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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자원 개미군단-165화 (164/189)

165화. 내전 (11)

기의병의 무장으론 돌격용 장창, 근접용 코피스, 원거리용 복합단궁이 있다.

초기의 단궁은 뽕나무와 대나무를 붙여 만들었다.

둥지에는 다양한 연구 개발팀이 있어, 무기에 관한 연구 개발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단궁의 개량이 거듭된 결과.

단궁 제조에 미노타우로스 뿔이 쓰이게 되며 각궁이 탄생했다.

‘소재가 좋았어.’

만들어진 각궁은 미노각궁이라 불렸고, 매우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으나 인간형 개미 중에서도 최정예만이 겨우 당길 수 있는 물건이었다.

“저격 준비!”

기병 300기와 충돌하고도 온전한 워커맨들은 모두 미노각궁을 다루는 정예 중의 정예.

그들이 활시위를 당기자 가르탈은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물러날 생각이 없는 건가?”

인간들은 주로 장궁을 썼고, 유효 사거리는 100미터 전후였다.

복합궁을 만들지 않는 이곳에선 단궁의 사거리는 장궁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가르탈과 우린 200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멍청한 놈들…….”

그가 우릴 한심하게 보는 것도 이해는 갔다.

‘미노각궁의 위력, 제대로 보여 주마.’

나 또한 활시위에 통아를 걸치곤 편전을 꺼냈다.

나와 부하들이 조준을 마쳤을 때쯤, 방패를 앞세운 기병들이 돌격 준비에 들어갔다.

“놈들이 화살을 쏘면 돌격한다!”

편전을 쏘고 재장전에 들어가면 놈들이 우리에게 닿기 전에 두 발 정도 더 쏠 수 있지만, 그랬다간 가속도가 붙은 기병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

돌격에는 돌격으로 대응해야 하는 법.

하지만, 나는 그들과 격돌할 생각이 없었다.

“쏴라!”

그들의 문명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편전이 바람을 탔다.

“돌……!”

쏘아진 편전이 곡선을 그리며 자신을 가볍게 넘어가는 걸 본 가르탈의 눈이 크게 떠졌다.

편전이 떨어져 내린 곳은 지휘 막사 앞, 마일도스 후작과 그 측근들이 관전하던 곳.

푸푸푸푹!

적들은 그 누구도 화살이 그곳까지 날아갈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대륙의 것과 다른 짧은 화살, 편전 세 개가 마일도스의 몸에 박혔다.

불의의 습격을 당한 마일도스는 가슴과 배에 박힌 편전을 보곤 허탈해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쓰러진 마일도스.

‘한동안 못 일어나겠군.’

개미 지배로 마일도스를 비롯한 다수의 귀족이 쓰러지는 걸 확인한 나는 퇴각 명령을 내렸다.

“성직자를 불러라!”

“마법사를 불러와!”

혼란에 빠진 적진.

도주하는 우릴 막으려는 자도, 쫓는 자도 없었다.

적진 깊숙한 곳에서 빠져나온 내가 본대에 합류했을 무렵.

디아와 일기토를 벌인 라이포가 피떡이 되어 가는 중이었고, 아군 기병이 적 기병의 퇴로를 막아 버린 상황이었다.

‘도울 필욘 없겠어.’

좌군과 우군이 본대에 합류하며 적 기병은 사면초가에 놓였다.

“네놈들 내가 누군지 아냐? 모른다고? 이 깃발을 보고도… 잠… 잠깐만!”

승산이 없음을 인지한 적 기병들은 하나둘 무기를 버렸다.

“항복이다! 살려 줘!”

아군은 전리품으로 다수의 귀족과 전마를 얻었다.

병사들이 전리품을 수습할 때, 부상 개미를 후방에 보낸 나는 무너져 가던 최전선을 지원했다.

“피어레스, 잘 구분해서 쳐!”

“쟤들이 자꾸 창 들이밉니다…….”

“대충 걷어 내기만 해!”

처음 우릴 본 아군 병사들은 겁을 잔뜩 먹었지만, 우리가 적병만 죽이고 있음을 인지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개미족은 같은 편이니 찌르지 마라!”

전선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낀 것일까?

본대를 향해 돌격해 오던 적병의 일부가 퇴각 명령이 없었음에도 등을 돌렸다.

‘끝났군.’

명령 체계가 무너진 군대는 군대라 할 수 없다.

병력 차가 무색하게 학살의 시간이 왔다.

일찍 등을 돌린 자들은 살아남았지만, 눈치 없이 버틴 자들은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총공격이다! 7왕자파를 쓸어버리자!”

나르본느와 디아도 전방에 합류하여 무기를 휘둘렀고, 타르도 돌아다니며 대장급 병사를 암살했다.

지형 탓인지 나르본느는 숲과 던전에서 보이던 광역기를 쓸 수 없었고, 타르도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더 강한 녀석은 없는 것이냐?”

소극적인 둘과 달리 디아는 저돌적으로 적진 깊숙이 파고들었다.

“강한 녀석을 데려와라!!”

