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내전 (10)
카밀군과 마일도스군의 절반은 징병된 병사다.
두 후작령은 전시 특별세를 내지 못한 가구를 대상으로 한 명씩 징집했고, 자격 조건은 16세 이상의 성인 남자였다.
“야, 너 몇 살이냐?”
“열여섯이요.”
“어디서 거짓말이야?”
대체로 집안에서 쓸모없는 아이가 징집되다 보니, 성인식을 치르지 못한 아이가 다수 섞여 있었다.
“성인식은?”
“올해 치르기로 했어요.”
“그래?”
병사는 소년이 나이를 속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묵인해 줬다.
“여기선 풀죽이라도 나오니, 굶진 않을 거다.”
“네.”
“힘내라.”
왜소한 소년은 몇 사이즈 큰 투구를 삐딱하게 쓴 채, 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꼬맹아, 선두에 섰을 때는 무조건 전속력으로 달려. 뒤처지면 화살비에 당한다는 걸 명심해”
“야! 너처럼 얼 타는 녀석을 찾아 견제만 해! 죽이려 들면 네가 죽어!”
“전장을 정리할 땐 쓸 수 없는 건 챙기지 마. 욕심 부리다 아까운 목숨만 잃는다.”
“개미 문양이 음각된 건 꼭 챙겨라. 쓸 수 있는 건 쓰고, 못 쓰는 건 십인장에게 드려.”
소년은 전쟁 중 동료 병사들을 통해 많은 걸 배웠고, 전장에서 수거한 물건들로 무장을 갖춰 한 명의 병사로 성장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부대는 적군 기병을 쫓아 숲에 발을 들이며 개미족을 마주하게 됐다.
“어…….”
처음 마주한 몬스터의 살기.
인간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포식자의 기운에 짓눌린 소년은 몸이 굳고 말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
거대 개미를 탄 인간 같지 않은 소녀가 검은 흰자위 속 금색 동공을 번뜩이며 장창을 휘둘러 왔다.
‘인간형 몬스터야!’
죽음을 직감한 소년의 뇌리로 주마등이 스칠 때, 한 중년 병사가 그를 덮쳤다.
“죽고 싶어!!”
“아저씨…….”
어째서인지 바로 공격해 오지 않는 개미족 덕에 중년 병사는 소년을 데리고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기에 숨자.”
“아저씨, 놈이 우릴 봤어요. 더 멀리 도망가야 해요!”
“정신 차리고 주변을 봐!”
“네?”
바위 뒤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소년은 무질서한 병사들이 서로 부딪히고 넘어지며 동료의 군화에 짓밟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곤 말을 잇지 못했다.
“기병을 잡기 위해 병사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 이런 숲에서 패닉에 빠져 움직인다는 건 자살 행위야.”
“하지만, 저기 몬스터가…….”
“개미족이다. 그것도 상당한 상위종이지.”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자세히 봐라. 저들은 일정 범위 밖으로는 움직이지 않고 있어.”
소년은 그제야 개미족과 병사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다른 곳으로 간 병사들이 이곳으로 도주해 오고 있어요.”
눈물범벅의 소년이 중년 병사에게 물었다.
“저희… 포위된 거 맞죠?”
중년 병사는 소년의 투구 위로 손을 올리며 말했다.
“살고 싶으냐?”
“네… 전… 살고 싶어요.”
중년 병사는 잠시간 고민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를 풀었다.
“그럼 이걸 주마.”
중년 병사가 소년에게 개미 목걸이를 채워 주며 말했다.
“이게 널 지켜 줄 거다.”
패닉에 빠진 병사 하나가 근처에 있던 개미족을 달고서 그들이 숨어 있던 바위로 달려왔다.
콰직.
소년에게 살려 달라고 외치며 손을 뻗던 병사는 소년의 눈앞에서 하드 워커의 턱에 잡혔고, 머리부터 씹히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핏물에 당황한 소년이 도망가려 할 때, 중년 병사가 그의 손을 잡았다.
“주변을 봐. 무작정 뛰어다니다간 너도 저들처럼 돼!”
중년 병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패닉에 빠진 소년은 그의 손을 뿌리치곤 달려 나갔다.
혼란의 도가니 속.
뛰어다니는 병사들 틈에서 부딪히고, 넘어지고, 짓밟히며 도주한 곳엔 또 다른 개미족에 의한 학살의 현장이 있었다.
“큭.”
도주하다 굴러떨어져 발목을 다친 소년을 향해 개미족이 빠르게 접근해 왔고, 섬뜩한 감각에 뒤돌아본 그는 지척까지 다가온 개미족에게 놀라 엉덩방아를 찍었다.
“으아아악!”
눈을 찔끔 감았던 소년은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자 눈을 살포시 떴다.
“헙!”
소년의 눈엔 미간을 좁히고서 자신의 가슴을 유심히 바라보는 개미 소녀가 담겼다.
‘아저씨가 준 목걸이를 보고 있어.’
눈물범벅의 소년이 떨리는 손으로 가슴에 걸린 개미 목걸이를 뜯어 워크맨에게 건넸다.
