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67화 (166/189)

167화. 내전 (13)

“와아아아! 북문이 열렸다, 돌격하라!”

반젤성 북문이 뚫렸을 때, 제논은 내성 대전에 있었다.

“저하, 대피하셔야 합니다!”

“일단 벨레삭 백작성으로 피하셔서 후일을…….”

제논은 핼쑥한 표정으로 대피를 종용한 귀족에게 물었다.

“내게 후일이 있을 것 같으냐?”

각오를 다지자는 제논의 말에 귀족들이 반발했다.

“저하! 쿠드라 후작이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면……!”

제논은 깨달았다.

내성에 남은 귀족 중, 승리를 원하는 자가 없음을.

‘부쉬트니와 필라이는 북문을 향해 갔다. 여기 있는 자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간신들뿐.’

허탈해하던 제논은 간신들을 기억하기 위해 장내 구석구석을 살폈다.

‘저자는…….’

일말의 불안감도 찾아볼 수 없는 문트리아를 본 제논은 손잡이를 내리쳐, 간신들의 입을 막았다.

“문트리아, 그대도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귀족들의 시선을 한껏 받게 된 문트리아.

그녀의 복장은 사뭇 특이했다.

보호가 필요한 주요 부위가 철편으로 장식된 드레스.

갑옷이라 하기에는 화려하며, 여성복으로 보기엔 무거워 보였다.

다수의 귀족이 문트리아의 복장에 눈살을 찌푸렸고, 그녀는 고개를 살포시 숙여 예를 취하며 답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하.”

“그럼 나와 귀족들은 뭘 해야 하지?”

문트리아는 장내를 차분히 둘러봤다.

“큼.”

귀족들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짐짝 취급당했다고 느낀 귀족들이 격분했다.

“상인 주제에 저하를 능멸한 것이냐!”

“여기서 가만히 있다 죽으라고?”

“저하, 제가 길을 뚫을 테니 지금 대피하시지요.”

“길을 뚫기에는 늦었습니다. 비밀 통로를 이용하시지요!”

귀족들의 격한 반응에도 제논은 문트리아만을 바라봤다.

“북문이 뚫렸다. 적들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며 총공격을 시작했다. 이대론 반나절도 버티지 못할 텐데, 그대의 얼굴엔 일말의 불안도 보이지 않는구나. 그 연유를 알려줄 수 있겠나?”

문트리아는 고개를 숙이며 반문했다.

“저하, 저 병사들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아십니까?”

“봉급을 받는 정규군이 있을 거고, 징병되어 온 자들도 있겠지. 너희 개미교도처럼 지원 온 자들도 있을 테고.”

“강제로 끌려온 자들은 모두 돌려보낸 지 오랩니다. 지금 남은 자들은 제논 저하를 위해 싸우기로 한 자들이지요.”

제논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가…….”

훈훈해진 지휘부.

귀족 하나가 찬물을 끼얹었다.

“저하, 저들은 푼돈에 종군을 결정한 하층민들입니다. 저들 중 대의를 가진 자가 있었다면 제 눈에 들었을 테지요.”

제논의 눈이 실망으로 물들 때, 문트리아가 말을 이었다.

“충분한 보상을 받으며 싸우는 저희 병사들과 달리, 적병은 절반 이상이 끌려와 화살 받이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전장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저하께선 아십니까?”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귀족들은 평민들의 생각 따윈 중요하지 않으니, 묻는 말에나 답하라고 소리쳤다.

그들의 야유 속에 침묵하던 문트리아.

한참이나 뜸을 들인 그녀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저하, 저들의 함성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승기를 잡았기에 지르는 함성이 아닌가? 이대로 몰아붙여 성을 함락시키고 싶겠지.”

“제 귀에는… 살려 달라는 애원으로 들리옵니다.”

순간, 제논이 굳었다.

“헛소리!”

귀족들의 야유로 가득한 대전.

제논은 뭔가에 홀린 듯 권좌에서 내려와 테라스로 이어진 문을 활짝 열었다.

“와아아!”

함성을 내지르며 몰려오는 적의 파도.

그에 맞서기 위해 움직이는 아군의 인영.

북문 쪽 깃발이 하나둘 꺾이며 적군이 성벽을 점령해 가는 와중, 누군가가 개미 깃발을 흔들기 시작했다.

꺾이고, 불타올라도 그 깃발은 누군가에 의해 다시금 세워졌다.

“보이는구나…….”

