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66화 (165/189)

166화. 내전 (12)

바하르 평야.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가 있다.

우린 후자 쪽이었다.

“진형을 유지해라!”

열세였던 우린 소모전에 불리한 위치였지만, 상대 기병을 잡아내며 상황이 바뀌었다.

강탈한 전마로 기병대를 보충한 제논은 비브라와 부쉬트니에게 각각 1,000기의 기병을 맡겼고, 말단 포로를 회유하여 병력을 보충했다.

‘아직까진 열세지만 당장 무너지진 않겠어.’

돌격해 온 적들은 개미표 방패와 창을 앞세운 병사들을 뚫어내지 못했고, 전장을 누비는 기병대를 막지 못해 막대한 피해를 봤다.

장기전이 되어버린 전장.

마일도스군이 빠졌는데, 아직도 아군보다 적군이 두 배는 많았다.

연승을 거두고 있으나, 피해는 누적된다.

귀족들은 언젠가 저지선에 공백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뚫리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지휘부는 퇴각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치료소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

개미 지배로 각 진영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나는 퇴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시간은 우리 편이야.’

이쪽 부상병은 치료소를 거쳐 회복하여 부대에 복귀했고, 적들은 작은 부상에도 감염되어 죽어갔다.

“너… 살아 있었구나!”

“네, 이렇게 멀쩡해졌습니다.”

부상병의 복귀는 단순히 말단 병사 하나가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오십인장이 되셨군요.”

“너도 십인장이구나.”

병사들의 생존율이 높아짐으로 부대의 정예화가 가속됐고, 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줄며 병사들의 전투력이 급증했다.

적진은 전투를 거칠수록 사기가 급속히 떨어졌고, 정예병이 소모되며 오합지졸이 되어 갔다.

개미족 부대, 타르, 기병대가 눈에 불을 켜고, 정예병을 찾아 죽였기 때문이다.

전투 때마다 기의병을 이끌고 적진을 누볐더니 지금에 이르러선 아군에게 전율을, 적군에게 절망을 선사하는 특수부대로 인식됐다.

“이젠 가르탈의 기병들도 개미족 부대를 피한다더군.”

“저들을 적으로 만났다면 난 뒤도 안 보고 도망갔을 거야.”

적들도 바보는 아니었고, 기의병이 무적인 것도 아니다.

적진을 누비다 보면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강군과 충돌하여 피해를 보기도 했다.

전투가 끝나고 확인해 보면 30%가량이 중상이다.

인간의 군대는 전투가 이어질수록 수가 줄지만, 개미족 부대는 그렇지 않았다.

치료가 필요한 개미를 둥지로 보내면 체력 만땅의 개미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다크 님을 뵙습니다.”

게아와 네아가 각각 백인대를 데려오며 휘하 병력이 500기로 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장 수준이 높아지는 군대와 늘어나는 개미족 부대에 좌절한 적군 병사들은 싸우는 시늉만 할뿐.

진심으로 바하르 평야를 뚫어 보려는 병사는 없었다.

가르탈과 카밀도 이를 아는지 병력을 소극적으로 운영하며 몸을 사렸다.

치료소와 보급의 중요성을 깨달은 귀족들은 나와 문트리아에게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반테라 자작성, 수성 준비를 끝냈습니다.”

“반젤 자작성, 수성 준비를 마쳤습니다.”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하여, 제논군은 평야에서 물러났다.

*   *   *

바하르 평야가 열리며 가르탈군과 카밀군은 반젤성과 반테라성으로 갈 수 있게 됐다.

두 성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높다.

7왕자파가 둘 중 한 곳을 차지하게 되면 남부 귀족들은 목 앞에 비수가 드리워진 감각일 것이고, 그들의 결속은 와해될 것이다.

제논은 두 성을 어떻게든 지켜야 하는 반면, 가르탈과 카밀은 두 성 중 하나만 차지하면 전쟁의 승패는 결정된다.

“시간이 없다!”

겨울이 오기 전에 승부수를 띄워야 했던 가르탈과 카밀은 성문의 내구도가 떨어져 보이는 반젤성에 집중하기로 했다.

“백작님, 병사들의 물건 중 이런 게…….”

“이건 깃발인가?”

공성을 준비하던 중, 가르탈은 개미 깃발을 발견하게 됐고, 은밀히 조사를 진행했다.

“아무래도 놈들이 심어 둔 세작들인 것 같습니다.”

“한둘이 아니군.”

“오랫동안 준비해 온 듯합니다.”

“카밀군은 어떻지?”

“그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고 있었다면 손도 못 써 보고 당했겠군.”

“네. 결정적인 순간 세작들이 움직였다면, 승패가 뒤집혔을 테지요. 카밀 후작님께 알리고 제거에 들어가겠습니다.”

