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68화 (167/189)

168화. 암살 (1)

바하르 평야를 이탈해 영지로 돌아간 마일도스군은 보급 없이 공성전을 치러야 했다.

우두머리가 없어 지휘 체계가 잡히지 않았던 그들은 두 번의 전투로 와해됐고, 20~50명 규모의 집단을 이룬 병사들이 약탈자가 되어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그로 인해 어수선했던 다나스 백작령과 두 후작령 산하의 영지들이 피해를 봤고, 중앙 영지들도 약탈자들의 마수에서 무사할 수 없었다.

내전이 길어질수록 국력이 쇠락하니, 제논은 하루빨리 왕성을 되찾고자 했다.

가르탈군을 온전히 흡수함과 더불어 카밀군 일부를 흡수한 제논의 군대는 2만이란 병력 규모를 갖추게 됐고, 이동 경로에 있는 귀족들에게서 병력과 보급품을 뜯어냈다.

귀족들은 제논에게 바친 만큼 평민들을 수탈했지만, 개미 상단과 교도들이 나서서 민생을 돌보며 제논의 평판을 끌어올렸다.

거침없는 진격으로 테헤라 외성에 도착하니, 2만이었던 병력이 3만이 돼 있었다.

병력 급증과 길어진 보급로로 인해 정비가 필요한 상황.

수도 수비군만 5만에 달하여 공성을 해 봐야 승산이 없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말이지.’

그나마 합리적인 전략은 인근 영지들을 점령해 왕성을 고립시켜 말라죽길 기다리는 것뿐.

이 경우 전쟁이 내년까지 이어질 테고, 약해진 왕국을 뜯어먹기 위해 포카이 왕국과 다슬리 왕국에서 침공해 올 게 분명했다.

“쿠드라 후작이 합류하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포카이 왕국의 남부를 집어삼키며 쿠드라 후작군은 5만이란 대군이 됐고, 그중 3만은 가르탈의 정병들조차 무시 못 할 정예 병사였다.

“공성 병기를 갖추고 있을 테니, 전략만 잘 갖춘다면 단시간에 수도를 뚫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겁니다.”

귀족들은 전쟁광이라 불리는 쿠드라 후작을 기다렸지만, 그는 포카이 왕국의 수도를 치며 내전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야망이 큰 사내입니다.”

가르탈이 말하길.

마일도스와 카밀, 두 후작이 7왕자에게 붙어 제국에 순종하는 건 제국이 두려워서도 있지만,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고 했다.

“쿠드라 후작의 창칼이 왕실을 향하는 걸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제논이 제거되고 칠왕자가 왕위를 잇게 되면 쿠드라가 왕위를 찬탈할 명분이 생기니…….

“그는 제논 저하가 사라지길 기다렸을 겁니다!”

가르탈의 충격적인 발언에 귀족들이 술렁였지만, 제논은 담담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는 그런 사내였어.”

쿠드라의 이야기를 들은 제논은 뭔가를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병력 손실 없이 왕성을 되찾아 그에게 어떤 빌미도 내주지 않겠다!”

기상은 좋으나 지금의 병력으론 외성조차 뚫기 힘든 게 현실.

‘공성 병기라도 만들어 와야 하나?’

제논이 고심하던 날 바라봤다.

“다크 님, 절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 마안에 확신 어린 그의 감정이 비춰졌다.

“얼마든지.”

제논이 말을 이으며 병력 손실 없이 왕성을 장악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비밀 통로라…….”

“그런 비겁한 짓에 직접 나서겠다니요!”

내가 전면에 나서야 하는 일을 비겁한 짓이라 일축한 귀족이 있었다.

마치 날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아 한 마디 쏘아 줬다.

“저기 대귀족인 가르탈 씨도 가만있는데, 넌 뭐야?”

“이… 이……!”

흥분한 귀족이 나를 보며 삿대질했다.

‘개미 무서운 줄 모르는 녀석이군.’

나의 마안은 상대가 두른 마력을 시각화하여 감정 상태와 전투력을 추론할 수 있었고, 직시한 상대를 공포에 빠트리기도 한다.

그동안 위화감을 조성하고 싶지 않아 동공에 마력을 둘러 일부 기능을 봉인해 왔는데…….

눈에 주입해 둔 마력을 거두니, 날 바라보던 귀족들의 혈색이 핼쑥해졌다.

‘효과가 좋네.’

