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78화 (177/189)

178화. 3공작 6백작

‘이런…….’

장로들과 나의 직속 간부까지 행차하며 개미족의 전력이 드러났다.

“이것이… 남부 대산림의 일축, 개미족의 힘이란 말인가…….”

“제국이 두려워하던 몬스터의 저력…….”

아무리 신경이 굵은 군주라도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

이대로 대관식이 끝나면 우리는 인간들에게 재앙으로 각인 되고 만다.

‘인간과의 관계 노선을 바꿔야 하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내가 주변을 돌아보는 중 케어와 눈이 마주쳤다.

케어가 내게 눈웃음을 지어 주며 말했다.

[우리의 아이 다크여, 불안해할 필요 없느니라.]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케어가 손짓하자 울트라 솔져를 탄 가디언들이 움직였다.

가디언으로 구성된 호위대를 이끄는 1장로 제르다코.

울트라 부대를 이끄는 메가피르와 게르피아.

이들이 나서서 인간들을 밀어내자 여왕들이 나아갈 길이 만들어졌다.

“전하를 보호하라!”

필라이를 비롯한 왕실 기사들이 나서 봤지만, 울트라 솔져들의 압도적 피지컬에 밀려 버렸다.

“전하, 저희가 나서겠습니다.”

“아니, 됐다. 길을 열어 줘라!”

조금 전 제논에게 합류한 클라우드의 비수 33명이 나서려 하자 제논이 그들을 말렸고, 디아도 은근슬쩍 물러나며 길을 터 줬다.

“거기까지다!”

가르탈이 길을 막으며 외쳤으나, 여왕들의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개미족의 여왕들이여 기어코 선을 넘다니!”

가르탈의 공격 범위 안에 발을 들인 포스가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혔고, 이에 놀란 가르탈이 급히 물러나려 했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왕급의 인간이여, 나는 그 선을 인정한 적이 없다.”

“큭!”

포스의 주먹이 가르탈의 가슴에 닿은 것이다.

‘안 돼!’

응축된 기를 쏘아 터트리는 포스의 폭렬권.

마스터라 해도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버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말리기엔 늦었다고 판단한 나는 가르탈의 부상을 걱정했는데, 포스도 그가 아군임을 아는지 살포시 밀어냈을 뿐.

털썩.

“너희들의 왕을 해할 생각은 없다.”

엉덩방아를 찍은 가르탈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지나치는 여왕들을 바라봤다.

제논의 앞까지 도달한 케어가 미소 지었고, 페르는 입을 삐죽 내밀었으며, 포스는 오만한 표정으로 제논을 훑었다.

“인간의 왕이라 해서 기대했는데…….”

폐르가 실망스러워할 때, 포스가 나서서 물었다.

“인간의 왕이여, 우리가 두려운가?”

창백해진 제논이 몸을 떨며 말했다.

“왕이라 할지라도 나 또한 인간이다. 너희들이 마냥 귀여워 보일 리 없지.”

“그럼 한 가지만 묻겠다. 모두가 우릴 보고 무기를 꺼낼 때, 넌 왜 검을 집어넣은 것이냐?”

포스의 질문에 장내의 인간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뽑혀 있던 제논의 검이 검집에 들어가 있음을 깨달았다.

“우린 맹수의 이빨을 두려워하며 그에 맞서기 위해 무기를 빼 들지. 웃기게도 맹수들은 우리의 무기가 두려워 발톱을 세우더군.”

제논이 두 팔을 천천히 벌리며 외쳤다.

“보아라! 짐에겐 너희를 위협할 무기가 없다. 그러니… 안심해도 좋다.”

클라우드의 국민과 귀족들이 왕의 무방비한 모습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볼 때, 사신단이 데려온 기사들과 고위 성직자들의 비웃음이 장내를 채웠다.

“오만하구나, 클라우드의 왕! 맹수를 길들일 수 있는 건 먹이와 올가미뿐이다!”

