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60화 (159/189)

160화. 내전 (6)

다나스 백작의 합류가 무산되니 가르탈 백작이 안타까워했다.

“아쉽군. 다나스 백작의 무용은 직접 보고 싶었는데.”

가르탈 백작령의 고블린 침공 소식도 전해져 왔지만, 가르탈은 담담히 자리를 지켰다.

“폐하, 고블린 따위를 신경 쓸 정도로 제 가신들은 약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설령 고블린 로드가 있다고 해도 제 가신들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왕국의 무력을 대표하는 인물인 쿠드라 후작.

그 대항마로 다나스 백작과 가르탈 백작이 있었지만, 그중 한 명이 빠지니 7왕자파는 조급해졌다.

“가르탈 백작 혼자선 쿠드라 후작군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쿠드라 후작이 돌아오기 전에 반란군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제논을 제거해야 전력을 다해 쿠드라 후작을 맞이할 수 있다고 판단한 7왕자는 결단을 내렸다.

“마일도스 후작, 카밀 후작, 가르탈 백작. 그대들이 나서서 반란군을 진압해 주게.”

어린 소년의 명령에 두 후작과 가르탈 백작이 무릎을 굽히고서 기사의 예를 취했다.

“신 메르시아 마일도스, 반란군 수장 제논의 수급을 가져오겠습니다.”

“신 헤이머스 가르탈,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신 가르간 카밀, 어리석은 남부 귀족들에게 폐하의 위엄을 알려 주겠나이다.”

“부탁하네.”

*   *   *

비에타 녀석을 죽일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살려서 보내 줬다.

‘저런 귀족은 오래 살아 주는 게 이득이야.’

그가 7왕자파에 합류할 무렵, 벨레삭 백작령을 접수한 유리는 전 백작의 가신들을 흡수하며 세력을 키워 갔다.

절차를 밟아 백작 대리가 된 유리는 남부 일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매일 같이 파티를 열었다.

귀족들은 가문의 여식을 데려와 제논과 유리에게 붙이려 노력했고, 제논과 유리는 유력 가문의 딸들을 부인으로 받아 주며 남부 일대를 안정시켰다.

제논과 유리가 세력을 키우는 동안 문트리아는 전쟁 물자를 확보하느라 바쁘게 움직였고, 프릴의 산하로 들어온 왕국의 암흑가가 마약 유통을 비롯한 각종 불법 사업으로 7왕자 휘하 귀족의 영지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영주를 잘못 만난 죄로 무고한 인간이 고통받는 상황이었으나, 전쟁이란 목숨을 걸고 하는 도박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려가며 진행할 생각은 없었다.

‘상단 벌이가 끊겨 걱정했는데, 프릴이 돈을 벌어다 줘서 다행이야.’

무고한 인간들의 고혈을 쥐어짜 만들어 낸 자금은 베르딘의 조직, 그림자를 통해 개미교의 사제급 인사와 세작들에게 전달됐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영향력을 키워 갔다.

왕국을 먹기 위한 준비가 착실히 진행됐으나, 개미교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못했다.

“개미교는 몬스터를 추종하는 이단이야.”

“세자가 이단의 힘을 빌려 몬스터를 이용하고 있단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개미교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나의 존재 또한 숨기기 어려워졌다.

“저하, 소문이 흉흉해지고 있습니다.”

“나도 안다. 더는 숨기기 어렵겠지.”

제논은 지휘관급 인사들을 모아 나를 소개하기로 했다.

“부탁드립니다. 다크 님.”

내가 깊게 눌러쓴 로브를 벗으니 장내에 모인 지휘관급 인간 중 절반이 화들짝 놀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은 침착한 반수의 지휘관이 나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닫곤 격분했다.

“저하, 이건 무슨 장난입니까?”

“몬스터의 손을 빌렸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입니까!”

흥분한 귀족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묻힌 문트리아가 내게 다가와 예를 취했고, 유리와 부쉬트니 자작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자신들의 측근을 내게 붙였다.

귀족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제논이 격분했다.

“상황은 알고 말하는 것이냐! 마일도스, 카밀, 가르탈이 각각 1만의 정병을 이끌고 있다. 수도에는 쿠드라 후작을 상대하기 위해 5만에 달하는 병력이 모였지. 그에 반해 우린 고작 1만… 그중 3천은 개미교도며 그들을 제외하면 언제 붕괴할지 알 수 없는 오합지졸이란 걸 모른단 말이냐?”

“그렇다고 이단과 몬스터를 전쟁에 쓰다니요! 이는 전례에 없는…….”

“전례라면 제국의 뱀파이어 공작이 있지 않은가?”

