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59화 (158/189)

159화. 내전 (5)

성문을 열고 나와 대승을 거둔 바르퀴르군.

병사들이 전장 정리에 들어갔다.

“전리품과 부상자를 광장으로 옮겨라!”

광장에선 개미교의 약사들이 부상병의 응급처치를 맡았다.

“중상자와 시체는 저쪽에 둬!”

광장 한 켠에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중상자와 시체가 쌓여갔다.

“아파…….”

“내 다리……!”

시체와 중상자에 골치를 썩이던 제논에게 문트리아가 말했다.

“따로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면 전사자와 중상자는 개미 저택에 보내겠습니다.”

“저택에서 처리할 수 있겠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중상자와 전사자는 알아서 처리해 주게.”

병사들이 시체와 중상자를 개미 저택으로 이송했다.

“저희들이 처리하겠습니다.”

경비들은 인계받은 시신과 중상자를 지하 공간에 옮겨 뒀다.

“큭… 여긴?”

지하 공간에 시체와 중상자가 쌓이자, 빅 워커들이 몰려들었다.

[이거, 죽었다. 식량 창고로 가져가자.]

[이건 아직 살아 있어. 메디 님에게 보내야 해.]

물자 수송을 위해 둥지를 오가는 빅 워커들이 시체와 중상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뭐야? 왜 몬스터가…….”

몇몇 의식이 말똥한 자들은 개미족에게 옮겨지는 상황에 당황하여 몸부림쳤지만, 상처만 악화될 뿐.

초록 무늬의 거대 개미들이 촉수로 동료들의 상처를 더듬는 걸 보게 됐다.

공포에 질린 병사들은 주변 상황을 살피며 죽은 척했고, 그런 인간들을 보며 메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식이 있으면서 죽은 척을 하는 건 인간들의 습성인가?”

메디의 입에서 대륙 공용어를 듣게 된 병사 하나가 용기 내어 물었다.

“우릴 어떻게 할 셈이지?”

메디는 입꼬리를 울리며 주변을 가리켰다.

“보면 모르겠어?”

비명이 난무하는 공간.

병사의 눈에 초록 무늬의 거대 개미가 돌아다니며 거동이 힘든 중상자들에게 괴상한 액체를 뿌리는 장면과 무표정한 인간들이 그런 개미족을 도와 중상자를 요리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덜덜덜.

공포에 떨던 병사는 수술 도중 죽음을 직감하며 어느 순간 의식을 놓았다.

“다들 왜 이렇게 치료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네.”

메디의 의문에 그녀를 보조하던 개미교도가 알려 줬다.

“메디 님, 이들의 눈엔 저희가 치료하는 거로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럼 의료 부대인 우리가 요리 부대로 보인다는 거야?”

“아마도…….”

“바보들이네.”

“이들이 회복할 때쯤이면, 메디 님에 대해 알게 될 겁니다.”

“뭐, 나야 이들이 나에 대해 알든 모르든 상관없어. 난 내 일을 하면 되니까.”

병사의 수술을 반쯤 마친 메디는 뒷일을 허브 워커들에게 맡기고 다음 환자를 향해 다가갔다.

“다리뼈가 부서졌네. 열어 봐야 하니까 조금 아플 거야.”

“살려줘…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안 죽이니까 열어서 고쳐 주는 거야.”

“으악!”

메디는 인간들의 비명과 몸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저 일감이 넘치는 상황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

“난 열어서 고칠 테니, 너희들이 닫고 고정해!”

메디의 해맑은 표정과 목소리는 장내를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치료를 마친 인간들은 둥지 쪽으로 보내져 개미교 마을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곳에서 한동안 머물며 회복하시면 됩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수녀와 교도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게 된 부상병들.

“너희들은 어떻게 몬스터와 지낼 수 있는 거지?”

한 병사의 물음에 간호해 주던 소녀가 말했다.

“전 화전 마을에서 자랐어요.”

세금을 내지 못해 숲을 개간해 살아가는 화전민.

그들이 피땀 흘려 농지를 개척해 두면, 영주는 병사를 보내 세금을 요구했다.

“세금을 내지 못한 저희 마을은 병사들에게 짓밟혔고, 전 병사들에게 끌려가 옆 영지로 팔려 가게 됐어요.”

이어진 고통의 여정 속에서 그를 구원해 준 건 개미교도였고, 개미족은 그녀에게 교육의 기회와 일거리를 주며 합당한 대가를 받아갔다.

