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79화 (178/189)

179화. 오만의 페르

“쿠드라 후작, 왕은 그댈 살려 둘 생각이 없네. 이대로 역적이 되어 물러날 텐가?”

사신단과 성직자들이 쿠드라를 부추겼다.

“우리가 힘을 빌려줄 테니, 왕좌에 앉게! 그것만이 명예를 지키는 일일세!”

가르탈은 긴장했다.

리카르텐이 앞장서 귀족파를 막아서곤 있지만, 북방의 전쟁터로 쫓겨나게 생긴 귀족들은 제논의 편에 서야 할지 쿠드라를 지지해야 할지 갈등하는 상황.

이대로 쿠드라가 검을 빼 들면…….

‘막을 수 없다!’

죽음을 예견한 가르탈이 제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신 헤이머스 가르탈, 왕국의 검으로써 마지막까지 전하를 지키겠나이다.”

“가르탈 공작, 그대의 검은 지키기 위한 검이 아니다.”

단호한 제논의 말에 가르탈이 너스레를 떨었다.

“제가 아니고서 누가, 전하를 지킬 수 있겠나이까.”

가르탈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왕국의 비수들이 검을 뽑았고, 전향을 결심한 라이포와 카시안이 가르탈의 앞에 섰다.

“지키는 검이 필요하다면 절 써 보심이 어떻습니까?”

“전하, 배신자의 낙인이 두려워 결심이 늦었습니다. 이 죄는 검으로 갚겠습니다.”

마탑의 눈치를 보느라 남모르게 제논을 보필하던 마도사 시리우스, 페이론, 푸아그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드라 후작 측에 대마도사급인 힐손이 있으니, 저희 셋 정도는 있어야 그의 마법을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중립을 지향하는 마법사들까지 신하로 둔 제논의 모습에 가르탈은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씁쓸해했다.

‘제왕의 그릇이란 이런 것인가. 시대를 잘 만났다면 좋았을 것을…….’

모두의 시선을 받던 쿠드라가 폭소를 터트리더니 땅에 박은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전하의 말이 맞습니다. 신은 항상 꿈꿔 왔지요. 이 작은 왕국에서 벗어날… 오늘을 말입니다.”

뽑힌 쿠드라의 검은 옆을 향해 휘둘러졌고, 그와 동시에 쿠드라의 기사들이 성기사들을 덮쳤다.

“컥!”

헬리오스교의 고위 성직자가 쓰러지며 당황한 성직자들이 방어태세를 갖추려 했으나, 마스터가 작정하고 휘두른 검을 막아 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거기다 마스터는 쿠드라 한 명이 아니다.

거구의 스톤과 고속의 에이지가 날뛰며 교단 세력을 철저히 짓밟았다.

“왕국에 반하는 자는 한 명도 살려 두지 마라!”

“멈춰라! 신의 분노가 무섭지 않은가?”

“멈추긴 뭘 멈춰! 후작님이 검을 휘두른 순간 전쟁은 시작됐다.”

전직 디오나교의 신관 자칼 노헤어가 이끄는 치료부대가 대거를 꺼내 들더니 성직자 사냥에 합류했고, 힐손의 마법병단의 서포터가 더해지며 교단 세력은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무너졌다.

교단 쪽 인원이 학살당하는 와중 쿠드라의 정병들은 사신단을 덮쳤다.

사신단의 병사들은 살기 가득한 쿠드라의 병력을 막아 낼 수 없어 급급히 광장을 벗어나려했다.

“추살하라!”

쿠드라의 명에 기사들이 병력을 이끌고 사신단을 쫓았고, 사신단은 매복 중인 쿠드라군에 의해 포위당하며 항복하기에 이르렀다.

순식간에 정리된 교단 세력과 사신단을 보며 제논 측은 예상보다 훨씬 강한 쿠드라군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일 줄이야.’

‘전쟁을 아는 놈들이다.’