“몬스터와 정령을 착각한 것이냐? 세상을 동화로 배웠구나!”

호가호위하듯 쿠드라 옆에 자리한 고위 신관이 제논에 대한 비하를 넘어 클라우드 왕국의 미래를 점쳤다.

“봐라, 너희들의 왕의 멍청한 모습을! 무기까지 버려 가며 몬스터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저것이 어리석은 자를 왕으로 받든 너희 클라우드 왕국의 미래다!”

그득. 으드득…….

많은 이들이 사신단과 신관들의 말에 이를 갈았고, 그중에는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쿠드라 후작이 분해하다니.’

“닥치시오…….”

“누구냐?”

성직자가 주변을 둘러보다 붉게 후작과 눈이 마주쳤다.

“닥치라고 했소.”

붉게 충혈된 눈을 마주한 성직자가 당황하며 말했다.

“쿠드라 후작, 어찌 우리에게…….”

“내 그대들을 끌어들인 건 왕국을 위해서였소. 지금 그대가 자극하는 건 일개 개미족이 아니라, 왕과 백성의 목숨임을 모른단 말인가?”

“후작도 왕좌를 원한 게 아닌가? 어찌 희생 없이 왕좌에 앉으려 하오?”

“내가 원한 건 온전한 왕국을 양도받는 것이었지, 개미족에게 짓밟힌 왕국은 필요 없다!”

후작과 신관들이 투닥거릴 때, 제논의 의지를 읽은 리카르텐이 무기를 버렸다.

“리카르텐 자네…….”

“세야누스 님은 전하께 충성할 각오가 되셨습니까?”

“그것이… 무기를 버리는 것이란 말인가?”

세야누스를 시작으로 귀족파와 대치하던 자들이 무기를 버리며 개미족에게 적의가 없음을 증명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페르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포스가 흡족해하며 말했다.

“합격이다. 인간의 왕.”

포스를 한 발 물린 케어가 앞으로 나서며 한쪽 무릎을 굽히며 예를 취했다.

“인간의 왕이여, 너희들의 방식으로 인사함으로 적의가 없음을 밝힌다.”

케어에 이어 포스와 페르가 예를 취하자, 모여든 개미들 모두가 제논을 향해 엎드렸다.

마치 신하가 왕을 영접하여 복종을 나타내는 듯한 자세.

멀찍이서 이 광경을 본 음유시인이 낮게 읊조렸다.

“검은 재앙에 맞서 왕은 무기를 버렸다. 간악한 자들이 무력한 왕을 비웃었고, 역전의 영웅들이 왕을 위해 무기를 내렸다.”

격정에 휩싸인 음유시인이 감정을 폭발시켰다.

“무방비한 왕과 영웅. 그들이 양손을 보이며 재앙을 향해 외치니! 겁먹지 마라 재앙이여! 우린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음유시인은 제논을 향해 몸을 굽히며 말했다.

“왕의 일침에 재앙이 씻기며 검은 재앙이 흑의 군단으로 승화되나니… 기적 앞에 그 누가 서 있을 수 있겠는가?”

민중에 이어 귀족파가 제논을 향해 무릎을 꿇자, 사신단과 교단 세력이 당황했다.

“쿠드라 후작, 일어나시오. 어찌 목적을 잃는단 말이요?”

“신관들이여, 제국의 그 어떤 황제도 이루지 못한 것을 클라우드의 왕이 해냈지 않나. 그에게 보일 수 있는 마지막이자 최고의 예를 보이는 것이니, 방해하지 말라.”

인간에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 복종을 의미했지만, 개미족에겐 큰 의미가 없다.

케어가 내민 한 수로 개미족은 재앙이 아닌 왕의 군대로 인식됐고, 내 걱정을 날려준 케어는 제논에게 다가가 개미식 인사인 더듬이 인사를 건넸다.

“인간의 왕이여, 넌 이제 우리의 가족이다.”

“고맙습니다.”

“나는 페포케 군체의 여왕 케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마.”

