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파티장
귀족의 파티란 정보와 물자를 교환하고 전략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모임이다.
춤과 음악이 있는 파티장엔 남녀 한 쌍이 같이 입장하는 게 원칙이고, 귀족들은 파티장에서 자녀의 결혼 상대를 고르거나 자신의 배필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입장 원칙은 일반 귀족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었고, 대영주나 왕족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나 또한 대영주 대우를 받았기에 원칙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남부 대산림의 지배자, 포식의 다크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왕실 파티여서 왕이란 칭호가 생략됐다.
시종이 나의 입장을 알리며 파티장의 문이 열렸다.
세크리와 문트리아를 대동해 파티장에 들어서니, 즐기고 있던 자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 줬다.
파티장엔 파티 전문가인 메르디아가 있었지만, 공식 석상에서 나와 그녀는 모르는 사이여서 우린 은밀한 눈인사만 주고받았다.
인간형 개미의 외형은 상당히 아름다운 편이다.
4차 진화종 쯤 되면 은은히 빛나는 문양도 있어, 신비감을 준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두려워하며 배척하는 습성이 있고, 몬스터로 분류된 종족에게선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즉, 내게 다가오려면 본능부터 이겨 내야 했는데.
수군수군.
귀족들이 나와 거리를 두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모두가 날 꺼리는 건 아니다.
“자네가 파티라니, 별일이군.”
“전할 정보가 있어서 말이야.”
가르탈 백작은 내 무력에 관심이 많았고, 최근엔 수도로 상경한 그의 부관 리카르텐의 짝을 찾아 주고 있었다.
“급히 돌아가 봐야 할 일이라도 생겼나?”
“그보다, 전쟁 물자를 사재기하는 귀족들 때문에 말이지…….”
귀족들 때문에 식품과 장비값이 폭등하는 실정.
민생을 좀 돌아보자고 충고해 줬지만, 가르탈의 반응이 애매했다.
“쿠드라 후작이 왔다 가면 수도의 물자는 동이 날 거다. 내전이 끝나더라도 한 번 시작된 전쟁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아. 쿠드라 후작이 물자를 쓸어 가기 전에 미리 사 두는 게 현명한 처사지.”
그의 부관 리카르텐도 한마디 거들었다.
“포카이 왕국의 북부 귀족들이 항전 중이고, 다슬리 왕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전쟁 대비는 해 둬서 나쁠 게 없죠.”
가르탈과 리카르텐이 나와 문트리아에게 국제 정세와 경제 변화를 가르치려 들었다.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이야기를 들어주다 문트리아의 표정을 봤다.
영혼 없는 표정과 빛 잃은 눈동자.
내 표정도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을 듯했다.
“그건 그렇고, 레이디 문트리아. 여기 내 부관은 어떤가?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말이야.”
“상인인 제가 어찌 기사님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가르탈이 영애들이 모인 장소를 훑곤 인상을 찌푸렸다.
“보다시피 이곳 영애들은 1등 신랑감인 리카르텐을 싫어한단 말이지. 자기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나는 리카르텐이 마스터급 기사란 걸 알아봤지만, 대부분 귀족은 그를 야만인 출신의 하급 기사 정도로 알았고, 가르탈 녀석은 나와 전략적 관계를 맺기 위해 리카르텐과 문트리아를 엮으려 했다.
‘잘생기긴 했어.’
문트리아도 쑥스러워하는 것이 맘이 없는 것 같진 않은데, 리카르텐의 차갑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면 저쪽에선 맘이 없는 듯했다.
‘훤칠한 키에 몸도 다부져.’
피부가 허연 게 얼핏 봐도 남부의 야만인과는 생김새가 달라 보였다.
‘루리아가 데려온 야만인들은 모두 구릿빛 피부였단 말이지.’
클라우드 왕국민과 차이 없는 외모였지만, 전신에 새겨진 괴이한 문신이 그가 문명권 밖의 존재임을 강렬히 주장했다.
‘얼굴 문신… 거슬리네.’
외모와 출신 성분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건 하수다.
나 같은 상수는 상대가 두른 마력으로 평가했는데.
뭐, 겉만 보고 판단하는 건 비슷하다.
‘생긴 건 무식해 보여도 속은 문무를 겸비한 장수야.’
장내의 누구보다 빛나는 마력을 보아 잠재력 자체는 인간 중 최고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꿀꺽.
절로 군침이 도는 것이…….
리카르텐의 영양 등급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었다.