가르탈과 리카르텐조차 감탄을 금치 못한 상황.

성직자들의 피로 몸을 적신 쿠드라가 검을 검집에 넣곤 제논을 향해 걸어갔다.

검을 리카르텐에게 맡긴 쿠드라.

그의 기세에 밀린 왕당파 귀족들이 길을 열어 줬다.

가르탈의 앞까지 간 쿠드라가 무릎을 꿇었다.

“5년… 5년 후, 이 자리에서 폐하로 불러드리겠나이다.”

“그때 자네는 진장한 의미로 북서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쿠드라 후작의 가신들이 무릎을 꿇자 제논의 충신들이 눈물을 쏟았고, 모여든 민중이 만세를 외쳤다.

다크는 눈을 감은 채 광장을 가득 채운 열기를 만끽했다.

멀찍이서 상황을 보고 있던 프릴의 암흑가 세력은 안도하며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   *   *

제논에 의해 평정된 장내를 보며 나르본느가 물었다.

“다크, 네 의도대로 된 거야?”

과정과 결과는 내 예상을 벗어났지만, 결과적으로 개미족과 인간과의 공생 관계가 공식화한 것이니…….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제논은 필라이, 라이포, 카시안 등을 왕실 기사 단장으로 삼으며 명예 백작위를 줬고, 시리우스, 페이론, 푸아그라 등에게 명예 백작에 해당하는 직위를 주며 궁정 마법사란 직책을 맡겼다.

논공행상을 겸한 대관식이 끝나고, 왕국 실세가 된 세 명의 공작과 여섯 명의 백작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모여 줘서 고맙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건 빠른 시일 안에 북부 전장으로 복귀해야 했던 쿠드라 공작이었다.

“저도 공작님의 출정에 맞춰야 하니, 필요한 자리라 여겼습니다.”

쿠드라를 지원해야 하며 정복지를 안정시켜야 할 유리 크리스탈 백작.

“우리도 그쪽 상황을 알아 두면 좋겠지.”

다슬리와의 전쟁을 급히 준비하게 된 가르탈 공작, 부쉬트니 백작, 비브라 백작.

“전하가 이리 큰 인물이 될 줄이야. 한동안 조용히 보내긴 글렀구먼.”

이른 시일 안에 영지를 안정시키고 북벌을 지원해야 할 세야누스 백작, 문트리아 마일도스 백작, 루리아 다나스 백작.

“됐고, 서로 바쁠 테니 용건이나 꺼내라.”

그리고 곡창지대라 할 수 있는 남부의 지배자가 되어 생산에 힘써야 할 나.

“다크 벨레삭 공작, 그동안의 결례를 사과하지.”

쿠드라는 무릎을 꿇어 가며 모두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고, 이제 한배를 탔음을 강조했다.

“5년이라고 내입으로 말하긴 했지만… 제국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네.”

쿠드라가 알고 있던 정보를 풀었다.

“다슬리는 침공을 위한 준비는 돼 있어도 수성 준비가 되어 있지 않네. 내년 초에 총력을 다해 급습한다면 1년 안에 무너뜨릴 수 있을 거다. 문제는 그 너머에 있는 왕국들이지.”

북쪽 끝에 있는 코르덴, 골디아, 아카드 세 나라 모두 내실이 탄탄한 데다 결속도 나쁘지 않아 한두 해로 무너뜨리긴 쉽지 않다고 했다.

“지도로 봐선 작은 왕국이다. 세 나라가 힘을 합쳐도 지금의 클라우드라면 병력으론 밀리지 않을 거다.”

“그럼 뭐가 문제란 말인가?”

세야누스의 의문에 가르탈이 대신 답했다.

“전선이 길어지면 필연적으로 보급로가 길어진다. 제국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우린 최단 시간에 서대륙을 평정해야 하는데, 보급로 문제는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가르탈의 말이 맞네.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쿠드라는 그동안 축적한 영지 관리 노하우를 풀었다.