오러를 드러내지 않은 디아는 일개 중장병으로 인식됐는지 병사들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됐다.

‘전쟁을 즐기고 있어.’

그녀를 상대하던 병사들은 아무리 두드려도 뚫리지 않는 갑주에 절망했고, 막아 봐야 소용없는 대검에 찍혀 생을 마감했다.

“돌격이다! 쓸어버려라!”

정비를 마친 기병 부대가 투입되며 무쌍을 찍기 시작했다.

“십인장과 백인장을 찾아라! 놈들만 정리하면 우리의 승리다!”

나는 밀리는 곳을 지원하며 돌아다녔고, 잘 익은 벼를 수확하듯 창을 휘둘렀다.

‘적들의 대형이 깨졌어. 이대로 밀어붙이면 대승이다!’

죽음이 가득한 전장은 흑마력의 발생지다.

사도들은 대기에 가득한 흑마력을 흡수해 무한에 가까운 동력을 얻었다.

‘다들 마력에 취한 것 같군.’

마력이 충분해도 그들에겐 나와 같은 재생력이 없다.

지금은 마력에 취해 날뛰곤 있지만, 분명 후폭풍을 겪을 터.

그에 비해 나는 지친 부하들을 돌려보내고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전장을 누볐다.

태양이 질 무렵 적군은 멀찍이 물러갔다.

얼마나 죽었는지, 얼마나 죽였는지…….

알 수가 없다.

‘처참하네.’

진지의 재구축을 위해 전장의 시신을 치워야 했다.

나는 개미족 통로와 이어지는 곳에 시체 처리장을 만들게 했고, 개미교도들로 하여금 시신을 옮겨 두게 했다.

페로몬 표식을 묻혀 뒀으니 통로를 오가는 일개미가 발견할 것이고, 밤이 되면 시체를 가져갈 것이다.

인간은 식량으로서의 등급이 높은 편이다.

이번 전투로 개미족은 쥐들에게 입은 식량 피해를 말끔히 복구했다.

‘진화의 바람이 불겠어.’

대승을 거두긴 했지만, 이쪽 피해도 만만치 않다.

전리품을 취하고 시체를 정리하는데 며칠은 걸릴 터고,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살아남은 병사를 진급시켜 부대를 재편해야 한다.

‘포로에 대한 처우 문제도 있고, 전공에 대한 문제도 있겠지.’

이런 사정은 상대측도 마찬가지라 대규모 전투 후에는 각자 정비 시간을 가졌다.

‘며칠간 조용하겠어.’

피어레스의 부대는 단출해서 정비할 게 없다.

“움직일 수 있는 녀석들은 모두 메디의 의료 부대를 지원하자!”

난 멀쩡한 기의병을 데리고 의료 개미를 지원했다.

후방에 자리 잡은 메디의 의료 부대는 치료소를 운영했고, 전투 중 발생한 중상자를 치료해 왔다.

치료가 끝난 중상자는 회복실로 옮겨져 개미교 여인의 간호를 받았다.

치료소는 전방의 병사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극비 사항이었는데, 재활을 마친 병사들이 부대에 복귀하며 치료소의 존재가 차츰 알려졌다.

개미 부대와 개미 치료소.

여론은 좋지 못했지만, 개미족 부하들은 묵묵히 맡은 일을 수행했다.

5일이 흘렀다.

우린 전투 준비를 마쳤으나, 적들은 그렇지 못했다.

카밀 진영과 마일도스 진영에서 백기를 든 사자가 찾아와 지휘관급 포로를 요구했다.

“날 따르지 않은 귀족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다.”

몇몇 귀족은 자신들이 포로가 됐을 때가 우려되는지, 전장의 룰에 따라 포로의 몸값을 받자고 했으나, 그들은 제논의 미움을 살 뿐이었다.

“이건 영지전이 아니다! 패배는 죽음뿐임을 명심하라!”

회의 끝에 마스터급 기사인 라이포와 카시안을 제외한 지휘관급 포로는 모두 참수형에 처했다.

버려진 그들의 시신은 개미족이 잘 챙겨 갔다.

*   *   *

편전이 지휘부 막사 앞에 떨어져 내린 순간, 가르탈은 전의를 상실했다.

“화살이 어떻게…….”

여유롭게 빠져나가는 개미족의 꽁무니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가르탈.

마일도스 후작이 당했다는 보고에 몸을 돌렸다.

지휘부 막사에 도착한 가르탈은 싸늘한 주검을 마주하게 됐다.

“가르탈 백작! 마일도스 후작의 상태는 어떤가?”

군대의 지휘도 내팽개친 채 카밀 후작과 귀족들이 달려와 마일도스의 죽음을 확인했다.

“이럴 수가…….”

7왕자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마일도스의 죽음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다.

카밀은 마일도스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가르탈을 탓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자네가 있었음에도 어째서!”

“화…….”

화살에 당했다고 말하려던 가르탈은 입을 닫았다.

“후작, 그보다 퇴각 명령이 먼저다.”

