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자원 개미군단-180화 (179/189)

180화. 토끼와 거북이

페르의 각성 능력은 페로몬 강화.

광범위 버프와 디버프에 능하며 바람의 영향이 적은 곳에선 더욱 강력한 성능을 발휘했다.

하지만 내성 특화종인 내겐 상태 이상을 불러오는 페로몬이 통하지 않을 테니…….

그녀는 신체 강화에 페로몬을 집중했다.

강화된 신체에 자신감이 더욱 붙은 그녀가 좌우로 스텝을 밟아 보였다.

‘강화치가 생각보다 높은 걸.’

그녀가 품고 있는 마력량은 포스 이상이었고, 제어 능력 또한 상당하여 양손에 마강기를 두를 수 있었다.

‘서큐 퀸의 특성, 흡수 덕인가?’

살아있는 생물의 생기를 흡수하는 서큐 퀸.

나를 비롯한 흡수 계열은 방대한 마력과 뛰어난 제어력을 갖추고 있는데…….

변화를 주지 않은 공허의 마력은 물리력이 부족한 반면, 그녀의 마력은 상당한 물리력을 갖추고 있다.

‘포텐셜이 높아.’

마스터 서큐 퀸의 특성에서 오는 방대한 마력과 그에 따른 제어력, 거기다 페로몬 강화 능력과의 시너지까지.

‘확실히, 특수종인 여왕이라 스펙 자체는 뛰어나 보이네.’

4차 진화종이 된 지 얼마 안 됐다고는 여겨지지 않는 전투력.

오만해지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이는 내가 그동안 쌓아 온 전투 경험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말릴 생각이 없나?’

참관인은 포스와 케어뿐.

케어는 결과를 예상했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페르를 바라봤지만, 페르는 이를 알지 못했다.

“덤벼 봐, 다크! 너와 나의 격차를 보여 줄 테니!”

페르의 도발이 이어졌다.

‘어쩔 수 없지.’

힘 조절 실패를 우려한 나는 암흑마창을 내려 두고 쓸 만한 둔기를 떠올렸다.

“뭐 하는 거야?”

무욕의 팔찌에서 저택 수관 매설에 쓰이고 남은 쇠파이프를 꺼내 휘둘렀다.

휘익! 휘익!

손에 감기는 맛을 확인하던 중, 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네 비장의 무기란 말이지…….”

꿈보다 해몽이라고 왠지 페르는 무언가 납득한 듯했다.

난 그녀의 요구대로 선공을 가했다.

거리를 좁혀 휘두른 일격을 가볍게 피한 페르가 반격해 왔다.

분홍빛 마강기를 두른 손날에 맞서 공허의 마강기를 둘렀다.

쾅!

마력 일부를 흡수하여 위력을 줄였으나, 페로몬 능력으로 개미족의 힘까지 극한으로 끌어올렸는지 몸이 붕 떴다.

퍽!

아무리 여왕이라지만, 전투 특화도 아닌 특수종의 힘에 밀려 벽에 처박히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봐. 넌 나조차 넘어설 수 없어. 그러니 위험한 일들은 전투 특화종들에게 맡기고 넌 둥지에 남아 장로의 일을 수행하도록 해.”

페르의 마력에 서린 걱정이 읽혔다.

‘하, 이제 막 진화한 여왕이 날 걱정해?’

순간적으로 빡침을 가라앉힌 나는 마력 변환에 들어갔다.

포스를 통해 깨닫게 된 방어 특화 마력.

대지 속성의 마력으로 육중한 무게감을 더해 주는 마력이라 공격력 또한 급증한다.

“제대로 상대해 드리죠.”

“조심해, 난 아직 힘 조절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팟.

거리를 좁혀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조금 전과 같은 양상으로 쇠파이프는 허공을 갈랐고, 그녀는 카운터를 시도했다.

금강 모드라 칭하는 지금 상태의 나는 공허 모드보다 훨씬 느렸지만, 그녀의 공격을 막아 내는데 필요한 건 손목을 살짝 비트는 정도면 충분했기에, 느림은 내게 빈틈을 선사하지 못했다.

캉! 카캉!

‘당장 미노타우로스랑 붙어도 밀리진 않겠어.’

페르는 속도로 날 압도하여 밀어붙였지만, 대충 흔든 듯한 쇠파이프에 계속 막히자 미간을 좁히며 외쳤다.

“워커 주제에!”

양손에 이어 발에까지 마강기를 두른 페르.

더욱 빨라진 속도로 날 몰아붙였지만.

