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62화 (161/189)

162화. 내전 (8)

2천의 오크가 자작성 두 개를 공략하여 3천의 야만인을 구출했다.

그들은 왕국 남서쪽을 초토화시키며 세를 더욱 키웠다.

소식을 접한 북서쪽의 영주들이 영내의 야만인을 척살하려 했으나, 때를 노리고 있던 루리아가 선수를 쳤다.

“지금부터 개미 용병단은 노예 해방을 돕는다!”

루리아가 이끄는 용병의 지원으로 야만인 노예들은 철기로 무장하게 됐다.

“숲의 동포들이여 심판의 때가 왔다!”

무장한 야만인들은 오크만큼이나 강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서부는 완전히 혼란에 빠져들었다.

오크들로 인해 남서쪽 영지가 초토화됐을 무렵, 북서쪽은 루리아의 용병단에 의해 불타올랐다.

백작성에 돌아와 영내의 야만인을 척살하던 다나스.

사방에서 몰려온 오크, 용병, 야만인으로 인해 성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어리석은 놈들, 마스터인 내가 있는 영지를 건드리다니.”

다나스 백작은 성벽을 믿고 내부 청소에 집중하려 했으나, 야만인과 오크가 불나방처럼 성문을 두드렸다.

“멍청한 놈들이군.”

다나스가 수성을 위해 병력을 배치하자, 영내에 숨죽이고 있던 용병, 암흑가, 그림자, 상인, 세작 등이 노예들을 풀어 주며 무장을 제공했다.

“백작님! 남문이 열렸습니다.”

“백작님! 북문이!”

“서문과 동문도 뚫렸습니다!”

“내성의 비밀 통로가 들켰습니다!”

“투기장의 야만인 놈들이!”

문이 활짝 열리며 수성의 의미가 없어진 상황.

외성의 성벽에서 전황을 살피기 힘들었던 다나스는 내성에서 적들을 맞이하기로 했다.

“다나스님, 그럼 평민들의 대피는…….”

다나스는 평민을 걱정하던 부관의 목을 날렸다.

“이 상황에서 평민 따위를 걱정하다니, 무능한 놈은 필요 없다.”

내성에서 유리한 지형을 선점한 다나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야만인 놈들… 이렇게 강했던가?’

영토 개척으로 강성했던 1세대 병사들은 은퇴한 지 오래였고, 지금의 병사들은 피지컬만 좋았지 전쟁 경험이 없는 애송이들뿐.

“어째서 야만인 하나 제압하지 못하는 것이야!”

창칼에 몸을 내주며 무기를 휘두르는 흉포한 야만인들을 마주한 다나스군은 빠르게 무너져 갔다.

싸우면 싸울수록 체력을 되찾고 조직화 되는 야만인들, 하나둘 하이 오크로 진화하는 오크들, 거기다 개미 깃발 아래 모여드는 인간들까지.

다나스군이 붕괴되어 뿔뿔이 흩어지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마스터인 내가… 왕국의 최강이라 할 수 있는 내가…….”

군이 붕괴되고도 다나스는 자신의 검에 몸을 들이미는 야만인을 베어 내며 삼일을 버텼다.

시체의 언덕 위에서 피투성이의 다나스가 검을 떨궜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군.”

그는 언덕 아래의 여성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대인가?”

루리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자, 다나스는 허탈해하며 무릎을 꿇었다.

“무적일줄 알았던 내 강함도… 이 정도였군.”

다나스는 무기 같지도 않은 단검을 들고서 달려드는 야만인 꼬마를 보며 피식 웃었다.

“천한 노예의 자식이. 그때 여동생과 함께 죽였어야 했는데…….”

다나스는 한 서린 꼬마에게 심장이 뚫리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몰아친 야만들이게 찢겼다.

다나스의 죽음으로 루리아를 중심으로 모인 용병들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고, 오크들도 목적 달성에 기뻐했다.

하지만, 그 시신을 둘러싼 야만인들은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상처투성이의 야만인 꼬마가 루리아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면 왕국 놈들이 나옵니까?”

야만인들의 분노는 다나스의 죽음으로 해소될 만큼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북쪽으로 가면 마일도스 후작의 영역이야. 너희가 원한다면 같이 가줄 수 있어.”

“필요 없어, 우리끼리도 충분해.”

죽을 장소를 찾는 듯한 그들의 행동에 안타까움을 느끼던 루리아.

그녀를 돕고 있던 용병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루리아, 이제 어떡할 거야?”

“서부의 개미교도를 규합했으니, 벨레삭 영지로 가야 해.”

“알았어. 그렇게 알고 준비하면 되지?”