제논은 문트리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짐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느냐?”

제논은 귀족들을 둘러봤다.

“자네의 눈엔 짐이 저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느냐?”

검을 빼든 제논이 문트리아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대는 클라우드 왕국 정통을 이은 짐을 우롱했다.”

장내의 귀족들은 분노한 제논이 문트리아를 처단할 것이라 여겼지만, 제논은 문트리아를 지나쳐 대전을 나갔다.

“말과 갑옷을 준비하라! 북문으로 간다!”

“저하께서 움직이시면, 수비대가…….”

“너희는 필요 없다. 나와 함께 싸울 자만 따라와라.”

거침없이 나아가던 제논은 옆에 따라붙은 문트리아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그대, 싸울 줄 아는가?”

문트리아는 자신이 입은 개량 두정갑을 소개하며 말했다.

“모두 개미표의 명품들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착용할 일도 없는 물건들이죠. 저하의 옆이라면 상단 물품의 우수성이 전국에 알려지지 않겠습니까?”

“그댄 뼛속까지 상인이군.”

“강도보단 상인이 낫죠?”

귀족을 비꼬며 한 문트리아의 말에 제논이 웃었다.

제논의 뒤로 내성에서 일하던 시녀들과 하인들이 따라붙었다.

내성 공터에 출정 준비를 마친 경비대가 모여들었다.

소문을 들은 인근의 평민들이 내성 출입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장을 마친 제논은 모여든 평민들을 보곤 놀람을 금치 못했다.

“놀라셨습니까?”

“그래, 조금 놀랍구나. 겁많은 저들이 스스로 움직이다니.”

문트리아는 평민들이 모여든 이유를 말해 줬다.

“저하의 군대는 단 한 번도 평민들을 수탈한 적이 없었습니다. 수성 준비를 위한 동원령을 내렸을 때조차 개미 상단이 충분한 보상을 해 줬고, 부족한 식량과 일손을 지원하기도 했죠.”

단지 그뿐.

하지만, 평민들은 일평생 이런 군대를 본 적이 없었다.

“전쟁 중에도 개미족과 개미교도들이 치안을 봐줬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줬죠.”

생명의 가치가 짓밟히는 전란의 시대.

평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제논을 군주로 택한 것이다.

“제논 저하, 이 전쟁은 절대 질 수 없사옵니다.”

단호한 문트리아와 달리, 금품을 챙기던 귀족들은 모여든 평민들을 보며 혀를 찼다.

“무장도 갖추지 못한 오합지졸들을 전장에 데려가 봐야 진영에 혼란만 줄 뿐이다. 우린 성이 점령당하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해!”

귀족들이 도주 계획을 세울 때, 문트리아는 상단 창고를 활짝 열어 평민들을 무장시켰다.

“무기값은 저하가 왕이 된 후에 받겠습니다.”

제논은 실소를 머금고는 말 위에 올라탔다.

“함께 싸우고자 한다면 누구든 거절하지 않겠다! 이랴!”

제논이 달려나갔다.

진영이고 뭐고 없었다.

그들은 북문으로 달려가 아군 병사들과 기의병을 지원했다.

“저 녀석, 왜 여기 있는 거야?”

“저하! 위험합니다!”

제논의 합류에 화들짝 놀란 다크, 부쉬트니, 필라이 등이 적병을 쓸어버리며 제논에게 향했다.

제논 옆으로 다가선 다크는 문트리아에게 물었다.

“상황은?”

“성벽 일부가 카밀군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개미교는 언제 움직이는 거지?”

“이미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다크와 문트리아의 의미심장한 대화.

제논과 그 측근들의 의문은 적진에서 무수히 많은 개미 깃발이 들리며 해소됐다.

“이건…….”

비에타를 상대할 때 한 번 겪어 본 상황이었지만, 그 규모가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   *   *

전선을 돌며 지휘하던 가르탈이 말을 멈춰 세웠다.

“시작된 건가?”

흔들리는 개미 깃발을 바라보던 가르탈.

그의 부관이 급히 보고했다.

“놈들이 움직입니다! 지금 당장 세작을 제거하고 카밀군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부관의 말에 가르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카밀군을 지원해 봐야 늦었을 거다. 그리고 세작을 제거할 필요는 없다.”

“그게 무슨…….”

부관의 말에 가르탈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전쟁을 끝내야지.”

“카밀군 없이 저희끼리 말입니까?”

