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암살 (3)
한참 전투 중인 대전에 몰래 잠입했다.
기사와 성직자들이 디아와 타르를 막아 내는 모습을 귀족들이 웅성거리며 바라봤고, 권좌에는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찾았다!’
소년이 우리의 암살 대상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불쾌한 마력으로 봐선 소문처럼 나쁜 놈이 아니었다.
‘흠… 순수한데?’
칠왕자의 처우를 미룬 나는 이곳의 성직자들을 훑어봤다.
태양이 그려진 로브를 입은 사내들, 하나같이 불쾌한 감각을 주는 것이…….
‘나와는 극성인 마력, 이게 신성력인가?’
그들 중에서 왕자의 옆에 있는 녀석은 특히나 강해 보였다.
‘저 녀석, 뭐 하는 거지?’
신성력을 잔뜩 끌어올린 놈이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한 것 같았다.
성직자도 마법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화력이 강한 마법일수록 소모가 크고, 시전에 긴 시간이 필요하며, 시전 후 일시적인 경직 현상을 겪기도 한다.
나는 놈이 신성 마법을 발동한 후 겪게 될 경직 현상을 기다렸으나, 아쉽게도 놈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며 우린 동시에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망했다!’
디아를 위해 준비된 신성 마법이 날 향했고, 나 또한 암흑마창에서 사슬 하나를 풀어 놈을 향해 휘둘렀다.
봉마의 사슬이 신성력 일부를 흩트렸지만, 남은 신성력이 폭발하며 내 몸에 순백색의 불이 붙었고, 내가 쏘아 낸 사슬은 놈이 휘두른 메이스에 튕겼다.
“흥! 어떻냐? 신들의 왕 헬리오스 님의 권능이 실린 불꽃의 맛은! 네놈의 성마력을 모두 태울 때까지 절대 꺼지지 않으리라!”
신성력이든 흑마력이든…….
뭐든 마력의 일종.
에너지라면 공허의 마력으로 흡수하면 그만이라 생각했으나, 순백의 불꽃은 공허의 마력으로 흡수할 수 없었다.
‘안 꺼지는군.’
오히려 불꽃이 내 마력을 불태우며 화력을 더욱 키우는 듯했는데.
‘역시 극성인 기운이야.’
내가 몸에 붙은 불꽃에 신경 쓰는 동안 놈은 전신에 신성 마법을 걸어 신체를 강화했다.
어느 정도 공허의 마력과 불꽃의 관계를 파악한 나는 한 손에 사슬을 감고, 나머지 손으로 창을 바로잡고서 그를 바라봤다.
“준비는 끝났나?”
여유 가득한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놈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감히 날 무시하다니! 와라! 찍어 눌러 주마!”
천장을 박차 거리를 좁혔다.
놈도 근접전에 조예가 있는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메이스를 휘둘러 왔다.
쾅!
“인간, 힘이 좋군.”
“헙!”
첫 격돌에선 나와 비등한 괴력을 보이던 그였지만, 격돌할 때마다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게, 내 주먹과 마창에는 봉마의 사슬이 감겨 있었고, 봉마의 사슬이 닿는 부위마다 단단하게 두른 신성력이 깨져 나갔기 때문이다.
놈이 두른 신성력을 지워 버리니, 놈은 조금 강한 수준의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이어진 격돌에서 놈의 팔이 튕겨 나며 괴이하게 꺾였다.
두 팔을 못 쓰게 된 그가 당황하며 물러났지만, 놈이 근접을 허용한 순간 내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푹!
나는 사슬 두른 주먹으로 무방비한 그의 심장을 뚫어 버렸다.
“컥… 어떻게…….”
놈은 조금 전 내게 당한 제국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봉마의 사슬을 들고도… 그런 움직임을…….”
“알아보는군. 왜, 이걸 쓰는 게 신기한가?”
마력 의존도가 높은 인간은 나처럼 봉마의 사슬을 다룰 수 없어 생기는 의문.
이걸 설명해 주려면 개미족이 갖춘 기본적인 신체 능력과 특급 마석을 흡수해 신체를 진화시키는 내 마력에 대한 것도 말해 줘야 한다.
긴 이야기가 될 터이니, 심장이 박살난 놈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아니었다.
놈은 심장이 박살 나고도 즉사하지 않았다.