“정복지의 영민을 노예로 강등시켜 각지로 흩어 두고, 소수만 남겨 이주해 온 클라우드 왕국민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면 단시간에 정복지를 안정시킬 수 있네.”

“클라우드 왕국 백성을 정복지로 이주시키고, 정복지의 백성이 뭉치지 못하도록 연고가 없는 남부에 흩어 두잔 이야기군.”

이곳 귀족들이 애용하는 영민 섞기 전략이었는데, 세야누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가 너무 많아. 이제 막 내전이 종결된 상황이야. 쿠드라 공작, 그대의 말대로 했다간 보급로를 확보하기도 전에 본진이 흔들릴 수도 있어.”

표정의 굳어 가는 인간들을 본 나는 이때다 싶어 끼어들었다.

“그런 거라면 내 쪽에서 수용해 줄 테니 얼마든지 보내.”

남부 귀족들은 모두 다슬리 왕국과의 전쟁에 나설 것이고 이쪽에 살던 주민 태반이 강제로 이주당할 터라, 내게는 인간 없는 빈 땅만 남는다.

“수가 많다. 관리할 수 있겠나?”

빈 땅에 몬스터라도 데려와야 할 판이니 타국의 병사든 범죄자든 상관없었다.

“가리지 않고 다 받는다. 이쪽도 전문가니까, 믿고 보내면 돼.”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는 건 고맙지만, 대가를 받지 않을 수 없다.”

“보급품에 치를 대금 때문에?”

“그렇다.”

회의 내내 보급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갔고, 서로 간 합의점을 찾아 갔다.

많은 약속과 서약이 오가며 우린 서대륙 통일을 목표로 서로 협력을 아끼지 않기로 맹세했다.

“전쟁 영웅이라 칭송받는 나 월스 쿠드라, 일찍이 왕국의 검이라 불리던 헤이머스 가르탈, 남부 대산림의 한축 다크 벨레삭. 우리의 힘이 하나가 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성한 클라우드를 맞이했다! 하지만, 지금의 전력으론 제국에 맞설 수 없다. 서대륙을 통일하여 클라우드 왕국이 제국으로 거듭나는 그날까지! 배신은 나 월스 쿠드라가 용납하지 않겠다!”

이중 누군가 약속을 깨거나 왕국 이익에 방해된다고 판단되면 함께 제거하기로 하며 회의를 마쳤다.

가르탈은 부쉬트니와 비브라와 할 이야기가 있어 남았다.

쿠드라가 떠나기 전 나는 오해도 풀 겸 후작과 따로 만나 은밀한 거래를 청했다.

“인간을 먹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릴 위해 일하는 인간은 식량이 아니야.”

비상식 혹은 예비 식량으로 보긴 하지만…….

‘인간은 몬스터에게 있어 영약과 같아. 3차 진화종을 늘리기 위한 중요한 자원이기도 하지.’

클라우드 왕국은 개미족에게 있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다.

우린 거위의 배를 가를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거위를 키워 더 많은 알을 낳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전장에서 발생한 사체를 원하는 건가.”

“그래, 이쪽에선 충분한 값을 치를 테니. 어때?”

“좋은 제안이군. 하지만 난 너희에 대해 잘 모른다. 힐손과 상의 후에 결정하지.”

“그렇게 해.”

쿠드라와의 이야기는 잘 풀렸고, 그가 수도를 떠나자 귀족들이 당황했다.

“아니, 식량은 충분히 확보하신 건가?”

“왜 그냥 가지?”

동부 귀족들의 자금을 맡은 메틴이 세야누스에게 끌려갔고, 그 소식을 들은 세르티아가 용병단을 떠나 있던 간부들을 모아 메틴을 구하러 갔다.

“대장! 구하러 왔다!”

