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58화 (157/189)

158화. 내전 (4)

꼬리가 하나인 묘족은 무시해도 상관없으나, 꼬리가 세 개 이상이면 평범한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꼬리가 다섯 개 이상이면 기사가 나서야 했고, 일곱 개면 재앙이나 다름없다.

타르가 7개의 꼬리를 모두 드러낸 채 살았다면 수도군의 토벌 대상이 됐겠지만, 그는 칠미묘가 되면서 습득한 분열과 합체 능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숨겨 왔고, 도주 능력을 극한까지 연마했다.

‘봉마의 사슬이 없었다면, 나도 녀석을 잡진 못했을 거야.’

어둠에 녹아드는 은신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그의 분신은 비에타 진영 심부까지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요즘 꿈자리가 도통 사납군.”

“자네도 그런가? 사실 나도 그래. 영지에 무슨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구먼.”

타르의 흑마력은 저주의 성질을 띠고 있어, 그의 마력에 노출된 인간은 악몽을 꿨다.

분신 여섯 마리를 적진에 침투시킨 타르.

지휘관과 개미교도들의 움직임을 내게 전해 왔다.

‘개미교도가 생각보다 많아.’

개미교도는 개미 액세서리를 신물이라 칭하며 품에 지니고 다녔다.

인간끼리는 신물을 드러내 서로를 확인했지만, 개미족은 냄새만으로 상대가 개미교도라는 걸 알 수 있다.

타르도 후각이 뛰어나 인간들의 소지품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나와 부쉬트니가 외부에서 깔짝대는 동안, 내부에 잠입해 있던 개미교도들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군영이 혼란할수록 교도들은 서로 간에 긴밀히 연계하여 군을 장악해 갔다.

십인장과 백인장급 병사들이 하나둘 불행한 사고로 죽어 가자 지휘관들이 경계를 강화했고, 군영을 돌아다니는 타르를 발견하게 됐다.

“묘족이다! 잡아라!”

병사들이 밤마다 타르를 쫓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타르에게 집중할수록 개미교도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기사들은 살인 병기라 불릴 만큼 강하다.

‘3차 진화종인 가디언 수준이지.’

하지만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게 아니니, 갑주를 걸치지 않은 상황에선 사각에서의 공격에 취약했다.

난전 속에서 믿었던 부하에게 칼침을 맞기도 하고, 식사 중에 독살을 당하기도 했으며, 선봉을 달리다 눈먼 화살에 당하기도 했다.

‘벨레삭가의 직계 후손은 유리와 비에타만 남았어. 비에타만 사라져 준다면…….’

기회를 봐서 적군 수장인 비에타를 암살할 계획이었는데.

‘저놈, 살려 두는 게 좋겠는 걸?’

적보다 무서운 게 트롤짓 하는 아군이라 했던가?

놈이 패악질을 일삼을 때마다 개미교도의 장악 속도가 빨라졌다.

*   *   *

비에타 군영의 지휘부 막사.

신성이라 불리는 20대 기사 게이론 파스티아 남작이 비에타에게 말했다.

“내부에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알아! 안다고! 그럼 색출해서 처리하면 될 거 아니야.”

“그게, 적들의 잦은 습격과 묘족까지 돌아다녀서…….”

“됐으니까 의심 가는 녀석이 있으면 즉결 처형해! 죽이다 보면 세작들도 조심하겠지.”

비에타는 병사끼리 서로를 감시하게 했고, 이상 징후가 보이면 상부에 보고하도록 했다.

“저, 백인장님이 잠깐씩 안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번에 기사님이 음식을 확인하고 갔는데, 그날 기사 한 분이 중독 증상을 보였어요.”

개미교도들은 비에타 군의 핵심 인사들을 세작으로 몰아갔고, 비에타는 의심암귀에 빠져 정상적인 사고가 힘들어졌다.

“설마, 게이론 녀석이… 그러고 보니 녀석이 내게 검을 가르치기 전에 용병으로 활동했었어. 설마 그때 유리와 접촉했던 건가?”

설상가상으로 밤마다 꾸게 되는 악몽으로 비에타는 나날이 쇠약해졌다.

술 없인 잠도 잘 수 없게 된 비에타.

하루빨리 유리를 처단하고 싶었던 그는 기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진군 속도를 높였다.

“진군이다! 집결지까지 최대한 빨리 이동하라!”

비에타 진영이 1자로 늘어지며 습격에 취약해졌고, 보급 부대가 털려 군량이 부족해졌다.

“준비한 공성탑도 부서졌습니다.”