전신에 퍼진 방대한 신성력으로 생명을 붙들고 있는 듯했다.
“이대로 혼자 죽진 않는다!”
놈은 가진 신성력을 터트려 내 몸에 붙은 불꽃을 키웠다.
그러곤 억지스럽게 웃었다.
“크하하하! 네놈을 비롯한 사도는 그 누구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확실히 놈의 동귀어진이 통했다면, 내 동료들은 기사와 성직자들에게 레이드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손에 두른 사슬을 바닥에 내려 둔 나는 전신을 가득 채운 공허의 마력을 최대 출력으로 끌어올렸다.
뿜어진 보라색 마력이 천장까지 닿자, 전장의 모두가 전투를 멈추곤 나를 바라봤다.
내 마력량에 놀랐는지 장내의 모두가 괴물을 본 듯한 표정으로 뒷걸음쳤다.
전신을 휘감듯 몰아치는 보라색 마력이 순백의 불꽃을 뒤덮었다.
순백의 불꽃은 내 마력을 태우며 몸집을 더욱 키웠지만, 나는 그 이상의 마력을 쏟아부어 불꽃을 덮어 버렸다.
팟.
흑마력을 먹어 치우며 강렬히 타오르던 불꽃이 힘을 다해 꺼질 무렵, 공포에 질린 귀족들이 무질서하게 장내를 빠져나가려 했고, 기사들과 성직자들은 전의를 잃었는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절대… 꺼질 리 없는… 헬리오스 님의 권능이… 어째서…….”
“간단한 이치다.”
나의 신마력과 놈의 신성력은 극상성의 마력이다.
마치 불과 물.
물은 불을 끌 수 있지만, 불은 물을 증발시킨다.
마력을 갈무리한 나는 사슬을 집어 들며 말했다.
“네놈이 약했을 뿐이야.”
놈은 내 말을 다 듣지 못한 채 죽었고, 나는 성직자들을 향해 사슬을 휘둘렀다.
내 위치는 성직자들의 후방.
기사들은 입구 쪽에서 동료들과 대치 중이라 날 신경 쓸 수 없다.
즉, 프리 딜 상황.
기사들의 보호를 받지 못한 성직자들은 사슬 공격에 머리가 터져 나갔고, 눈치 빠른 귀족들은 허둥지둥 대전을 벗어났다.
기사 몇 명이 뒤늦게 날 향해 움직였으나, 좋은 결정은 아니었다.
“냥?”
그동안 소극적으로 움직이던 칠미 상태의 타르가 기사들을 뚫고 성직자를 습격하자, 곳곳에서 피 분수가 분출됐다.
“크악!”
“막아!”
나와 타르의 손에 대전 중앙에 있던 열다섯 명의 성직자는 금세 처리됐고, 남은 건 기사들과 대전 밖의 퇴로를 막고 있는 성직자 다섯뿐.
“밖에 있는 녀석은 나한테 맡겨!”
타르가 성직자를 처리하러 뛰쳐나갔고, 신성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디아가 충격 에너지를 흡수해 기사들을 하나씩 찍어 눌렀다.
장내가 정리되고 나와 디아는 왕좌에 앉은 소년, 칠왕자와 마주하게 됐다.
그에게선 두려움, 분노, 당황, 흥미… 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분 나쁠 정도로 순수한 마력.
하지만, 그동안 봐 온 부하들의 순수함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디아와 내게 말했다.
“쓰레기 같은 귀족들 다음은… 악신의 사도들인가? 뭐 좋다. 너희 같은 하찮은 것들은 고귀한 짐의 후광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지. 짐의 후광을 허해 주마”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
디아가 어이없다는 몸짓을 보이며 대검을 치켜들었다.
내려치면 자신이 피떡이 될 상황임에도 꼬마의 감정은 변함이 없었다.
너무도 차분한 꼬마의 태도의 당황한 건 디아였다.
“죽여도 되는 건가?”
꼬마는 디아를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
“흑기사라 불리는 용병이여, 그대는 머리의 뇌가 비었는가? 짐을 죽여 봐라. 여기 모인 귀족들과 병사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설령 왕국의 귀족들을 통제할 수 있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뭘 해결해야 한다는 거지?”