“개미족은 일하는 동료의 것을 빼앗지 않아요. 그들의 무기는 외부를 향해 휘둘러지지, 저희에게 향하지 않죠. 하지만 병사님의 검은 어떤가요?”

“우린 영주님을 위해…….”

병사의 해명이 이어질수록 소녀의 동공엔 깊은 실망이 담겼다.

“당신이 따르는 영주에겐 저희는 무엇일 것 같나요?”

병사의 뇌리에 재산과 가축이란 단어가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최소한 개미족은 저희를 함께 일하는 동료, 아니 가족으로 봐준답니다.”

소녀가 다른 환자를 봐주기 위해 떠난 후 병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몬스터와 가족이라니… 그것 참 웃긴 이야기야.”

혼잣말과 달리 병사는 웃지 못했다.

*   *   *

제논과 유리는 개미 깃발에 모인 병사들과 항복한 병사들을 흡수했다.

“저하, 병사들의 편제를 마쳤습니다.”

바르퀴르 영지에 1천의 병력을 남긴 제논은 중장보병 2천을 직접 맡기로 했고, 유리와 비브라 자작에게 각각 경보병 2천을 맡겨 좌군과 우군을 담당케 했다.

“진군이다!”

비에타가 뚫어 둔 길로 거침없이 진군한 제논군.

“저하, 개미 깃발입니다!”

벨레삭 백작성에 도착한 제논군은 성벽에 걸린 깃발을 보곤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여기까지 자네가 손쓴 것인가?”

제논의 물음에 문트리아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저하, 저는 일개 상단주일 뿐. 실질적으로 개미교를 움직이진 못합니다. 지금 개미교가 움직이는 건 개미족의 아홉 기둥 중 한 분이신 다크 님의 지령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럼… 이게 포식왕의 작품이란 말이군.”

성문이 활짝 열리며 프릴이 나와 제논을 환대했다.

“고스트의 수장 프릴이 왕국의 큰 별이신 세자 저하를 뵙습니다.”

기사들은 프릴의 뒤편에 선 도살자 마르코와 전귀 웨인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

“용병단인가?”

“저희는 맥주 유통을…….”

프릴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비브라 자작이 검을 뽑아 들었다.

“암흑가의 쓰레기들이!”

비브라가 검을 뽑는 순간 프릴의 부하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일촉즉발의 상황.

“비브라 자작님, 그는 암흑가의 수장이기 전에 개미교의 사제이기도 합니다! 그녀를 건드리는 건…….”

문트리아가 급히 나서서 비브라를 말렸고, 주변 시선이 따갑다는 걸 느낀 비브라는 검을 내렸다.

“내성으로 안내해라!”

“안내하겠습니다.”

프릴에게서 성을 인계받으며 제논과 기사들은 그녀의 수완에 여러 차례 감탄했다.

“치안, 병력배치, 장부… 모두 완벽하군. 귀족도 아니면서 뛰어난 행정조직과 무력 부대를 갖추고 있어.”

인계를 마친 프릴이 떠날 때, 비브라 자작이 배웅을 자처했다.

마르코와 웨인이 비브라를 경계했고, 비브라는 그런 둘을 보며 아쉬워했다.

“뛰어난 부하들이군.”

“제겐 과분한 분들이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비브라의 진지한 표정에 프릴이 긴장했다.

“사제인 그대가 명예를 저버리면서까지 암흑가를 이끄는 연유가 무엇이냐? 권력인가? 아니면 돈이냐?”

프릴이 고개를 저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보니, 이 자리에 있게 됐을 뿐입니다.”

“가족?”

프릴은 성내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네. 여기 있는 모두가… 그리고 이 성에 사는 개미교도들 모두가 제 가족이죠.”

“그런가.”

한참이나 고민하던 비브라가 프릴에게 제안했다.

“군에 합류하지 않겠나?”

프릴은 토끼 눈을 떴다.

“조금 전, 암흑가의 사람과 말을 섞는 건…….”

“불명예지.”

비브라는 서쪽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말했다.

“나 또한 명예보다 소중한 게 있다.”

서로를 응시하던 비브라와 프릴.

프릴이 눈웃음 짓자 비브라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

비브라는 프릴의 동공에서 각오와 투지를 읽었다.

“그대의 전장은 다른 곳에 있나 보군.”

“네.”

“무운을 비네.”

뒷골목 아지트에 돌아온 프릴.

아지트엔 각 영지를 대표하는 암흑가 수장이 와 있었다.