울트라 솔져들이 여왕을 한 마리씩 등에 태웠다.

[다크여, 다가올 미래의 흐름을 틀어 뒀으니, 안심해도 좋다.]

[인간식으로 인사하는 거 자존심 상하는 거 알지! 여기 일이 끝나는 대로 안 돌아오면 다 엎어 버릴 거야!]

[꽤 강한 인간이 많군. 겨뤄 보고 싶지만, 둥지를 지키러 가 보겠다.]

내게 한 마디씩 던지며 광장을 벗어난 케어, 페르, 포스가 지하로 숨어들었다.

여왕들이 떠나자 몰려든 개미들도 썰물 빠지듯 사라졌다.

개미족이 떠난 후, 쿠드라 후작과 제논이 다시금 대립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쿠드라였다.

“전하, 더는 개미족과 개미교를 버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쿠드라가 자신의 검을 돌바닥에 박아 넣으며 말했다.

“선대에게 하사받은 검과 작위를 두고 갈 테니, 포카이 왕국까지 확장된 제 영토에 대한 불가침 조약을 맺어 주소서.”

쿠드라가 원한 건 권력이었던가?

그는 독립하여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할 생각인 듯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야.’

대립 파벌이 모두 떠나 준다면 왕권이 강화될 것이고, 왕국 건설에는 주변국의 견제가 따를 테니…….

‘다슬리를 포함한 북부 왕국들이 우릴 건드리기 껄끄러워질 테지.’

귀족들이 대거 빠져나가면 일시적으로 국력이 반 토막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괜찮은 제안이다.

제논 입장에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며 사신단에겐 충격을 안겨 주는 제안이었는데.

“이런 말은 없었지 않나! 쿠드라 후작!”

다슬리 왕국 쪽 사신단 대표가 항의하자, 쿠드라 후작의 측근 중 하나인 거구의 마스터 켄갈 스톤이 그들을 벌레 보듯 보며 말했다.

“후작님이 전하와 협상 중이다. 너희는 쓸모를 다했으니, 찌그러져 있어라!”

사신단 대표는 서슬 퍼런 스톤의 살기에 이를 악물었다.

제논이 시큰둥해 있자 불안했던 후작 측의 마법사, 파이자르 폰 힐손이 나섰다.

“전하, 일시적으로 힘드실지 모르나 식량과 전쟁 물자를 지원해 주신다면 저희 쪽에선 노예와 금은보화로 값을 치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국력은 빠르게 회복될 것이며 다슬리 왕국에 병력을 집중시킬 수 있을 테니… 저희를 놓아줌으로써 온전한 왕국을 가지옵소서.”

마법사에 이어 지장이라 불리는 귀족들이 쿠드라 후작의 독립을 지지했다.

교단들도 개미교와 결탁한 클라우드를 버리고 쿠드라의 왕국 건설을 도와 이권을 챙기려 했는데…….

“그래. 자네들의 말대로 쿠드라 후작의 독립에서 오는 피해는 다슬리 왕국을 통해 메꿀 수 있겠지.”

개미족의 여왕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쭐거리며 제논을 몰아붙이던 사신단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할 무렵, 제논이 또 한 번 폭탄 발언을 했다.

“하나, 작위를 돌려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충성이냐? 반역이냐? 네게 주어진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쿠드라가 함께 살자고 내민 손을 뿌리친 제논.

장내의 귀족들은 어안이 벙벙했고, 나르본느가 내게 물었다.

“쟤 오늘 뭐 잘못 먹었어?”

“평소대로 먹었어요.”

“근데 왜 저런데.”

“저도 모르죠.”

쿠드라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떨 때, 개미교의 신관들이 장내의 귀족들이 볼 수 있도록 대륙 지도가 그려진 목판을 세웠다.

제논은 대륙 지도 북쪽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쿠드라 후작, 그대에겐 포카이 왕국 북쪽 지역을 줄 테니 영지를 반납하고 코르텐 왕국과 골디아 왕국 서쪽을 정벌하여 영토로 삼도록 하라.”