일부 귀족이 떨리는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댔다.

쭉정이들이 검을 뽑아 봐야 내겐 위협이 되진 않으나, 마스터급인 가르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거 뽑으면 죽는다.”

가르탈과 내 시선이 교차하며 정적에 휩싸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정적을 깬 건 가르탈이었다.

“기세를 거둬 주게. 나도 모르게 반응할지도 모르니.”

눈에 마력을 주입하니, 공포에서 벗어난 귀족들이 하나둘 주저앉았다.

“허…헉…….”

그들은 내게서 큰 충격을 받았는지 숨을 몰아쉬었다.

나로 인해 반대 의견이 뭉개지며 회의는 매끄럽게 진행됐다.

그렇게 우린 비겁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전략 수행에 나서게 됐다.

*   *   *

왕궁의 대전, 왕좌에 걸터앉은 소년이 권태로운 표정으로 귀족들을 내려다봤다.

“사르간 자작, 이번 일은 어떻게 책임질 건가?”

“무슨 소립니까? 마일도스 후작이 주도한 일을 저보고 책임지라니요!”

“그대가 보급품을 전했다면, 마일도스군이 해체되는 일도 없지 않았나?”

“보급품 문제는 다들 반대했지 않습니까? 오히려 가르탈 백작을 끌어들인 나일 백작에게 책임을 물어야지요!”

“헛소리! 그를 끌어들인 건 카밀 후작이지 내가 아니야!”

귀족들은 패전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며 마일도스와 카밀이 가지고 있던 권리를 하나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하…….”

소년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침묵했고, 매일같이 비슷한 안건의 회의가 반복됐다.

“지루하네.”

곁을 지키던 로브의 사내가 왕관을 가지고 놀던 소년에게 다가와 귀족들이 들을 수 없도록 귓속말로 물었다.

“전하, 이곳에 비밀 통로가 있습니까?”

“그건 왜?”

“마스터의 접근이 느껴지는군요.”

“가르탈이야?”

“가르탈과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소년의 얼굴에 호기심이란 감정이 서렸다.

“전 한 명밖에 못 느꼈지만, 이단심문관께선 셋이라는군요.”

“셋? 짐의 나라에 마스터가 그렇게 많았어?”

“왕국치곤 많은 편이긴 하죠. 뭐… 왕국치곤 그렇단 이야깁니다.”

왕을 모신다기엔 불손한 태도의 호위였으나, 소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난 피해 있는 게 좋을까?”

“왕국의 마스터 따윌 왜 피합니까?”

대전에 기사와 성직자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자 귀족들이 당황했다.

술렁이는 장내에서 몇몇 귀족이 나서서 연유를 물었고, 소년은 곁에 있던 로브의 사내를 가리켰다.

“쟤한테 물어봐.”

“윈스 경, 대체 무슨 일입니까?”

윈스는 불안해하는 귀족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경비를 강화한 것뿐이다.”

“침입자입니까?”

윈스는 불안해하는 귀족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섬뜩한 안광으로 장내를 쏘아봤다.

“우리가 있는데 뭐가 불안한 거지?”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귀족들은 윈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손을 비볐다.

“제국의 로열 나이트셨던 윈스 경이 있는데 뭐가 불안하겠습니까?”

“맞습니다. 아레스 신전이 공인한 마스터께서 계시니…….”

소년은 땀을 뻘뻘 흘려 가며 맘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는 귀족들을 내려다보다가 손뼉을 쳤다.

“앗! 맞다!”

비밀 통로를 떠올린 소년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

제논이 떠올린 전략은 나쁘지 않았다.

‘전쟁에서 암살만큼 가성비가 좋은 것도 없지.’

왕가의 혈족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통로로 잠입하여 칠왕자를 처리하는 것.

평판과 명분을 중시하는 귀족들은 암살이란 수단을 악수로 생각했지만, 몬스터에 속하는 나의 평판은 애초에 지하 저 밑바닥에 깔려 있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기다 암살 대상인 칠왕자의 평판은 최악이라 할 수 있었고, 내겐 여론을 움직일 돈과 인재가 있다.

‘제논이 덮어쓸 오물 정도는 충분히 씻겨 줄 수 있어.’

제논이 길 안내를 맡았고, 나를 포함한 디아, 나르본느, 타르가 이번 작전에 가담했다.

가르탈을 제외한 최고 정예를 선정한 것인데, 디아를 데려온 건 실수였다.