세야누스의 저택 창문을 통해 난입한 과거 개미 용병단을 지탱해 주던 간부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한참이나 다른 상황에 당황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들은 메틴이 귀족들이 맡긴 자금을 횡령했을 거라 생각했고, 성난 귀족들에게 고문당하는 메틴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인데, 현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메틴이 영웅 대접을 받아 가며 명예 작위가 수여되는 중이었다.

귀족들과 용병들.

서로 당황한 채 어찌할 줄 몰라 했고, 세르티아가 시녀에게서 술잔을 뺏어 원 샷을 때리곤 억지웃음을 지었다.

“메틴 경의 작위 수여식을 축하하기 위해 급히 왔습니다. 하하하.”

뭔가 오해가 있었음을 안 귀족들이 함께 웃어 줬다고 메르디아를 통해 전해 들었다.

대관식 때 헬리오스교, 가이아교, 아레스교의 고위 성직자 다수가 죽었고, 그들을 뒤에서 응원하던 세레나교도 큰 피해를 봤다.

하지만, 왕국에는 그들의 뿌리기 깊숙이 박혀 있었다.

헬리오스교의 경우 제국과 왕국 귀족을 연결해 주는 역할로 고위 귀족이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했던 종교였고, 명예를 아는 기사라면 아레스교의 세례를 받지 않을 수 없다.

농업 관련으론 가이아교가, 미용과 여인에 관해선 세레나교가 독점적 위치에 있었으니…….

개미교가 왕국 제일 신앙이 되기 위해 그들의 아성을 무너뜨려야 했다.

“문트리아… 아니, 이젠 마일도스 백작이라 불러 줄까?”

“공적인 자리가 아니니 편하신 대로 불러 주세요.”

“상단에서 관리하던 약국을 개미교에 넘겨줘.”

“약국을요?”

현재 개미교의 교주는 최초로 대신관급 신성력을 갖춘 데이지였고, 나는 개미교가 의료 관련 사업을 독점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메디, 각 신전에 3차 진화종인 의료 개미를 지원해 줘.”

3차 진화종 의료 개미로는 메디와 같은 메딕 앤트, 개미형으론 생산 특화인 자이언트 포션 팩토리와 의료 특화인 허브 워커가 있었다.

“그럼 연구 개발이 지체되는데 괜찮나요?”

이미 내 이해 범주를 뛰어넘기 시작한 개미족의 의술.

굳이 연구 개발에 목멜 필요가 없었다.

개미교가 의료계를 장악해 갈수록 기존 종교 단체들이 타격을 입을 테고, 조만간 귀족들의 줄도산이 이어지면 각 교단의 돈줄이 끊어질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

데이지에게 방어 체계를 공고히 하도록 지시한 나는 싸늘해진 겨울바람을 피해 둥지로 돌아갔다.

둥지로 돌아오니 개미들이 열렬히 환영해 줬고, 나의 직속 간부들이 모여 그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하려 했으나, 페르가 날 훈련장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보고는 뒤로 미뤄야 했다.

“다크, 아무리 장로라지만 넌 워커에 불과해.”

페르는 케어에게서 들은 내용을 내게 말해 줬는데, 요지는 솔져도 아닌 워커인 내 무력은 한계가 분명하니 밖의 일은 솔져 출신의 개미와 전투 개미들에게 맡기고 둥지에 남아 워커의 본분을 다하란 것이었다.

“넌 알아야 해. 전투 특화도 아닌 워커가 넘어설 수 없는 벽을…….”

솔져보단 약하지만, 워커보다 강한 퀸.

4차 진화를 이루면서 페르가 거만을 넘어 오만에 도달한 상태.

“나도 포스 같은 전투 특화는 아니지만, 워커인 네 본분을 알려 줄 정도란 걸 알아 둬.”

페로몬을 조정하여 자신의 신체를 강화한 페르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덤벼봐. 그리고 깨닫도록 해. 네 종의 한계를.”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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