“아니…….”

뭔가 결심한 그녀는 작전을 바꿨다.

“우린 한동안 야만인과 오크들을 지원할 거야.”

“이거 상부 지시에 반하는 거 아니야?”

동료의 걱정에 루리아가 피식 웃었다.

“내가 받은 지령은 세자를 지원하라는 것뿐이야. 어떻게 지원할지는 각자의 선택이지.”

“그럼 야만인과 오크들을 도와 마일도스 후작령을 치는 것도 세자를 돕는 거니 상관없다?”

“그런 거지. 왜? 뭐가 이상해?”

“아니, 그냥… 내가 아는 집단의 수장들은 장기말이 멋대로 판단해서 움직이는 걸 끔찍이 싫어했거든. 걱정돼서 말이야.”

“걱정하지 마. 내 윗선은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관해선 관심도 없을 거야.”

다크는 개미교의 영향력이 미약한 영지에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그건 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약했을 뿐.

그들이 뿌려온 돈은 하층민의 생명줄이 되어 왔고, 이름난 용병들과 신뢰를 쌓기에도 충분한 금액이었다.

*   *   *

100년 전 클라우드 왕국이 건국될 당시, 선대 가르탈 백작도 야만인의 영역을 찬탈한 영주였지만, 그는 다나스 백작과 달리 야만인을 노예로만 보지 않았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패배를 받아들여라!”

탁월한 카리스마로 수많은 부족을 무릎 꿇린 선대 가르탈 백작.

그는 야만인을 차별 없이 대해 줄 것을 약속했고, 이 약속은 현 가르탈 백작에게도 이어졌다.

“멍청한 선조들은 왜 그런 약속을 해선…….”

“그야 가르탈에 대해 몰랐으니까 그렇겠지.”

가르탈 가문은 제국에서 건너온 유서 깊은 가문이었고, 약육강식을 가훈으로 삼았다.

“약육강식, 단순하고 좋잖아?”

“약육강식이 문제가 아니잖아!”

가르탈 가문은 여자에게 무관심하며 남자에게 매우 혹독한 가문이었고, 성인 남성에게 5년간 훈련을 받게 했다.

“왜! 왕국민도 아닌 우리가 이런 미친 훈련을 받아야 하냔 말이야!”

“그래도 약속대로 차별은 없잖아. 위쪽 다나스 백작령은 숲의 부족민을 화살 과녁이나 사냥감으로 쓰다가 버린다더라. 여자들은 더 심한 꼴로 죽어나지. 그에 비하면 여긴 남자들만 고생하면 되잖아…….”

“고생? 내 동기가 벌써 둘이나 죽었어! 아직 2년이나 더 남았는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이 훈련은 우릴 왕국민과 차별 없이 죽이기 위한 게 분명해! 거기다 위쪽 영지들은 먹을 거라도 많지, 여긴 아무리 생각해도 척박하잖아!”

“그럼 넌 위쪽 영지로 가 봐라. 팔팔하니 비싸게 팔릴 거야.”

두 야만인의 이야기를 듣던 선배 야만인이 한 마디 했다.

“죽을 것 같으면 남근을 잘라. 그럼 훈련에서 빠질 수 있으니까.”

“…진짜 자른 사람 있어요?”

“듣기는 했어도 본 적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고블린 웨이브 소식이 전해졌다.

“훈련은 중지다. 수성 지원에 나설 테니 실수하지 말도록!”

교관의 말에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고, 성벽에 오른 그들은 몰려오는 고블린 떼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정도면 겨울까진 훈련은 없겠어.”

“아니야. 정예가 움직일 테니, 두 달이면 정리될 거야.”

“가르탈이 다 데리고 간 거 아니었어?”

“아직도 그 인간을 모르냐? 내전 정도로 오른팔인 리카르텐을 데려갔겠어?”

“아… 그 배신자 놈이 있었지.”

“부족민 중에 그를 우상으로 생각하는 놈이 많아.”

“그래서 어쩌라고?”

“입을 조심하라는 거다. 퇴소하기 전에 암살당하기 싫으면…….”

“그깟 암살을 내가 겁낼 것 같아?”

“온다. 집중해.”

고블린이 돌진해 와 성벽을 두드리고 성벽을 타기 시작했으나, 가르탈 백작 산하의 서남부 영지들은 굳건했다.

*   *   *

둥지에서 홉 고블린 2천을 데리고 나와 숲의 고블린을 규합하여 8만에 달하는 대군을 만든 데카이저와 키카.

네 개의 부대로 쪼개진 그들은 서남부 성채 네 곳을 동시에 공격했다.