“공성탑? 사다리로도 충분하지 않나?”

이대론 공성 이전에 군이 와해 될 상황.

“백작님, 공성에 들어가면 바르퀴르 성은 닷새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무리하게 진군 속도를 높이기보단 보급 부대와 함께…….”

“네놈! 감히 백작인 내 말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흥분한 비에타가 검을 뽑았고, 게이론의 얼굴에 상처를 남겼다.

“진정하십시오. 백작님만 중심을 잡으시면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입니다.”

까딱 잘못했다간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공격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게이론.

그가 비에타를 달래 가며 군을 정비했으나, 비에타가 풀어 둔 병사들 사이에선 게이론의 안 좋은 이야기만이 들려 왔다.

“게이론 님이 말하길 비에타님의 그릇이 너무 작다고…….”

“게이론 네놈이 결국 선을 넘는구나! 게이론과 그의 추종 세력을 잡아들여라! 즉결 처형하겠다!”

“하지만, 아직 전쟁이…….”

“네놈도 날 무시하는 것이냐?”

충신 게이론은 간신들에 의해 처형당했다.

“저 병사가 날 노려봤다.”

“감히 백작님의 기분을 상하게 한 죄값으로 일가족 모두 비참하게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그대의 이름이 뭐지? 맘에 드는군.”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한 비에타는 무고한 병사들을 괴롭힘은 물론…….

“술상을 차려라! 가까운 마을에서 여자를 데려와라!”

“백작님, 아직 전쟁 중인데 괜찮을까요?”

“전쟁? 백작인 내가 자작 따위와 전쟁을 한다고 생각하나? 난 그저 놈을 처단하고 왕세자의 수급을 취하려는 것뿐이다.”

비에타는 병사들의 체력과 뒤따라 오는 보급 부대를 생각하지 않고 진군 속도를 무리하게 짜냈다.

“군량이 떨어졌다고? 그게 어쨌다는 거지?”

군량이 부족하여 병사들이 멀건 풀죽으로 연명할 때, 비에타는 간신들과 함께 주지육림에 빠져 지냈다.

*   *   *

바르퀴르 성채 앞에 당도한 비에타군.

며칠간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병사들이 비쩍 말라 있었다.

“왔군.”

제논과 유리는 성벽 위에서 긴장한 채 적들을 내려다봤다.

“이쪽 수비군이 2,500인 반면, 저쪽 병력은 1만이 넘습니다.”

군량의 한계로 장기전으로 가선 답이 없다고 판단한 부쉬트니가 기병 1,500기 이끌고 보급로를 끊어 뒀다.

군량이 떨어진 비에타군은 무리해서라도 성을 점령해 군량을 보충해야 했는데…….

시간은 바르퀴르군의 편이었지만, 비에타군의 공세를 버티기엔 바르퀴르 성채가 조금 부실했다.

“오히려 놈들을 자극하는 꼴이 됐어.”

압도적 병력 차.

패배를 직감한 병사들이 손에 힘을 풀 때, 비에타 군에선 깃발이 펄럭였다.

“돌격!”

“공성 사다리 앞으로!”

“오늘 중으로 성을 점령한다!”

비에타군이 접근해 오자, 땅이 울리며 먼지구름이 피어났다.

“온다! 궁병, 사격 준비!”

성벽 위의 궁병들이 긴장한 채 활시위를 당겼다.

“기다려라!”

그들이 활시위를 놓기 전 비에타군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곳곳에서 개미 깃발이 펄럭이자, 병사들이 검은 두건을 쓰곤 동료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제논 측 지휘부와 비에타 측 지휘부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무슨 일이지? 분열인가?”

검은 두건의 병사들이 개미 깃발 아래 모여들자 비에타군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개미 깃발… 설마.”

제논의 눈에 담담한 표정으로 성벽 아래는 내려다보는 문트리아가 담겼다.

“개미 상단의 안배였나?”

문트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상단의 안배가 아닙니다. 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준 것이지요.”

“상단의 안배가 아니라면 저들은 대체…….”

“개미교. 개미족과 공생을 추구하는 집단이지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왜 말이 안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저하께서도 개미족의 힘을 빌리기 위해 남부 대산림에 갔던 게 아니셨나요?”

문트리아의 말에 어리둥절해 하는 기사들을 둘러본 제논이 말을 돌렸다.

“…그 이야기는 조금 있다 하지.”

제논이 검을 뽑아 들며 기사들에게 명했다.

“성문을 열어라! 이대로 비에타를 잡는다!”

성문이 열리고 말을 탄 기사들이 보병들을 이끌고 돌격했다.