“살려 줘…….”
순간 중년 병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 소년.
‘이게 널 지켜 줄 거다.’
워커맨은 미소 띤 얼굴로 목걸이를 소년에게 걸어 줬고, 장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 우리가 없는 곳.”
‘길을 알려줬어. 왜? 내게…….’
개미족이 떠난 후, 한참이 지나서야 몸을 일으킨 소년은 쩔뚝이며 워커맨이 가리켰던 곳을 향해 움직였다.
고통을 참아 가며 이동한 소년은 동굴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꼬맹아, 여기다.”
“아저씨!”
동굴에는 많은 병사가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소년처럼 누군가에게 개미 액세서리를 받은 자였다.
“이걸 본 개미족이 제게 여길 알려 줬어요. 이건 대체 뭐죠?”
“신물이다.”
“신물?”
“개미교의 신물이지.”
소년은 중년 병사를 통해 개미교에 대한 것을 듣게 됐고, 그들이 적군을 위해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됐다.
함께 싸운 동료가 첩자였다는 걸 알게 된 소년은 허탈한 표정으로 드러누웠다.
“절… 왜 살려 주신 거예요?”
“끌려 온 너희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냐… 아니, 이곳에 있는 병사 중 전쟁을 원하는 자는 없어.”
“그럼 아저씨는 왜 이곳에 있는 거예요?”
중년 병사는 소년의 가슴에 걸린 개미 신물에 주먹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싸우지 않고선 쟁취할 수 없는 게 있기 때문이지.”
소년은 중년 병사에게서 타오르는 듯한 열기를 느꼈고, 그 너머의 동료들도 하나같이 같은 열기를 품고 있음을 느꼈다.
“누가 왕이 돼도 개미교는 이단일 거예요.”
“알고 있다.”
“다른 교단들이 가만 있지 않을 거예요.”
“알고 있다.”
왕국민 모두가 7왕자파의 승리를 점쳤지만, 개미교도에게 구해진 자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아무리 많은 병력이 모여도… 이들을 이길 순 없을 거야.’
* * *
마일도스 후작은 적 기병의 움직임을 보곤 비릿하게 웃었다.
“정예가 빠진 틈을 노려 카밀 후작을 칠 생각이군. 눈에 뻔히 보이는 짓을.”
마일도스 후작은 흑마법사 히스를 불렀다.
“자네가 카밀을 지켜 주면 좋겠다.”
“알겠습니다. 제가 나서지요.”
히스를 카밀에게 보낸 마일도스는 남은 정병을 보내 적군 기병의 퇴로를 막게 했다.
“기병이 정리되면 놈들도 오래 버티진 못할 겁니다.”
가신의 말에 마일도스는 기분 좋게 웃었다.
“지휘관이 누군지 몰라도 기병 운영의 기본도 모르는 녀석들일 거다.”
마일도스 진영의 움직임은 가르탈 진영에 전해졌다.
“마일도스 후작님이 남은 병력을 카밀 진영으로 보냈습니다.”
“뭐? 그럼 후작님의 본대는?”
“와해된 상황이죠.”
소식을 들은 가르탈 진영의 귀족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백작님, 이거 완전히 죽여 달라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 후작 놈은 무슨 생각으로 병력을 움직이는 거야?”
“전쟁이 장난인 줄 아나?”
가르탈이 손을 들어 귀족들을 조용히 시켰다.
“두 후작은 전쟁 경험이 없다. 자신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테지.”
“백작님, 혹여라도 후작이 당하면 장기전이 될지도 모릅니다. 병력 차로 봐선 별일 없겠지만, 무패의 부쉬트니는 전장에 잔뼈가 굵은 사내입니다. 대비하시는 게…….”
“부쉬트니라.”
* * *
준비된 중장보병을 뚫어 낸 적 기병대의 돌파력은 아군 지휘부의 계산을 넘어선 것이었으나, 다행히도 나르본느와 디아가 그들을 멈춰 세웠다.
추진력을 잃은 적 기병은 필라이를 주축으로 한 왕실 친위대 기사와 정예 보병에 의해 포위됐다.
‘마스터들도 별것 없군.’
북부 최강자인 두 마스터급 기사를 걱정했는데, 제국에서 활동했던 아다만티움급 용병인 디아의 상대는 아니었다.
‘하긴, 충격을 흡수할수록 강해지는 디아야. 이런 전장이야말로 그녀가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긴 해.’
이대로 적 기병을 잡아내면 앞으로의 전투에서 아군 기병의 전략적 가치가 수직으로 상승할 테고, 부쉬트니가 카밀 후작을 쓰러트리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면…….
‘장기전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전제는 아군 기병이 무사할 때의 이야기.
‘뭐야? 지금 기병을 쌈 싸 먹으려는 건가?’
마일도스 후작의 진영에서 다수의 병력을 내보내며 병력 밀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미끼인가?’
너무도 큰 미끼.
우리가 제논을 미끼 삼아 함정을 팠듯이, 놈들도 같은 전략이 아닌가 의심됐다.