‘흠…….’

두 여왕이 왜 포스와 나의 대련을 말리지 않고 지켜보는지 알 것 같았다.

“페르 님, 이게 전력입니까?”

“너… 지금 날!”

놀랍다.

그녀가 마력을 태우자, 마강기가 등을 뚫고 튀어나와 분홍빛 날개가 형성화했다.

“페르! 그건 안 돼!”

케어가 말리려 하자 포스가 그녀를 막았다.

“포스, 저건 둘에게 너무 위험한 일이야. 지금 멈춰야 해!”

포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다크는 일찍이 나와 합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아이야.”

“하지만…….”

“그리고 네가 본 미래에서도 다크가 다쳤던가?”

“그건…….”

두 여왕이 실랑이하는 동안 페르의 분홍빛 마강기 날개가 완성됐고, 손과 발에 두른 마강기가 한층 더 선명해졌다.

“다크, 잘 봐 둬. 이게 마스터 서큐 퀸의 진정한 힘이야…….”

캉! 카캉! 카가캉!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수준의 공격.

금강 모드임에도 밀려나는 신체.

‘이건…….’

이런 힘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마력을 증폭시킨 건가?’

순간이겠지만, 페르의 현 상태는 헤라클레스의 황금 모드와 견줄 정도.

정면으론 막아선 내가 버티질 못하나, 공격로를 막아 위력을 줄이고 타격점을 흘림으로 어렵지 않게 막아 냈다.

‘이게 전력인가?’

나는 그녀의 공격을 흘려 내며 물었다.

“페르 님은 개미족의 강함이 무엇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나요?”

종족 특성에 따른 특화 능력, 여왕과 장로들이 가진 각성 능력, 그리고 개미족이 가진 탁월한 힘… 그 외에도 개미족에겐 다양한 무기가 있다.

나는 그녀에게 강함의 원천을 물었고, 페르가 생각한 강함의 원천은…….

“마력이다!”

“틀렸습니다.”

퍽!

“컥!”

복부에 일격을 허용한 페르가 당황했다.

“어째서…….”

“그 상태로 몇 초를 더 지속할 수 있죠?”

다급해진 페르가 속도를 높여 돌진해 왔다.

눈으론 쫓을 순 없지만, 내 쇠파이프는 그녀의 공격로에 끼어들어 흐름을 끊으며 틈틈이 카운터를 넣어 줬다.

제3자의 눈엔 분홍빛 잔상을 남기며 고속으로 이동하는 페르가 내 파이프에 충돌하는 광경으로 비칠 테고, 이를 본 케어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전력의 페르를…….”

포스가 놀란 케어에게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말했지 않나, 나와 합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아이라고.”

나와 나르본느는 포스를 이긴 적이 없다.

처음에는 상성상 방어력이 떨어져 그녀의 한 방을 견디지 못해서 지는 것이라 여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상대가 강력한 한 방이 있다는 걸 알면 맞아 주지 않으면 그만.

포스의 움직임은 쾌속하지 않으니, 회피에 집중하며 긴 린치를 이용해 타격을 주면…….

‘그것도 아니었지.’

다양한 시도를 통해 포스의 강함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게 된 나는 그와 같은 강함을 손에 넣기 위해 상당 시간을 투자했다.

“좀 더 생각해 보시죠 페르 님.”

“그럼, 우리의 힘은 그 어떤 종족보다.”

“대형종에 미치지 못하죠.”

퍽!

“큭, 마력 제…….”

“그건 개미족의 강함이라기 보단 페르 님의 특성일 뿐입니다.”

퍽!

답을 알아낼 때까지 어울려 주려했는데, 마강기로 형성된 그녀의 날개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직 10초도 안 지났을 텐데.’

그녀의 전투 지속력은 토끼 수준.

급속도로 떨어지는 무력으로 무작정 덤벼드는 바람에…….

“컥! 큭! 끅! 캑!”

어느 순간 북을 두드리듯 페르를 패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닫곤 거리를 벌렸다.

“페르 님, 이쯤 하시죠.”

마력을 소진한 그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신체가 5세 아이 수준으로 줄어 있었다.

“어째서… 내가…….”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페르가 내게 물었다.

“워커인 네가 어째서 이정도로 강할 수 있는 거야?”

눈물을 머금은 멍투성이의 꼬마.

외향적으로 상대를 죄책감에 빠뜨리는 페르에게 친절히 설명해줬다.

“확실히 서큐 퀸은 전투종에 비견되는 힘을 가졌어요. 하지만…….”