제논이 기사들의 선두에 섰고, 유리와 비브라 자작이 제논의 양옆에서 달렸다.

“검은 두건을 쓴 자들과 협력해라!”

형세가 기울자 병사들이 검은 천을 머리에 두르곤 개미교도에 가세했고, 검은 천이 없는 자들은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비에타는 겨우 수습한 2천의 병력을 데리고 퇴각했고, 다크와 부쉬트니가 그 뒤를 바짝 따라붙어 사냥을 계시했다.

지옥 같은 도주 끝에 백작성에 도달한 비에타.

“드디어 돌아왔군.”

도주 중에 병력 태반을 상실한 비에타는 30명의 기사와 기병 100명을 데리고 있었다.

성을 향해 다가가던 중 묘한 기류를 느낀 기사 하나가 긴장한 채 말했다.

“이상합니다, 백작님.”

“뭐가 말인가?”

“성문이 닫혀 있습니다.”

“아이젤 경이 신중한 편이긴 하지.”

“아닙니다 백작님. 아이젤 경이라면 지금쯤 저희를 마중 나왔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아무래도 조심하셔야…….”

기사의 말이 끝나기 전에 화살비가 쏟아졌다.

눈먼 화살에 기병 여러 기를 잃은 비에타는 급히 물러났다.

“누구냐! 내가 벨레삭 백작임을 알고 한 짓이냐?!”

비에타의 외침에 성벽 위로 거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이 누군지 관계없다! 이 성은 이제 도살자 마르코님의 것이다!”

“네놈!”

“뭐? 어쩌려고? 너희들 좀만 더 가까이 와 봐라. 선물로 화살비 좀 내려 줄 테니… 크크크!”

비에타와 기사들은 백작성이 암흑가 놈들에게 넘어간 것에 황당해하며 큰 수치심을 느꼈다.

기사 중 하나가 물었다.

“아이젤 경은 어찌 됐느냐?”

“아이젤?”

“제국법에 따라 몸값을 지급하겠다. 아이젤 경을 데려와라.”

마르코가 코를 후비며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할 때, 옆에 있던 사내가 아이젤의 머리를 성 밖으로 내던졌다.

“500골드짜리 수급치곤 약하더군.”

기사 중 하나가 그를 알아봤다.

“전귀 웨인!”

“뭐 하는 놈이지?”

“왕국제일검 가일론 백작의 제자로 한때는 유망한 기사였지만, 청부 살해로 돈을 벌다 파문당한 자입니다. 저 녀석이 이곳에 있었을 줄이야…….”

마르코가 웅성거리는 기사들을 보곤 웨인에게 말했다.

“쟤들 널 알아본 것 같은데.”

“과거는 과거일 뿐.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마라. 마르코.”

“까칠하긴.”

웨인은 부하 하나를 내성에 보내 소식을 전했다.

내성 대전, 술집 여인에서 암흑가 보스로 전직한 프릴이 권좌에 앉아 영내의 대소사를 전해 들었다.

“비에타의 입성은 허락하지 않겠다!”

비에타 입성을 저지한 프릴.

그녀를 호위하던 그림자 13호가 웃으며 말했다.

“잘 어울리는군.”

“뭐가요? 암흑가 보스가? 아니면… 영주 대리?”

“둘 다.”

프릴은 한숨과 함께 자신이 어쩌다 이 자리에 있는지 떠올렸다.

프릴이 보스가 된 그 날, 비어베어는 고스트란 새로운 조직이 됐다.

고스트가 하는 일은 주류 유통과 술집 운영.

압도적인 품질을 자랑하는 술과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하는 술집, 거기다 전국에 퍼져있는 정보 조직 그림자의 도움이 더해지니.

프릴은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내가 전국 암흑가 보스 랭킹 10위 안에 든다니…….’

비에타군이 출군한 직후, 베르딘으로부터 지령이 떨어졌다.

세자의 군대가 오면 내부에서 공조하여 성문을 열라는 지시였는데, 간부들이 지령을 잘못 해석하여 백작성을 장악해 버렸다.

“하…….”

남들이 볼 때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린 프릴은 낭떠러지에 몰린 산양이 된 심정이었다.

“암흑가 보스, 관두고 싶어요.”

프릴의 하소연에 13호가 답했다.

“그럼 마르코에게 맡기겠나? 아니면 웨인에게? 둘 중 누가 됐든 고스트의 미래는 암울할 거야.”

“그렇네요.”

프릴은 모르고 있지만, 13호가 볼 때 그녀는 어엿한 암흑가 보스로서의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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