놈에 대한 평가를 마친 나는 본론을 꺼냈다.
“개미 상단은 전쟁 물자를 지속해서 풀 거야. 그러니, 딴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알아서 잘 판단해 보겠네.”
사재기에 대해 경고를 했으나…….
‘가르탈 녀석, 고집이 세단 말이지.’
가르탈 외에도 만나야 할 사람이 많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
“파트너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게, 나와 리카르텐이 상대해 줄 테니.”
가르탈과 리카르텐의 눈빛을 보아, 댄스 파트너를 말한 것 같지 않았다.
“필요 없으니까 다른 사람 알아봐.”
실망한 둘을 두고 나는 파티장을 돌아다니며 남부 귀족들과 세야누스를 만났다.
남부 귀족들은 날 떠받드는 경향이 있어 설득이 쉬웠으나, 그들의 속내는 겉과 같지 않았다.
‘왜 다들 내 말을 믿지 않지? 내가 개미족이라 그런가?’
세야누스는 바다 사나이 같은 이미지로 호탕한 사내였다.
“걱정하지 말게, 평화의 세야누스 아닌가? 그보다. 내게도 장성한 아들이 있네만…….”
“지금 나한테 말하는 거야?”
“개미족인 자네는 좀… 인간 배필을 원한다면 중매를 서 주겠네.”
성격이 가벼워 보여 무심코 건넨 농담이었는데…….
‘진지하게 받으면 어떻게 하냐!’
“아니, 필요 없어.”
세야누스 백작은 자신의 장남을 문트리아에게 권했다.
쭈뼛쭈뼛 거절 못 하는 문트리아를 대신해 내가 나서 줬다.
“부인도 둘씩이나 있는 애라며.”
“차기 백작이니 삼부인의 자리도 나쁘지 않네.”
“그거야 당신 생각이지, 나와 문트리아의 생각이 아니야.”
“잘 생각해 보게, 남부와 동부는 거리도 가깝고…….”
“거리로 따지면 가르탈 쪽과 더 가깝지.”
“풍부한 바다 자원에 대한 독점권을 약속해 줄 수도…….”
“몬스터 때문에 개발도 안 되는 바다 자원?”
“해안가는 최근에 정리됐네.”
“알지, 개미 용병단이 정리했으니까.”
“역시 관계가 있었던 건가?”
“직접적이라기 보단 서로 상생하는 사이야.”
개미 상단, 개미 용병단, 개미교, 암흑가.
초기에는 개미 상징을 브랜드화하기 위해 한 덩어리로 보이려 했으나, 왕국을 장악한 상황에서 한 덩이로 보이는 건 리스크만 키울 뿐이다.
귀족들에겐 각 조직이 수평적 상생 관계라 못 박아 뒀다.
‘개미 상징의 사용을 줄이고, 조직을 쪼개서 관리해야겠어.’
각 조직이 독립적인 존재임을 꾸준히 알려 진실을 숨김으로써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
“레이디 문트리아는 동부를 어떻게 생각하나?”
“저 그게…….”
세야누스가 하도 질척거려서 리카르텐을 이용했다.
“세야누스 백작, 자신 있으면 아들을 데려와 봐. 대신 저쪽보다 부실하면… 상상에 맡길게.”
“큼, 그건 좀 곤란하군. 내 아들이 최근 몸이 안 좋아서 말이네.”
파티에 와서 실감했다.
개미족과 관계가 깊은 문트리아는 인기가 많았고, 많은 귀족이 나와 우호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하지만, 모든 귀족이 날 환영한 건 아니었다.
특히 내전에 참여한 적 없는 어린 영애와 영식들은 날 혐오했다.
“몬스터가 파티장이라니…….”
“병균이 옮을 것 같아요.”
“인육 외엔 먹지 못한다고 하더군.”
“레이디 미실리아, 내가 지켜 줄 테니 걱정마시오.”
“상인에 야만인에 몬스터까지. 제논 저하는 도대체 뭔 생각인 건지.”
“내전도 끝났으니, 조만간 토벌 명이 떨어지겠지. 그때 공을 세우면 남부에서 한 자리 차지할 수 있겠어.”
영애와 영식들은 날 비하하기 위해 날조를 서슴지 않았고, 귀족도 아닌 문트리아가 파티장에 온 것 또한 못마땅해했다.
‘애송이들이 개미 무서운 줄 모르는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치기다.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무시했는데, 내전에 참전했던 귀족들은 내가 화를 낼까 봐 노심초사했다.