“디아, 기척 좀 지울 수 없어?”

“이게 최선이다!”

“정말 이게 최선이라고? 그냥 돌아가는 건 어때?”

“내성에서 난전이 벌어지면 내 힘이 필요할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전 상황이 온다면 그건 디아 탓이 분명하다.

‘이거, 나정도 기감만 있어도 접근을 알아차릴 건데…….’

“뭘 그리 걱정해? 인간들의 기감으론 못 알아차리니 걱정하지 마!”

인간들의 기감이 동급의 몬스터보다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왕성 바로 아래까지 도달하니 강렬한 기운이 우릴 막아서고 있음을 감지했다.

“조용히는 못 지나가겠어.”

“들킨 겁니까?”

제논이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전진과 퇴각 사이에서 고심했다.

돌아가는 길은 멀고 목표물은 가깝다.

나는 망설이는 제논의 등을 떠밀어 줬다.

“가자. 내성의 호위 정도는 디아로 뚫어 버리면 그만이야.”

“알겠습니다.”

나는 무욕의 팔찌에서 디아의 갑옷과 대검을 꺼냈다.

갑옷 안에 탑승한 디아는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 중전사가 되어 선두에 섰다.

“침입자다!”

얼마 가지 않아 병사들이 몰려왔다.

네다섯 명이 어깨를 맞댈 수 있는 통로.

디아가 돌진하여 적병을 쓸어버렸고, 그녀가 처리하지 못한 병사는 나와 나르본느가 제거했다.

나를 포함한 세 사도가 빠른 속도로 길을 뚫었고, 제논과 타르가 따라붙었다.

“물러나라, 내가 상대하겠다!”

강자의 마력.

우릴 막아선 사내가 로브를 벗어 던졌다.

금색 단발의 청년이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검을 뽑았고, 나와 나르본느를 보곤 놀랐다.

“몬스터?”

병사 하나가 그에게 말해줬다.

“저건 남부 대산림의 전설, 거미왕 나르본느일 겁니다!”

“그럼 저 개미 같은 건?”

“최근, 제논 세자의 비밀 병기로 알려진 개미족인듯합니다.”

“크크크… 개미 따위가 날뛰는 곳이라니. 제국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거야!”

뭐가 그리 우스운지 폭소를 터트린 사내.

제논은 그의 복장과 태도를 보곤 출신 성분을 파악했다.

“제국의 기사입니다. 그것도 마스터급의…….”

제논은 몹시 긴장했지만, 최근 가르탈과 대련을 치러 보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동급의 인간은 내 상대가 못 돼.’

개미족의 압도적인 힘이 더해진 내 공격은 마스터 수준의 인간이 막아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여유 가득한 우리의 모습에 화가 났는지, 사내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오러를 드러냈다.

“너희들, 설마… 나를 왕국의 마스터와 비교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와 나르본느는 뜨끔했지만, 디아만은 상대를 얕보지 않았다.

“황실의 사자검… 로열 나이트의 일원인가?”

“호… 날 알아보다니.”

디아를 위아래로 훑어본 사내가 당황했다.

“네놈, 설마…….”

이곳은 왕성 아래의 지하 통로.

적진 깊숙한 곳이라 할 수 있어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고로 여유가 없었던 우린 그가 말을 마치길 기다려줄 수 없었다.

쾅!

땅을 박차 돌진한 디아가 대감을 횡으로 그었다.

사내는 가볍게 뛰어올라 디아의 검을 피했고, 디아의 몸을 박차 나와 나르본느를 향해 쇄도해 왔다.

나르본느가 거미줄을 뿜어 사내의 시야를 차단한 순간, 거리를 좁힌 나의 마창이 놈을 향해 쇄도했다.

검격에 의해 찢겨져 버린 거미줄 사이로 그의 입꼬리가 보였다.

‘웃고 있군.’

포스처럼 강적과 싸우는 걸 즐기는 타입 같은데…….

내 일격은 웃으면서 막을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다.

쾅!

통로 벽을 무너뜨리며 날아간 상대가 벽에 박히는 걸 본 우린 길을 서두르려 했으나, 놈에게서 느껴지는 불길한 오러가 나를 멈춰 세웠다.

“한 놈만 보내 준다! 나머지는 남아서 나와 놀아 줘야겠어!”

상처 하나 없는 놈이 장난스럽게 검을 돌리며 한 말이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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