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61화 (160/189)

161화. 내전 (7)

남부 귀족들의 검술은 대체로 힘을 중시한 중검술로 일견 무식해 보이나 위력만큼은 탁월했다.

‘검기를 자유롭게 다루는 건 셋뿐이야.’

귀족 중에는 비브라 자작을 포함해 세 명의 최상급 기사가 있었고, 대체로 중급과 하급 수준이었다.

‘부쉬트니는 상급이고, 유리는 중급이군.’

제논의 검기는 하급 수준으로 보였지만, 쓰는 검술이 정교하며 수읽기에 능해 중급과 붙어도 뒤처지지 않을 것 같았다.

‘왕족이라 그런지 배운 검술도 달라.’

친선 비무만으로 내가 가진 무력을 모두 보일 순 없었다.

그래도 강함을 인정받음과 동시에 그동안 비에타를 습격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친선 비무가 끝나고,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세크리, 파티에 데려갈 얘들 좀 추려 봐.”

내가 데려온 워커맨 중 성격 좋은 녀석들로 선발하여 파티에 참석시켰다.

“다크 님이 말씀하신 조건에 부합하는 스무 마리입니다.”

“다들 인간에 익숙한 거 맞지?”

“네, 모두 인간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에요.”

문트리아를 통해 파티용 드레스를 공급받았다.

“다크 님, 이건 어떠신가요?”

“이건 뭐야? 코르셋이잖아…….”

드레스 중에는 코르셋을 착용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문트리아가 내 허리를 힐끔 보곤 코르셋을 치웠다.

“하긴, 개미족분들에겐 필요 없겠네요.”

용병으로 온 것이라 굳이 화려한 드레스가 필요치 않았다.

나는 최대한 간편한 드레스를 골라 입었고, 비슷한 드레스를 두고서 고민하는 워커맨들의 옷을 골라 줬다.

‘파티장에 술도 있을 텐데…….’

데몬 앤트인 나는 알콜에 내성이 있지만, 워커맨들은 그렇지 않다.

제논에게 미리 말하여 술을 대신할 무알콜 음료를 받기로 했는데, 착오가 있었는지 몇몇 워커맨에겐 술이 전해진 듯했다.

파티가 시작되며 축배를 든 순간, 일곱이나 되는 워커맨이 쓰러졌다.

“다크 님, 독입니다!”

“함정이다. 다크 님을 보호해라!”

당연히 무기는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파티에 참석한 워커맨은 세크리를 포함해 모두 3.5차 개미들이다.

즉, 무기 없이도 인간을 찢을 수 있다는 건데…….

페로몬을 뿜어 쉬고 있는 동료까지 소집하려 했다.

“세크리, 독이 아니다.”

나는 워커맨들을 다독이며 이들이 쓰러진 이유를 알려 줬다.

“취해서 잠든 거니까 안심해.”

“네? 잠들었다고요?”

인간들도 술 한 모금에 뻗어 버린 워커맨들을 보곤 황당해했다.

취한 녀석들을 정리한 후 서로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음악과 음식은 있었지만, 춤은 없었고, 인간과 개미족이 섞여 대화를 나눴다.

“저희 귀족들이야 저하를 믿지만…….”

인간에게 있어 개미족은 두려운 존재이니, 귀족들은 동맹 소식이 퍼지는 걸 꺼렸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도 너희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어.”

열세인 전장에서 함께 한다면 병사들도 우릴 박대하진 못할 터.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내가 잔을 높이 들며 외쳤다.

“공생의 미래를 위하여!”

취기가 오른 귀족들은 내 행동의 의미를 깨닫곤 함께 위하여를 외쳐 줬다.

친목 파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파티에서 약속이 오가는지 수일간 워커맨과 기사들의 친선 비무가 이어졌고, 밤에는 어김없이 친목 파티가 열렸다.

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디아를 심판으로 세웠고, 서로 죽이지 않는 조건에서의 대결이다 보니 무기도 목제를 쓰게 했다.

나름 유명한 용병인 디아.

“아다만티움급 용병 흑기사가 맞습니까?”

“맞다.”

그녀는 지휘부의 러브콜을 받았고, 한동안 제논의 곁에서 호위를 서 주기로 했다.

디아가 가니 타르가 심심해했다.

“왜 따라가지 않고?”