마약상 카인, 노예상 덴마, 고리대금업의 지크, 암살자 크루크, 도둑 젠트리, 정보상 그레인.

하나같이 강렬한 포스를 풍기는 그들이 사나운 눈빛으로 프릴을 노려봤다.

마르코와 웨인이 나서서 기세를 흘리려 하자, 프릴이 손을 뻗어 저지했다.

“여긴 내가…….”

“보스, 괜찮겠어?”

실버급 수준의 무력을 지닌 프릴이 감당하기엔 상대방의 경지가 골드급 최상, 혹은 미스릴급에 해당하는 존재들이라 조금 버거웠다.

기사와 비견되는 그들의 기세에 프릴의 손끝이 떨려 왔다.

그녀는 입가에 피를 닦아 내며 말했다.

“귀족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웨인의 눈엔 프릴이 사자들 사이에 낀 토끼로 보였으나, 그 토끼가 두른 각오와 투지만큼은 그 어떤 사자보다 강렬하다고 느꼈다.

“보스, 필요하면 말해라. 한 번 정도는 무료로 썰어 주마.”

그날 고스트의 아지트에 모인 암흑가 수장은 프릴을 포함하여 일곱.

전란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합을 형성했다.

“세력으로 보면 역시 내가 수장을 맡아야…….”

“약쟁이가 수장은 아니지 않나? 여긴 연장자인 내가…….”

“어이, 돼지 할아범은 빠져. 대장은 자금이 빵빵한 나나 프릴이 하는 게 맞아.”

마약상 카인, 노예상 덴마, 고리대금의 지크가 총수 자리를 두고 한참이나 다퉜으나, 6인의 수장들 사이에는 깊고 복잡한 은원 관계가 엮여 있어 누가 총수가 되더라도 불화가 따를 게 분명했다.

“우리가 이곳에 모일 수 있었던 건 고스트의 수장인 프릴님의 제안 때문이죠. 아무래도 총수 또한 그녀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다들 서로를 못 믿잖아요?”

결국, 그들 사이에 은원 관계를 맺지 않은 프릴이 추대되며 연합의 총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그럼, 연합의 이름은 어떻게 할 거야?”

“저희가 일곱이니, 칠흑 어떤가요?”

정보상 그레인이 정한 이름에 암살자 크루크가 동의했다.

“뭐, 이름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지.”

장내의 교통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프릴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럼, 칠흑의 수장으로서 첫 명령입니다. 각 조직에 관한 편제를 마치는 즉시 제논 세자를 지원하여 칠흑의 영향력을 키워주세요.”

“왜 하필 약세인 세자를 지원하려는 거지?”

“개미교가 세자를 지원하는 이상, 이번 전쟁은 세자 쪽이 이기기 때문이에요. 우린 승자의 편에 서서 취할 수 있는 걸 취하면 됩니다.”

“개미교가 그리 대단한 곳이었던가?”

칠흑의 간부가 된 전 수장들의 의문에 프릴은 의미심장한 미소로 답했다.

“제 위에 여섯 신관이 있고, 그 위에 아홉 기둥이 있으십니다. 이걸로 답변이 됐으면 좋겠군요.”

*   *   *

백작령에서 쫓겨난 비에타는 북상하여 7왕자파에 합류했다.

“전하, 반란군의 수급을 가져오지 못해 죄송할 따릅니다. 제게 병력을 내주시면 당장이라도…….”

“1만의 병력을 이끌었음에도 자작성도 뚫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건, 내분 때문에…….”

“백작성마저 지키지 못했으니, 능력의 문제라 할 수 있겠지.”

카밀 후작이 비에타에게 선처하듯 백인장을 맡겼다.

이는 주로 평민 병사에게 주어지는 직책으로 명문가의 그에겐 치욕과도 같았다.

7왕자파 수뇌부가 비에타를 비웃을 때, 연락병이 뛰어왔다.

“급보입니다. 다나스 백작이 회군했습니다.”

“뭐? 다나스가? 왜?”

“오크들의 침공과 맞물려 잡아둔 야만인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그 정도는 수비군으로 해결하면 되잖아!”

무력을 담당하던 다나스 백작의 합류가 지연되자 늦은 합류로 발언권이 약하던 가르탈 백작의 영향력이 확대됐다.

이는 마일도스와 카밀이 원하지 않던 상황.

“다나스 없이 쿠드라 후작의 정병을 상대해야 하는 건가?”

즉, 이것은 승리가 확실하던 게임에 변수가 생겼음을 뜻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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