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63화 (162/189)

163화. 내전 (9)

제국에 충성하며 평화에 찌든 포카이 왕국의 귀족들은 쿠드라 후작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수개월 만에 포카이 왕국 남부 귀족들을 잡아들인 쿠드라.

포카이 왕실과 포로를 거래하고, 수도로 진격할 준비를 마쳤을 때쯤, 클라우드 왕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왕궁이 7왕자파 놈들에게 점령당했습니다. 세자 저하의 생사는 불명. 남쪽으로 빠져나가 벨레삭 백작령으로 갔다고 추측됩니다.”

“마일도스 외에 누가 가담했지?”

“대영주 중에는 카밀 후작, 다나스 백작, 가르탈 백작이 가담했습니다.”

“가르탈 녀석이?”

쿠드라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막사 내의 귀족들은 두 파로 갈렸다.

“지금 당장 돌아가 세자를 구해야 합니다!”

“수도가 코앞입니다! 이대로 포카이 왕국의 숨통을 끊어야 합니다!”

“무슨 소리냐? 지금 세자 저하가 위기에 빠졌음을 모르는 것이냐?”

“생각해 보시게, 포카이 왕국만 점령하면 마일도스 후작도 우릴 적대할 순 없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세자 편에 설 이유가 없지.”

“그럼, 이대로 왕국을 7왕자에게 넘기자는 거냐?”

“점령한 땅을 안정시키려면 주전파인 세자보단 온건파인 7왕자가 낫지 않겠나?”

귀족들이 서로를 비난하며 갑론을박이 오갔다.

생각을 정리한 쿠드라 후작이 손을 들어 가신들의 발언을 멈췄다.

“이대로 진군하여 포카이 왕국을 끝내겠다.”

쿠드라의 결정에 가신들의 희비가 엇갈렸고, 제논은 손꼽아 기다리던 원군을 잃게 됐다.

*   *   *

세자군 1만과 7왕자군 3만이 부딪히는 바하르 평야.

서쪽에는 암석지대가 있고 동쪽에는 나무로 빼곡한 숲이 있어 5천 이상의 병력이 격돌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포위당하진 않겠어.’

놈들이 부대를 쪼개 다른 길로 보내는 걸 경계해야 하지만, 남부로 향하는 길 중 이곳만큼 편하고 안전한 길은 없다.

‘저들에겐 꼭 지나쳐야 할 길목이지.’

막상 전투가 시작되니 강자라 할 수 있는 귀족들은 후방에서 각 부대에 작전 지시나 내렸고, 병사들만 선두에서 목숨을 건 힘겨루기를 했다.

‘마스터와 흑마법사들도 후방에 있고, 기병들도 나서질 않네.’

유리한 지형과 완성된 보급로.

‘병사의 질에선 조금 밀리지만…….’

개미표 강철 무구로 철저히 무장해 사기 충만한 병사들이 길목을 틀어막으니, 한 달이 아니라 두 달도 버틸 수 있을 듯했다.

‘만 단위의 전장이야. 마스터 하나로 전황이 바뀌진 않겠어.’

그건 내 존재도 전황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말이었지만, 상황상 나쁘지 않았다.

‘적 군영이 세 개로 쪼개져 있군. 총지휘관이 없는 건가?’

세 진영은 서로의 전공을 분별하기 위해, 동시에 돌격해 오는 경우가 없었다.

“마일도스군이다! 방패 앞으로! 궁수부대 사격 준비!”

격일제로 밀려오는 마일도스군과 카밀군.

화살도 충분하고 진지도 잘 구축해 둬서 우리 쪽 피해는 크지 않았다.

‘적들도 피해를 두려워하고 있어.’

이미 내전에서 이긴 후를 상정하는지, 자기 세력의 피해를 극도로 꺼려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두 후작을 상대하며 자신감이 붙었을 무렵, 가르탈군이 돌격해 왔다.

“죽여라!”

“가르탈군의 위엄을 보여 줘라!”

‘뭐야? 저놈들 일반 병사들 맞아?’

목책과 밀집대형을 사용해 막아 냈기에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힘에 밀려 기껏 구축한 저지선 하나를 내주게 됐다.

‘처음 겪는 패배에 사기가 떨어졌어.’

“이대로 소모전을 치르면 일주일도 버틸 수 없을 겁니다. 기병으로 놈들을…….”

조급해진 귀족들이 주력 부대를 투입하려 했으나, 적군의 주력 부대가 이쪽 주력 부대를 노리고 있어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기병 한번 잘못 움직였다가 전멸이라도 당하면 그걸로 끝이니까… 신중할 수밖에 없어.’

놈들에게 맞춰 조금씩 물러나며 소모전을 치른 지 일주일.