“인간들은 날 죽이고 싶어 해.”

“디아도 인간인데?”

“디아는 나와 동류라는 게 느껴지니까.”

신마력을 가진 자들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나는?”

“네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4차 진화를 이루며 나의 신마력은 사도들조차 느낄 수 없게 됐다.

‘외로운 속성이야.’

“심심하면 나랑 놀자!”

나르본느가 타르를 지하 기지의 구석진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에 거미줄로 방을 한껏 꾸민 그녀는 방콕 상태에서 능력을 사용해 병영을 살폈다.

둘은 각자의 능력으로 병영에서 발생하는 흥밋거리를 찾아 관찰했다.

“인간 하나가 부하에게 무기 손질을 미뤘어.”

“똑똑한 놈이네.”

“개미족이 봤으면 더듬이를 쥐어뜯었을 거야.”

“개미족은 개성이 부족해. 보고 있어도 인간만큼 재미가 없어.”

개미족은 힘이 강한 종족이다.

오거 같은 대형종에겐 비빌 수 없지만, 트롤과 라미아 다음 가는 괴력을 지녔다.

목제 무기로는 워커맨의 전력을 담을 수 없어 매번 기사에게 패배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상대를 안심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아.’

비무와 파티, 그리고 매일같이 작전 회의가 열렸고, 적군의 움직임은 문트리아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남부 토벌에 보내질 병력은 약 3만!”

병력은 3배 차가 났지만, 질적으로 놈들이 압도하고 있어 단순 수치로 비교하긴 힘들었다.

“우기까지 길목의 자작성 두 곳을 지켜 낸다면 저희의 승리입니다.”

두 달만 버티면 이기는 게임이라지만, 사수해야 할 자작성 두 곳은 성이라 부르기엔 민망한 곳이었다.

‘두 달… 어렵겠는걸.’

요충지인 두 성 중 하나라도 빼앗기면 남부 영지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

수성에 사활을 걸어야 했지만, 이 경우 주력이라 할 수 있는 기병이 활약할 수 없게 되고, 북부의 곡창지대를 짓밟히게 되니…….

“왕궁을 되찾으려면 곡창지대를 지켜야 합니다!”

논의 끝에 제논군은 북쪽의 바하르 평야에서 1차 저지선을 구축하기로 했다.

“한 달이다! 한 달 안에 수확할 수 있는 곡물을 거두고, 두 성을 요새로 만들어라!”

전장이 정해졌다.

진지를 구축할 때, 제논의 측근이라 주장하는 일단의 무리가 거지꼴로 군영을 찾아왔다.

거지들을 본 제논은 놀란 눈을 했고, 그들의 대표로 보이는 자가 눈물을 쏟았다.

“필라이 경이… 맞는가?”

“신 트니프 필라이. 살아 계신 저하를 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제논은 거지꼴의 사내를 끌어안았다.

“저하, 오물이 묻습니다.”

“괜찮네, 괜찮아.”

이들은 제논이 왕성을 빠져나올 때, 가르탈 백작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미끼를 자처한 왕실 친위대원들이었다.

“필라이 경,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비브라 자작은 의심의 눈초리로 필라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가르탈 백작의 손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지?”

“가르탈 백작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심이 짙어지는 가운데, 제논이 끼어들었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자네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중요하지.”

의심되는 구석은 있었지만, 최상급 기사인 필라이와 그가 데려온 왕실 친위대원 20명은 우수한 전력이다.

‘남부 귀족들보다 더 강한 것 같아.’

진지가 어느 정도 구축됐을 무렵 적군이 맞은편에 도착했다.

그들도 진지 공사에 들어갔고, 나는 개미 지배를 사용해 적진을 탐색했다.

‘왕급 기사 둘, 준왕급 기사가 하나군. 저 둘은 흑마법사인가?

내 부하가 된 흑탑의 2장로 히나에게 들은 바 있다.

’남자는 3장로 히스일 거고, 여자는 8장로 호르카겠지.’

기사의 강함은 어느 정도 알겠지만, 흑마법사의 강함은 어떤 마법을 특기로 하는가에 따라 달라져서 마력의 양과 질만으론 판단하기 어려웠다.

‘저건 뭐지?’

살상 마법을 특기로 하는 3장로 히스.

그가 천 속에 감추고 다니는 물건에서 강렬한 마력이 풍겨왔다.