“죄송합니다, 다크 님. 모두 제 불찰입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전장에 가 보지도 못한 철부지들입니다.”
“제가 잘 타이를 테니, 다크 님께서는 파티를 즐기시죠.”
전장에서 활약한 중년 귀족들이 나서서 영애와 영식들을 따끔히 혼냈지만, 그럴수록 그들 사이에선 나에 대한 반감만 커질 뿐이었다.
옆에 있던 문트리아는 그들의 행실에 조용히 분노하는 반면, 세크리는 해맑았다.
“다크 님, 둥지로 보낼 인간이 있을까요?”
“없으니까. 침 좀 그만 삼켜.”
“죄송해요. 본능적인 거라…….”
메르디아가 노트에 뭔가를 기록하며 파티장을 돌아다닐 때, 아스만 왕국에서 온 상인들이 다가와 나와 문트리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스만 왕국에 적을 둔 어스 상단의 루카입니다. 저희 어디서 뵌 적이 있을까요?”
예전 암시장에서 만난 적이 있던 어스 상단의 막내딸 루카.
“네 생각에는?”
“대화가 통하는 몬… 아니, 개미족분을 뵙는 건 처음인데,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요.”
왕국에서 보낸 사신들과 달리 편견 없는 아스만의 상인들.
그들은 제국 정세를 조금씩 풀며 거래하고자 하는 물품을 어필했다.
“아스만이 왜 전쟁 물자를 원하는 거야?”
“저희가 필요한 게 아니고, 제국이 필요한 거죠.”
제국의 현 황제가 귀족파에 휘둘리며 황권이 예전 같지 않았고, 황실과 맞먹는 귀족들의 연합체가 다수 생겨났다.
“유례없는 전란의 폭풍이 시작될 거예요.”
사막 왕국 아스만을 기준으로 서쪽은 제국이 있고, 동쪽에는 여섯 개의 왕국이 있다.
클라우드, 포카이, 다슬리, 코르텐, 골디아, 아카드…….
제국과 왕국 사이를 사막 왕국 아스만이 가로막고 있어, 직접 지배는 불가했지만, 간혹 사신을 보내 왕족을 능멸하고 물자와 미녀를 강탈해 갔다.
속국이나 다름없는 왕국의 귀족들은 패권국의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아스만의 상인들은 이를 활용해 이득을 취해 왔다.
지금도 나와 문트리아에게 제국의 정보를 건네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계약을 성사시키려 했다.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지만, 속아 주기로 했다.
“그럼 지금 시세로 넘겨주시는 겁니다!”
“계약은 내일 저와 따로 진행하시면 되요.”
“감사합니다, 레이디 문트리아. 다크 님도 감사드려요.”
원하는 거래를 성사시켜 콧노래를 부르며 떠나가는 상인들.
개미족의 생산력과 축적한 물자의 양을 알고 있던 문트리아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다크 님도 너무 하셨어요.”
“원하는 값에 팔아 줬잖아.”
“나중에 딴소리하면 어쩌죠?”
“계약서에 써 둬, 시세대로 환불해 준다고…….”
가격은 일반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이는 경제학의 기초이며 핵심.
정부 개입과 독과점 상황, 자연재해와 기술 발전에 따른 예외적 상황이 있으며, 지금 클라우드 왕국은 그런 예외적 상황에 노출돼 있었다.
바로 ‘나’ 라는 존재가 시장을 독점한 채 공급량을 조절했고, 화폐의 유통량까지 제어하고 있었으니.
‘지배적 위치를 다진 상황이지.’
멍청한 놈이 지배적 위치에 있었다면 최대한 이익을 뽑아내려 했겠지만, 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물가 조정에 초점을 두며 개미족의 영향력을 더욱 키웠다.
만날 사람을 모두 만난 나는 파티장을 나와 제논이 마련해준 방에서 나르본느, 타르, 디아 등과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내 충고를 경청한 자들은 공급량 증가에 따른 디플레이션이란 수혜를 누리겠지만, 충고를 무시한 자들은…….
‘디플레이션이란 재앙을 겪겠지.’
파티장에서 건넨 나의 충고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감이 더해지며 귀족들을 비롯한 상인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쿠드라 후작의 개선식을 준비할 무렵, 개미족 전체의 페로몬 능력과 지능이 강화됐다.
‘이건…….’
여러 번 겪어 본 익숙한 현상.
[다크!!]
페르가 초 장거리 염화로 날 호출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