“잠깐… 후작에겐 알리지 마라.”

부관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놈들은…….”

“이용할 생각이니, 병사를 붙여 둬라.”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가르탈이 부관에게 등을 보이며 말했다.

“승패가 결정된 전쟁이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린 그 후를 준비한다.”

부관 역시 가르탈의 말에 동의했다.

“그럼 나가 봐.”

부관이 나가자, 가르탈은 꼬마 시절의 제논을 떠올렸다.

“가르탈 경, 이것 봐! 여기랑 여기만 차지할 수 있으면 우리가 제국보다 훨씬 커!”

국토가 넓다고 제국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당시의 가르탈은 난감한 웃음으로 답했다.

“저하, 제 영지는 여기 있는데, 저기까지 어떻게 가겠습니까? 귀족들이 길을 열어 주지 않을 겁니다.”

“길목에 있는 귀족들과 친해지면 되잖아?”

“설령 길을 열어 준다 해도 저 땅을 다 차지하기 전에 제국이 간섭해 오겠지요.”

“그럼, 여기랑 동맹을 맺고 제국을 막으면 돼.”

“사막 왕국 아스만이군요. 그들도 제국 편이란 건 아십니까?”

“나도 알아. 모든 왕국이 제국의 말을 듣고 있다는 거… 하지만 그들도 원해서 듣는 게 아니야. 다들 무서워서 듣는 거지. 누군가 용감하게 나선다면 분명 알아줄 거야.”

“그게 저하란 말씀인가요?”

어린 제논은 가르탈을 가리키며 웃었고, 가르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다.

“제논 드 클라우드… 너는 아직도 허황된 꿈을 꾸는가? 정녕 그렇다면…….”

막사를 나선 가르탈은 반젤성을 향한 돌격 명령을 내렸다.

*   *   *

제논이 보병 3천, 부쉬트니가 500기의 기병을 이끌고 반젤성으로, 유리가 보병 3천, 비브라가 500기의 기병을 이끌고 반테라성으로 갔다.

나도 휘하 병력을 절반으로 나눴다.

“피어레스와 게아는 날 따라오고, 게르피아, 헤르피아, 네아는 유리를 지원해 줘.”

세크리는 내 옆에 붙어 시중을 들어줬고, 나르본느도 나와 함께했다.

디아와 타르는 유리를 지원하기로 했고, 메디는 절반의 의료 개미를 부관에게 맡겨 유리 측에 보냈다.

적들도 군을 나눴지만 반테라성에는 최소한의 병력만 보냈고, 나와 제논이 있는 반젤성을 노렸다.

성이 넘어가면 남부 전체가 적군의 칼날 아래 놓이게 된다.

“겨울까지 어떻게든 사수해야 하네!”

제논이 세력을 보존하기 위해선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배수진이군.’

지휘부의 각오와 달리, 수성전에선 기동력이 필요치 않다.

“다크 님, 언제 돌격합니까?”

피어레스는 자살 충동이 있는 듯한데.

“생각을 좀 하고 말하자.”

기병들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대기 상황이었고, 우린 수성에 필요한 물품을 운반해 주거나, 거리를 돌아다니며 치안을 살폈다.

“엄마! 괴물이야!”

“보면 안 돼!”

우릴 본 주민들이 불안해하니, 대기의 흑마력 농도가 높아져 갔다.

‘여길 공략할 생각인가?’

북문 앞에 진을 친 적들은 수비군보다 세 배는 많았지만, 준비가 되어 있는 성을 공략하기엔 부족해 보였다.

5일 동안 돌격해 온 적들을 막아 내니, 적들도 이틀간 휴식을 취했다.

다시금 돌격해 온 적군.

이번에도 뚫는 시늉을 하다 돌아갈 줄 알았는데…….

쾅!

굉음과 함께 북문이 날아갔다.

‘뭐야?’

병사들이 북문으로 몰려갔지만, 성문으로 들어온 흑마법사 부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라! 약탈의 시간이다!”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겁탈해라!”

“호르카, 반대다.”

“미안, 나도 전쟁은 처음이라…….”

북문의 저지선은 금세 무너졌고, 적군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기병이 나서서 북문을 탈환하려 했지만…….

“어둠의 마나여 적들에게 불지옥을 선사하라. 파이어볼!”

“죽음의 빛이여 저들을 심판하라! 라이트닝!”

“안식의 바람이여 저들을 토막 내라! 윈드 커터!”

흑마법사 부대의 압도적 화력에 기병들이 쓸려 나갔다.

말을 버린 기사들이 거리를 좁혀 봤지만, 흑마법사 부대를 이끄는 노인과 여인에게 끔살 당했다.