뱀파이어 공작에 대해선 따로 알아봤다.

헬리오스 제국은 이종족을 비롯한 몬스터 말살 정책을 고수한 국가다.

‘엘프와 드워프, 수인족이 희소해진 건 제국의 노력 덕이지.’

수백 년 전, 몬스터인 뱀파이어 중에서도 최상위 종에 해당하는 뱀파이어 로드와 충돌한 제국은 멸망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결국, 인간 외의 모든 존재를 없애려 하던 제국도 뱀파이어 로드의 영역만큼은 인정해 주게 됐다.

물론 그들에게 있어 뱀파이어 공작의 존재는 국가 이념에 반하는 오점이었고, 언제가 풀어야 할 숙제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없다. 우린 무조건 이겨야 한다! 왕위를 건 승부다. 이건 몸값을 주고받는 땅따먹기가 아니야!”

이곳 세계에선 이웃 영지 사이의 전쟁은 빈번했고, 따로 절차와 룰이 존재했다.

영지간 전쟁은 왕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귀족끼리 서로를 죽이면 안 된다.

‘말 그대로 땅따먹기지.’

영지전과 달리 왕위 쟁탈전에선 룰이 없다.

“이기지 못하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단 말이다!”

“몬스터의 힘을 빌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신전 세력이 등을 돌릴 것이며 제국의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태양신 헬리오스, 달의 신 세레나. 대지의 신 가이아, 전쟁의 신 아레스… 그 외에도 다양한 신전 세력이 있지만, 이들은 인간끼리의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어차피 신전과 마탑은 중립을 선언했다. 제국의 혈통을 이은 7왕자가 있는 이상, 난 어떤 식으로든 제국과 부딪힐 수밖에 없어!”

제논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해 주며 개미족이 가진 힘을 설파했다.

“제국의 내정이 불안정한 지금이! 그들에게서 벗어날 유일한 기회임을 모르는 것이냐!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클라우드 왕조는 대대손손 제국 놈들의 발등을 핥으며 살아가야 함을 네놈들도 알지 않느냐?”

제논의 타오르는 열망이 번져 가며 반발하던 자들이 하나둘 수긍하기 시작했다.

“내 적은 칠왕자가 아니다. 그 뒤에 있는 제국이지. 더는 설득하지 않겠다. 나와 함께 싸울 자는 남고, 제국이 두렵다면 떠나라.”

웅성웅성.

귀족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하긴…….’

애초에 남부에서 제논과 척을 지면 살아남긴 힘들기 때문이었다.

제논의 상황을 알렸으니, 내가 나서서 그들의 불안을 덜어줄 차례가 왔다.

“난 제논을 돕기로 했다. 한동안 함께 싸워야 할 테니,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도 좋다.”

통역 마법 없이 말이 통한다는 사실에 놀란 귀족들.

그중 하나가 내게 물었다.

“몬스터가 무엇 때문에 우릴 돕겠다는 거지?”

“우린 인간과 전면전을 원치 않아. 그러니 이번 기회에 남부 일대의 권리를 받고, 왕국과 동맹을 맺을 생각이다.”

땅을 받아 가겠다고 하니 귀족들이 웅성거렸고, 제논은 왕위를 이은 직후 내게 공작위를 줄 것이라고 선언했다.

“난 용납할 수 없다.”

어느 정도 귀족들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일부 귀족은 인정할 수 없다며 결투를 청해 왔다.

‘충성심에서 비롯된 판단인가?’

마안으로 봤을 때 모두 제논을 믿고 따르는 듯했고, 나와 동급의 힘을 지닌 자는 없었다.

“결투를 받아들이지.”

이곳에 있는 귀족은 모두 기사 출신이다.

결투를 원하는 다섯 명의 사내 중 제일 강한 자가 대표로 나왔고, 비브라 자작이 심판을 섰다.

‘내 상대는 저 털보인가?’

거구의 털보와 마주하니 원래도 작은 내 몸이 더 작게 느껴졌고, 놈이 날 얕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거 참, 한 번 더 진화하든지 해야지.’

“저하, 몬스터의 조력 따위 필요 없음을 검으로 증명하겠나이다.”

중년 기사 바르한 남작이 검을 뽑아 드는 것에 맞춰 나는 봉마의 사슬 두 개를 감아 둔 암흑마창을 꺼냈다.

신장 1.65미터 정도인 내가 2.5미터의 창을 가볍게 다루니 상대가 긴장했다.

“바르한 남작, 인간형으로 진화한 병정개미는 트롤 수준의 힘을 갖추고 있으니 힘 대결은 피하셔야 합니다!”

‘트롤 수준?’