피해는 적군이 훨씬 컸지만, 먼저 지친 건 우리 쪽 병사들이었다.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

“부쉬트니 자작, 적군 기병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나?”

제논의 물음에 부쉬트니가 턱수염을 만지며 답했다.

“그동안의 가르탈 백작의 움직임으로 봐선, 기병전엔 나서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두 후작군의 기병이 상대라면 한 번 해볼 만한데…….”

부쉬트니는 이기진 못하더라도 패배하진 않을 거라고 확답했으나, 제논은 그 대답에 만족할 수 없었다.

“주력 부대인 기병대가 밀리면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할 거네. 나서면 무조건 이겨야 해!”

부쉬트니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나와 디아를 번갈아 봤다.

‘나보고 나서 달라는 건가?’

아무리 왕급이라 해도 나는 대량 학살 병기가 아니다.

‘궁기병 100기로 전장에 뛰어들었다간 피해가 만만치 않을 텐데.’

마스터급 기사와 흑마법사 정도만 요격해 줄 생각이었는데, 부쉬트니가 강렬한 눈빛으로 내게 협력을 구해 왔고,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나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저하, 제게 목숨을 맡겨 주신다면 적군의 기병을 쓸어버리겠나이다.”

“내 목숨은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안다. 부쉬트니, 그대가 떠올린 작전을 설명해 주게.”

“위험한 도박이 될겁니다만…….”

부쉬트니가 제논을 미끼로 한 작전을 말해 주자, 귀족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부쉬트니 자작! 제정신이냐?”

“저하를 미끼로 쓰려 해?”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여론이 좋지 못했다.

‘비브라 자작도 반대했으니, 아무래도 이 작전은 안 될 것 같군.’

담담하게 좌중을 훑어보던 부쉬트니가 낮게 뇌까렸다.

“네놈들은 전쟁을 아나?”

부쉬트니의 매서운 시선에 놀란 귀족들이 조용해졌다.

“나 무패의 브쉬트니가 세운 전략이 맘에 안 든다면, 그 이상의 전략을 가져와라!”

부쉬트니의 외침에 구석에 있던 젊은 귀족이 탁자를 내리쳤다.

“무패의 칭호? 그건 당신의 비겁함을 나타내는 칭호지 않습니까?”

차갑게 가라앉은 장내 분위기.

누구 하나 칼을 뽑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쉬트니는 차고 있던 검집을 풀었고, 이어서 갑주와 상의를 벗었다.

드러난 부쉬트니의 몸은 검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572번이다. 내가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횟수지… 그렇게 난 무패의 부쉬트니로 불리게 됐고, 귀족들 사이에선 조롱거리가 됐다.”

놀란 귀족들과 씁쓸한 표정의 부쉬트니를 살피던 제논이 나섰다.

“묻겠다. 여기서 부쉬트니 자작 이상의 대규모 전투 경험을 갖춘 자가 있는가?”

귀족들이 침묵하자 제논이 결단을 내렸다.

다음 날, 후방에 있던 본대가 앞으로 나섰다.

본대의 중심에는 제논을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였다.

“다크 님은 숲에 매복해 주십시오.”

나와 궁기병은 부쉬트니의 요청으로 숲에 매복했다.

길리 슈트를 만들어 입었기에 완벽한 매복이었지만, 100기의 궁기병을 분산 배치해 둬서 큰 타격을 주긴 어려웠다.

‘잘 되려나?’

제논을 미끼로 삼은 부쉬트니의 작전은 도박성이 강했다.

모 아니면 도.

열세인 상황을 뒤집기 위한 발악이라 할 수 있었다.

아군이 움직임에 맞춰 적군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쪽 기병이 진격하자 마일도스와 카밀의 병영에서 각각 1천기의 기병을 내보냈다.

‘한가락 하는 기사들은 다 나섰군.’

제논의 깃발을 보곤 눈이 뒤집혔는지 전공에 눈먼 귀족들이 선두에 섰다.

1천씩 두 부대인 적군에 맞춰 부쉬트니도 부대를 둘로 나눴다.

“쐐기 대형으로 돌파한다!”

두 곳에서 일어난 기병과 기병의 전면 충돌.

양 진영 모두 같은 전법을 구사했으나, 기사들의 역량 차이가 컸다.

‘지형과 무기의 유리함만으론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이야.’

선두의 기사들이 당하며 부쉬트니 측 기병대가 반으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이는 당연한 결과였고, 부쉬트니도 예상했다.

적 기병을 이끄는 건 라이포와 카시안.

둘 다 비공식 마스터이며 라이포는 왕급에 해당하는 강자였고, 카시안도 준왕급 수준의 강자다.

“마스터와 충돌하지 마라!”

아군 기병대는 마스터와 기사의 길을 열어줌으로 피해를 최소화했고, 쪼개진 채 돌격하여 적 기병의 측면을 훑었다.