‘흠. 함정치곤 너무 허술한 걸…….’
함정이든 아니든 기병을 향해 움직이는 병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출격해야 했다.
‘내가 마일도스를 노리면 놈들도 회군할 테지.’
대규모 전장에선 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고로, 내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기병 전력을 과대평가했어.’
카밀군을 돌파하지 못한 기병대는 마일도스가 지원군을 보내기 전부터 퇴각 준비에 들어갔고, 지원군이 한창 이동해 올 때 퇴각해 버렸다.
‘이렇게 빠져나갈 줄 알았으면, 내가 나설 필요가 없었잖아.’
오판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기의병 100기의 돌파력은 기마병과 차원이 달랐다.
“몬스터다!”
“개미족이다. 도망가!”
처음으로 포성을 들은 미개인처럼 놀란 병사들이 등을 돌리며 길이 수월하게 뚫렸다.
장창으로 적당히 쑤시는 척만 해도 알아서 자멸해 주니…….
‘숲에서도 느꼈지만, 북부 놈들은 개미족에 대해 전혀 몰라!’
나는 적진을 돌파하며 개미 지배로 적장이 있는 곳을 탐색했다.
‘저기다!’
“후작님,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개미족의 체력으론 이곳까지 올 수가…….”
마일도스의 가신 중 개미족에 대해 잘 아는 녀석이 있었다.
‘확실히 개미족은 지구력이 떨어지긴 해.’
격렬하게 움직일수록 몸과 뇌가 가열되는 개미족.
땡볕에선 체력 소모가 더 컸다.
“메드록스 자작, 저놈들이 언제쯤 지칠 것 같나?.”
“그게, 지금쯤이면 이미 지쳐 쓰러져야…….”
“지금 날 우롱하는 것이냐!”
평범한 개미족이었다면 메드록스 자작의 말대로 지금쯤 지쳐 쓰러졌겠지만.
내가 데려온 아이들은 둥지에서도 최정예로 꼽히는 개미들로 모두 상급 개미기공 6단계인 대순환기를 마스터한 상태였다.
즉, 체내의 마력을 실시간으로 순환시켜 열기를 식힘으로써 개미족의 약점 중 하나인 지구력 부족을 극복한 개체들인데.
“이대로 있다간 여기까지 오겠어!”
마일도스와 지휘부의 귀족들이 부랴부랴 대피하려 했지만, 늦은 감이 있었다.
‘됐다! 거리를 충분히 좁혔어!’
적군 기병은 고립된 체 힘겨운 싸움을 치르고 있었고, 아군 기병은 무사히 복귀 중이다.
이대로 내가 마일도스 후작만 잡는다면 지휘 체계에 혼란이 올 터.
승리를 예감하며 지휘 막사를 향해 돌격할 때, 개미 지배에 기병 300기가 감지됐다.
‘가르탈 백작군이잖아! 언제 온 거지?’
진영 간 거리를 계산해 봤을 때, 우리가 움직일 무렵 저들도 움직인 게 분명했다.
300기의 기병을 이끌고 온 가르탈 백작이 마일도스 후작에게 말했다.
“전장은 변수로 가득한 곳입니다. 여긴 위험하니 후방에 물러가 계십시오!”
말을 마친 가르탈이 우릴 향해 돌진해 왔다.
“후작님, 후방으로 피하시죠.”
마일도스는 가신들의 피난 권유를 뿌리치며 말했다.
“아니, 됐다. 가르탈 백작이 와 줬으니, 개미족 무리도 금방 정리되겠지.”
가신들은 불안해했지만, 확신에 찬 마일도스 후작은 기병과 기의병의 승부를 지켜봤다.
“충돌을 대비하라!”
가르탈의 기병들은 장창을 옆구리에 끼운 채 돌격해 왔다.
‘우리와 같은 전법이군.’
장창의 품질은 우리보다 떨어져 보였지만, 달려오는 속도는 놈들이 더 빨랐다.
‘높이도 놈들이 더 높아!’
충돌을 피하기엔 늦었다.
나는 암흑마창에 두른 봉마의 사슬 두 개를 풀어 왼팔에 감았다.
‘자, 네 차례다. 맘대로 날뛰어 봐라!’
충돌 직전, 마창에서 쏘아진 마강기 줄기가 적 기병 선두를 휩쓸었다.
쿠콰콰쾅!
마스터인 가르탈도 마강기에 휩쓸려 낙마했다.
적 기병 선두를 뭉개며 파고든 기의병들이었지만, 300기의 충돌 에너지를 받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양측 모두 상당한 피해를 보곤 거리를 벌렸다.
가르탈이 주인 잃은 말에 탑승하여 다시 한번 돌진 대형을 구성하는 동안, 암흑마창을 봉인한 나는 부상 입은 개미를 수습하여 조금씩 물러났다.
정비를 마친 가르탈은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오늘은 여기까지군.’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의 시선이 부딪히며 암묵적인 합의가 오갔다.
그리고 난 부하들에게 복합단궁을 꺼내게 했다.
“편전을 걸어라.”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