전쟁 영웅의 영토를 빼앗고 북단으로 내쫓는 그의 처사에 모두가 경악한 가운데, 제논은 지도에서 다슬리 왕국 북단을 내리치며 말을 이었다.

“가르탈 백작은 다슬리 왕국 북단을 비롯해 아카드 왕국과 골디아 왕국 동부를 정복해 영토로 삼도록 하라. 그대의 영지는 벨레삭 백작령과 같이 다크에게 맡기노라.”

내전의 1등 공신인 가르탈마저 북단으로 내쳐 버린 제논.

“유리 바르퀴르 자작, 그대는 현 포카이 왕국 서부에서 쿠드라 후작을 지원하라. 레슬리 바르한 자작은 다슬리 왕국의 동부에서 가르탈 백작의 북벌을 지원하라. 엠브라스 부쉬트니 자작은 포카이 왕국과 다슬리 왕국 사이를 영토로 삼아 쿠드라 후작과 가르탈 백작의 북벌 및 바르퀴르 자작과 바르한 자작을 지원하라!”

공신들을 모두 타국으로 내쫓기로 한 제논은 비어 버린 쿠드라 후작령과 카밀 후작령을 왕실 직할지로 삼아 수도인 테헤라를 연결하여 광활한 직할령을 가지려 했다.

“쿠드라 후작, 가르탈 백작에겐 공작위를 하사하며, 쿠드라 공작에겐 북서의 지배자임을, 가르탈 공작에겐 북동의 지배임을 선포한다!”

제논은 쿠드라와 가르탈의 기반을 빼앗곤 명예뿐인 작위를 던져 줬고, 내게는 벨레삭이란 성과 공작위, 남부의 지배자란 칭호가 내려졌다.

‘벨레삭 백작령만 받아 가려 했는데, 가르탈 백작령까지 내게 주다니… 거기다 남부 영주를 모두 북쪽 전장에 보낼 생각이야.’

제논은 남부의 영주와 백성을 모두 북쪽 땅에 보내고, 남부를 온전한 형태로 건네려 했다.

“바르퀴르 자작에겐 크리스탈이란 성과 백작위를 하사한다.”

유리에게 새로운 성과 백작위가 내려졌고, 부쉬트니와 비브라는 본래의 성을 유지한 채 백작위가 내려졌다.

“개미 상단의 상단주 문트리아에겐 마일도스란 성과 백작위를 내리니, 아스만과의 무역으로 얻게 될 이익을 북벌에 지원하라! 야만인들과 함께 나를 도운 용병 루리아에겐 다나스란 성과 백작위를 내리니, 그대는 야만인들을 규합하여 북벌을 지원하라!”

늙은 귀족 하나가 얼굴을 붉히며 항의했다.

“전하! 아녀자에게 작위라니! 전례에 따라 부군을 맞이하게 하여…….”

“닥쳐라! 상인이건, 용병이건, 여자건, 아이건 관계없다!”

“하지만, 제국법이…….”

“감히 짐의 앞에서 제국법을 논하다니, 네 놈은 오늘부로 작위를 반납하고 사라져라.”

“전하! 그게 무슨!”

“기사들은 뭐 하는가? 저자는 이 자리에 있을 필요 없다! 끌어내라!”

제논이 북벌을 위해 만든 3공작 6백작 체제.

귀족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이라 왕당파의 귀족들 다수가 제논에게서 등을 돌렸다.

“전하, 어찌 이런…….”

귀족들은 격분한 쿠드라 후작이 제논의 망상을 부숴 줄 것이라 여겼지만, 내 눈에는 인간들이 볼 수 없는 게 보였다.

멍하니 지도를 바라보는 쿠드라.

“쿠드라 공작, 그대가 있기에는 왕국이란 그릇은 너무도 작지 않은가. 그러니 나와 함께…….”

쿠드라 후작의 야망은 더 큰 야망에 삼켜졌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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