훈수를 두던 기사들은 날 3차 진화종인 가디언 정도로 인식한 것 같았다.

‘가디언만큼의 외골격이 없을뿐더러 내 외골격엔 무늬가 있는데 말이지.’

워커의 특징과 4차 진화종의 특징을 알아보는 자가 없어 왕급의 힘을 내보이고 싶었지만, 마창을 힘껏 휘둘렀다간 상대를 골로 보낼 수 있기에 조심해야 했다.

‘적당히 받아 줘야겠어.’

비브라 자작이 결투 시작을 알렸다.

“상급 기사 라이델 바르한이다.”

“데몬 앤트 다크.”

서로 인사가 오간 직후 바르한이 거리를 바짝 좁혀 와 검으로 창대를 밀어붙였다.

“죽어라, 몬스터!”

힘으로 안 된다는 걸 아는 녀석이 힘 대결이라니…….

내가 평범한 개미족이었다면 힘으로 밀어냈을 테지만, 놈의 의도가 뻔히 보여 그러지 않았다.

‘밀어낼 때의 허점을 파고들 생각이군.’

내가 의도대로 반응해 주지 않으니, 바르한이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막을 수 있을 테면 막아 봐라!”

장내의 기사들이 놀랄 정도의 쾌속한 연격이 쏟아졌으나, 내 감각엔 너무도 느린 공격이라 위협이 되지 못했다.

‘3.5차 앤트맨보단 강하지만, 가디언에 미치진 못해.’

파훼하듯 검이 나아갈 길에 창을 가져다 대니 상대의 검격이 뚝뚝 끊어져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큭. 가문의 검을 알고 있었군. 하지만, 이건 모를 것이다!”

바르한이 뭔가 오해하는 것 같아 검로를 끊는 건 그만뒀다.

“전력을 다해 봐라. 모두 받아 주마!”

“얕보지 마라!”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지쳐 버렸는지, 바르한은 숨을 몰아쉬며 거리를 벌렸다.

“개미족이 이 정도로 강했단 말인가?”

상석에서 참관 중이던 제논이 모두가 들리도록 외쳤다.

“바르한! 다크 님은 거미왕과 비등한 존재다!”

제논의 말에 장내가 고요해졌다.

숨을 고른 바르한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 주변을 맴돌며 말했다.

“전설 속 존재와 비등한 개미족이라니… 상대를 얕본 건 나였던 것 같군.”

바르한이 푸른 검기를 피워내며 강공을 펼쳐 왔다.

캉! 카가강!

두 손을 썼다면 언제든 끝낼 수 있는 결투였으나, 기사들의 전투 방식을 알아볼 요량으로 승부를 내지 않았다.

‘단조로우면서도 빈틈이 많은 검법이야. 제국 기초 창법보다 정교함이 떨어져.’

200합을 넘어서며 바르한의 검이 부러졌다.

“가문의 보검 프람벨지가…….”

망연자실한 바르한이 무릎을 꿇었다.

“내가 졌다. 죽여라.”

창을 거둔 나는 죽음을 각오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같은 편이다. 죽일 이유가 없지.”

내가 내민 손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를 향해 제논이 말했다.

“아직 모르겠나?”

부쉬트니가 나서서 그동안 내가 비에타군을 밤마다 괴롭혔던 전황에 대해 알려 줬다.

기사들이 내 전공을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바르한을 일으켜 세웠다.

한 덩치 하는 바르한을 올려보며 그에게 내가 느낀 바를 말해 줬다.

“힘과 속도를 중시한 검술 같은데, 네 검은 빈틈이 너무 많아. 하수 상대론 몰라도 너보다 빠른 존재에겐 통하지 않을 거다. 수세에서 공세로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좀 더 기본을 신경 쓰면 틈이 줄겠지.”

내가 그의 검술을 흉내 내며 연계 방식에 대해 말해 주니, 그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

조언을 마친 날 한참이나 바라보던 바르한이 고개를 끄덕이곤 부러진 검을 가슴에 가져다 댔다.

기사가 상대를 인정할 때 취하는 예.

바르한을 시작으로 장내의 기사들이 검을 꺼내 가슴에 댔다.

연쇄적으로 일어난 기사들의 인정.

이를 본 제논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당장 파티가 열릴 분위기였지만, 내 마안에는 보였다.

뜨겁게 달궈진 귀족들, 아니 기사들의 투기가…….

난 창날로 투기를 발산 중인 청년을 가리켰다.

“덤벼라. 상대해 주마.”

“상급 기사 브라이언 본드라. 사양하지 않겠다.”

한동안 나와 무투파 귀족들의 친선 비무가 진행됐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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