‘강해…….’

불, 전기, 바람을 다루는 노인과 금속을 액화시켜 조종하는 여인.

가까이 있던 개미족이 북문으로 지원 갔다가 마법에 휩쓸렸다.

스치면 치명상.

‘상성이 좋지 않아!’

곤충 몬스터와는 상성 최악의 흑마법사들.

“저놈들은 뭐야?”

나르본느도 그들을 보곤 고개를 저었다.

“저 두 놈은 힘들겠는걸. 디아라도 불러올까?”

“디아가 도착했을 때는 성이 함락될 거예요.”

“그럼 어쩌려고?”

“제가 처리해야죠.”

히나의 부탁이 있어, 웬만해선 직접 상대하지 않으려 했는데…….

“베슬리, 가자!”

“네!”

베슬리를 올라탄 나는 흑마법사들을 향해 돌격했다.

마법사들의 화력은 강력하지만, 마나에 한계가 있어 전투 지속력이 매우 떨어진다.

인당 서너 발의 마법을 쏘곤 물러나기 시작했다.

“베슬리, 속도를 높여!”

밀려오는 병사들을 뚫어 낸 나는 마법사들의 꽁무니를 잡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노인이 날 환영해 줬다.

“죽어라!”

검은 불덩이를 날린 노인은 앓던 이를 뺀 듯한 상쾌한 표정을 지었다.

좌우 기동이 힘든 베슬리는 불덩이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피할 필요가 없다.

공허의 마력으로 마법을 지워 버리니, 노인의 표정이 굳었다.

“3장로! 저건 4차 진화종인 데몬 앤트야! 마법 내성이 있어!”

여인의 말에 노인은 눈을 크게 뜨더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2장로와 4장로가 말한 상위종인가?”

비장의 무기를 꺼내듯 노인은 천으로 꽁꽁 싸맨 물건을 풀어 보였다.

“동남동녀 천 명의 마력을 머금게 한 파멸의 검이다! 네놈이 하이 데몬이라 해도 내 상대는…….”

마법사 주제에 거리를 내주다니.

“병신이냐?”

암흑마창에서 풀어 낸 봉마의 사슬 두 개를 휘둘러 하나는 노인의 검을 감았고, 나머지 하나로 노인을 감았다.

“뭐냐 이건?”

사슬에서 풀려난 마창이 마강기 두 줄기로 노인을 썰어 버렸고, 노인은 자신이 썰리는 순간에도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3장로!”

노인을 처리한 마강기는 옆에 있던 여인을 향해 움직였다.

“베리어!”

경악한 여인은 금속 방벽을 만들어 마강기를 막아 냈다.

“잠깐만!”

여인이 타임을 외쳤지만, 마법사의 전투력은 정확히 측정할 수 없어 방심은 금물이었다.

‘히나가 말해 준 장로다!’

내성 특화종인 내게 웬만한 독은 통하지 않지만, 금속 독은 어떨지 알 수 없다.

‘마법 범위에 들어간 이상 끝내야 해!’

회수한 사슬을 던졌다.

사슬은 금속을 허물어 버리며 여인을 감아 버렸다.

“항복이야! 살려 줘! 나도 너희를 도울게!”

필사적인 애원.

하지만, 마창의 마강기는 내가 제어하는 게 아니었다.

촤라라락!

흑탑의 2장로 히스와 8장로 호르카의 육편이 비산했다.

이를 본 40명의 흑마법사가 마법을 쏟아냈다.

불, 전기, 바람의 칼날.

마법 폭격은 적아를 가리지 않고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장로님들이 방심만 하지 않았어도…….”

“개미족 따위에게 당하다니!”

먼지가 가라앉았다.

상처 하나 없는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왜? 천적 사냥에 특화된 개미족은 처음 보냐?”

마법사들은 판단이 빨랐다.

신속히 등을 돌렸지만…….

그들의 느린 걸음으론 베슬리를 따돌릴 수 없다.

암흑마창은 탐욕스럽다.

일대의 마력을 먹어 치움과 동시에 내 마력도 먹어 치워 인근을 초토화시킨다.

여기가 적진이었다면 마창이 날뛰게 둬도 상관없지만, 여긴 북문 근처다.

성벽을 박살 낼 수 없으니, 마창의 해금은 자제해야 했다.

흑마법사를 모두 처리한 나는 마창을 봉인한 채 뚫려 버린 북문을 막아 보려 했지만, 혼자선 밀려오는 적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안 되겠다. 이러다 파묻히겠어.’

작전상 후퇴하여 기의병과 합류해 북문 탈환에 나섰다.

북문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적을 베던 중, 성벽에서 개미 깃발이 흔들렸다.

‘신호인가?’

총공세를 감행하던 적진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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