‘위험한 걸 들고 다니는군. 저놈은 조심해야겠어.’

나는 적진 고수들의 몽타주를 그려 제논에게 보여 줬다.

“무패의 가르탈 백작이군요. 그는 마스터급 검사일겁니다.”

왕국 공인 마스터급 기사로는 쿠드라 후작, 다나스 백작, 그리고 고인이 되어 버린 왕실 친위대 대장인 가일론 백작이 있었다.

“가일론 백작만 살아 있었어도…….”

비공식 마스터로 가르탈 백작, 마일도스 후작의 호위 기사 라이포, 카밀 후작군의 기사단장 카시안이 있으며 그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마스터급 기사가 다수 존재했다.

‘마스터라.’

이들이 말한 마스터는 준왕급과 왕급 수준의 존재로 마강기와 흡사한 압축된 기운을 쓸 수 있다.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동급의 마스터뿐입니다.”

상대측에 마스터급만 셋이고, 위험해 보이는 흑마법사가 둘이나 있는데, 이쪽 진영의 인간들은 약골들뿐이니.

‘이거야 원.’

수적 열세인 상황에서 내 쪽에서 마스터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어 보였다.

‘디아와 나르본느의 도움을 받아야겠어.’

묘족의 특성상 암습에 능한 타르는 체격이 작아 정면 승부를 꺼림으로 그에겐 피어레스의 보조를 부탁했다.

‘피어레스와 타르에겐 준왕급인 카시안을 맡기자.’

난 기회를 봐서 흑마법사 둘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   *   *

다나스 백작령을 포함한 서부의 영지는 클라우드 왕국에서도 특별한 곳이다.

50년 전 원시 부족이 살아가던 땅을 다나스 백작이 개척했고, 야만인의 영역과 맞닿아 있어 노예 사냥꾼이 넘쳐났다.

노예 사냥꾼들에 의해 던전 여러 곳이 발견되며 용병이 몰려들었고, 이로 인해 내수 경제가 활성화된 부유한 영지가 됐다.

서쪽 영지의 거주민의 40%가 용병이었고, 나머지 40%가 대륙 공용어가 통하지 않는 야만인 노예였다.

야만인은 헐값에 거래되며 투기장의 소모품으로 쓰이거나 동족 사냥에 앞장세워졌고, 던전 탐사의 선봉으로 쓰이기도 했다.

용병이 아닌 평민들도 말이 통하지 않는 야만인을 가축 이하로 보며, 보이는 족족 잡아들여 갖은 학대 끝에 쓸모가 없어지면 노예상에 팔아 버렸다.

다나스 백작에 의한 피의 지배가 50년간 이어지며 서부 영지는 노예화되어 대륙 공용어를 익힌 야만인으로 넘치는 곳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서부 영지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다마카 자작성이 오크들의 습격을 받았다.

중무장한 오크는 한 마리 한 마리가 골드급 용병에 버금가는 존재였지만, 든든한 성벽 앞에선 화살 과녁에 지나지 않았다.

“돼지 놈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갑옷 좀 걸쳤다고 인간을 우습게 보는군. 화살은 충분하다. 돼지 놈들에게 문명의 힘을 보여 줘라!”

3일간 성벽을 두드리며 성과를 내지 못한 오크들이 누적된 피해에 우회 계획을 세우던 그때, 피투성이의 야만인이 성문을 열어 줬다.

“놈들이 성문을 열었다! 돌격하라!”

“막아라! 성문을 닫아!”

오크들의 손에 다마카 백작이 당하기까지 반나절이 걸렸고, 성내에선 학살이 벌어졌다.

오크들의 인간 학살에 야만인 노예들이 동참하며 자작성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백인장님, 저 녀석들이 우릴 돕는데, 어떻게 할까요?”

“저 녀석들의 목적을 모르니…….”

“내가 물어보고 올게!”

백인장급 오크 보조로 붙은 하이 페어리들이 야만인에게 날아가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러니까 놈들의 목적은 이곳 인간들의 멸살이란 거군?”

오크와 야만인.

서로 목적이 비슷한 둘은 동맹을 맺게 됐고, 다음 목표가 있는 영지를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다나스 백작의 영향권에 있던 영지가 하나둘 불타오르면서 오크와 야만인 부대는 점차 거대한 세력으로 변해 갔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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