소년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국 황실의 혈통을 이은 짐의 죽음이 대전에 널린 하찮은 것들과 같다고 생각하다니, 역시 하찮은 놈들은 생각하는 수준마저 하찮구나.”
소년의 도발에 살짝 빡친 디아가 대검을 내려쳤다.
대검은 소년의 옆을 찍어 왕좌 일부를 파괴했으나, 소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부들부들.
디아가 몸을 떨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온몸으로 말해 왔다.
‘죽이자! 죽이자! 당장 죽이자!’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소년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내가 손에 힘을 가하면 목이 부러져 죽을 상황임에도 소년은 히죽댔다.
“흰자위가 검다니, 징그러워… 죽일 수 없으면 내려놔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나도 같이 히죽여 줬다.
“꼬맹아, 네놈의 혈통이란 건 인간 사이에서나 먹히는 거야.”
“그럼 죽여 봐! 하찮은 개미족 따위가 날 죽일 수 있는지 나도 알고 싶으니까.”
나는 선한 인간에게서 불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낀 불쾌감은 그가 선해서가 아니었다.
‘순수함이겠지…….’
놈은 선민사상에 찌들어 있는 순수 악 그 자체.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바뀌지 않을 테니까.
‘써먹긴 곤란하겠어.’
우드득.
나는 그의 목을 꺾으며 말해 줬다.
“제국이든 뭐든 덤비라고 해. 전부 식량으로 삼아 줄 테니까.”
목이 꺾여 죽은 소년은 여전히 히죽이고 있었다.
암살 대상은 처리했다.
이제, 제논을 데리고 왕궁을 벗어나기만 하면 왕성을 둘러싼 병사들은 자연히 와해될 터였다.
나와 디아는 몰려든 적병을 처리해 가며 비밀 통로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고, 타르가 제논과 나르본느를 데리러 갔다.
적병으로 가득한 곳에서 제논을 찾아오는 일.
쉽지 않은 일이긴 하나, 칠미 상태의 타르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준급의 왕급 몬스터인 나와 나르본느의 옆에 있어 약해 보일 뿐, 타르도 어엿한 왕급 몬스터이기 때문이다.
비밀 통로가 있는 방에서 몰려온 적들을 모두 몰살시킨 나와 디아.
피로 가득한 방에서 일행을 마주했다.
“칠왕자는?”
내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제논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비밀 통로를 통해 돌아가는 길.
우릴 막아선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암살자?’
기사의 복장을 하곤 있지만, 암살자처럼 기척을 죽이고 있는 인간들.
그중 하나는 조금 전 상대했던 제국의 마스터만큼이나 위험해 보였다.
‘처리하려면 조금 걸리겠는걸.’
그들을 알아본 제논이 일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섰다.
“난, 클라우드 왕가의 정통을 이은 세자 제논이다! 너희가 클라우드 왕가의 비수라면 길을 비켜라!”
살짝 상기된 제논을 유심히 보던 그들은 말없이 길을 열어 줬다.
그들을 지나치며 언제 습격해 올지 몰라 걱정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저들은 클라우드 왕가의 숨겨진 비수, 정식으로 대관식을 치른 왕에게만 모습을 보이는 자들인데… 아무래도 저를 차기 왕으로 지목한 듯합니다.”
“제논, 그럼 이제 전하라고 불러야 하나?”
디아의 물음에 제논은 웃으며 말했다.
“아직입니다. 아직 전 대관식을 치르지 못한 세자에 불과합니다. 칠왕자처럼 멋대로 왕관을 쓰진 않을 거예요. 그래야 저들도 절 왕으로 인정할 테니까요.”
제논의 발걸음이 전보다 당당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은 아닌 듯했다.
“제논, 너 좀 멋져졌다. 냥!”
“난 원래 멋졌어. 타르.”
앞으로 왕이 될 제논에게 말해 줬다.
“네가 왕이 되더라도, 우리들의 친구임은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제논이 날 덥석 안는 바람에 뒷말을 잇진 못했다.
남자 놈에게 안겨 있으려니 불편해서 밀어내려 했더니, 디아가 우리 둘을 안았고, 타르도 그 속에 파고드는 바람에 빠져나올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고마워… 친구들…….”
뭐…….
미래의 권력자 클라우드 왕이 될 제논과 친구 먹은 기념으로 포옹 한 번쯤은 참아 주기로 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