가르탈은 부관을 한심해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은 리카르텐보다 눈치가 없군.”

“백작님, 어찌 절 리카르텐과 비교하십니까!”

가르탈이 한숨 섞인 말투로 물었다.

“카밀군이 없어지면, 더 싸울 이유가 있나?”

“그럼 칠왕자파는…….”

“두 후작이 없는 칠왕자파 말인가?”

애초에 가르탈은 강성한 칠왕자파의 힘을 빌려 쿠드라 후작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런데 마일도스가 죽고, 카밀군도 위기에 빠지니…….

“칠왕자파로는 쿠드라 후작을 견제할 수 없다! 그럼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가 무엇이냐?”

“세자께서 배신자를 받아줄지…….”

“배신? 가르탈가는 언제나 왕국에 충성해 왔다! 왕국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어떤 오물도 뒤집어쓰는 게 바로 가르탈가의 명예임을 알라!”

가르탈은 세작에게서 강탈한 천을 꺼내 창에 묶었다.

“봐라! 이걸로 우리도 세자의 군대다!”

얼떨떨해하는 부관과 달리, 기사들과 기병들은 예상했다는 듯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전군~ 개미 깃발을 들어라! 전력을 다해 카밀군을 친다!”

아군과 적군이 뒤섞인 난전이야말로 가르탈군의 주특기였고, 가르탈은 기병 300기로 카밀군 중심을 찔렀다.

“가르탈 네놈!!”

승전보를 기다리던 카밀 후작과 그 측근들은 가르탈군의 배신으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카밀 후작의 수급을 챙겨라!”

*   *   *

개미교도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카밀군은 혼란에 빠졌다.

“저하, 가르탈 본진의 깃발이 바뀌었습니다!”

가르탈 본진에 개미 깃발이라니.

‘어떻게 된 거지?’

문트리아를 보니 그녀도 당황한 눈치였다.

후방에 있던 가르탈군이 배반하자 북문을 장악한 카밀군은 독 안에 든 쥐가 됐다.

“항복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카밀군의 깃발이 전장에서 사라져 갔다.

지휘 체계가 무너진 적군의 병사 중 일부가 살기 위해 배신을 택했다.

개미 깃발이 점점 많아지며 그 세력이 기존 카밀군을 집어삼켰다.

거대한 군대가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본 제논과 그 측근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일단의 기병이 흉흉한 기세로 돌격해 왔다.

“저하, 가르탈 백작입니다!”

개미 깃발을 들곤 있었지만, 만일을 대비해 접근을 막아야 했다.

나르본느의 거미줄이라면 기병 돌격을 저지할 수 있을 텐데…….

그녀는 전장 밖에서 관전 중이라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베슬리, 가자.”

암흑마창을 겨드랑이에 끼우곤 가르탈을 향해 베슬리를 몰아갔다.

‘300기 정도인가?’

이쪽은 기의병 200기.

충돌하면 피해가 크겠지만, 가르탈을 잡아내면 남는 장사다.

다가오던 가르탈의 기병대가 멈춰 섰다.

그는 날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내쉬곤 머리가 꽂힌 창을 치들었다.

“신 헤이머스 가르탈! 가르간 카밀의 수급을 가져왔습니다!”

전장이 술렁이며 항전 중이던 카밀군이 하나둘 무기를 떨궜다.

“저하, 가르탈 백작은 위험한 자입니다! 여긴 부쉬트니 자작에게 맡기심이…….”

필라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논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병력을 물렸다.

“수고했다, 가르탈 백작!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 보라!”

가르탈이 말에서 내려 무릎을 굽혔다.

“신 헤이머스 가르탈, 저하의 산하에서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귀족들은 가르탈을 믿을 수 없다며 경계했으나, 제논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을 보였다.

‘제논 녀석, 저렇게 웃을 줄도 아네.’

제논이 가르탈을 받아들이며 반젤성에서의 전투는 막을 내렸다.

전장을 수습하는 건 매우 힘들다.

“다크 님이 말씀하신 파멸의 검을 찾았습니다.”

전리품을 건지는 것도 상당한 노고가 필요했다.

두 후작의 죽음으로 마스터급 기사인 라이포 자작과 카시안 자작은 주군을 잃었다.

제논은 흡수한 병력을 재편하며 두 자작을 포섭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시간이 흘러 정비를 마친 제논군은 왕국 수도를 향해 진격했고, 마일도스 후작령이 오크와 야만인들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됐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