어모았다.

“개미족의 기둥, 다크 님을 뵙습니다. 취익!”

오크들은 대 미노타우로스 용 중장보병으로 키워 왔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자이언트 솔져급 무력을 지닌 중장보병이 2천.

유지비가 상당하여 가끔 수를 줄여 줘야 한다.

“가라! 가서 너희들의 힘을 보여 줘라!”

오크 부대엔 데카이저와 같은 지휘관이 없어, 백인대 규모로 움직였고, 연계를 돕기 위해 하이 페어리를 지원했다.

‘휴.’

오크와 고블린이 다나스와 가르탈의 발을 묶어 줄 테니, 나는 개미족의 정예 부대를 이끌고 제논의 병영에 합류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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