서큐 퀸의 특성과 각성 능력에 의존한 페르는 개미족 본연이 갖춘 기능이 부실했다.

“개미족의 진정한 강함이 어디서 오는지, 그걸 깨닫지 못하면 페르 님은 저는커녕 앞으로 4차 진화종이 된 개미들을 이기지 못할 거예요.”

포스와 케어를 돌아보니 케어는 오만한 포스의 기가 꺾인 것에 만족한 표정이었고, 포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게 염화를 보내 왔다.

[페르는 우리 중에서도 제일 멍청한 녀석이다. 좀 더 힌트를 주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다.]

[알려줘도 수긍하지 않으면 소용없을 텐데…….]

분해하는 페르를 좀 더 자극하기 위해 매몰차게 돌아서며 말했다.

“페르 님은 퀸이시니, 굳이 강함에 집착할 필요는 없겠죠.”

다행히 페르는 내 의도대로 움직여 줬다.

“알려 줘! 뭘 해야 너와 포스처럼 강해질 수 있는 거야?”

페르가 내 발목에 매달렸다.

“알려 주는 대신, 이제 워커라고 무시하지 않는 겁니다.”

끄덕끄덕.

포스를 비롯한 일부 개미들이 갖춘 우월한 전투 센스.

처음에는 그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을 알게 되면 그리 대단한 비밀도 아니었다.

‘특정 조건만 만족하면 개미족은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간파의 힘을 가지지.’

개미족에겐 진동, 온도, 습도, 냄새, 맛… 그 외의 소소한 변화들을 모두 감지해 내는 더듬이 감각과 이를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두뇌가 있다.

밀폐된 곳에서 극한으로 발휘되는 더듬이 감각은 대상과 공간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여 이어질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예측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예측 능력은 실전을 통해 자연스럽게 쌓이며 얼마나 빠르게 어디까지 예측할 수 있는지가 개미족의 무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즉, 포스와 나의 대련은 서로의 움직임을 읽으며 상대의 움직임을 유도하여 승부를 가리는 두뇌 싸움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예측 능력은 개미족의 연산력이 받쳐 주지 않으면 불가능하여 타 종족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예측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포스는 1대1 전투에 있어 미래시(未來視)라 해도 과언이 아닌 능력을 선보였고, 나는 그가 바라보는 비전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 왔다.

‘더듬이 감각만으로는 부족해서 마안의 활용도를 높여야 했지.’

힘들게 체득한 걸 공짜로 알려 주는 건 아쉽지만, 여왕이 강해지면 그만큼 호위병을 줄일 수 있으니…….

톡톡.

나는 더듬이를 움직이며 머리를 두드렸다.

“머리?”

뭔가를 깨달은 페르가 무너지듯 쓰러져 잠들었고, 포스가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1장로 일리아나가 들어와 페르를 업어 간 후, 이참에 케어의 무력 수준도 알아볼 겸 대련을 청했다.

“케어 님의 무력을 알고 싶어요.”

“워커 퀸은 전투종이 아니란다. 그렇다고 마냥 약하기만 한 건 아니니, 보여 주마. 마스터 워커 퀸이 가진 힘을.”

외골격 비중이 살짝 높아진 케어.

지능 특화종이라 수 싸움엔 능했지만, 피지컬이 너무 떨어져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퍽! 퍼퍽! 퍼버벅!

적당히 빈틈을 찔러 주며 상대해 줬다.

케어는 생각만큼 따라 주지 않는 몸이 원망스러운지 얼굴을 잔뜩 구겼다.

‘둥지 안에서야 더듬이 감각이 최고조로 작동하니, 웬만한 준왕급은 이길 수 있어도… 밖으로 나가면 준왕급 이하야.’

그나마 기대할 만한 건 어떤 도구도 금세 다룰 수 있게 되는 워커 퀸의 특성과 한 번 본 기술을 파훼하려 드는 탁월한 학습력이었는데.

‘전투 경험을 쌓고, 충분한 마력을 갖춘다면 강해지긴 하겠어.’

“헉… 헉… 다크여, 이만하자꾸나.”

두 여왕에 대한 평가를 마쳤다.

한 명은 10초 무적의 토끼였고, 다른 하나는 대기만성형 거북이다.

“준비운동은 충분했나?”

포스가 몸을 풀기에 나는 쇠파이프를 집어넣고, 암흑마창을 들었다.

“예전의 제가 아닌데, 괜찮겠어요?”

간만에 포스와 부딪히며 둥지를 흔듦으로써 나의 귀환을 알렸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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