“일반 고블린만 보내선 성과가 없겠어요.”

키카가 굳건한 성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 말에 데카이저가 답했다.

“수적으로 우리가 앞선다. 3교대로 공격하면 놈들도 언제가 지치게 돼 있어.”

“경험에서 나오는 말인가요?”

“그렇다 할 수 있지.”

“정예 부대는 계속 지켜보기만 하나요?”

“슬슬 도망가려는 고블린이 생길 거다. 정예 부대의 역할은 도망자들의 사살과 숲에서 고블린을 보급해 오는 것이지.”

데카이저는 수시로 지휘관급 고블린을 불러 공로를 치하했고, 사기를 높여 돌격을 명했다.

“꾸준한 선동이 중요하군요.”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데카이저는 한 달 안에 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공성 중에 기병 천 기로 돌진해 온 인간을 보곤 생각을 바꿨다.

“저들은 위험하군.”

“그래 봐야 천 명 정도지 않나요?”

“인간의 기병 천 기는 일반 고블린 1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어, 그리고 선두의 녀석은 다크와 붙어도 밀리지 않을 놈이다.”

“다크 님과요?”

기병이 나타난 후로 고블린의 피해가 극심해졌다.

수일 후, 데려온 고블린 절반을 소모한 데카이저는 잠시 뒤로 물러나 병력을 정비했고, 기병이 다른 영지를 돕기 위해 떠난 걸 확인한 후에야 다시금 돌격했다.

한 달 후, 일반 고블린을 모두 소진한 부대가 데카이저가 있는 본대에 합류했다.

“물러난다.”

“놈들도 지쳤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고블린이 보급되는데, 후퇴라니요!”

성과 없이 후퇴하자는 말에 홉 고블린 하나가 반발했으나, 데카이저는 완고했다.

“지금 물러나지 않으면 우린 저놈의 손에 죽을 거다. 그러니 물러나려면 지금이다.”

키카가 데카이저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며 고블린은 차츰 물러났다.

말을 탄 채 고블린이 숲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리카르텐.

“고블린 로드인가? 생각보다 지능이 높아.”

리카르텐은 추격하여 로드를 잡고 싶었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보면…….

“숲에 끌어들여 기병의 기동력을 봉쇄할 생각이군. 그 틈에 내가 없는 곳을 칠 속셈인가?”

리카르텐은 고블린과 수 싸움 중인 현 상황이 어이없어 실소를 머금곤 추격을 포기했다.

“미리미리 토벌해 뒀어야 했어.”

*   *   *

흑탑의 회의 중 2장로 히나가 히스와 호르카에게 경고했다.

“클라우드 왕국 일에서 손 떼는 게 좋을 거야.”

[그건 왜지?]

히나가 상위종으로 득실거리는 개미족이 제논을 돕고 있음을 말해 주자, 4장로 하버드가 관심을 보였다.

[이미 재앙이 된 개미족이다. 제국이 나서지 않으면 토벌은 불가능하겠지. 맞서는 건 권할 수 없군.]

[그래 봐야 개미족이지 않나?]

[마법에 취약한 놈들이니 히스 할아범 혼자서도 토벌할 수 있지 않아?]

히스와 호르카는 히나와 하버드의 충고를 무시했다.

“전 충고했어요. 항복하면 살려 주기로 했으니, 전장에서 만나면 빠른 항복을 권할게요.”

[네놈이야말로 전장에서 날 만나면 죽기 전에 장로임을 밝히도록…….]

개미족이 제공해 준 연구실에서 영상 회의를 끝낸 히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히스 영감이야 죽어도 싼 인간이지만…….”

금속의 호르카와 식물의 히나.

둘은 서로 다른 걸 연구했지만 가끔 겹치는 부분이 있어 조언을 주고받던 사이였고, 히나는 흑탑에 몇 없는 동성의 호르카에게 동질감을 느끼곤 했다.

“역시 8장로는 아까워.”

히나는 호르카의 신변을 부탁하고 싶었지만, 다크가 내준 과제에 막혀 부탁할 입장이 못 됐다.

“고유 속성을 갖춘 개미족이 익힐 수 있는 마법이라… 마나 로드가 짜여 있는 신체로는 마법을 쓸 수 없는데.”

그녀에게 주어진 과제는 하나가 아니었다.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쉬운 것부터 처리해야지. 어디 보자, 둥지의 마력 분포를 조절해 개미족의 성장 속도를 높이는 방안이라. 이건 어렵진 않지.”

빡빡한 일정에 치여 피로에 찌든 히나는 자신이 제공한 마법적 지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해 보지 못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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