가르탈은 카밀에게 충고를 남기곤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아직이다. 아직은 아니야.”

카밀은 진영이 무너져 피해가 커짐에도 기병이 돌아오지 않아 차마 퇴각 명령을 내리지 못했고, 마일도스 진영은 지휘 체계가 망가진 상황이었다.

“퇴각 명령을 내려라.”

끝내 기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카밀.

전투가 끝나고 정비에 들어간 카밀군과 마일도스군은 부족한 지휘관으로 인해 골머리를 썩게 됐다.

흑마법사 히스와 호르카의 상황도 좋지만은 않았다.

“네가 후작을 지켰어야지!”

“삼 장로도 그걸 봤어야 해요.”

“뭘? 고블린도 쓰는 활을 개미족이 쓴 게 그렇게 신기한 일이냐!”

“그냥 활이 아니란 게… 문제죠.”

죽은 후작을 살려 낼 수도 없는 노릇.

뒷배를 잃은 히스와 호르카는 고심 끝에 카밀을 찾아갔다.

“카밀 후작님의 대의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가신 대부분을 잃어 힘이 빠진 카밀은 왕국 최강자인 가일론 백작의 목을 벴다고 알려진 히스를 환영했다.

“잘 찾아왔네. 내 그대를 중히 쓰겠네.”

차츰 안정을 찾아가는 카밀군과 달리, 마일도스군은 서서히 붕괴했고, 다나스 백작가의 파멸과 그 원흉이 북상 중이란 소식에 마일도스군 수뇌부는 회군을 결정했다.

마일도스군이 발을 빼며 힘을 잃은 칠왕자파는 바하르 평야에 막혀 시간을 허비하게 됐다.

*   *   *

마일도스군이 전장 밖으로 이동하자, 제논과 귀족들은 그들의 우회 가능성을 논의했다.

“이쪽으로 움직일 수도 있겠어.”

“그들이 올 곳에 함정을 파 두는 것도 괜찮겠군요.”

“놈들이 왔을 때면, 수성 준비가 끝났을 겁니다. 이제 슬슬 물러날 준비를 해야지요.”

“왜 우리가 물러나야 하지? 저들이 우회해 오면 앞뒤로 칠 수 있을 건데.”

“가르탈군이 건재합니다. 앞뒤로 치려다 압살당하는 건 우리 쪽일 겁니다.”

우회로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지금 병력으론 평야를 틀어막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며칠 지나지 않아 문트리아가 마일도스군의 상황을 보고했다.

“못 살렸나 보군.”

모두가 놀란 가운데 내가 담백하게 말하니, 제논이 날 바라봤다.

“다크 님, 알고 계셨던 겁니까?”

제논의 물음에 나는 가슴과 복부 쪽 두 곳을 짚으며 말해 줬다.

“여기랑 여기에 화살을 꽂아 주긴 했어.”

“그럼 왜 말씀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 정도로 죽을지는 몰랐지.”

나는 마법사와 성직자의 치료 마법을 고려했던 것인데, 귀족들은 내 말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다크 님, 인간은 심장에 활살이 꽂히면 죽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고 말해 주려 했는데, 부쉬트니와 비브라가 한마디씩 했다.

“조금만 일찍 말해 줬으면 이렇게 마음 졸일 일도 없었을 겁니다.”

“개미족은 심장에 화살이 박혀도 안 죽나 봅니다.”

보고 누락으로 한 소리 듣긴 했지만, 적장의 죽음에 지휘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서의 공로는 전쟁이 끝난 후 치하하겠다.”

회의가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제논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돌아가는 길에 개미 지배로 제논을 살펴봤다.

“우회가 아니라 회군이었다니.”

홀로 남은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일도스가 죽었어… 이제 쿠드라 후작만 돌아오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던 암울했던 상황에 희망을 본 듯한 제논.

그는 주먹을 그러쥐며 뇌까렸다.

“살 수 있어.”

지금의 그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중으로 보였다.

내 진영으로 돌아와 보니, 개미족에 대한 여론이 변해 있었다.

“저번 전투에서 무려 마일도스 후작을 사살했다지 뭐야!”

“그럼 왜 말하지 않았던 거야?”

“전공에 관심이 없었던 거지.”

“전공에 관심 없다는 건 다른 목적이 있는 건가?”

대화를 나누던 병사가 경멸의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친구를 돕는데 이유가 필요해?”

“그게 무슨 말이야. 제논 저하와 개미족이 친구라는 거야?”

“그게 아니면 왜 몬스터가 우릴 돕겠어.”

병사들이 말한다.

개미족은 친구의 어려움을 방관하지 않는다고…….

“흠.”

아무래도 여론이 바뀐 건 문트리아와 개미교도들의 짓인 듯했다.

“다크 님, 저희가 왔습니다.”

시신과 부상 개미를 수거해 간 둥지에서 헤르피아와 게르피아를 보내 왔다.

“몇 마리나 데려왔어?”

“둥지도 바쁜 상황이라…….”

100기였던 기의병이 300기로 늘었다.

‘전략의 폭이 넓어지겠어.’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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