부쉬트니의 전법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력이 부족했다.

“자작님!”

“알고 있다.”

피해를 크게 본 부쉬트니의 기병대.

한차례 더 격돌하면 진영이 무너졌을 테지만, 적군의 눈엔 제논의 깃발만 보이는 듯했다.

“이대로 돌격해 적 수괴를 처단한다!”

적 기병대는 소수의 병력만 남기곤 제논이 있는 본대를 향해 돌격했다.

부쉬트니가 남은 기병에게 발목이 잡힌 사이, 적 보병대가 돌격해 왔다.

“이쪽이다! 포위당하기 전에 빠져나간다.!”

네 개로 쪼개진 아군 기병이 적 보병을 휩쓴 후 숲으로 들어왔다.

“멍청한 놈들…….”

숲에선 기병의 기동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는 게 이곳의 상식.

“쫓아라!”

확실히 바닥도 평평치 못하고 장애물도 많아 말과 사람이 움직이기엔 힘든 곳이었지만, 개미족에겐 해당하지 않았다.

부쉬트니의 부대에서 피리로 신호를 보내 왔다.

약속대로 나서 줘야 하는데, 적들이 너무 많았다.

‘이거… 피해가 크겠는걸.’

매복해 있던 궁기병이 움직이며 숲에 들어온 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몬스터다!”

“으아악!”

기세등등했던 병사들은 우릴 본 순간 무기를 버리곤 도주했다.

‘어라?’

떼로 덤벼들면 이쪽도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덤빌 생각도 안 하다니.

‘베슬리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하드 워커인 베슬리를 내려다봤다.

4차 진화종인 내 기준에선 3차 진화종 개미들은 모두 귀여운 여동생처럼 느껴졌지만, 전생을 떠올리며 개미족을 다시 보니.

‘흠… 조금 무서울 수도 있겠군.’

내가 암흑마창으로 한 놈을 쳐 낼 때, 도주하던 적군 세 명이 넘어지거나 나무에 부딪혀 상처를 입었다.

‘패닉에 빠졌군.’

부하들에게 알려 인간들에게 겁을 주게 했고, 동료가 있는 곳으로 몰아넣어 숲을 배회하게 했다.

우리가 굳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숲에 들어온 인간들은 알아서 무력화됐다.

부쉬트니의 기병대는 패닉에 빠진 인간들을 짓밟으며 평야로 나갔고, 무리한 돌격으로 늘어진 전선의 옆구리를 찔렀다.

“죽여라!”

전선 옆구리를 터트린 부쉬트니는 정예가 빠진 카밀군 본대를 향해 돌격했고, 적군 기병은 제논을 잡기 위해 중장보병과 격돌했다.

“쳐라! 적장의 수급을 가져오면 2계급 특진과 천 골드를 하사하겠다!”

제논에게 걸린 현상금에 눈알이 돌아간 기병들이 피해를 감수해 가며 중장보병을 뚫으려는 상황.

“이분이야말로 북부 최강의 기사 라이포님이시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라!”

“남부놈들 중엔 날 상대할 자가 없느냐?”

모두 부쉬트니의 작전대로라지만…….

‘계산이 잘못 된 것 같은데.’

아군 기병의 돌파력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중장보병을 뚫어낸 적군이 제논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제논에게 붙여둔 나르본느가 거미줄을 쏴 말들을 묶자 마스터급인 라이포와 카시안이 말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라이포 자작과 카시안 자작이다!”

나르본느의 거미줄을 베어 내며 돌진한 둘.

“전쟁에 몬스터를 동원하다니! 실성했구나!”

나르본느가 세검 두 자루를 꺼내 들고서 라이포의 중검을 막아낸 순간, 카시안이 그 옆을 지나쳤다.

“카시안은 왕국 최연소 마스터라 할 수 있지, 네놈들이 막을 수 있는 아이가 아닐 거다. 이걸로 끝이다 반란군!”

라이포의 선언과 함께 굉음이 터졌다.

쾅!

자신을 스쳐 날아가 부하들을 박살 낸 후 빈사 상태가 된 카시안을 본 라이포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게… 무슨…….”

굉음의 진원지에서 대검을 들고 흑색 갑주를 입은 디아가 걸어 나왔다.

“나르본느, 평소만큼 싸우질 못하는군.”

나르본느가 미간을 찌푸리며 어눌한 대륙 공용어로 답했다.

“그야, 여긴, 숲 아니야. 내 특기, 이동술 못 써…….”

퇴로 없는 적진 한가운데서 강적 둘을 상대하게 된 라이포는 북부 최강의 위엄을 보여 주고 싶었으나, 디아와 한차례 격돌 후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깨달았다.

“어릴 때 잘 먹질 못해서 몸이 덜 커서 그래요. 정말 열여섯이에요”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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